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358

일본 유학 -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선생님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이 입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가 있을까, 먹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라고 熟考한 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서른 살까지는 배고프지 않을 때가 없었다. 언제든지 밥을 가져오면 사발로 서너 그릇을 단번에 먹어 버린다. 그 정도로 배고프지 않을 때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고 하게 되었다. 전쟁 시대인 그때에는 식권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식권이 있어서 "몇 그릇이나 먹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먹어 보자"고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젊은이들이 모이면 참 재미있어요. 모..

생애노정 2019.04.03

일본 유학 -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그리고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구들도 몰랐다. 선생님은 성서를 연구하기도 하고 종교 관계 서적이나 보통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철학서를 가지고 와서 읽었다.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공산주의를 공부하고 있어서 그 친구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또 노방에서 큰소리로 연설한 적도 있었다. 벚꽃이 만발하여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그곳에서도 했다.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을 했다. "내일의 청년은 이러이러한 식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쳤다. 그때 예언했던 것이 지금 다 맞아 나가고 있다. 그때 친구들이 어정..

생애노정 2019.04.03

일본 유학- 일본인으로부터 많은 고문을 받았다.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고문당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며 짐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선생님은 일본인으로부터 많은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고문한 그 특별고등형사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친구들을 전부 모아 놓고 "불쌍한 것은 패한 일본이다. 이미 주권을 잃어버려 무릎을 꿇고 비는 사람을 때리는 자는 하나님이 벌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국에서 쫓기고 있는 일본인을 조용히 불러 "고문당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며 짐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 1992.2.11(화) 가야 할 천국 기지. 한남동. - 일본 간부. 일본어. 227-196 일본 땅에서 한국 교포들이 얼마나 괴로움을 받았어요?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 이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사실..

생애노정 2019.04.03

일본 유학- 눈 오는 날이나 태풍이 부는 날에는 학교 가지 않고 하층 노무자들의 밥집에 나가 일을 했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선생님은 눈 오는 날이나 태풍이 부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하층 노무자들의 밥집에 나가 일을 했다. 그런 때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태풍이 불고 있던 때니까 거기서 손이 새까맣게 되어도 비에 맞아서 죽 흘러내려 깨끗하게 되어 버린다. 그런 가운데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다. 그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쁜 사람이 있으면 혼내 주었다. 이런 것을 선생님은 잘 생각한다. 때로는 큰 놈을 해치운다. 그리고 노동판에는 조장이 있어서 착취를 하는데 3할은 떼낸다. 그래서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하면서 강력히 항거했다. 선생님은 무서운 자들이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들의 ..

생애노정 2019.04.03

일본 유학- 와세다 대학의 高田馬場의 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걸었다. 여러분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는 선생님의 눈물이 스며 있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와세다 대학의 高田馬場의 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걸었다. 잘 걸었어요. 그것을 생각하니 "아, 가까운 곳에 왔으니까 옛날을 회상하여 "걸으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기도했던 그 기도의 정이 현재 일본의 일각에 성취된 감사의 기도를 하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면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으로써 와세다 대학의 戸塚町(토츠카초)를 다카다노바바로부터 걷기를 바란다. 거기에 있는 굽은 길, 거기에 있는 전신주 등 여러분들이 기억할 수 있는 곳에는 선생님의 눈물이 스며 있다고 생각해도 틀림없다.

생애노정 2019.04.03

유년 시절- 골목대장, 힘이 있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려운 입장에 있으면 내가 출동해서 해결했어요.

▣ 1992.11.22(일) 세계의 어머니. 한남동. - 참어머님 세계평화여성연합 모스크바 대회 때, 서울 교규장, 간부. 238-341 선생님은 씨름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말도 잘했다구요. 그래서 어디 가든지 여자들이 궁둥이를 따라다니며 야단하고 모여 앉으면 쏙닥거린 거예요. 거기에 다 놀아나는 것입니다. 내 주도 밑에 다 놀아났지 환경 밑에서 내가 놀아나 본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몇 개 동네 다 모여라" 한마디만 하면 전부 다 모이는 것입니다. 거기서 잘못한 게 있으면 "이놈의 자식···!" 하고 내세워서 기합도 주었다구요. 골목대장 노릇도 잘했다구요. 동네에서 힘이 있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려운 입장에 있으면 내가 출동해서 해결했어요. 敎育을 잘했다구요...

생애노정 2019.04.03

유년 시절 -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을 세워 가면서 불 곁에서 바지를 테워 먹으면서도 "이 사람들이 자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아요.

▣ 1992.12.24(목) 전통을 심자. 한남동. - 참어머님 승리 귀국 집회. 241-172 몇 시예요? (12시입니다.) 원래 크리스마스 이브 날은 다 날을 밝혀야 되잖아요? 옛날에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릴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구요. 겨울이 되면 시골 교회에서는 화덕을 피운다구요. 그래 놓고 밤을 새워 가면서 불 곁에서 바지를 태워 먹으면서도 "이 사람들이 자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아요. 아이들은 졸음이 와도 흥분되어 가지고 붕 떠 있는 분위기에서 참는데, 어른들은 자꾸 졸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 가지고 "날을 밝히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지나간 꿈처럼 생각된다구요. 세월이 이렇게 빠른 거예요. 언제 자기 일생이 퍼뜩 지나갈지 ..

생애노정 201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