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최선길 부인 - 약혼과 결혼

true2020 2023. 9. 4. 20:18

1. 1943.12 崔善吉 부인과 약혼

 - 선생님이 뜻을 알고 나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것이다.

: 소학교밖에 안 나온 성진이 어머니.

: 성진 어머니 19살에 약혼.

: 기독교 신앙이 돈독, 신사 참배 문제로 감옥살이까지 했던 경력을 가진 사람.

: 신령한 여자 집단의 대표적인 여성이었다.

: 성진 어머니 집도 기도하고, 영통한 패들이다.

: 오빠는 신사 참배한 기성교회를 믿고, 어머니와 이 딸은 신사 참배를 안 한 재건교회를 믿었다.

: 최씨네 문중하면 정주 고을에서 이름난 문중이다. 거기의 종갓집 딸.

여자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해야 될 입장에 있는 사람이 성진이 어머니였다.

: 중매장이가 그러는데 내가 24번째라고 했다.  

: 새벽 3시에 선을 보겠다는 신랑감은 내가 역사적인 것이다.

: 이튿날 "못해도 혼자 5년 동안, 결혼해 가지고 5년 이상 7년까지 될지 모른다"고, "혼자 살 각오를 해야 될 거라"고 그때 다 얘기를 했다.

 

- 만주 안동현에 滿洲 電業이라고 전기회사 취직, 하얼빈 위에 하이라얼이라는 곳에서 살려고 했다.

: 소련 말, 중국 말을 배우고, 몽고 말을 배우려고 그랬다.

: 1944.2 情勢가 편안치 않았다. 만주에 가서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안동에 就職한 모든 걸 반환하러 갔다.

 

※ 하이라얼

: 내몽고 자치구, 초원의 진주, 중국 러시아의 관문,

: 해발 602미터에서 772미터.

: 평균기온 -2도.

: 강수량 350미리리터.

 

▶ 1944.3. 일본의 큰 전기회사 鹿島組 경성지점 전기부에 취직.

- 직장에 가더라도 제일 일찍 가고 제일 늦게까지 일했다. 일등 안 하면 기분이 나쁘다. 그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 1944.5.4. (호적상 1945.4.28.) 성혼과 가정 출발

- 선생님이 결혼식을 한 것은 해방 전이다. 그것은 하늘의 명령에 의해 가지고 한 것이다. 

- 70리 길 떨어진 색시네 집에 장가가기 위해서는 말을 타고 가야 되는데 왜정 때에는 전부 다 금지했다. 

- 결혼할 때 날짜를 받았는데 결혼하기 1주일 전에 丈人(聘丈빙장)이 돌아갔다.  

- 4월 17일 부활절 지내고 5월 4일 시집오는 날은 비가 억수같이 왔다. 이렇게 모든 것이 어려움이 많았다. 탕감길이다. 탕감길.

- 새 예수교 이호빈 목사, 한준명, 박재봉 목사. 선생님과 참 가깝다. 이호빈 목사(1898-1986)가 主禮.  

 

1)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거예요. 

 

▣ 1971.10.9(토) 중앙수련원. 국가와 우리의 사명.

- 전국 사업소장 수련회.

 

049-154 선생님이 뜻을 알고 나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거예요. 그 사람도 영계의 지시 하에서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 이름은 최선길입니다.

 

높은 최, 먼저 선, 길할 길 자예요. 여자로서 그런 이름은 팔자 사나운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으로 보면 세계에 없는 이름이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치에 하나되지 못하면 잘리는 것입니다. 

 

▣ 1987.5.1(금) 한남동.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163-238 아들 중에서는 둘째 아들이 제일 잘났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러니 천하에 이름난 부자들이 딸을 주겠다고 전부 중매쟁이를 놓고 왔다 갔다 하게 했지만 다 끊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밤인데 중매쟁이가 이러이러한 색시가 있다고 하길래 그런 색시 같으면 한번 만나 보겠다고 해 가지고 서울에서 가 가지고 밤에 내리자마자 밤길 70리를 잠도 안 자고 걸었어요. 그렇게 걷다 보니 새벽이 됐더라구요.

 

그때가 왜정 때이니만큼 신작로에 도로포장을 하려고 돌멩이 이런 것을 쌓아 놓았었다구요. 그것을 사람들이 밟아서 들이박혀야 땅이 물렁물렁 안 한다 이거예요. 조그만 자갯돌(자갈의 평안도 방언)을 심어 놓고 포장하지 않은 그런 길이었다구요.

 

구두를 신고 70리 길을 가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해요. 발목이 안 아프나 발가락이 전부 부풀고···. 구두는 평지에서 신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데에서는 몹시 걷기가 힘들다구요. 몸뚱이는 무거운데 뾰쪽한 데서 발을 구부리면서 이렇게 걷다가는 삐기 쉽다 이거예요. 발바닥에 눈이 있나, 없나?

 

그렇게 밤길을 비틀걸음을 하면서 별의별 놀음을 다 하면서 갔어요. 동이 터서 먼발치(조금 멀리 떨어진 곳)의 사람을 볼 수 있을 만큼 되자 주막집이 보이더라구요. 거기 가서 아무개네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바로 요 앞집이라고 해서 보니 좋은 기와집이더라구요. 그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와집이었어요.

 

자, 이거 선이고 뭐고 잠이 와 죽겠더라 이겁니다. 서울서부터 한잠(잠시 자는 잠)도 못 자고 그렇게 왔으니···. 그 주막집에서는 아무개 집 사윗감이 왔다고 헤서 벌써 소문이 나 있어요. 어디 어디서 신랑감이 온다더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해도 주막집에서는 아무 데서 왔다고 하면 벌써 아는 것입니다.

 

방을 내라고 해서 한잠 자려고 채비를 했는데 주막집 아주머니가 재빨리 가 가지고는 성진이 외할머니에게 가서 이야기를 한 거예요. 이래저래 신랑하고 사돈 될 사람들이 와서, 자겠다고 하는데 거기서 자게 되면 문중에 손해가 날 텐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에요. 그러니 주막집에서 자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가문의 아들이고 또 어머니도 가고 그랬는데 문중을 대해서 일을 처리해야 할 입장이었다구요.

 

그러니 그 어머니로부터 그 아들딸이 전부 나와 가지고 싹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 이럴 수 있느냐, 기차를 타고 와서 연락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밤길을 어떻게 왔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농담을 한번 했습니다. 나이가 스물네 살인데 얼마나 장가를 가고 싶었으면 이렇게 밤잠도 안 자고 왔겠느냐고, 그리고 그렇게 훌륭한 딸을 가진 것도 걱정이겠다고 말이에요. 그런 농담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구요.

