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反駁.
▣ 1990.12.30(일) 본부교회. 70년대를 보내고. 80년대를 맞는 경계선에서.
211-134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정주보통학교에서의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많은 학부형들과 전체 선생들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고 정주읍, 그때는 읍이었는데 정주읍의 유지들이 축하하기 위해 전부 다 모였습니다.
그 졸업식에서는 교장의 훈시가 있었고, 그다음에 손님의 축사가 있었는데 그다음에 내가 자원해 가지고 그 단상에 나타나서 일본에 대해서 반박하던 사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 앞에서 그랬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1982.10.24(일) 천의를 따르자.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 원리연구회 창립 16주년 기념식.
121-140 내 배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얘기하자면 사연이 많습니다. 젊어서부터 괴짜였거든요. 간단히 말하면 소학교 졸업식 때였어요. 귀빈들이 나와 있는 가운데 졸업장을 다 주고 나서 교장 선생님이 致辭(다른 사람을 칭찬함. 또는 그런 말.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에게 올리던 송덕(頌德)의 글.)을 하기 위해서 나와 가지고는 "졸업생들, 할 말이 있으면 해 봐라" 하는 거예요.
그때 자원해 나가 가지고 들이 깐 거예요. 교장으로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내정적인 모든 것을 들이 깐 거예요. 이래서 그때부터 요주의 인물이 되었어요. 지금까지도 요주의 인물이지만 말입니다. 소년 시절부터 요주의 인물이라는 팻말을 달았어요. 그 팻말을 단 채로 청년 시절을 거치고 중년 시절을 거쳐 지금의 노년 시대까지 왔습니다.
▣ 1988.8.28(일) 나라의 부리와 향토애. 한남동.
- 향토학교 간사.
181-066 졸업할 때 선생님은 학부형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정주에 있는, 그때는 보통학교지요. 큰 학교라구요. 경의선을 타고 가지면 평양 다음에는 정주예요. 정주에는 오산고등학교가 있어 이승훈 씨의 전통을 받들어 가지고···.
정주에서 인물이 많이 났지요? 일본 사람들이 와 가지고 한국 사람들을 전부 다 차별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들이 깠다구요. 내가 선생이란 것들 꺼떡꺼떡하길래 내가 느끼는 바대로 솔직히 들이 까 버린 거예요.
* 그래 가지고 일본에 가려고 전부 다···. 원수의 세계를 알아야 돼요. 원수의 세계를 알아야 된다구요. 그때는 도항증, 바다를 건넌다는 도항증이 있었어요. 전부 다 이승훈 선생을 통해 가지고 들이 공격해 놓았더니 문제가 됐다구요.
2. 교육에 대한 비판과 지금까지의 학교 선생님에 대한 비판
▣ 1965.10.8(금) 早稲田 原理研究会 のかた学舎
015-180 국민학교 졸업식 때 답사 시간이 있다. 선생님들에게 答辭를 읽게 마련이다. 그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단상에 올라가 호소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서 경찰서장, 군수, 교장 선생님 등 지방 유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자리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단상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소년 시대의 교육에 대한 비판과 지금까지의 학교 선생님에 대한 비판을 모두 해 버렸다.
" 이 선생님은 이런 성질이 있다, 역사 선생님은 이런 성격이고, 이러이러한 사고를 하고 있으니까 일한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선생님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시대적 비판도 하고, 또 "이 시대의 책임자는 이러이러한 각오를 지녀야만 합니다"고 한 시간 가까이했는데 그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소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때부터 레테르가 붙여졌다. 경찰로부터 지목받게 되었다.
3. "남의 나라 와 가지고 신세 지고 살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그게 뭐냐?", "난 인간은 공평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 1988.8.12(금) 세계일보의 갈 길. 도원빌딩.
- 세계일본 신입사원 교육.
179-219 내가 학생 시대에는 선생들 골탕 먹이는 대표였어요. 국민학교 졸업식 때는 국민학교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들이 깠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 잘못했다" 이거예요.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이게 이게 뭐냐?" 고 말이에요.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나온 사나이입니다.
▣ 1988.8.22(월) 학사 교회의 역할. 한남동.
- 카프 책임자.
180-249 졸업식을 떡 하는 날인데 말이에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경찰서장으로부터 났다 하는 도 교육감 등이 모였어요. 정주, 그땐 보통학교예요. 국민학교지요. 유명하기 때문에 졸업식 하는 데에 도 교육감이 왔어요.
이놈의 자식들이 말하는 것 보니까 전부 다 한국에 와서 붙어먹고 살면서 말이에요, 한국 얘기는 안 하고 전부 다 일본 얘기를 해요. 뭐, 일본 황제로부터 황국신민에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러니 그걸 앉아서 들으려니 배통이 시려서 견뎌낼 수 있어야지요. 이놈의 자식들···.
축사를 다 해 가지고 답사도 다 해 놓고 이제 폐하기 바로 전에 내가 일어서 가지고 조금만 얘기한다고 해 놓고, 들이 깐 거예요. "남의 나라 와 가지고 신세 지고 살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그게 뭐냐?"고 하면서···.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라서 우리 같은 사람이 반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서 대표적으로 들이갈긴 거예요.
한 30분 이상을 듣겠으면 듣고 말겠으면 말고, 교장 선생님 이름 부르고, 경찰서장 이름 불러 가면서 "당신들이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소?" 하면서 "어디 가든지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그런다"고 말이에요.
* "대한민국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 없이 전부 다 높은 자리에서 대우받으려고 한다"고 들이 깐 거예요. "난 인간은 공평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들이 까 버린 거예요.
이래 가지고 내가 일본 가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 추천받고 渡航證 내고 전부 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서장을 만나러 내려가니까 "아 요주의 청년"이라고 해서 싸우던 일이···. 가 가지고 서장하고 들이 싸운 거예요. 그래야 된다구요. 그런 뭣이 있어야 돼요.
문 아무개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러던 문 아무개였기 때문에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고 이렇게 싸우다 보니 통일교회 교주가 되어 버린 거예요. 정의의 하나님이 왜 정의의 권한을 못 가지냐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4. "일본 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
▣ 1972.10.14(토) 통일의 용사.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흥남 감옥 출옥 기념 예배.
063-238 내가 국민학교 졸업할 때 식장에서 대웅변을 했어요. 서장, 군수들을 앞에 놓고 "일본 놈들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들이 깠어요. 국민학교 학생 때부터 그래 놓으니···.
그래서 경찰서장한테 붙들려 가서 담판한 사람이라구요. "이런 이런 내용이 옳지 못한데 이런 경우에 가만있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때부터 레테르가 붙은 거예요.
'생애노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유학- 요주의 인물 (0) | 2019.03.28 |
---|---|
일본 유학- 일본에 와서 좋은 곳에 구경하러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0) | 2019.03.28 |
정주보통학교 - 1935.4.1. 4학년 편입. 문제는 우리가 적을 알아야 된다는 거였어요. (0) | 2019.03.27 |
청년 시대 - 25세, 성경의 내용을 중심 삼고 깊이 탐구하다 보니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다는 것을 전부 알게 된 것입니다. (0) | 2019.03.27 |
소년 시절- 독생자로서 독생녀와 결혼해 가지고 독생 손자 손녀를 하나님 앞에 안겨 준 사람이 없구나. 이거 내가 한번 해보면 좋겠다" 했어요. (0) | 2019.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