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자서전

봉사와 나눔을 통해 평화의 꿈을 실현해 가는 것입니다.

true2020 2022. 10. 25. 11:26

◑ 내가 가진 것을 다 주어도.

 

245 나는 문 총재가 성화했을 때 전 세계에서 답지한 조의금 전부를 씨돈으로 넣었습니다. 또 선교용 헬기를 팔아 종잣돈으로 키웠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는 일은 청년 인재를 키우고 봉사와 나눔을 통해 평화의 꿈을 실현해 가는 것입니다. 

 

* 교육이 인재를 만들고 인재가 미래를 만든다는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덕성을 지닌 인재를 길러 내는 일은 지구촌의 밝은 내일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나는 꿈과 비전을 지닌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원해 미래의 지도자로 길러 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나를 잊어야 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첫머리에 놓을 때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 기쁨마저 잊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 곁에 찾아오십니다. 

 

▶ 봉사 -> 恩返し

▶ 나눔 -> おすそ分け

 

1. 정의 마음은 얼마든지 나눠줄 수 있다. 

 

▣ 1991.1.1(화) 제24회 하나님의 날. 본부교회. 

212-045 여러분, 참사랑은, 정의 마음은 얼마든지 나눠줄 수 있지요? 

 

2. 흥남 형무소에서의 일화. 

 

 1971.11.8(월) 중앙수련원. 전도자의 사명과 하늘의 심정.  

- 3차 세계 순회 떠나시기 전.

 

050-312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미숫가루를 받아도 혼자 먹지를 않았어요. 죽으면 같이 죽지, 다 나눠주는 거라구요. 그렇게 나눠주다 보니 나중엔 내가 먹을 것이 없게 되니 옆 사람들이 모아 가지고 나를 먹여 주는 일이 벌어지더라는 것입니다.

 

* 선생님에게 좋은 옷이 있으면, 식구들에게서 좋은 바지저고리가 들어오게 되면 제일 불쌍한 사람에게 갖다 입혀 줍니다. 면회를 한 번도 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에게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옷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선생님을 보기만 하면 그저···.  그러기 마련입니다.

 

* 나는 바람이 펄펄 불 때, 옷이 다 째져서 궁둥이가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어도 감옥에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옷을 들고 가 그에게 주었어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문 선생, 문 선생" 했다는 거예요.

 

1) 미숫가루

2) 보름 간의 밥 반공기. 

 

 

▣ 1973.7.23(월) 중앙수련원. 복귀의 목적.

- 전국 교역장 집회.

 

068-081 선한 동정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한 동정의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건 일대에 잊어버리지 않아요.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생일을 맞은 적이 있는데 감옥에 있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내 생일을 기억했는지 미숫가루 한 주발을 갖다 줬어요. 그 사람을 내가 만나게 되면 몇천만 배로 갚아 주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구요. 은혜를 받았으면 그것을 갚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라구요.

 

내가 예를 들어 말하지요. 선생님은 학생 때 점심을 안 먹고살았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점심을 안 먹었어요. 이식주의자였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돈 없는 사람에게 내 학비를 떼어서 학자금을 도와주었습니다. 학생 때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절약했습니다.

 

자취를 7년 동안 했다구요. 집에서는 학비를 쓰고도 남게 보냈다구요. 그런데도 찬 방에서···.. 그때 서울은 상당히 추웠습니다. 요즘 같으면 좋은데 그때는 뭐 영하 17도, 23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구요.

 

* 여러분 배고프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른다구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배고픈 시간이 제일 하나님 앞에 가깝다구요.

 

3) 옷

 

▣ 1964.6.12(금) 정신력과 훈련. 대구교회.

- 흥남 감옥에서 선생님을 모셨던 손영출 씨의 간증 후 말씀.

 

154-137 소기의 작정한 시간대로···. 작정한 잠 또 작정한 음식 외에는 탐내지 않았어요. 또 먹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 이 먹는 것에 욕심내다가는 죽는 거예요. 그저 죽는 거예요. 보급할 길이 끊어지고 어디서 보충할 길이 없어 영양이 부족되는 입장에서 전부 다 이것을 보충받기를 바라는 그런 입장에 서면 그건 죽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음식 가지고도 넉넉히 산다, 이 음식 절반 가지고도 산다, 선생님은 각오로···. 그래서 한 보름 내지 20일 동안 그 절반의 밥을 전부 다 남에게 나눠 줘 먹였어요. 자신 있다 이거예요.