 

거기서 머물게만 할 수 있어요? 저녁도 든든히 안 먹어서 배도 고프고 그러니 할 수 있어요? 선보러 와서 그러니 처갓집도 안된 거지. 에라 모르겠다, 장모 될 사람을 불러 가지고 "선이고 뭣이고 지금 잠이 와서 죽겠소. 방 하나만 내시오" 그래 놓으니까 맏며느리가 거처하는 방에 그 맏며느리가 시집올 때 해 온 아주 큰 양단 이불을 펴 주더라구요. 에라, 어떻게 되든 말든 모르겠다 하고 잔 거예요.

 

엄머니는 중매장이(중매쟁이의 비표준어) 노친네하고 아랫방에서 자고 나는 윗방 몸채, 몸채는 주체 집 안방을 말하는 거예요, 그 안방을 차지하고 자기 시작한 거예요. 자기 시작했는데 이틀 밤을 못 잤으니 코를 고는데 얼마나 잘 골았겠나?

 

뭐 모든 집안사람, 뭐 사돈네 팔촌 그저 모든 귀가 나발을 대고 무슨 소식을 들으려고 주목하는 판인데 그 한복판에서 자고 있으니···. 신랑이 자는데 언제 깨나, 언제 깨나···.

 

* 이렇게 자다 보니 열한 시가 넘어 열두 시가 됐네. 아침에 닭을 잡아 준비한 국은 굳어지고 기름덩이가 뜨게 돼 버렸다 이거예요. 그걸 갖다 주고 먹으라 하면 문제가 생기겠으니 할 수 없이 또다시 닭을 잡고 준비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니 중매장이 노친네를 통해서 어머니한테 언제 깨겠느냐고 해 가지고 점심을 새로 한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한 시에 깨서 점심을 먹었다구요. 얼마나 많이 잤어요? 그때가 12월인데 낮도 짧고 그런 때에 새벽에 가서 한참 자다 보니 오후 한 시쯤에 일어나게 됐다구.

 

그다음엔 뭐 밥을 갖다 주는데 체면이 뭐예요. 돌아다니는 사람이 체면이 있겠어요? "나 밥을 많이 먹을 테니까 아침밥 점심밥까지 다 가져오소. 먹다 남은 것도 갖다 주소" 이래 가지고 먹기도 잘했다구요. 상에 올려놓은 것은 전부 번번하게 뜯어 댔지, 닭다리를 뜯어먹다가 벽에다 딱···. 뜯던 닭다리가 벽을 치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 우리 성진이 어머니가 똑똑한 여자라구요. 아주 대바르고(대바르다. 북한어.- 주견이 똑바르고 세다. 마음이나 품성이 곱고 바르다.) 집안도 괜찮아요. 최씨네 문중 하면 정주 고을에서 이름난 문중이거든요. 거기의 종갓집 딸이라구요. 중매장이가 그러는데 내가 스물 넷째라는 거예요. 신랑을 구하려고 신의주로부터 뭐 어디 어디 몇백 리 안팎에서 잘난 남자는 다···.

 

성진 어머니 집도 기도하고 다 영통한 패들이거든요. 벌써 선생님 사진을 보고 기도하니까 영계에서 그르쳐 주더라는 거예요. 참 가르침 많이 받았어요. 동서 쪽에서 큰 거울이 나타나 하늘 복판에 와서 하나된다든가 그 가운데 태양이 떠올라 가지고 세계를 비추는데 천지 동서남북의 별과 달이 쭉 둘러서 있었다는 거예요. 그 달빛이 비쳐서 만국이 꽃밭으로 화했다든가 말이에요. 그들이 그런 꿈같은 그런 계시를 많이 받았다 이거예요. 기도를 해 보니 그렇게 되니 그 여자가 딴 남자에게 맘이 있었겠어요? 죽어도 내 사랑이라고 하게 돼 있다구요.

 

그렇게 기다린 거예요. 1년 반을 기다렸어요. 간다 간다 하고는 안 갔어요. 그랬는데 시집을 간다고 했으니 얼마나 문중에 소문이 났겠어요? 그렇게 내가 이름난 남자였어요. "최 씨 문중의 제일가는 사위다"라고 해 가지고 다른 사위들이 와서 겨루어 보려고 사위 가진 최씨네 친척들이 전부 다 모였었다구요.

 

동물원의 무슨 원숭이 잡아 놓은 거 모양으로 보기 싫은 상판들이 삥 둘러앉아 가지고 뭐 이러고 이러고 그러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받아넘기거든요. 

 

* 몇 사람 심리분석을 해서 관상을 봐주는 거예요. "당신은 뭐야? 심통이 나쁘구만!" 그러면 박수를 한다구요. 어떻게 아느냐 이거예요. "어떻게 알긴 뭘 어떨게 압니까?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최씨네 딸은 내 상대도 못 됩니다. 내 상대는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뜻있는 그런 여자라야만 되는데 그런 여자가 암만 해도 최 씨네 문중에서는 태어난 것 같지 않군요."라고 농담을 하면서 말이에요. 밥을 먹고 나서 동네방네 어른들이 전부 나를 보러 찾아오는 거예요.  

 

* 문을 열어 놓고 들어오라고 한 거예요. 그래 놓고는 저녁에 장모와 처남 될 사람을 불러 놓고 "이 집에 닭 몇 마리 기르오? 내가 닭 갑은 두 배 이상으로 쳐 줄 테니까 닭을 있는 대로 잡으소. 이 굶주린 늙은이들에게 잔치나 해 줘야겠소. 사위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선보러 온 아무개 사람이 잔치하고 갔다는 소문이 나면 나에게도 나쁘지 않고 이 문중도 나쁘지 않을 것은 틀림없으니 닭 있는 대로 잡으시오. 한 백 마리 잡으시오." 이랬다구요.

 

이러니 안 잡겠다고 할 수 있어요? 못 하겠으면 그만두라고, 내가 동네 사람 시켜서라도 사다 잡을 거라면서 크게 시험을 해 본 거예요. 어떤 배포가 있나 보려고 닭을 잡으라고 한 거예요. 이러니 닭을 안 잡게 돼 있어요? 있는 닭 전부 다 하고 사돈의 팔촌네 닭까지 몇 마리나 될까? 한 오십 마리 잡았을 거예요. 잡아 가지고 너도 먹고 물러가고 너도 먹고 물러가라, 이거였어요. 이래 놓으니 하룻저녁에 다 친구가 된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그 문 씨, 문 서방이 될는지 모르지만 거 아주 난 남자다라고 소문이 자자하게 난 거라구요. 시골 바닥에 완전히 소문이 나고 동네방네 전부 다 군이 떠들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선전한 겁니다.

