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흥남 감옥 -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전도해 주었다.

true2020 2022. 6. 19. 09:36

▣ 1968.7.14(일) 보다 중요한 것. 전본부교회.

020-314 뜻을 중심 삼고 투쟁해 나가면 감옥에 들어가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도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 넘었습니다. 

 

왜냐 하면 영계에서 협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계에서 "그분을 따라가라. 그분이 누군지 아느냐"고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이기 때문에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감옥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몇 대 조상인 할아버지가 나타나 선생님을 따라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니고 계속 시키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조들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020-316 여러분들은 활동하는 것이 힘들고 안타깝겠지만 배후에는 절대적인 섭리의 뜻을 받들고 있는 많은 선한 영인들이 동원되어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즉 선생님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나가게 될 때 여러분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라고 하는 사람이 도리어 망하는 것입니다.  

 

020-320 그런 가운데에서도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간수의 눈을 피해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선생님께 아침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본척만척하고 쓱 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보고파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보면 침을 질질 흘립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판국입니다. 여기에서는 혼자만 먹으려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미숫가루 같은 먹을 것이 생기면 선생님한테 주려고 신문지에 싸서 별의별 곳에 다 감춥니다. 그게 더러운 물건입니까, 선물입니까? 

 

이렇게 감춘 것이 발각되면 죽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습니다. 그 미숫가루를 나누어먹었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의 그런 맛을 아직까지 다시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무엇이든 서로 나눠먹던 그때의 심정을 하나님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1. "여기에 가면 예수님의 3대 제자와 같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2.  내 말이라면 생명을 걸고 탈옥하자면 탈옥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1971.8.28(토) 우리 가정의 갈 길. 청평.

- 제2차 교회장 수련회.

 

047-190 선생님은 이북에 가서 뭘 했느냐? 이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예수가 감옥에서 망했지요? 그러니 선생님도 쫓겨난 원수의 길을 되돌아가는 데는 감옥을 찾아가는 거라고요. 알겠어요? 

 

내가 평양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차고 형벌을 받고 있는 중에도 누구누구를 만날 것을 다 약속받은 거라구요. "여기에 가면 예수님의 3대 제자와 같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하는 것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복귀의 운세권내에서는 그렇지 않으면 천도가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가는 길도 최고 희망의 길이었다 이겁니다. 그때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 오늘날 여러분 앞에 나와 간증하는 사람들이라구요.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 하는 그 소망을 가지고 감옥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소망 중에 찾아간 것입니다. 절망 중에 찾아간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거기에 들어갔으니 거기서 길을 닦아 가지고 그 수고의 공적을 통해서 그 문이 자동적으로 열리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완전히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옥살이를 하고 옥에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에 들어가서도 제일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했던 것입니다. 몸으로 하는 일 가운데 최고의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제일 어려운 일을 일보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빨갱이들한테 매년 모범 노동자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자기들이 주었지. 

 

공산세계의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모범 노동자로서 일등이 됐으니 세계 어디에 가도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 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 말하지 않는 가운데서···. 내 말이라면 생명을 걸고 탈옥하자면 탈옥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지사판에서 예수님의 12제자가 도망간 것을 복귀해야지요? 자동적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전도해 주었던 거라구요. 선생님의 수인번호가 596번, 596번이었다구요. 어떻게 보면 억울한 번호라구요. 

 

어떤 사람에게는 꿈에 조상이 나타나서 "몇 호실에 596번 이러이러한 양반이 있는데 네가 받은 미숫가루를 하나도 손대지 말고 그분한테 갖다 드려라" 하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허황스러운 꿈같은 거 뭐" 이러면서···. 한번 해서 안 들으니까 두 번 세 번 하다가 나중에는 목을 조르면서 "이놈아! 할래 안 할래!" 하니까 "예, 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감옥에서 미숫가루는 생명보다 더 귀한 거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이 미숫가루 자루를 거꾸로 들고 터벅터벅 와서는 "여기 596번 있어요?" 누구예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3. 영계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20명. 

