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강좌

신앙자의 태도 - 12가지.

true2020 2023. 6. 11. 08:19

1. 인연의 심정을 느껴야 된다. 

2. 고대하는 심정이 있어야 된다. 

3. 참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 1959.3.29(일) 전본부교회. 신앙자의 태도 

006-070 오늘날 여러분 한 자체가 생겨난 것도 자신이 생겨나고 싶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 여러분도 알 수 없는 어떤 움직임에 휩쓸려서 이 땅에 태어났고 이러한 일을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러한 동기를 만들어 주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하였고 이러한 결과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나"라는 존재는 나 스스로 자랑할 나가 아니라 나에게는 역사를 들어, 전체를 들어 혹은 미래를 들어 이념적인 권내에서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이런 信念과 느낌을 가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의 신앙길에는 오늘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일이 벌어지게 되고 슬픈 일이 미쳐지게 되고 어려운 일이 미쳐지게 되고 억울한 죽음까지 부딪치게 되며 천륜의 인연을 저버리는 신앙자의 태도를 취하기 쉽게 되고 하늘을 배반하기 쉬운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념에 대한 사무친 심정을 지녀야 되겠고 내 생활을 이 이념에 의해 관찰해야 되겠습니다. 무한한 신앙 세계의 이념과 인연을 맺으면서 자신은 우주적인 인연을 빛내기 위한 하나의 祭物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이념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아니하고 그런 느낌이 심중에서 떠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는 한 이 땅 위에 감히 여러분을 침범하거나 굴복시킬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 아담 이후 1600년 동안 하늘을 저버렸던 인류 앞에 다시금 새로운 약속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노아를 찾아 세웠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우러러보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을 택하여 천추의 한을 푸시려는 하늘의 심정을 안 노아였기에 노아는 하늘의 뜻, 하늘의 명령을 붙들고 120년 동안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노아는 하늘이 세워 주고 불러 주고 명령하였던 그 인연이 귀중함을 알게 될 때 그 앎이 크면 클수록 하늘과의 인연이 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자신을 불러 주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의 뜻이 얼마나 컸었던가 하는 것을 더 깊이 느꼈던 고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이 비웃고 배척했지만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생활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006-072 노아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모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은 모세에게 있어서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자유스러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역사적인 인연을 통하여 선조들의 뼛골을 통하여 자기의 피살에 뻗쳐 있다는 것을 생각했기에 그것을 다 버렸던 것입니다

 

006-073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4천 년 만에 타락한 아담의 모든 실수를 그 몸에 담당하고 하늘의 슬픔과 만민의 슬픔과 온 만상의 슬픔을 그 몸에 지니고 하늘의 탄식과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모든 흑암의 조건들을 홀로 담당하고 이것을 타파시키기 위하여 오셨던 제2의 인류 조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이 회상해 봅시다. 

 

예수님은 땅 위에 어떤 분으로 오셨던고. 그는 4천 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범죄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지 아니하고 죄로 말미암은 슬픔을 감촉하지 아니한 사람 즉 하나님께서 선의 감촉과 선의 심정에 사무쳐서 지으셨던 본연의 아담 해와를 그 마음으로 동경하였습니다. 

 

* 그는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을 이루어 드려야 하고 선조들이 타락으로 저끄린 모든 죄상을 탕감해야 할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진 자기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는 타락한 아담을 원망하기에 앞서, 타락한 후손을 원망하기에 앞서, 나아가서는 천사장을 원망하기에 앞서 그 원망에 사무치는 마음이 있으면 있을수록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세 이후 4천 년의 서러운 복귀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아버지요 아들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기 자체인 것은 느끼게 되었습니다. 

 