 

그다음 색시는 나중에 시험하는 거예요. 내가 성경을 가지고 시험해 본 거예요. 요즘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은 참 복도 많지. 요즘은 눈만 껌벅껌벅하다가 알지도 못하고 시집가거든. 성진이 어머니도 시험을 치렀습니다. 내가 7년 동안 수련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수공방 생활을 해야 된다 이거지요. 그런 이야기를 그때 다 했었습니다. 그래서 난 이야기한 대로 했어요. 그 바람에 반대하고 떨어지고 그랬지만 말이에요.

 

이래 가지고 약혼날을 결정을 몇 시에 하느냐 하면 밤 열두 시가 넘어서 동네 사람들 다 가게 하고···. 장모하고 중매장이 노친네도 똥줄이 달았지. 신랑이 하룻밤 자고 나면 갈 텐데 하는 놀음을 가만 바라보니 재미있게 이야기만 하고 색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말이에요. 밤 열두 시가 돼도 대답하지 않고 말이에요, 자리해 놓아도 올라가지 않을 눈치가 훤하니···. 

 

그렇게 가는 거예요. 이러니 장인 얼굴이 새파래지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는 틀림없이 일찍 갈 텐데 신랑 녀석은 신부에 대해서 좋은지 싫은지 국물도 없고 냄새도 안 피우네···. 

 

그래 놓고는 색시를 불러들여 앉혀 놓고 면담을 한 거예요. 난 이 집 처녀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딱 잡아뗀 거예요. 한 시 반 정도까지 결점이 무엇이고 뭐가 어떻다고 전부 다 퍼붓는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은 팔도강산을 주름잡을 사나인데 언제 집에서 편안히 살림살이하겠느냐.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내용을 죽 퍼붓고는 "이 집 처녀는 그런 남편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거예요. 새 모양으로 둥지에 넣어 놓고 기른 색시가 그런 박자를 맞추겠나 이거예요.

 

그 말에 처억 늘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혼인이 틀렸다는 식으로 끌고 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두 시쯤에 약혼할지 모르겠다고 한 거예요.

 

문중 어른들 승낙 없이 어떻게 혼자 와서 결정할 수 있겠느냐, 어머니는 같이 왔지만 아버님,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결정을 못 짓겠다고 통고할 때까지 며칠 기다리라고 딱 해 놓은 거예요.

 

이래 놓고 색시 얼굴을 가만히 보니까 새파래지더라구요. 그건 뭐냐? 그 색시가 나에게 관심이 많다 이겁니다. 또 장인 장모 얼굴을 보니까 얼굴이 새파래지고 말이에요. 사흘이나 나흘 후에 대답을 하겠다는 건 날아간다는 말이라구요. 눈치들을 보니까 제사상에 소금을 뿌린 것같이 아주 심각하더라구요. 나는 여전히 모른 척하고 말이에요. 그런 역사를 남긴 거예요.

 

그다음에는 두 시가 넘어서 그렇게 답변하고 일어서려니까 중매장이 노친네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계시더구만. 세상에 낫다는 남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어머니한테 승낙을 받아 놓고는 왜 이러느냐"고···. 그렇잖아요?

 

어머니를 붙들고 나를 붙들고 안 놓은 거예요. 할아버지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중매장이 노인네 말이 맞다고 나에게 예스냐 노냐를 결정하라는 거예요. 어머니하고 중매장이 노친네가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당신들 전부 하면 좋겠소?" 이래 가지고 어머니한테도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럼 어머니 하자는 대로 했다구요.

 

그러니까 새파랗게 돼 가지고 똘똘 뭉쳐 있던 장인 장모하고 딸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더라구요. 여자의 변덕이랄까, 돌멩이 같이 뭉쳤던 그 얼굴이 활짝 펴지더니 반가운···. 

 

나를 척 보고 눈이 마주치니까 "고맙습니다" 이러더라구요. 그걸 보면 성진 어머니가 난 여자예요. 어떻게 그런 자리에서 시골에서 자란 여자가 물론 학교는 다녔겠지만 그럴 수 있을까? 눈이 마주치니가 "고맙습니다" 인사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는 걸 보고 내가 "이 여자는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구요.

 

163-244 이래 가지고 12월에 약혼을 하고 결혼을···. 어머니 아버지도 내 말을 듣게 되어 있지 내가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게 되어 있지 않았다구요.

 

그땐 내가 취직을 하려고 한 때였어요. 하르빈 저 위에 해란이라는 곳, 그때 말로 파이라고 했어요. 거긴 러시아 사람, 몽고 사람, 중국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앞으로 일을 하려면 아시아에 있어서 러시아 말, 중국 말, 몽고 말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만주전업에 취직을 했어요. 학교에서 추천을 받아 가지고 부임 날까지 받아 가지고 고향을 나왔어요.

 

그 바람에 약혼을 했지만 그때 가만 보니까 정세가 좋지 않겠어요. 만주를 들어가면 좋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만주전업으로 부임할 수 있게 임명장을 받았지만 안동 지점장을 만나서 내가 이러이러한 사정 때문에 못 가겠으니 회사를 그만둔다고 이야기를 하고 퇴사 수속을 밟기 위해서 안동현에 갔어요.

 

안동현을 갔다 오는 도중에 곽산, 정주에서 신의주를 가자면 다음다음 역이에요, 으로 갔어요. 거기 갔다가 나오던 길에 약혼만 해 놓고 결혼도 하지 않은 신랑이 처갓집에를 간 거예요. 앞으로 장인 장모 될 분들을 찾아간 거라구요. 색시를 찾아간 것이 아니에요. 무리한 놀음을 안 해요. 색시 집을 잦아가는 것은 결혼 날짜를 정하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어요. 재미있다기보다 참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거예요. 안동에서 나오는 차가 늦어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 내렸어요. 역에서 시오 리가 되는데 걸어가니 밤이 되었더라구요. 그때가 바로 눈이 내리던 때였어요.

 

최씨네 문중에서는 아직 결혼은 하지 않고 약혼만 한 신랑이 집에 찾아가는 것은 결례로 되어 있었다구요. 그래서 내가 형님과 누님을 통해 연락을 해 놓았는데 형님이 만주전업에 연락해야 되는데 그만 깜박 잊어버렸네. 그걸 모르고 찾아간 거예요. 약혼한 총각이 결혼도 안 했는데 찾아오니까 문중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나는 거예요. 저 집에는 약혼만 한 산랑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러니 좋지 않거든요.

