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164

이나모리 가즈오 稲盛和夫

▣ 이나모리 가즈오 稻盛和夫 (いなもり かずお) 1932년 1월 21일 ~ 일본의 실업가로 교세라, 다이니덴덴 (현 KDDI)의 창업주이며 현재 일본항공(JAL)의 회장이다. 처는 우장춘의 4녀 아사코이다. 鹿児島大学 工学部를 졸업하고 1959년 京セラ를 설립한다. 10년 뒤에 주식 상장을 했으며 파인 세라믹 기술로 회사는 성장해 갔다. 1984년 第二電電 다이니덴덴을 설립한다. 같은 해 재단법인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했으며 교토 상을 재정한다. 교토 상은 1998년 백남준이 교토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방식인 "아메바 경영"이 유명하며 경영학교 "이나모리 학교"의 학교장으로 젊은 경영인을 육성하고 있다.. 또 연구 모임 ‘세이와주쿠’는 현재 전 세계 50여 개 지역에 설치되어 운영..

간증·인물 2012.07.18

우장춘(禹長春)

▣ 우장춘(禹長春, 1898년 4월 8일 ~ 1959년 8월 10일 부산)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한국의 원예 육종 학자이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아버지의 오류가 한평생 짐이 되었으나 한국의 식물학과 농학을 이끌었다. 부산광역시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조선인 우범선(禹範善)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酒井ナカ)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1898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명성황후의 원한을 갚고자 했던 고영근에 의해 그의 아버지 우범선이 살해됐고 과부가 된 그의 일본인 어머니는 우장춘을 사찰에 맡겼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에서 훈련대 대장을 역임하던 중 일본인 자객들과 함께 공모하여 명성황후를 ..

간증·인물 2012.07.18

흙집 짓는 철학 박사 고제순씨. 2012.07.

◑ 흙집 학교 교장 1993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 취득 고향 원주 야간 열차를 타고 새벽 5시에 부산 해운대 역에 도착 하루 종일 강의. 그러던 어느 날 밤 텅 빈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행복한가?" 스스로 질문을 해 봤다. 1995년 자연농법, 집 짓기, 자연의학공부 시작. 후나세 슌스케가 쓴 "콘크리트 주택에서는 9년 일찍 죽는다." 는 책의 영향이 컸다. 고씨는 흙벽돌을 쌓고 흙 미장에 몰두할 때 무한한 행복감. 8년째 1100명 정도가 거쳤다. 7박 8일 이론과 실습->70만원

간증·인물 2012.07.13

유정옥 회장님의 본체론 중에

1. 네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인 줄을 알았느냐? "사랑의 하나님!" 하고 부르고 기도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서 명상을 하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오기를 "네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인 줄을 알았느냐?" 하고 묻는 것이었다. 2. 슬픔의 하나님을 아느냐? 아버님-> 3대 독자를 잃은 부모를 찾아가 보라. 3. 신안 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목포로 나오게 되었다. 섬을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혀 놓고 "이제 내가 너를 타향으로 보낸다. 이제까지 피워 오던 담배를 끊겠다. 그 돈으로 너에게 연필과 공책을 사 주겠다." 하던 아버지였다. 4. 존재의 법칙. 인과의 법칙 닮기의 법칙 5. 3년 전에(2009) 8월달 미국 뉴욕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간증·인물 2012.07.12

小西 行長(1555~1600.天歴10.1)

* 오사카 사카이 약재 무역 상인 출신 * 세례명 아우구스티노(로마 가톨릭) * 軍旗-> 붉은 비단 장막에 하얀색 십자가를 그린 것을 사용 * 그가 조선 침략했을 때에도 포르투갈 출신의 세르페데스 신부가 사목, 밤마다 미사를 올렸다. * 그의 봉토 天草諸島(熊本県 西にある島々、現在も30%がキリスト、階段式畑で有名観光地)는 그리스도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 * 加藤清正→日蓮宗 가톨릭 신자 탄압을 피해 小西 영지로 피신. 종교로 인해 서로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 豊臣秀吉의 조선 침략 야욕에 小西 行長는 전쟁을 막고자 시도했으나 실패. * 18,700명이 조선 침공 선봉대 제1군의 지휘관으로 가장 먼저 조선에 상륙, 서울을 가장 먼저 점령하여 참전 무장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 石田 光成와 함께..

간증·인물 2012.05.01

격암유록 - 남사고

▣ 노스트라다무스 - 1503.12.14~1566.7.2 (享年 62세) - 프랑스 남부 살롱 드 프로방스. - 프로방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머물던 것으로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불린다. -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히틀러, 2차 세계대전, 달착륙, 9,11 테러 등 예언. - 몽팰리에醫大 醫師, 天文學者. - 그의 조상은 유대인. 할아버지 때 카톨릭으로 개종. - 1555년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집" 발간. - 직업은 의사. 작가. 번역가. 점성술사. - 몽펠리에 대학교(12220년 개교~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강제 폐교. 1896년 개교) 의학. ▣ 南師古 (호는 格菴) - 경상북도 울진군 - 조선조 중종 4년 1509년 출생 ~ 선조 4년 1571년 63세로 타계 ▶ 격암유록 - 남사고 / 구성모 ..

간증·인물 2011.11.02

아사카와 타쿠미(淺川 巧)

◑ 에미야 타카유키(江宮隆之)씨의 소설 '백자의 사람'(1994년 카와데분코=河出文庫文). ▶ 아사카와 타쿠미 1914년 조선총독부 상공부 산림과 임업 시험소 고용원으로 한국에 건너간다. 한국어를 배우며 백자뿐만 아니라 장롱, 밥상 등의 목공품, 동화, 동요, 요리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민속문화를 연구했다. '조선도자명고', '조선의 밥상' 등은 명저로 평가가 높다. 칸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보도에 대해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조선인을 변호하기 위해 도쿄에 가야겠다"고 일기에 기록했다. 1931년 40세로 타계했을 때는 많은 한국인이 관을 메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 한국을 가장 사랑한 일본인.. 한국말을 사용하고 바지저고리를 입고 한국의 땅에 자신을 묻어 달라 유언을 했던 사람. 1891년..

간증·인물 2011.08.09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 1913년 12월 18일 ~ 1992년 10월 8일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해서 무명 용사의 묘에 참배하던 중,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한 동안 침묵하더니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사전에 전혀 계획이 없었던 수상의 이 같은 돌발 행동에 수행 보좌관들은 물론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진기자까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의심하며 ‘혹 피로 때문에 쓰러진 것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고. 빌리브란트 독일 수상 1913년 12월 18일 - 1992년 10월 8일 1971년 노벨평화상 수상 후에 그는 그날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 호텔을 나설 때부터 무..

간증·인물 2011.04.15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Francisco Xavier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506년 4월 7일 ~ 1552년 11월 2일) - 스페인어: Francisco Xavier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 바스크어: Frantzisko Xabier 프란치스코 샤비에르 - 일본어 ザビエル * 인도와 일본에서 전도한 예수회 선교사이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인이다. 축일은 12월 3일이다. ▶ 신학 수업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나바라 왕국(현재 에스파냐 바스크)에서 고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바라 왕국을 지배하려는 프랑스와 에스파냐 간의 전쟁 (1512년 ~ 1524년)에서 에스파냐가 승리하면서 그의 집안은 몰락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하급 귀족이 되었고 형들도 몰락한 왕국의 군인 출신이 되어 어려운 생활을 했다. 하비에르는9세 때 로마 가톨릭 교..

간증·인물 2011.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