- 4명만이 선생님을 따랐다. 

 

▣  1971.12.28(화) 워싱턴, D. C. 통일교회사 2. 

052-170 죄수들 중에서 선생님을 따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영계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20명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선생님을 따랐지만 선생님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그들은 변소에 갔다가 옵니다. 비록 말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선생님 곁으로 와서 선생님에게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비료 더미는 한 덩어리가 이 집만큼 높았습니다. 한 더미에서 일을 하는 몇 팀이 있는데 그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단지 변소에만 갔다 올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체했습니다. 그러나 감시원들은 하늘 편 사람을 따라다녔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들에게 선생님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그들이 감방에서 좁은 복도로 나올 때 그들은 네 줄로 섭니다. 그 복도는 좁은데 그때 따르는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윙크를 하는 것처럼 선생님을 껴안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만일 선생님이 명령을 했으면 그들은 무엇이든지 했을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죄수들에게 면회가 허용되었습니다.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올 때 그들은 미숫가루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미숫가루를 받을 때마다 자기 혼자서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같은 감방에 있는 죄수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그런 미숫가루를 받았던 사람들은 그것을 종이에 싸서 숨겨 두었다가 과자를 만듭니다. 왜냐하면 매일 그 교도소 간수들이 몸수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간수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숨깁니다. 그들은 그것을 작업장으로 가지고 와서 휴식시간에 선생님에게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일이 가장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옥에서는 콩 한 조각이라도 사고팔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는 귀한 것이 쌀이나 콩알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귀한 음식을 선생님을 위해서 아꼈습니다.

 

그들은 유엔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평양으로 갔습니다. 그 길에는 단지 4명만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 외 다른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 네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 1967.5.15(월) 옥중의 증거자. 전본부교회.

- 김인주씨 간증 후 말씀.

 

018-040 이북에 있을 때 재판받을 날이 원래는 4월 3일이었는데 공산당이 교회를 탄압할 구실을 만들다 보니 기일이 늦어져 4월 7일에야 받았다. 그날엔 식구들이 함께 모였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형을 받고 감옥으로 갈 때는 오히려 희망에 찬 발걸음이었다. 왜냐하면 형무소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감옥에는 오후 3시경 들어갔는데 들어간 지 3일째 되는 날에는 김 씨라는 청년을 만났다. 그는 원래 육군사관학교 포병과를 졸업하고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 중 종전을 맞은 사람이다. 종전 후 그는 북한 인민군에 입대, 포병사령관의 심복 부하로 복무하다가 국가기밀 누설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자살을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철쇄로 묶여 있었다.

 

그에 말에 의하면 하루는 꿈속에서 백발노인이 나타나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너는 이남에서 평양으로 올라온 청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라고 일러 줬다고 한다.

 

얼마 후 포병 사령관의 절대 보증 하에 그에 대한 처벌은 사형에서 4년 8개월로 감형되었다. 그리고 다시 꿈속에서 그 노인이 나타나 믿지 않은 것을 책망하면서 몇 날 안 되어서 이남에서 온 젊은 선생님을 만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또 5월 28일 새벽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자 상심하여 병이 들었다가 설상가상으로 차 사고로 죽었던 그의 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나서 그를 데리고 宮廷궁정과 같은 곳으로 가더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음성이 들리고, 3계단을 오를 때마다 3배 하면서 올라 보니 거기에는 눈이 부신 玉座가 있고, 그 위에 청년 한 분이 威嚴을 갖추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얼굴을 들고 "저 어른을 보라"라고 하여 그쪽을 우러러보았으나 비춰 오는 광채가 너무도 눈부시어 똑똑히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들어간 감방이 바로 그가 들어가 있는 감방이었다. 그때 선생님의 나이가 27세였고 그도 27세였다. 그는 선생님을 만난 순간부터 마음이 끌려 선생님의 말씀을 좀 들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고 있었는데 3일 만에야 말씀을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 나온 노정을 "로렌스"라는 가명을 빌어 3일 동안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여기에 하나님이 약속한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그 사람이 바로 감방 장인 김 씨였다. 선생님은 그에게 "당신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요?" 하면서 노인이 나타났던 사실을 물어보았다.