 

결혼 날짜를 정하기 위해서 찾아 들어가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맏처남이라는 사람이 나오더니 "우리 최 씨 문중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신랑 될 사람이 찾아와서 이러는 법이 없다"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 문중에서는 나를 맞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돌아가라 이거예요.

 

그거 보면 가문은 괜찮은 가문이지. 아무리 그 무엇이라도 전통적인 기준을 중심 삼고 한 것이니까. 팔도강산을 주름잡고 일본 천지를 주름잡고 다닌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건 사리에 맞는 말이라서 "아, 그러냐"고 그랬다구요.

 

그래서 이왕 왔던 바에 ···. 작은 처남댁이 그 앞에 세간(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나서 있었는데 거기 가서 "내가 이렇게 되어 가지고 이 기회에 왔기 때문에 인사라도 해야 되겠다"고 하면서 인사를 했어요. 원래는 이러이러한 내용 때문에 날짜를 정하러 왔는데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간다고 말이에요.  

 

그러고는 그 바람으로 신발도 벗지 않고 그냥 그대로 뒤로 돌아서 나선 거예요. 나서서 70리 길을 밤에 돌아갈 준비를 한 거예요. 그때는 기차도 없거든요. 시골에 기차가 하루에 하두 번 있지 매시간 있나요? 그래서 70리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어요. 함박눈은 내리고 아주 시적인 장면이 벌어진 거예요.

 

내가 떠난 후에 장모가 돌아와서는 큰 난리가 벌어졌어요. 장모가 와 보니 문제가 크거든. 이건 파혼이 벌어진다고 이래 가지고 아들을 대해 책망하고 작은 아들을 불러 가지고 어디 그럴 수 있느냐고,

 

이렇게 되니까 성진 어머니가 그걸 알았거든요. 큰집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는 두말하지 않고 차람을 하고는 나선 거예요. 보통 여자가 아니라구요. 뭐 만나서 이야기나 해 봤나? 약혼할 때 자기가 척 고맙다는 인사하고는 갈라졌는데 말이에요. 자기 집에 왔다가 문전박대받다시피 하고 돌아갔으니 틀림없이 파혼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백발백중 파혼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내가 집에 돌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 문중에서도 문중을 찾아온 사윗감을 박대했으니 여기에 찾아왔던 아들의 면목과 문중의 우신이 어떻게 되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문중이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파혼되는 것은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장인 장모나 처남 전부가 내가 떠난 다음에야 그렇게 알지 않을 수 없었다구요.

 

이렇게 되니까 성진 어머니가 책임을 지고 말이에요, 처녀 몸으로 혼자 어머니 아버지한테 인사도 안 하고 자기 오빠한테 인사도 안 하고 뒷문으로 나선 거예요. 보통 여자가 아니에요. 내가 한 2킬로미터쯤 갔는데 어떤 여자가 "여보"하고 부르는 거예요. 밤에 어떤 여자가···. 

 

이게 무슨 요사스런 도깨비나 몽달귀신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난 그냥 걸어간 거지요. 달려오더니 내가 왔다고 이러는 거예요. 누군가 보니까 성진 어머니거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집의 모든 문제는 자기가 책임질 테니까 돌아가자는 거예요. 성진 어머니의 성격을 그때 내가 알았어요. 자, 이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니구나. 아주 배포도 크고 말이에요.

 

그러나 그런 입장에서 무슨 얼굴로 처갓집에를 다시 들어가요? 그래서 안 간다고 했지. 안 간다고 하니까 50리 길을 따라나선 거예요. 정주까지 50리 길을 밤을 새우면서 따라나서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사연을 쭉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가 엊그제 같아요.

 

자기 오빠가 위 수술을 했는데 개의 위로 대치해서 넣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끔씩 정상적이 아닌 이런 신경질을 내서 집안에 불화를 가져왔다는 그런 역사를 쭉 야기하는 거예요. 이건 자기 집안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라고 하면서,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러지 세상에 누가 신랑에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그러는 거예요.

 

자기 집이 기독교 집안으로서 교회를 지었고 서양 사람까지도 모실 수 있는 이런 집안이고 그런 오빠들인데 그런 일은 자기 집안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일장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 뭐 설법이 아주 이력이 났더라구요. 50리를 따라오면서 설득한 거예요.  

 

50리 길을 걸으며 떡 이렇게 밤을 새워 왔으니 잠이나 잤겠어요? 피곤한 가운데 나는 모른 척하고 가만있는데 성진 어머니가···. 여잔 그래야 돼요. 선생님 왼팔을 끼고 용서하라고 하는 거예요. 미끄러지겠는데 눈은 내리고 할 수 있어요? 서로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러자고 해서 처음으로 만나서 그렇게 끼고는 50리 길을 걸어왔다구요. 그게 생생하다구요.

 

50리 길을 걸어왔지만 아침에는 집에 보내야 되는 거예요. 예로 말하면 안 그래요? 총각이 결혼도 안 한 처녀를 데려다가 하룻밤을 지낸다면 문제가 크다구요. 그러니 소문 안 나게 새벽에 돌려보내야 되는 거거든요. 집안 어른이 알면···. 

 

그래서 돌려보내려고 하니까 성진 어머니가 안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정주읍에 사는 삼촌이 있어요. 거기 가서 아침밥을 해 달라고 해서 먹이고 차 시간에 맞춰 보내려고 했는데 절대 안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삼촌네 집에 가서 인사를 했어요. 삼촌네 집에 들아가서도 밥을 하는데 도와주겠다 이거예요. 그러고는 이제 어떻게 여기에서 그냥 돌아가느냐는 거예요. 본가집(친정집의 북한어. 남한 규범 표기는 본갓집)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하고 돌아가야지 그냥 가면 예가 아니라는 거예요.

 

아, 이러고 잡아떼는 거예요. 못 가겠다고. 옷 간다는 거예요. 자, 이거 그래서 삼촌 어머니더라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고 제발 큰집에 데려가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삼촌 어머니가 데리고 가서 우리 집에서 일주일 있다가 갔습니다. 그거 보통 여자가 아니라구요.

 

와서는 시어머니한테 인사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밥을 지어 가지고 시아버지 될 사람과 시동생 될 사람들의 밥을 다 차려 놓고 그러면서 반대하지 못하게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화해될 때까지 일주일 동안 완전히 묶어 놓고는 이제는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하는 거예요. "이젠 파혼해도 좋소." 이거지. "파혼해도 좋다, 마음대로 하시오"  이거라구요.

