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358

흥남 감옥 - 아무리 땀을 흘리는 여름이라도···. 거기서 무엇을 생각하느냐? 추운 겨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 1988.1.23(토) 고행 복귀와 일족 해방. 전본부교회. - 원리 승공 강사 21일 수련회 수료식. 172-224 선생님이 흥남 감옥에 있을 때 말이에요, 흥남은 바다 바람이 불면 자갯돌(자갈의 평안도 방언)이 날아오는 곳입니다. 어디든 살이 드러난 데는 무엇으로든 가리고 싶다구요. 쏘아 들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원수인지···. 아침 일찍 한 8, 900명의 죄수들이 출역하러 나가는데 나가기 전에 검사를 합니다. 홀태 입은 사람들은 새벽 4시부터 5시 6시 7시까지 3시간 반을 그 추운 데에 앉혀 놓고 그 놀음을 하고 있으니 어떤지 알아요? 우워워워워, 떤다구요. 그거 참 처량한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워워워, 떠는 것입니다. 암만 소리 내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지내던 ..

생애노정 2021.09.03

흥남감옥 - 공산당 치하의 감옥에 있을 때 그런 신념을 가지고 싸웠다구요. 3가지.

1. "여기서 나는 굴하지 않고 뚫고 나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싸운 거라구요. 2. "음, 더 추워라, 더 추워라, 더 추워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걸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한 거라구요. 3. 일이 제일 어려운 것이 어디 있느냐 해서 그곳을 찾아가려고 그랬다구요. ▣ 1973.5.25(금) 환경을 살펴가자. 벨베디아. 067-104 그래서 선생님은 이북에 가서 공산당 치하의 감옥에 있을 때 그런 신념을 가지고 싸웠다구요. 김일성의 주권이 아무리 강하고 공산당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감옥 이상 강력한 조직이 없는데 "여기서 나는 굴하지 않고 뚫고 나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싸운 거라구요. 밥을 안 주면 안 먹고 싸우는 거예요. 거기는 영하 23도까지 내려가는 거라구요. 홑옷을 입고도 하는 거라구요. 춥다고 안..

생애노정 2021.08.22

흥남감옥 출감 후 - 평양에서 고향까지는 280리예요.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42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도 어머니를 못 만나 봤습니다. 부모를 못 만나 봤어요. 평양에서 고향까지는 280리예요.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왜 못 갔느냐? 선생님과 신앙으로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다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다 찾아보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삼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너희들은 배반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배반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약속을 했으면 나는 끝까지 그 약속을 세워 놓고 지키고 간다는 것입니다.

생애노정 2021.08.11

이화여대 - 380명의 여자 대학생들에게 바람이 들어간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루에 80명씩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 1987.5.1(금)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한남동. 163-257 이화대학 사건도 그런 것입니다. 380명의 여자 대학생들에게 바람이 들어간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루에 80명씩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오는 거예요. 담을 넘어서 나오지를 않나 목욕 간다고 해 가지고 뛰쳐나오지를 않나···. 이놈의 간나들한테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왜요! 못 나가면 나 죽여 주시오. 죽여주시오." 이랬다구요. 이놈의 간나들, 내가 왜 너희들을 죽이겠나. 학교는 죽어도 못 가겠다는 거예요. 선생님 곁에서 똥냄새가 나고 발 구린 냄새가 나도 그것이 구수하다는 거예요. 학교는 죽어도 가기 싫고 밥도 모래알 먹는 것 같고 뭐 죽겠다는 거지요. 그렇게 한번 미쳐 봤어요.

생애노정 2021.08.11

대구 - 선생님이 대구에 있을 때는 한 달에 13번도 보따리를 싼 적이 있었어요.

▣ 1987.5.1(금)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한남동. 163-257 선생님이 대구에 있을 때는 한 달에 13번도 보따리를 싼 적이 있었어요. 매일 보따리를 싸게 돼 있으니 가르쳐 주기도 귀찮아요. 들락날락 찾아오니까 내가 쫓겨나거든요. 가만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른 줄 알 건데,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물 수 있는데 이건 부사스럽게 드나드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 이사하게 생겨서 이제는 누구도 모르게 살짝 이사하여 산비탈 조그마한 초가집에 방을 얻어 가 있으면 말이에요, "아이고 선생님이 여기 있다던데" 이러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예요. "이 방에 있다는데" 이러고 열고 들어오면 내가 있거든요. "이놈의 늙은이 여기는 뭐하러 왔어?" 그러는 거예요. 아이고 보고 싶어 울고불고했다..