 

이런 훈련을 딱 하고 그다음부터는 뭐 차입 같은 걸 들여 주더라도 그걸 막지 않는다 말이에요. 미숫가루 같은 걸 들여 주게 되면 그거 궁하고 굶주렸으니 얼마나 먹고 싶겠나요? 그러나 그것을 탐해서는 안 된단 말이에요.

 

보통 보면 미숫가루 같은 것이 들어오게 되면 말이에요, 자기 밥, 거기에서 주는 밥은 다 남 주고 자기는 맛있는 것을 그저 먹 먹으려고 한다구요. 그랬다간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그걸 바라볼 필요 없어요. 바라볼 필요 없다구요. 그랬다가는 죽는 거예요. 죽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걸 먹지 않고 딱 소정의 작정한 그 규율권 내에서 자기가 지탱할, 자기가 살 길을 개척해 나가야 되는 거예요. 

 

▣ 1987.5.19 (화)국제승공연합. 북한 해방과 남북통일.

165-022 그때에 참 잊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숙소에 전부 다 면회들을 오거든요. 면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받아 줘요. 방은 대개 한 방이 얼마만하냐(북한어. 얼마만하다 - 잘 모르거나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수량이나 정도만 하다.) 하면 요기서 요만할 거예요. 요만한 곳에 한 30명이 누우면 어깨와 다리가 딱딱 부딪치고 전부 다 살을 비벼대는 거예요. 요만한 방에 30명에서 35명이 들어가거든요.

 

* 그렇기 때문에 면회를 오게 되면 미숫가루를 가져옵니다. 

 

* 자, 이러한 환경에서 전부 다 그 배고픔은 말할 수 없다구요. 그러니까 미숫가루 같은 거 받아 가지고 그냥 두면 전부 찾아 먹는 거예요. 그냥 전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지 않고 앉아 가지고 지키고 있고 그래요. 그런 판국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먹겠다고 그런 짓을 해요? 다 퍼 주는 거예요.

 

그랬다고 우리 어머니가 갔다 와서 네 활개를 척 펼치고 앉아 가지고 "이놈의 자식, 에미가 그렇게 고생을 해서 갖다 주니까 즉석에서 전부 다 퍼서 나눠 주고 ···. " 이랬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지요. 기가 찬 말이지요.

 

집에서야 한 번 가려면 평안북도 정주에서 함흥이 어디예요? 또 미숫가루를 만들려면 말이에요, 그거 만들기가 쉬운가요? 혼자 만들어 가지고 있는 정성껏 ···.

 

또 가려면 통행증을 떼야 된다구요. 군 인민회에 가고 면 인민회에 가서 통행증을 데어 가지고 사인을 받아야 돼요. 그 사인이 없으면 가지를 못해요. 그러니 어머니가 반대하고 했다는데 그게 다 옳은 말이라구요.

 

또 옷 같은 거 갖다 주면 내가 그걸 입나요? 옷도 전부 다 나눠주는 거예요. 일 년이 되고 몇 년이 돼도 면회 못 오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러니 참 비참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옷도 있으면 전부 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는 언제든지 관복을 입고 있는 거예요. 관복도 구멍이 뚫어진 걸 입고 바람에 펄럭이고 있으니 명주 바지를 해다 주질 않나 뭐 솜바지 저고리를 해다 주지 않나. 그랬는데도 남 다 주고 그러고 있으니 부모야 그저 환장하지요. 환경이 그렇다는 거예요. 환경이.

 

▣ 1997.1.2(목) 상파울루교회. 교육 전통 실천. 

- 애승일. 세계 지도자 회의. 

 

281-081 결혼할 때 명주 바지저고리 제일 귀한 것을 얼어 죽겠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함흥이 말이에요, 바람이 불면 자갈들이 굴러간다는 곳입니다. 이름난 곳이라구요.

 

감옥에 들어가 있는 아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니 있는 모든 준비를 해 가지고 춥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결혼할 때 가져온 모든 옷들을 털어 가지고 가져왔어요. 그것 뭘 하겠어요. 그것을 입으라고  갖다 주면 언제나 옷을 보면 홀챙이 옷이에요. 이게 째져 가지고 여분 다리가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이거예요. 부모야 벼락이 떨어지지요. "옷 어디 갔어?" 하면 미안해서 답변을 안 합니다. 