 

자, 일주일 지내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가만히 보니까 싹싹하고 배포가 크고 사리도 짜여 있고 그렇거든. 어머니 아버지 누가 동생 할 것 없이 홀딱 반한 것입니다. 작전을 그렇게 한 거예요. 그거 보면 배포가 대단하다구요. 그러니까 전부 자기 주머니에다 넣고 소화하려고 반대까지 했던 거예요.

 

163-248 통일교회 여자들 가운데는 그런 여자가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그래요. 그런 배포가 없어요. 지금 어머니 말이에요.

 

성진 어머니 하는 말이 통일교회 원리가 말하는 주님이 문 선생이라면 자기는 그렇게 안 모신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패들 보면 전부 이단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알기는 주님은 이렇게 이렇게 모셔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원칙에 의해서나 성경관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이렇게 모셔서는 안 되는 거예요. 빵점이다 이겁니다.

 

푸대접을 받는 분이 그렇게 살면서 뜻을 이루겠다는 사람이라지만 하늘이 보낸 아들의 사명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뭐 성경을 환하게 알아요. 하루에 성경 다섯 장 이상을 읽지 않으면 안 자는 거예요. 기도도 두 시간 이상 안 하면 안 자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써 계시를 받아 가지고 훤하게 알아요. 전부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남편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장모하고 재건교회에 있었으니 완전히···.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내가 이야기를 쭉 해 주면 주님이 사람으로 와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들이 가만 보니 통일교회 패들 거지 떼거리 같이 들어앉아 있는 걸 보니 안 되겠거든. 자기 일생을 망칠 것이 뻔하다 이거예요. 이 남편을 모시기 위해 자기가 그렇게 모험을 해 가지고 기반을 닦았는데 가정 파탄시킬 것이 뻔하니까 혁명을 하는 겁니다. 오는 사람마다 전부 다 갈라 치우는 거예요. 못 오게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내가 오게 하기 위해 싸움할 수 있어요? 난 모른 척하고 가만있는 것입니다.

 

이러니 뭐 바가지를 긁고 별의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말을 듣나. 여전히···. 그래도 정 안 되니까 파탄을 시키기 위해서 서대문 형무소에 고소를 하고 부산 북부서에 고소를 한 거예요. 우리 남편이 앞으로 기독교를 망치고 세계를 망치는 원흉이 될 테니까 이 사람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 제발 데려다가 가두어 놓고 죽이든지 뭘 하든지 해 달라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를 반대하기 시작한 거예요. 다 그런 연유에서 통일교회를 반대한 것입니다.  

 

163-249 내가 이북에 가는 바람에 그야말로 7년 동안 혼자 있게 내버려 둔 거예요. 7년 동안. 그건 내가 아까 말한 대로입니다. 그건 혼자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때 성진이를 낳았는데 왕자와 같이 키웠어요. 7살 때까지 없어서 길렀다구요. 자기가 장사를 하고 별의별···.

 

상도동上道洞에 옛날 내가 살던 집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구만. 거기서 4월에 내가 이북으로 갔어요. 금천에 트럭으로 쌀 가지러 가던 길이었는데 그 길로 Rucksack(독일어, リュクサック) 짊어지고 집 떠나 이북으로 가 버렸습니다.

 

이래 가지고 내가 돌아오지 않으니 客地에 나와서 친척도 없이 고생한 것입니다. 그건 그래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가는 길에 대해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해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역사 시대에 책임해야 할 여성으로서 전통적인 그런 내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7년간을 별의별 놀음을 다 한 거예요. 서울에는 姻親(혼인으로 맺어진 관계. 또는 혼인 관계로 척분(戚分)이 있는 사람.) 간도 없었어요. 서울 한복판에서 시골에서 온 여자가···. 쌀도 이틀 먹을 것밖에 안 남았거든요. 서울에 쌀이 귀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남편이 이북에 가서 없어졌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애기는 낳은 지 며칠 안 됐지···.

 

그러니 뭐 기가 막힌 사연이 있었겠지요. 기가 막힌 거라구요. 하늘같이 믿은 남편이 소식도 없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거예요. 하늘 일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언제라고 예고하지 않았요. 길 떠나라면 떠나야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남한으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왔다 갔다 했지만 연락을 안 한 거예요. 딱 봉쇄한 거예요. 7년 동안 평양에 들어가서 교회를 만들고 이 운동을 하느라고···.

 

기성교회에서는 반대를 하고 그런 속에서 싸움을 하는데 언제 그럴 사이가 있어요? 가정을 위주로 해서 행동할 수 있어요? 섭리의 터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성교회는 반대하고 미국을 중심한 세계적인 판도는 어긋나 이지러져 버린 그런 판국에. 교회 기반도 없는데 가정이 무슨 문제예요? 그렇게 해서 개척 시대를 거친 거예요.

 

그때 평양에서 말이 많았어요. 제일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은 전부 나한테 오는 거예요. 마치 곡식 거두는 모양으로 빼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러니 교회가 반대를 하고 별의별 일이 많았어요. 자기 교인들을 도둑질해 가는 이리 같은 사람이라고 반대하는 떼거리들이 안 나오나 뭐 별의별 놀음이···.

 

그런 사연 속에서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할 핍박을 받은 거예요. 공산당하고 짜 가지고 감옥에 집어넣는 그런 놀음이 벌어졌어요. 거기에 싸움을 해서 승리하여 이북에서 기반을 완전히 닦은 거예요. 이북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그걸 이남까지 연결시킨 후에 집을 수습하게 돼 있어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가정을 끌고 다니면서 일하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현재 축복받은 가정들, 나라도 복귀가 안 되었는데 가정을 끌고 다니면서 냄새 피우고 그렇게 살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163-250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게 되니까 이 남편을 대해 가지고 소망이 없을 것 같거든. 또 자기 어머니는 재건교회 패와 한 떼거리가 되어, 재건교회에서 똑똑한 사람이 많이 나왔다구요, 전체가 똘똘 뭉쳐 가지고 이단시하고 충동질하는 거예요. 교단적으로 충동질하는 거예요. 교단적으로 충동질했다구요.

