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정주보통학교 - 1938.3.25. 졸업식 때 내가 자원해 그 단상에 나타나서 30분 이상 일본에 대해서 반박하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true2020 2019. 3. 28. 11:06

1.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反駁.

 

▣ 1990.12.30(일) 본부교회.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를 맞는 경계선에서.

211-134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정주보통학교에서의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많은 학부형들과 전체 선생들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고 정주읍, 그때는 읍이었는데 정주읍의 유지들이 축하하기 위해 전부 다 모였습니다. 

 

그 졸업식에서는 교장의 훈시가 있었고, 그다음에 손님의 축사가 있었는데 그다음에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하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 앞에서 그랬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1982.10.24(일) 천의를 따르자.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 원리연구회 창립 16주년 기념식.

 

121-140 내 배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얘기하자면 사연이 많습니다. 젊어서부터 괴짜였거든요. 간단히 말하면 소학교 졸업식 때였어요. 귀빈들이 나와 있는 가운데 졸업장을 다 주고 나서 교장 선생님이 致辭(다른 사람을 칭찬함. 또는 그런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에게 올리던 송덕() .)을 하기 위해서 나와 가지고는 "졸업생들, 할 말이 있으면 해 봐라" 하는 거예요. 

 

그때 자원해 나가 가지고 들이 깐 거예요. 교장으로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내정적인 모든 것을 들이 깐 거예요. 이래서 그때부터 요주의 인물이 되었어요. 지금까지도 요주의 인물이지만 말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요주의 인물이라는 팻말을 달았어요. 그 팻말을 단 채로 청년 시절을 거치고 중년 시절을 거쳐 지금의 노년 시대까지 왔습니다.

 

▣ 1988.8.28(일) 나라의 부리와 향토애. 한남동. 

- 향토학교 간사.

 

181-066 졸업할 때 선생님은 학부형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정주에 있는, 그때는 보통학교지요. 큰 학교라구요. 경의선을 타고 가지면 평양 다음에는 정주예요. 정주에는 오산고등학교가 있어 이승훈 씨의 전통을 받들어 가지고···.

 

정주에서 인물이 많이 났지요? 일본 사람들이 와 가지고 한국 사람들을 전부 다 차별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들이 깠다구요. 내가 선생이란 것들 꺼떡꺼떡하길래 내가 느끼는 바대로 솔직히 들이 까 버린 거예요.

 

* 그래 가지고 일본에 가려고 전부 다···. 원수의 세계를 알아야 돼요. 원수의 세계를 알아야 된다구요. 그때는 도항증, 바다를 건넌다는 도항증이 있었어요. 전부 다 이승훈 선생을 통해 가지고 들이 공격해 놓았더니 문제가 됐다구요.

 

 

2. 교육에 대한 비판과 지금까지의 학교 선생님에 대한 비판

 

▣ 1965.10.8(금) 早稲田 原理研究会 のかた学舎

015-180 국민학교 졸업식 때 답사 시간이 있다. 선생님들에게 答辭를 읽게 마련이다. 그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단상에 올라가 호소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서 경찰서장, 군수, 교장 선생님 등 지방 유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자리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단상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소년 시대의 교육에 대한 비판과 지금까지의 학교 선생님에 대한 비판을 모두 해 버렸다.

 

" 이 선생님은 이런 성질이 있다, 역사 선생님은 이런 성격이고, 이러이러한 사고를 하고 있으니까 일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선생님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시대적 비판도 하고, 또 "이 시대의 책임자는 이러이러한 각오를 지녀야만 합니다"고 한 시간 가까이했는데 그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소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때부터 레테르가 붙여졌다. 경찰로부터 지목받게 되었다.

 

3. "남의 나라 와 가지고 신세 지고 살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그게 뭐냐?", "난 인간은 공평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 1988.8.12(금) 세계일보의 갈 길. 도원빌딩.

- 세계일본 신입사원 교육.

 

179-219 내가 학생 시대에는 선생들 골탕 먹이는 대표였어요. 국민학교 졸업식 때는 국민학교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들이 깠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 잘못했다" 이거예요.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이게 이게 뭐냐?" 고 말이에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나온 사나이입니다.  

 

▣ 1988.8.22(월) 학사 교회의 역할. 한남동.

- 카프 책임자.

 

180-249 졸업식을 떡 하는 날인데 말이에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경찰서장으로부터 났다 하는 도 교육감 등이 모였어요. 정주, 그땐 보통학교예요. 국민학교지요. 유명하기 때문에 졸업식 하는 데에 도 교육감이 왔어요. 

 

이놈의 자식들이 말하는 것 보니까 전부 다 한국에 와서 붙어먹고 살면서 말이에요, 한국 얘기는 안 하고 전부 다 일본 얘기를 해요. 뭐, 일본 황제로부터 황국신민에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러니 그걸 앉아서 들으려니 배통이 시려서 견뎌낼 수 있어야지요. 이놈의 자식들···.

 

축사를 다 해 가지고 답사도 다 해 놓고 이제 폐하기 바로 전에 내가 일어서 가지고 조금만 얘기한다고 해 놓고, 들이 깐 거예요. "남의 나라 와 가지고 신세 지고 살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그게 뭐냐?"고 하면서···.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라서 우리 같은 사람이 반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서 대표적으로 들이갈긴 거예요. 

 

한 30분 이상을 듣겠으면 듣고 말겠으면 말고, 교장 선생님 이름 부르고, 경찰서장 이름 불러 가면서 "당신들이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소?" 하면서 "어디 가든지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그런다"고 말이에요.

 

* "대한민국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전부 다 높은 자리에서 대우받으려고 한다"고 들이 깐 거예요. "난 인간은 공평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들이 까 버린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내가 일본 가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 추천받고 渡航證 내고 전부 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서장을 만나러 내려가니까 "아 요주의 청년"이라고 해서 싸우던 일이···. 가 가지고 서장하고 들이 싸운 거예요. 그래야 된다구요. 그런 뭣이 있어야 돼요.

 

문 아무개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러던 문 아무개였기 때문에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고 이렇게 싸우다 보니 통일교회 교주가 되어 버린 거예요. 정의의 하나님이 왜 정의의 권한을 못 가지냐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4.  "일본 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

 

▣ 1972.10.14(토) 통일의 용사.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흥남 감옥 출옥 기념 예배.

 

063-238 내가 국민학교 졸업할 때 식장에서 대웅변을 했어요. 서장, 군수들을 앞에 놓고 "일본 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들이 깠어요. 국민학교 학생 때부터 그래 놓으니···.

 

그래서 경찰서장한테 붙들려 가서 담판한 사람이라구요. "이런 이런 내용이 옳지 못한데 이런 경우에 가만있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때부터 레테르가 붙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