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358

일본 유학 - 자아주관, 선생님을 유인하려는 일본 여자들이 많았다.

▣ 1975.10.14(화) 벨베디아. 하나님의 슬픔과 인간의 무지. 080-066 또 젊었을 때에는 머리는 이렇게 하고 옷은 후줄근하게 입고 언제나 머리를 숙이고 다녔다구요. 왜 그랬느냐 하면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의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타락론을 내가 알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있어서 위배되면 큰일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저 뭐 후줄근하게 누구도 바라보지 않게끔 하고 이런 놀음을 해 왔다구요. 여러분이 타락론에서 배웠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잘생기진 못했다구요. 뭐 잘생겨 보여요? 잘생기지는 못했다구요. 그러한 문제를 놓고 상당히 고민했다구요. 그러한 놀음을 하면서···. 뭐 일화가 많다구요. 남자들이 주의할..

생애노정 2019.03.19

일본 유학- 일본 사람은 정말은 신용할 수 없다. 조금 기분 나쁠 때는 금새 얼굴이 새파래진다.

▣ 1972.5.6(토) 미국에 지지 말라. 일본. 055-123 일본 사람은 정말은 신용할 수 없다. 조금 기분 나쁠 때는 금세 얼굴이 새파래진다. 그렇지 않은가? 선생님도 학창 시절에 많이 보았다. 때때로 일본 여자를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쓱 스치면서 "잘못되었습니다"라고 해 본다. 조금 기분 나쁜 말도 해 본다. 전차 속에서 비라도 올 때는 高田馬場로부터 죽 品川라고 하는 곳까지 많이 왕래하는데 밀어붙이듯이 하면서 앉아 있다. 윗저고리는 모두 비에 젖어 있다. 그래도 시침 딱 떼고서 앉아 있다. 예쁜 여자들을 만났을 때는 "아아, 저 여자는 이런 타입이겠지. 성질은 이러하며 가까이 갔을 땐 틀림없이 입을 옆으로 하고 떠들어 대겠지. 그리고 조금 다가가면 틀림없이 투덜거리며 기분 나쁘게 주위 사람들이..

생애노정 2019.03.19

선생님의 가족 - 아내와 친척들과 동지들이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만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33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아내와 친척들과 동지들이 반대를 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님만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출발할 수 있었던, 사탄 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점과 울타리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는 "저 아이가 악한 자식은 아니다. 아무리 욕을 먹고 아무리 핍박을 받고 저렇게 살더라도 죄를 짓고 다니지는 않는다.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남다른 思想과 心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하는 것이지 절대 나쁜 마음에서 저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남아졌기 때문에 통일교회..

생애노정 2019.03.13

평양 감옥 - 평양 감옥에 들어가면 누구 누구를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 가운데서 4월 20일까지 지냈습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29 또한 평양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어떠 어떠한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떠한 이 필요한 때는 영계에서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강도, 절도, 살인범 등의 수많은 죄수들에게 "아무 감방에 번호가 몇 호인 사람이 있으니 그분에게 어떤 것을 갖다 드려라" 하고 시키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는데 선생님이 입을 옷이 없을 때에는 그들을 시켜서 옷을 갖다 주기도 했으며, 또 내가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플 때에는 난데없는 사람을 통해 선생님 이름과 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평양감옥에 들어가면 누구 누구를 만날 것을 알았기..

생애노정 2019.03.13

평양 노정- 이북으로 향하던 기억, 처자가 원망하면서 눈물 흘릴 것을 알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며 대한민국을 이별했습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25 선생님이 뜻을 위해서 Rucksack을 메고 처자를 떠나 눈물을 흘리며 이북으로 향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때 나는 친척들이 나를 원망할 것이요, 친지들이 원망할 것이요, 처자가 원망하면서 눈..

생애노정 2019.03.12

남평 문씨- 선생님은 文 家가 아니라 "統" 家입니다. "天" 家가 되겠습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 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31 그런데 언제나 통일교회를 괄시받게 하고 그러한 사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전부 "文" 家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를 깎아먹는 문 장관, 이 사람도 "文" 家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집안 식구..

생애노정 2019.03.12

선생님의 가족 - 왜 자기 부모나 처자에게는 차마 말을 못했느냐?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25 선생님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놓은 영계의 모든 비밀과 모든 내용은 보화 중의 보화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함께 나눌 수 없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한스러웠겠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어머니를 뒤에 두고 나설 때에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어머님, 이제 이 집을 떠나면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길로 가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과 헤어졌는데,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찾아오셔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어머니께 위로의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눈물을 흘리고 계시..

생애노정 2019.03.12

일본 유학 - 1941.4.1. 새벽 2시 晶慶丸일본으로 출발.

* 1941.3.31 14;10 發 경부선 ひかり号 列車를 타고 서울역을 떠났다. * 1941.4.1. 새벽 두 시, 부산 부두 晶慶丸 일본에 출발. * 1943.9.30 와세다대학 부속 와세다 고등 공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 1943.10 중순 귀국. 1. 서울에서 부산까지 8시간 기차 안에서 눈이, 코가, 입술이 붓도록 통곡했다. 1) "불쌍한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는가 ▣ 1987.5.1(금)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한남동. 한국 지도자. 163-299 내가 동경을 향해 떠날 때 서울역에서부터 부산역까지 달리는 그 기차 안에서 눈에 눈물이 어려 가지고 한강 철교를 지나면서 눈물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구요. "내가 실패의 사나이로 끝나지 않겠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민중의 새로..

생애노정 2019.03.12

선생님의 가족 - 김경계 충모님 金慶繼 忠母님(延安 金氏)

* 김경계 충모님 - 음력 1888.10.15. ~1968.1.7. 1. 일을 많이 했습니다. 후다닥 해 버린다. 2. 힘이 셉니다. ▣ 1986.2.16(일) 어제와 오늘. 본부교회. 141-032 우리 어머님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식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을 시집 장가보내기 위해서는 무명, 무명 알아요?, 을 짜야 된다구요. 무명을 짜기 위해서는 木花를 따 가지고 거기에서 털을 빼 가지고 물레에 넣어 실을 뽑아야 됩니다. 그것을 평안도 말로는 토깽이라고 그래요. 토깽이. 이런 것을 열 새 무명사, 열한 새 무명사, 열두 새 무명사···. 여기 부인들도 그걸 모를 거라. 한 새가 몇 가닥인지. 스무 올을 한 새로 잡는 거예요. 열두 새라고 하면 한 새가 스무 올이니까, 240올이지요? 그게 참..

생애노정 2019.03.11

선생님의 가족 - 문윤국 작은 할아버지. 음력 1877.1.30. ~ 1958.1.2.

◑ 작은할아버지 증조부 문윤국 목사를 중심한 가정적 준비. * 1877. 음 1.30. ~ 1958. 음 1.2. 강원도 정선에서 생을 마치셨다. * 이승만 박사하고 친구였다. * 육당 최남선(1890.4.26- 1957.10.10)하고 친구였다. * 이승훈 씨가 오산학교를 설립할 때 배후에서 같이 했다. * 3.1운동 당시 이북 5도의 대표였다. 33인에 문윤국 목사를 대신해서 교회 장로였던 이명룡 씨가 들어갔다. * 3.1운동 평안북도 총책임자였다. 일헌에 逮捕되어 2년의 獄苦生活을 하셨다. * 노태우 대통령 1990.12.26.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 * 25, 26세의 젊은이로서 이 나라의 고위층의 사람과 손을 잡고 출발하려 했다. * 자유당을 편성한 5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나였다. - 이승만 ..

생애노정 201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