 

사탄 세끼 같은 그런 원수한테 불어 살 게 뭐냐고 하면서 어머니도 그저 딸한테 충동질하는 거예요. 딸도 맨 처음에는 충동질을 안 들으려고 했지만 하도 그러고 또 기독교 무리들을 중심 삼아 가지고 내가 하는 놀음이 자기들이 소원하는 주님이 왔다고 환영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거예요. 전부 이단 같지요. 반대로 가는 것 같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그러니 마음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 가문이 조금만 협조했더라면 성진이 어머니가 그렇게 안 되었을 거예요. 이렇게 안 되었으면 통일교회는 40년의 이런 수난길을 안 가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뜻을 다 이루어 나가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이랬으니 자기 어머니하고 큰 처남 (아내의 손아래의 남자 형제), 작은 처남하고 셋이 면회와 가지고는 협박 공갈하는 거예요. 이혼서 쓰라고 말이에요. 도장을 찍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3년만 기다리라고 했어요. 3년만 기다리라고. 그러면 당신들이 의심하던 이런 것이 다 지나갈 거라고 했어요.

 

그러다가 석 달 만에 내가 나오니까 또 와서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러냐?" 하면서 사인해 줬어요. 자기들이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갔다구요.

 

163-251 그런 일이 벌어진 때가 언제인가? 1955년이지. 뭐 가정이니 뭐니 돌볼 수 있었겠어요? 성진이네는 절간 살이나 고아원 살이한 가와 마찬가지지요.

 

* 성진 어머니 최씨가 큰 복을 받은 건데···. 이름도 최선길이에요. 먼저 선 자 길할 길 자. 이름이 남자 이름 같은데 어떻게 최선길이라고 했겠어요? 영계에서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먼저 길했다는 거예요. 여자로서 먼저 길했다는 거예요. 그런 이름이라구요.

 

최씨네 문중에서 그랬기 때문에 최씨 중심 삼은 역사를 하는 거예요. 최원복이도 그런 면에서 아주머니들을 대표해 가지고 탕감 노정을 걸어가야 되고 최봉춘도 그런 일을 해야 될 텐데 저렇게 됐어요. 최 씨가 문제입니다. 그다음에 최성모, 이득삼 씨 남편이 최성모예요. 최씨가 전부 받들어야 할 텐데도 최씨가 선생님을 고발해서 감옥에 넣었다 이겁니다. 반대했으니 거기까지 가는 거예요.  

 

2. 결혼 - 1945년 5월 5일  

 

1) 결혼하기 일주일 전에 장인이 죽은 거예요. 

 

▣ 1997.1.2(목) 교육, 전통, 실천. 브라질 상파울루 교회.

- 애승일. 세계지도자 회의.

 

281-070 觀相쟁이들은 내 얼굴을 보면, "선생님!" 한다구요. 관상 보는 사람들을 내가 많이 길가에서 테스트해 봤어요. 아무것도 아닌 노적 보자기를 쥐고 앉아 가지고 관상을 보는 사람에게 生年月日을 대면, "선생님, 지금 걱정이 있는데 이제 고생 안 해도 됩니다. 萬事亨通입니다" 이래요. 천만에! 


만사형통이 언제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일에 있어서 만사형통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이 안 됩니다. 창조입니다. 창조는 죽을 일에 있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모든 전체를 수습해 가지고 만사형통할 수 있는 주체력을 갖지 않고는 그 세계를 요리할 수 없고, 판도를 닦을 수 없어요. 그래, 나는 四柱에 관심 없어요. 전부가 공인합니다. 이래 가지고 창조하는 것입니다. 

 

* 이호빈 목사라고 있는데 그 목사가 주례를 했는데, 내가 찾아가 가지고 "목사님, 저를 따라와야 되겠소" 한 거예요. "왜?" 해서 "결혼할 텐데 주례해 주겠어요?" 한 거예요. 안 해 주겠다고 할 수 있어요? 안 해주면 내가 땡깡을 부리는데. 그럴 수 있는 내용을 훤히 쥐고 있는데 말이에요.

 

"와야 되겠소, 며칠까지. 부조해야 되겠소, 안 해야 되겠소?"  하고 물어보니까, "결혼하면 내가 부조해야지" 그래요. 그래서 내가 "차표 끊어 가지고 오소" 한 거예요. 그 말이 위대한 거예요. 

 

* 그때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게 안 돼 있어요. 왜정 말기니까. 걸어가는 거예요. 國民服을 입어야 했으니까, 국민복을 입고 말이에요.

나는 국민복 싫어요. 못 입는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말을 타고라도 장가가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에요? 

 

이래 가지고 말을 70리 길을 타고 가야 할 판인데 큰일났어요. 말을 타고 70리 길을 가면 엉덩이가 벗겨져요. 밤에 잘 때에 허리가 아파 가지고 앓아야 됩니다. 그걸 내가 아는데 어떻게 70리 길을 말을 타노?

 

그래서 곽산까지 가 가지고 거기에서 10리 길을 말을 타고 가려고 한 거예요. 그 동네에서 제일 좋은 말을 얻으라고 해서 찾는데, 말이 어디 있어요? 조랑말밖에 남은 것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조랑말이라도 타고 가야 될 판이에요. 걸어가는 것보다 낫지. 


그 실정을 아니까 조랑말을 타고 갔다가 반대하는 날에는 야단을 치려고 한 거예요. 약혼해 가지고 잔치까지 다 해서 잘 먹여 놓은 동네 사람들이니까, 누가 입을 열어 말을 하게 되면 들이 족치려고 준비 다 해 놨어요.  

 

281-072 보라구요. 그래, 장가갈 때가 4월 27일인데, 몇 년인지 잊어버렸어요. 결혼 날짜를 정해 놓았는데 결혼하기 일주일 전에 장인이 죽은 거예요. 이제는 틀림없이 장인이라고 판명을 받았는데, 장가가기 전 사위가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되겠어요?

 

* 그래, 어떻게 가야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색시될 사람, 장모 될 사람, 형제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그때는 말을 하는 것보다도 침묵이 필요합니다. 말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 수수께끼입니다.

 

사위라고 하지만 장례에 참석해 가지고 좋다 나쁘다 아무 말없이 오던 그날 그 얼굴로 말없이 있다가 돌아오는 거예요. 그러니 욕하겠어요? 욕했다가는 내가 "이놈의 자식, 내가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 아느냐?" 한마디해서 때려잡는 거예요. 말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리는 지키면서 나왔지만 그 자리는 메웠지만 말하지 않고 갔다 오는 거예요. 그래, 더럽히지 말라 이거예요. 

 

*  그래, 일주일 전에 상을 치렀는데, 결혼식을 하게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내가 결혼식을 해야 되겠다고 하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문답하는 거예요. "문중을 중심 삼고 기쁨의 기념할 수 있는 날인데, 연장해야 되겠소, 해야 되겠소?" 하고 말이에요. 어떻게 답변하겠어요? 전부 다 연장하는 게 좋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1년 후에 하자구요, 3년 후에 하자구요, 몇 주일 후에 하자구요?" 하고 다시 물어보는 거예요.