생애노정 2021.08.11

정주 - 선생님의 고향이 이북입니다. 이북은 기독교 문화권이었어요.

▣ 1991.1.1(화) 내 나라 통일. 본부교회. - 참하나님의 날 0시 예배. 211-356 선생님의 고향이 이북입니다. 이북은 기독교 문화권이었어요. 기독교는 이북이 더 성했어요. 기독교가 책임 못함으로 이남에 내려온 것입니다. 이남에 무슨 교회가 있었어요? 경상도 전라도에 무슨 교회가 많았어요? 피난민들이 와 가지고 얻어먹으며 뒷방으로 들락날락하면서 친구들 사귀고 결혼들 하다 보니 전부 사돈의 팔촌이 되어 가지고 이남에 교회가 꽉 차게 된 것입니다. 이북 백성 잃어버린 것을 전부 이남에서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한 역사를 했는데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 돼요. 돈은 다 이북 사람들이 갖고 있다구요. 경제권은 이남 사람이 이북 사람들한테 다 빼앗겼어요.

생애노정 2021.07.29

선생님의 가족 - 부모님 문경유 文慶裕

1. 약속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모범적인 분이었습니다. ▣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35 또 우리 아버지로 말하면 아버지는 법이 없어도 사실 분이었습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어디서 바쁘게 빚을 얻어 왔을 경우 그 빚을 갚는다고 약속한 날에 이자까지 갚아 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분이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이라구요. 약속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모범적인 분이었습니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구요. 선생님은 그런 아버지를 자식으로서 효성을 한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내 동생들을 보면 손위의 누나들도 그렇지만 동생들은 선생님 때문에 희생됐습니다. 안팎으로 희생됐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가정을 대하여 누..

생애노정 2021.07.29

어린 시절 - 내가 추석 때면 밤을 많이 따러 다녔다구요.

▣ 1990.10.2(화) 가정 기반을 중심한 통반 격파 활동. 한남동. - 교구장 회의. 205-358 저걸 무슨 매미라고 그러나? 풀매미 チッチゼミ 라고 그러지요? 맴맴 하는 매미는 참매미ミンミンゼミ(蟬)이고 저게 울고 그럴 때는 밤이 익고 그래요. 내가 추석 때면 밤을 많이 따러 다녔다구요. 남의 밤 밭이나 밤 동산이 있거든. 제일 높은 데는 못 따요. 올라가도 장대가 닿지 않고 더 올라가면 위험하니까 못 따는 거예요. 맨 꼭대기에는 한 여남은 송이가 언제나 남아 있는 거예요. 그것이 알 중에는 제일 귀하고 말이에요, 참 찰밤이에요. 그건 남겨 놓고 싶어서 남겨 놓는 것이 아니고 못 따니까 남겨 놓는 거예요. 전부 따 먹고 밤나무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거든. 보면 벌써 싯누렇게 익어 가지고 배꼽..

생애노정 2021.07.29

일본 유학 - 부산 부두에서 일본을 향해 떠날 때가 1940년 3월 31일 새벽 2시 40분이었습니다.

▣ 1971.1.9(토) 뜻이 가야 할 길. 강릉교회. 039-962 부산 부두에서 일본을 향해 떠날 때가 1940년 3월 31일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인가? 30년 전이구만. 새벽 2시 40분에 떠났는데 그때의 심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일본에 가서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동지들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여 김구 선생과 같이 운동하기 위해 관부연락선을 타고 다녔고 부산에서부터 신의주까지 다니면서 항일운동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생명을 걸고 그런 일을 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애노정 2021.07.25

하늘이 명령을 내리게 될 때 뭐 성진이 엄마고 성진이고 다 집어던지고 출동명령을 따라 내가 이북으로 갔다구요.

▣ 1972.9.25(월) 우리와 복귀의 진로. 중앙수련원. - 777가정 총회. 062-265 하늘이 명령을 내리게 될 때 뭐 성진이 엄마고 성진이고 다 집어던지고 출동명령을 따라 내가 이북으로 갔다구요. 이북을 향해서 나서야 할 때가 또 오는 거예요. 갔다 왔지만 해원 성사가 안 됐으므로 또 갔다 와야 할 길이 남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북에 갔다 오지 않으면 안 돼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38선을 넘으면서 결의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不撤晝夜 뜻을 위한 일편단심의 심정을 중심 삼고 100만 명이 가로막더라도 그것을 격파하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최후의 승리자로서 해골을 남기고 죽겠다는 신념을 갖고 싸워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로지 그 사상을 이어받지 않고는 갈 길을 다 못 가는 거예요.

생애노정 202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