006-075 이러한 관점에서 바른 신앙자의 태도는 자기라는 것을 다 없애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개까지도 넘어야 하늘과 기쁨의 인연을 맺고 사라지는 그 기간에 "아버지여,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습니다" 할 수 있고 지금까지 맺어 왔던 슬픔과 원한의 인연을 종결짓고 기쁨으로 얽힌 인연을 노래할 수 있는 순간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들이 소유할 것이 영원한 나라요, 이러한 자들이 살 곳이 하늘나라요, 이러한 자를 찾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찾아 들어온 여러분들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찾아 들어올 때에는 그 무엇인지 모르게 인연이 맺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발길을 돌리려 해도 무엇인지 미련을 가지게 하는 인연이 여러분들을 끌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룩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인연이 나로 말미암은 인연이 아니라면 누구로 말미암은 인연이었던고. 피눈물의 역사를 해원하기 위해 세운 선조들의 공적의 터전이 우리들의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러한 감촉이 심중에 느껴질 때마다 자기 存在 意識조차 잊어버리고 쓰러지면서라도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폭발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최후에 슬픔으로 인연된 역사의 고개를 넘어 기쁨의 세계와 인연될 때에 비로소 주을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006-077 세상의 친구도 사귀었다가 헤어지게 될 때에는 서운해하고 슬퍼하거늘 하물며 하늘을 중심 삼고 나가던 인연의 노정이 끊어지는 그 순간은 어떠하겠습니까. 역사적인 슬픔의 순간이요 천지의 슬픔의 순간이요 인류와 천상의 슬픔의 순간이라는 것은 여러분은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를 느끼는 자가 있다 할진대 가도 가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으래야 느끼지 않을 수 없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래야 참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원리를 통하여 배웠듯이 오늘날 우리 개체가 선 위치는 하늘땅과 저나라에 있는 영인들의 한까지 해원성사해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사적인 제단에 놓여 있는 여러분입니다.

 

006-080 우리의 시선을 통하여 바라보는 이 인연, 이 상대적인 인연에는 역사적인 시선이 주시하고 있고 역사적인 울부짖음이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인연의 심정을 느껴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순간, 그 자아의 의식이 돌아오게 될 때  나는 오늘의 나로되 이 땅 위에 한정된 나가 아니요 영원한 세계의 이념권내에서 보장하는 나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를 하늘은 완성한 자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제가 일진대는 참된 신앙자의 태도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연의 심정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바의 은사도 오늘의 기쁨의 인연이 미쳐진 은사가 아니라 역사적인 인연을 인계받은 은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006-084 그다음 신앙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고대하는 심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인연을 갖고 있는 연고로 고대하지 않으래야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은 무엇을 고대하뇨? 신앙자를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 실천하는 자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우리들은 신앙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고대하고 있으나 그러한 단계를 넘어서 생활적인 신앙을 해야 되겠습니다. 즉 하늘과 같이 생활하는 식구, 하늘과 같이 생활하는 백성, 하늘과 같이 생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즐길 수 있고 노래할 수 있으며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이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006-087 그다음에는 참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도 참아 오셨습니다. 에덴에서 죄를 지은 그날부터 이날까지의 역사 노정은 참음의 노정이었음을 부정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 참지 못하여 타락한 인간이 되었던 연고로 참는 자가 승리의 한날을 세울 때까지는 하나님도 참지 않으래야 참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고 뜻을 어겼으니 참는 한 자체를 찾기 전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해원될 수 없습니다. 즉 참아서 하나님의 심정을 해원해 드리고 참아서 민족을 해원하고 우주를 해원하여 행복의 한날을 소망하고 싸움의 길 핍박의 길 죽음의 길에서도 남아지는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를 만나시기 전까지는 참아 나오신 역사를 종결 지을 수 없고 심판의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 기독교에서는 심판이라는 명사가 있는데 그 심판은 무엇이뇨? 하늘이 참아 오신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한 때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한 때를 고대하며 참아 오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 풀 수 있습니다. 심판의 권한을 갖고 심판대에 나서서 원수를 심판할 수 있는 기독교가 되어야겠습니다.  

 

4. 일생의 모든 것을 사탄이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선조들을 대신하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5. 조심히 살피는 태도입니다. 

 

 1959.4.13(일) 조심히 살펴야 할 신앙의 길. 전본부교회. 

006-115 통일교회 신도인 여러분은 남들이 아니라 하는 길을 가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나는 묻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일생의 모든 것을 사탄이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선조들을 대신하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될지라도 "나를 지켜 주시고 나의 일을 염려해 주시는 하늘의 은사만은 잊지 못하겠나이다" 할 수 있는 마음, 그런 불면의 심정이 있어야만 통일 이념을 성취하는 그날까지 남아지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이 여러분의 가슴에 싹트지 않고 이러한 이념의 세계에 대한 감정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될 것이냐? 방황 방황 방황하다가 최후의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변명하지도 못한 채 죽음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코를 막고서라도 다시 한번 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훌륭한 신앙자의 태도는 대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심히 살피는 태도입니다. 이런 살피는 마음, 조심스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6. 타락한 陷穽에서 탈출하라!  다 끊고 도주해라! 