 

상을 치르고 나서 떠돌이 사윗감이···. 내가 떠돌이 사윗감 아니에요? 어디 갈지 모르잖아요? 떠돌이 사윗감 1년, 2년 됐다간 놓칠 것이 훤하니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하면 좋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 며칠 뒤에 하자는 거예요. 기가 차지요. 4월 27일을 중심 삼고 27일 28일 29일 30일, (5월) 1일  2일 3일 4일 5일, 8일 뒤에 결혼식 날짜를 정했다구요. 그날이 되니 번개가 치고,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거예요. 북한에서는 말이에요, 남한 같이 그러지 않고 색시네 집에서 잔치를 못 하면 신랑집에서 다 해야 된다고요. 두 번씩 잔치할 수 없어요. 8일 뒤에 우리 집에서 잔치하기 위해서 데려올 계획을 해 가지고, 데려오는 거예요.

 

그래, 억수 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니 형편이 무인지경이지요. 또 20리 길을 신교를 타고 가야 됩니다. 별의별 곡절이 많았다구요. 시집가는 데도 환난이고, 장가가는 데도 환난입니다. 참 세상에, 모든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시집올 때, 그 판세에서 혼수 같은 것을 해 올 수 있어요? 다 집어치워라 이겁니다. 이러니 색시를 데려올 텅텅 빈 방에 앉혀 놓고 말이에요, 잔치를 해야 되는 거예요.

 

혼숫감도 내 자신이 전부 다 만들어 놓고 생활을 꾸며 나가야 됩니다. 불쌍하지요. 그런 아들이 어디 있고, 그런 신랑이 어디 있어요? 전부가 개척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부모한테 원망하지 않았어요. 부모에게는 원망하는 대신, 내 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고요. 

 

2) 하늘의 명령에 의해 가지고 한 것입니다. 

 

▣ 1974.11.14(목) 벨베디아. 제15회 참자녀의 날.

074-096 선생님이 결혼식을 한 것은 해방 전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명령에 의해 가지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지만 그 사람이 성진이 어머니라구요. 이미 잘 알지만 말이에요. 그걸 밝히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돈독하고···. 신앙적 대표라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 세계를 대표함과 동시에 국가를 대표해 가지고 남자 세례 요한의 입장이 아니라 여자로서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해야 될 입장에 있는 사람이 성진이 어머니였습니다.

 

기독교의 사명은 뭐냐 하면 신부를 제시하고 신부를 하늘 앞에 연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의의가 있다는 거라구요.

 

그때 성진이 어머니는 신사참배 문제를 중심 삼아 가지고 감옥살이까지 했던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을 찾았던 것이라구요. 그런 처녀를 찾았던 거라구요. 그는 국민학교를 나오고 7년 내지 8년의 과정을 거친 학력밖에 없는 사람이라구요. 그래서 하늘의 뜻 가운데서 만난 사람이라구요. 자 그랬는데···.

 

어디까지나 남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여자의 도리인 것입니다. 약혼 때에 내가 성진이 어머니한테 통고하기를 6년 내지 7년 동안 갈라져 살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남편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걸 다짐받고 약혼을 했던 거라구요.

 

자 여러분들이 여기서···. 아들딸이 있으면 그 아들딸을 위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교회 기반을 연결시켜야 그 아들딸이 전부 다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기독교가 받아들였으면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서 가정으로부터 종족과 민족을 편성한다는 거예요. 이래서 가정적 기반에서부터 기독교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환경을 하늘이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성진이 어머니한테 많이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을 믿어야 할 텐데···. 그것을 믿으려고 했지만 그것을 못 믿게 한 사람들이 누구냐? 오빠하고 어머니가 반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오빠는 그때까지 신사참배한 기성교회를 믿고 어머니와 이 딸은 재건교회를 믿었습니다. 그게 가인 아벨입니다. 재건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신사참배를 안 한 패들이거든요. 요렇게 보게 되면 한국 교회로 보게 되면 오빠는 소생이요 어머니는 장성이요 성진이 어머니는 완성으로 이렇게 딱 연결된 것입니다.

 

* 지금까지 이 첫 사람 성진이 어머니나 지금의 어머니나 전부 다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느냐 하면 주님은 구름 타고 온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진이 어머니한테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해 주는 말씀을 다 가르쳐 주었더라면 대번에 믿었을 것입니다. 대번에 믿는다 이거예요. 그러나 그렇게 가르쳐 주게 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리하여 자기 어머니하고 짜 가지고 "아, 주님이 사람으로 온다는 것은 적 그리스도다" 한 거라구요. 결국은 세례 요한이 하늘에서 가르쳐 주는 것을 못 믿고 예수를 못 따른 것과 마찬가지로 섭리의 뜻 가운데서 선생님은 기독교를 대표한 하나의 여인을 만났지만 그 여인이 세례 요한 이상으로 선생님을 받들어야 할 탕감복귀 섭리 시대의 신부의 사명을 해야 할 텐데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 거라구요. 때가 왔으니 출발을 해야 할 텐데 출발하는 데 있어서 반대하는 환경적 여건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074-098 성진이 어머니도 세상 남자 중에서 성진이 아버지 같은 남자가 없다는 그것만은 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다 집어치우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할 테니까, 어느 여자 못지않게 할 테니까 나하고 재미있게 살자고 한 거예요.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집어넣고 자기가 주관하자는 것입니다. 완전히 타락한 해와 격이라는 거예요. 아담을 주관하자는 거예요. 뜻을 모르기 때문에 ···.

 

* 그래서 통일교회 간부들은 성진이 어머니한테 별의별 수난을 다 당했습니다. 뺨도 맞고 채이기도 하고 똥바기지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별의별 역사가 다 있었다구요. 간부들이 매도 맞고 별의별 일을 다 당했다는 거예요. 똥을 갖다 붓지를 않나 뭐 별의별 놀음을 다 한 거예요. 그야말로 사탄의 역사를 한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자한테 세계에서 제일 극악한 시련을 당한 사나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뭐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였다는 말을 남겼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시간만 있으면 그 어머니와 오빠를 불러 가지고 당신들이 나중에 후회할 테니 제발 그러지 말고 3년 동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매일같이 찾아와 가지고 이혼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왜 이혼을 안 해 주느냐는 거예요. 교회도 팔아 치우고 전부 다 별의별···. 그야말로 사탄이라구요. 선생님이 별의별 수욕을 다 당했다구요. 내가 큰소리 한마디해 본 적도 없디 다 당해 왔다구요. 이래서 기간이 찼기 때문에···.