 

감옥에 있어도 몇 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면회 안 번 안 오는 사람, 벌거숭이가 돼 가지고 면회한 사람을 보면 부러워 가지고 아침 점심이 되어도 밥을 못 먹고 목이 메어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서 그 옷을 입고 내가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양심이 허락하질 않아요.

 

어떤 사람은 미숫가루를 베개 해 가지고 자고 지키는데 나는 할 수 없어요. 그 즉석에서 나눠주는 거예요. 옷도 즉석에서 나눠주고. 그러니 "요전에 이런 물건을 갖다 주었는데 어떻게 했느냐?" 할 때 기가 막힐 것 아니에요? 

 

 

▣ 1970.10.13(화)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 중앙수련원.

- 참아버님의 간증.

 

035-185 선생님은 북한 공산당의 감옥에 들어가서 2년 8개월 동안 중노동을 했다. 무슨 노동이었냐면 비료공장의 일이었다.

 

유산 암모니아 공장에서 가루가 컨베이어에 실려 공장 한가운데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저울에 달아 자루에 가득 넣어 화차에 싣는 일이다.

 

열처리를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유산 암모니아는 뜨겁다. 그것이 식으면 덩어리가 된다. 그것을 몇 년 동안 놓아두면 바위처럼 되어 버린다.

 

참으로 힘든 중노동이었다. 하루 8시간의 노동 시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분담이 있다.

 

열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한다. 한 조의 하루 책임량은 천삼백 가마니로서 8시간 이내에 끝내지 않으면 식량이 반으로 줄어들게 되어 있었다.

 

하루에 주는 밥은 작은 공기로 1.7공기 가량이다. 반찬은 아무것도 없고 국은 된장국이 아닌 소금물이다. 그것을 먹고 8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중노동을 시켜서 죽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 작전이다. 여기에 들어와서 3년이 지나면 모두 죽어 나간다. 반드시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3년 이내에.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중노동을 시키기 때문에 이 공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우선 죽어 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는 하루에 세 끼 기름기를 먹고 최고로 하여도 하루 700가마니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공장은 그 배에 가까운 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먹을 것은 적어서 큰 입으로 세 입이면 끝나 버린다. 그러고서 중노동을 하는 것이니까 조반 먹고 공장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벌써 다리가 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것이다. 그러한 다리를 끌고 가서 아침부터 일을 한다. 그것은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035-186 선생님은 공산당의 정책을 상당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선생님은 주는 밥의 반절만 먹고 살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인간은 빵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이 밥으로는 죽어 버린다. 그러니까 이 밥의 반으로 살아가기로 決心하기까지는 반 달이 걸렸다. 자기가 반절 먹고 남은 半은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자기가 精神的으로 幸福한가, 날마다 얼마나 感動의 量을 크게 하는가가 문제였다. 精神的 慰安은 실로 큰 것이다. 

 

생활은 과학적이다. 노동하는 가운데서도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치 않는다. 노동 시간이 기도의 시간이었다. 언제나 세계적인 여러 가지 일을 상상하는 것이다.

 

아침 8시에 감옥을 출발하여 10시에 공장에 도착한다. 10분간 화장실에 갈 시간이 주어진다. 벌써 죽고 싶은 만큼 피로해진다.

 

위가 녹아 버릴 정도의 쓰라림을 느낀다. 그래도 그 일을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만 휴식 시간만을 머리에 그리게 된다.

 

정미 40 킬로그램을 넣어서 그것을 들어 올리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모두 싫어한다. 선생님은 모두가 싫어하는 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했다.

 

이 어려운 일을 계속하면 죽는다. 그래서 가장 힘든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것 외에는 살아 낼 길이 없다. 여러분도 가장 어려운 일을 맡아하라. 그렇게 前進的으로 생각하라. 

 

035-187 어느만큼 배가 고픈가. 밥을 얼마만큼 먹고 싶었는가 하는 것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자기 가족이라든가 누가 면회 올 적에는 무엇인가 가지고 오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라도, 그리웠던 어머니라 할지라도 온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기보다 먼저 가지고 온 물건에 눈이 간다. 면회 때에는 가지고 온 것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내나 어머니라도 그런 것보다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공장에서는 좀처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까 면회 때에도 먹을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회문제가 되어 시끄러우니까 이것은 허락되어 있었다. 

 

면회 와서 미숫가루를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만큼 슬픈 적이 없다. 어버이가 죽는 것보다 더 슬프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