 

그 물음에 그는 깜짝 놀라며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것을 상세히 털어놓으며 비로소 자기가 꿈속에서 보았던 "옥좌에 앉아 있던 청년이 바로 선생님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감옥에 있어 보면 자유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의 가치를 재인식할 수 있다.   

 

▣ 1971.12.29(수) 워싱턴, D.C. 통일교회사 3. 

- 흥남감옥에서 12사람을 복귀시킨 의의.

 

052-183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들 잃었던 세 제자를 복귀해야 했습니다.

 

* 예수의 세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들어간 감옥의 죽음 앞에서도 선생님을 따를 수 있는 세 제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 갈 때 선생님은 그들 세 제자들을 만날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원래 남한에서 살던 젊은이였습니다. 전쟁 후 그는 월북해서 북한 인민국 포병장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계급이 중령이었으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남한에 연고가 있어서 남한의 스파이로 고발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에 사형선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집행의 날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감옥에 갇히기 전에 그는 인민군 포 사령부의 사령관 밑에서 일했습니다. 그 사령관의 이름은 무정이었습니다. 그가 체포될 당시에 그 사령관은 만주에 있었고 북한에 없었습니다. 그가 돌아온 후 그의 부하가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사람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훈련시키면 매우 훌륭한 장교가 될 것이며 앞으로의 전쟁에서 크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김일성에게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처형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낮에 환상을 보았는데 백발노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노인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남한에서 오는 한 젊은 선생을 만날 것이며 그러면 그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환상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그 환상에서 보았던 것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로 그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왜 그 말을 믿지 않느냐고 나무라면서 다시 남한에서 온 선생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그 노인에게 얻어맞는 꿈까지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꿈속에서 더 이상 때라지 말라고 빌고는 마침내 그 환상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수 그의 형량이 4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하늘의 인도에 의해서 되어졌습니다. 선생님은 그 감옥에 가기 전에 거기에 어떤 준비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단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1948년 2월 22일에 처음으로 선생님은 평양에 있는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그 후 같은 감방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이 있는 그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선생님은 4월 2일에 공개재판에 회부되었고 그 후 그 감방에 수감되었는데 그것이 4월 10일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 감방의 감방장이었습니다. 

 

* 거기서 선생님이 그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선생님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는 선생님이 그가 환상 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그 감방에 들어가도 그는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다시 환상을 보았습니다. 

 

다시 그 백발노인이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백발노인은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을 보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궁전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는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계단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 계단을 올라갔을 때에는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옥좌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너무 눈부신 광경이었기 때문에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큰 집회가 있었습니다. 즉 큰 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옥좌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끝자리에 앉았고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백발노인이 그에게 큰 절을 올리라고 하였고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 노인은 그에게 머리를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옥좌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은 선생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그는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052-185 영계로부터 그러한 가르침들에 의해서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는데 그 사람들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매번 하늘이 그들을 그르쳤고 그들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환상이나 꿈 등 여러 가지로 역사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감옥에서 2년 8개월, 예수의 공생애에 해당되는 기간을 보냈고 12사람을 복귀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2사람을 복귀시킴으로써 예수가 잃어버렸던 모든 조건들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더라도 선생님은 석방되었을 때 그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기로 되어 있던 모든 것을 완수하였기 때문에 천사장 국가(미국)와 유엔군이 북한을 공격해서 선생님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을 나왔습니다. 4사람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유엔군이 남한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그 조건으로 하늘의 운세는 다시 민주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다시 기독교를 복귀하기 위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1972.5.10(수) 개척자의 길. 중앙수련원.

-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협회 간부, 교회장, 전도대원 조장 모임. 