 

이러다가는 하늘의 뜻이고 무엇이고 다 망친다는 거예요. 다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알고 사탄도 알고 다 아는 거라구요. 남편을 대해서뿐만 아니라 식구들을 대해 가지고도 이런 놀음을 하니 하늘이 더 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늘이 자기네들 원하는 대로 해 주라고 명령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혼을 하게 된 거라구요.  

 

3) 한 가지 그를 택하게 된 것은 왜정 때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었다 이거예요, 처녀의 몸으로.

 

▣ 1967.10.16(월) 전본부교회. 이상 상대. 

축복대상자 예비 집회. 

 

157-340 성진이 어머니하고 선생님이 결혼할 때도 그런 거예요. 20 前이었어요. 그때는 한다 하는 대학 출신 아기씨들도 많았어요. 선생님을 위해서 血書를 쓴 여자들도 여럿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아니면 죽겠다고···. 죽겠으면 죽으라 이거예요. "내가 당신들의 사연에 끌려가는 사나이가 아니다. 천도를 밝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건 개인 사연이고 내가 가진 사연은 역사적인 사연이 깃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바라고 꿈꾸는 사나이가 아니다" 하는 마음 가지고 나온 거예요. 

 

거기에는 뭐 요즘으로 말하면 한다 하는 사람이 배경을 가지고 자랑하고 ···. 그렇지만 우리 성진이 어머니는 소학교밖에 안 나왔어요. 알겠어요? 왜 그런 여성을 택했느냐? 뜻 때문에. 한 가지 그를 택하게 된 것은 왜정 때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었다 이거예요, 처녀의 몸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처녀의 몸으로.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 이거예요. 흘러가는,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학박사의 자리, 그런 무슨 명패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명문집 가문의 기반이 문제가 아니라 단 한 가지 그것 때문이에요.  

 

* 반대한 것은 선생님이 미워서 반대한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 거예요. 극성맞게 반대했지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첫째 곱힐 겁니다. 아주 뭐···. 

 

그 사람도 자기 어머니가 나빴어요. 어머니가 재건교회에 나가는데 다 코치해 가지고···. 그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자기 어머니에 비해서 선생님은 혁신적인 신앙을 하거든요. 결국은 반대한 동기가 자기 운명을 망쳤어요. 지금은 처량한 입장에 놓였다구요.  재작년인가···. 3년 전인가 와 가지고 "제발 부엌이라도 들어와서 일할 수 있게끔 해 줄 수 없느냐" 했는데 이미 다 지나갔다 이거예요. 

 

내가 감옥소에 있을 때 그렇게 부탁했어요. 3년만 지내보자고요. 눈 감고 3년만 지내보자고 했어요. 아주 뭐 형무소에 있을 때 이혼해 달라고 말이에요, 자기 엄마 오빠를 데리고 와서 야단한 거예요.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늘은 그것을 공인할 때까지 끌고 나온 거예요. 그래 가지고 별의별 놀음 다 당했지요. 내가 여자한테 뺨까지 얻어맞았구만, 고무신짝으로. 그렇지만 내가 절대 그를 밉다고 안 했어요.

 

그거 그럴 거 아니에요? 한 여성으로서 남성에 대해 정성 어린 심정을 다해서 사랑하던 그가 자기 소원대로 안 될 때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그것으로 이룰 수 있다면 ···. 사연이 많지요. 그 사람이 하나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전체 우리 통일교회 식구가 얼마나 고생했어요?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쫓긴 거예요. 

 

* 나를 만나기 전에 전부 다 기도해 가지고 기도로 다 가르침 받았거든요. 상당히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이라구요. 또 재미있는 것이 남자들이 청혼한 것이 스물세 번이에요. 선생님이 스물네 번째예요. 상당하지요. 다 안 한다고 하다가 결국은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척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전부 다 영계에서 가르쳐 주더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이렇게 말이 나 가지고 일 년을 같이 지냈어요, 일 년을. 

 

내가 이런 얘기는 안 할 얘기지만 말이지 만나 가지고 전부 다 내가 가야 할 길을 ㅇ얘기해 준 겁니다. 못해도 6년 이상 혼자 살아야 할 텐데 감당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때는 대답 잘했지요. "아, 하고 말고요" 했다구요. 진짜 그렇게 살아야 할 줄 몰랐지요. 

 

* 우리 성진이를 그때 4월 2일에 나 가지고 내가 5월 27일 날 떠났으니까 한 달이 조금 더 되지요. 그때는 쌀도 없고 다 없었던 거예요. 그래 가지고 나는 나대로 갈 길을 간 거예요. 그런 일이 역사에도 있는 겁니다. 탕감복귀가 그렇게 된 겁니다. 그것을 성진이 어머니가 잘해 가지고 감사하게 절대복종했더라면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난 안 받습니다. 

 

4)  "선생님은 성경에 대해서 일점 일획이라도 가감치 않고 믿습니까?"

 

▣ 1997.1.2(목) 교육 전통 실천. 상파울루교회. 

- 애승일.

- 세계 지도자 회의. 

 

281-014 그래, 최씨네 집안이 유명합니다. 북한에 있어서 기독교를 유치한 것이 최씨네 집안입니다. 교회를 성진이 어머니 본가 집터 옆에다 지었어요. 공로의 집안이라구요. 거기서 촌촌이 연결되고 그런 거예요. 바닷가니까 이렇게 들어온 거라구요. 그렇게 유명한 교회라구요. 그 교회를 어머니 본가 터에다 지었다구요. 

 

그러다가 열심히 믿던 사람들이 신사참배가 벌어지니까 교회가 두 조각이 난 거예요. 그래서 그 어머니로부터 성진이 어머니를 비롯한 딸들 전체가 신사참배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지하교회에 나간 거예요. 이렇게 오빠하고 갈라진 겅예요. 이 오빠는 세상 편이라구요

 

281-014 재건파, 재건교회 기반이 평양서부터 됐지만 이 사람이 주동적 역할을 한 거라구요. 신앙에도 상당한 거예요. 감옥생활까지 했어요, 그 어머니로부터 세 딸이. 그 주모자가 성진이 어머니더라구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졌습니다. 축자영감설 逐字靈感說(쫓을 축. 성경의 글자와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하는 .)을 말합니다. 성경에 일점 일획도 더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나보고 면회 재판 모양으로 "선생님은 성경에 대해서 일점 일획이라도 가감치 않고 믿습니까?" 묻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나는 그것을 다 이루고도 남습니다" 답변이 그거예요. 나는 그것 다 이루고도 남은 길을 왔다 이거예요. 그 말이 뭐냐 하면 재림주라 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