생애노정 358

유년 시절 - 맏누나 시집가던 날 울던 생각, 죽을 병에 걸려 뜸을 두 달 넘게 5천 장 가까이 떠 나았다.

▣ 1996.8.22(일) 구원 섭리의 원리관. 남미 살로브라호텔. 279-273 벌써 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서 맏누나가 나를 사랑했는데 시집가서 병에 걸린 거예요. 그것도 역사라구요. 아무리 병원에 가도 안 나아요. 17살인가 시집 갔는데 신랑이라는 사람을 내가 투정妬情(투기하는 마음)한 거예요. 어려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저거, 어떻게 죽여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날 사랑하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많이 낳아 가지고 아기들을 다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맏누님이 치다꺼리를 한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시집갈 때 울던 생각,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볼 때 맏딸이 있다가 가니까 울 거 아니에요? 붙들고 울던 생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옛날 얘기가 되었습니다. 우..

생애노정 2019.03.28

노년 시대- 빠른 것입니다. 어물어물할 새가 없는 것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구요

▣ 1994.8.23(화) 해양수련. 축복2세. 코디악. 263-153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은 학생 시대가 있었다구요. 생각하면 빨라요. 엊그제 같다구요. 엊그제 같은데 벌써 80이 가까운 노인이 돼 있고, 인생행로에 이제는 낙조를 바랄 수 있는 때에 왔습니다. 빠른 것입니다. 어물어물할 새가 없는 것입니..

생애노정 2019.03.28

소년 시절- 못된 할아버지 있으면 말이에요, 당신이 할아버지면 젊은 손자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 키워줄 수 있어야지,

▣ 1991.10.23(수) 지도자의 기준을 갖춰라. 한남동. 221-088 못된 할아버지 있으면 말이에요, 선전포고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할아버지면 젊은 손자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 키워줄 수 있어야지 왜 꽥꽥 하고, 길가에 서 가지고 자기만 제일이라고 하고 그러느냐"고 말이에요. 그 집에 ..

생애노정 2019.03.28

소년 시절- 동네에서 못 사는 사람이 애기 낳아 가지고 밥을 못 해먹고 있으면 내가 아버지 밥상을 갖다가 줘 본 적도 있어요.

▣ 1991.10.13(일) 당당하게 가라. 본부교회. -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제목 말씀 후의 말씀. 220-020 내가 악한 사람이나 악한 일을 두고는 밤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어려서부터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문 사장 아버지가 "큰집 작은애는 역적 아니면 충신이 될 텐데 이 역적의 길밖에 남아 있지 않은 왜정 때에 있어서 제 명에 못 죽을까 걱정이다" 하고 한탄하던 소리를 들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구요. 옳은 것, 그른 것을 분명하게 가렸다구요. 동네에서 못 사는 사람이 애기 낳아 가지고 밥을 못 해 먹고 있으면 내가 아버지 밥상을 갖다가 줘 본 적도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밤잠을 못 잤다구요. 쌀독을 깨뜨려 가지고 쌀을 갖다 주고···. 그러고는 "내가 잘못한..

생애노정 2019.03.28

소년 시절 -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나 한 말이 뭐냐 하면 "뒷동산에 가면 뱀에 물리지 말라" 그거였어요.

▣ 1988.5.9(월) 본연의 고향을 복귀하자. 광주교회. 178-180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나 한 말이 뭐냐 하면 "뒷동산에 가면 뱀에 물리지 말라" 그거였어요. "그 뱀이 뭐냐? 요놈의 뱀이". 그래서 뱀 잡기 운동한 거예요. "하지 말라"는 것을 다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쁘다는 것을 다 정복한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 말라, 하지 말라" 하는 것은 나쁜 거거든요. 뱀을 정복하고 나니까 "나쁜 짓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거예요.

생애노정 2019.03.28

흑석동 학생 시절- 어려서 교회 다닐 때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얼굴을 못 들고 다녔습니다.

▣ 1969.9.30(화) 하늘의 성화. 전본부교회. - 전국성화대학생 총회. 10월 1일 상오 2시경까지 말씀. 025-107 선생님이 어려서 교회 다닐 때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얼굴을 못 들고 다녔습니다. 며칠 동안을 회개하지 않고는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생애노정 2019.03.28

일본 유학- 요주의 인물

▣ 1969.1.26(일) 하늘을 사랑하자. 전본부교회. 022-096 선생님은 지금도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합니다. 선생님 뒤에는 항상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면 벌써 연락이 됩니다. "미스터 문이 지금 고향에 가니 잘 감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두에 내리게 되면 모르는 사람이 "지금 오십니까? 본인은 형사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고 나서는 계속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 1972.10.14(토) 통일의 용사.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흥남감옥 출옥 기념 예배. 063-238 내가 국민학교 졸업할 때 식장에서 대웅변을 했어요. 서장, 군수들을 앞에 놓고 "일본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들이 깠어요. 국민학교 ..

생애노정 2019.03.28

정주보통학교 - 1938.3.25. 졸업식 때 내가 자원해 그 단상에 나타나서 30분 이상 일본에 대해서 반박하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1.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反駁. ▣ 1990.12.30(일) 본부교회.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를 맞는 경계선에서. 211-134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정주보통학교에서의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많은 학부형들과 전체 선생들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고 정주읍, 그때는 읍이었는데 정주읍의 유지들이 축하하기 위해 전부 다 모였습니다. 그 졸업식에서는 교장의 훈시가 있었고, 그다음에 손님의 축사가 있었는데 그다음에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하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 앞에서 그랬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1982.10.24(일) 천의를 따르자.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 원리연구회..

생애노정 2019.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