 

▣ 1962.10.28(일) 인류의 결실. 전본부교회. 

- 제3회 자녀의 날. 

 

151-086 타락한 함정에서 탈출하라! 오늘날 세계의 30억 모든 인류는 경계선 권내에, 철조망 권내에 사로잡혀 있으니 조그만 애착심이라도 가져 가지고 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끊고 도주해라, 逃走. 그렇기 때문에 도인들은 일반 세상 생활, 인생 항로에 있어서 도주자들이에요.  

 

7. 신앙의 길은 영원. 

 

▣ 1972.7.23(일) 우리의 자세. 전본부교회. 

059-233 신앙의 길이라는 것은 하루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믿다가 내일 그만둘 것이 아닙니다. 일생을 넘어서 영원이에요. 영계에 가서도 우리가 하나님 믿어야 된다구요. 하나님 모셔야 된다구요. 차원 높은 의미에 있어서 신앙해야 된다구요. 

 

8. 빚진 자의 자세.

 

▣ 1971.4.25(일) 신앙자의 자세. 전본부교회. 

043-108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한 자세는 무엇이냐? 빚진 자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빚져 봤어요? 빚진 것이 없으면 빚을 좀 져 가지고 단련해 보라구. 빚진 자의 수고가 어떻구나 하는 것을 알아보십시오. 빚을 갚지 못하는 자리에 서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비참합니다. 한 푼이라도 빚을 지면 그 조건으로 멱살을 잡힐 수 있고 근본적으로 인격을 부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빚이라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겠다고 노력하는 것을 채권자가 보게 될 때에는 동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 빚진 자는 언제나 빚을 갚겠다고 하는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빚을 갚고야 말겠다고 하는 태도가 빚보다 크게 될 때에는 채권자가 그 사람을 참소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렇지요? 신앙자의 태도도 이와 같은 빚진 자의 자세라야 합니다.    

 

9. 억센 사탄 마귀의 토대를 완전히 분석 비판해 가지고 악의 기반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신앙자의 태도입니다. 

- 신앙자들이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어디에 있느냐? 마음의 소리에 있는 것입니다. 

 

▣ 1971.3.14(일) 정성과 극복. 전본부교회. 

042-216 혹은 사회의 생활환경에 휩싸여 원치 않는 하루, 한 시간의 생활을 거치고 난 후에 그 본심의 마음 바탕, 자기 소성과 비교해 볼 때 여지없이 유린당하는 일들을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환경을 개척해야 할 사명자로서 이처럼 억센 사탄 마귀의 토대를 완전히 분석 비판해 가지고 악의 기반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신앙자의 태도입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자들이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어디에 있느냐? 마음의 소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갖춰지는 선한 마음을 어떻게 외형적으로 판도를 넓혀 나가느냐 하는 것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선하고, 가장 귀한 것을 소유할 수 있는 터전을 닦는 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에 이것을 하루의 생활 철학으로, 하루하루의 생활 목표로 세워 투쟁해 나가는 것이 사회나 민족 또는 국가 앞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도 더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10. 핍박을 받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지만 핍박이 없을 때는 내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11. 자기의 출세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터전을 이용하여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고 바라면 그 모든 것은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1971.1.31(일) 때를 아는 자가 되지. 중앙수련원. 

040-167 핍박을 받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지만 핍박이 없을 때는 내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태도가 자기의 인일을 생각하여 자기의 출세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터전을 이용하여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고 바라면 그 모든 것은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절대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절대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12. 우리 인간의 과거지사를 생각해 보면 불평할 있는 입장이 못 된다.

 

▣ 1969.12.7(일) 수욕의 상처. 전본부교회.

027-151 그러니 오늘날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들 즉 신앙자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이냐? 하나님 앞에 수욕의 상처를 남긴 아담 해와의 입장을 넘어서 가겠다고 천 배 만 배 다짐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간을 믿을 수 없었던 억울한 사연을 전부 다 탕감 복귀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자리에 서야 합니다.

 

*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한 입장입니까? 우리 인간의 과거지사를 생각해 보면, 생활 속에서 하늘 앞에 지은 많은 죄를 생각하면 현재 하나님이 나를 몰라 주고 나를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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