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42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도 어머니를 못 만나 봤습니다. 부모를 못 만나 봤어요. 평양에서 고향까지는 280리예요.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왜 못 갔느냐? 선생님과 신앙으로 인연되었던 사람들을 다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다 찾아보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삼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너희들은 배반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배반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약속을 했으면 나는 끝까지 그 약속을 세워 놓고 지키고 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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