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小西 行長(1555~1600.天歴10.1)

true2020 2012. 5. 1. 13:36

* 오사카 사카이 약재 무역 상인 출신

* 세례명  아우구스티노(로마 가톨릭)

* 軍旗-> 붉은 비단 장막에 하얀색 십자가를 그린 것을 사용

* 그가 조선 침략했을 때에도 포르투갈 출신의 세르페데스 신부가 사목, 밤마다 미사를 올렸다.

 

* 그의 봉토 天草諸島(熊本県 西にある島々、現在も30%がキリスト、階段式畑で有名観光地)는 그리스도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

 

* 加藤清正→日蓮宗 가톨릭 신자 탄압을 피해 小西 영지로 피신. 종교로 인해 서로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 豊臣秀吉의 조선 침략 야욕에 小西 行長는 전쟁을 막고자 시도했으나 실패.

 

* 18,700명이 조선 침공 선봉대 제1군의 지휘관으로 가장 먼저 조선에 상륙, 서울을 가장 먼저 점령하여 참전 무장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 石田 光成와 함께 강화교섭에 힘썼다.

 

* 정유재란 때는 가토가 제1진으로, 고니시는 2군의 제2진으로 출병.

 

* 小西 行長는 요시라를 통해 경상 우병사 김응서(金景瑞 1564~1624)에게 加藤 軍의 渡海 정보를 주었지만 이순신은 敵이 준 정보라 믿지 않았다.

 

* 남원성에서 사살당한 백성들의 코와 귀를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낸다. 

 

* 1598년 음력 8월 18일  豊臣秀吉 죽음. 본국으로 후퇴.

 

* 1600年 10月 関ヶ原戦闘 石田光成와 西軍에 참전.

 

* 자결을 금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할복 거부.

 

* 1600년 京都 六条 강변에서 참수됨.

 

* 할복을 거부한 이유가 기독교 가르침 때문이라는 것을 徳川 家康가 인식하면서 일본에서 교회에 대한 탄압이 실시되었다.

 

* 小西는 평양에서 고아를 데려와 양녀로 삼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 세례명은 줄리아.

- 딸 고니시 마리아

- 양녀 줄리아(日本名 おたあ)

- 徳川의 시녀 駿府城(静岡)->밤에는 매일 기도, 성서, 신앙을 전파

- 배교를 강요받았으나 거부, 정식 측실이 되라는 徳川의 권고에도 난색을 표하여 1612년 금교령에 따라 駿府城에서 쫓겨나 伊豆大島、八丈島 등에 유배생활. 가는 곳마다 기독교를 전파하고 병자를 간호.

 

* 말년 행적에 대해서는 小豆島 매년 5월 한일 양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오타아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