 

056-045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생일날이었어요. 감옥은 상당히 살풍경이 감도는 그런 곳입니다. 거기에 평양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내 생일인 것을 알고 자기가 먹다 남은 미숫가루 한 바리(주발의 잘못. 놋쇠로 만든 밥그릇)를 무뚝히 아침에 주던 것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아요. 언젠가는 몇 천 배로 갚아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세를 졌으면 반드시 갚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신세를 지우려고 왔지 신세를 지려고 았다고 생각을 안 합니다.   

 

▣ 1965.12.26(일) 인류 역사는 복귀 역사다. 전본부교회.

016-059 예수님이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했고 사랑하는 3제자까지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기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하여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예수님이 잃어버렸던 12제자와 같은 수를 탕감 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에 갔을 때 입을 열지 않았어도 제2이스라엘 권내에 있는 영계의 영인들이 전도를 해서 그 수를 채워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공산당의 삼엄한 감시와 주시를 받는 옥중생활에서도 남이 모르는 심정적인 단결 운동을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해 주셨습니다.

 

거기서 드러내 놓고 전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영계에서 전도해 주었습니다. 수인들의 선조가 나타나서 감방의 몇 사, 몇 호, 몇 번까지 가르쳐 주면서 "너는 그분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영적으로 결합시켜서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수를 탕감 복귀시켜 놓지 않으면 안 될 섭리적인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6.25 동란이 발발하자 유엔군이 북진하는 때에 다시 이남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제2차로 해방의 날을 맞이한 기준을 세운 후 이남으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 후 또 최하의 자리에서부터 이 길을 걸어 올라왔던 것입니다. 수난과 역경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이렇게 출발한 제2차 노정이니만큼 반드시 또 투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2차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을 때에도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섭리의 터전을 계승하여 유대 민족의 중심 가정인 요셉 가정에서부터 뜻을 펴고, 그리하여 모든 상류 계급에까지 뜻을 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반대의 입장에서부터 출발했던 것입니다.   

 

▣ 1974.5.1(수) 승한일 1. 전본부교회.

071-230 예수님이 감옥에 있을 때 12제자를 잃어버린 것을 실체적으로 복귀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입을 다물고 있더라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통하여 잃어버린 수의 기준을 찾는데 영계 전체가 동원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박정화니 김원덕이니 하는 24명의 멤버들이 암암리에 옥중에서 천명에 의해서 결속되어 출발한 거예요. 감옥에서 나올 때 세 사람이 내 뒤를 따라나섰던 것은 사위기대 복귀 원칙에 있어서 모든 원리 원칙에 일치되는 역사적 조건을 하나님이 세워 놓은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감옥에서 나와 평양에 가서 옛날에 잃어버렸던 식구들을 다시 규합해 가지고 출발한 것이 현재의 통일교회입니다. 

 

▣ 1969.6.8(일)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 전본부교회.

023-287 인류의 종의 기준까지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최하의 자리인 감옥에까지 가는 것입니다. 감옥에서부터 문을 열어 나오는 것입니다.

 

023-288 선생님이 흥남 감옥에 가서 공산 치하의 모진 壓制와 虐待를 받게 된 것도 그러한 천명을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총칼 앞에서도 이 獄門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사람을 찾는 데 하늘은 다 찾게 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영계의 영인들이 전도를 해 가지고 선생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공산단들이 감방에 첩보원을 배치해서 정보수집을 하고 있는 판국인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입을 다물고 있지만 자기 선조들이 직접 나타나 가지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12제자 이상을 감옥에서 찾은 것입니다.

 

감옥에서 출역하는 시간이 되면 공산당들의 심한 감시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하러 가기 위해 낭하廊下(예전에, 대문 안에  벌여서 지어 주로 하인이 거처하던 . 건물 안에 다니게  통로.)에 나와 웅성웅성하는데 물론 거기에 간수들이 총을 들고 지켜 서 있지만 그 간수가 서 있는 바닥으로 기어서 오니까 알 게 뭐예요. 간수들은 항상 고개를 들고 다니거든.

 

하늘이 택해 만나게 해 준 사람들은 그렇게 기어와서라도 선생님께 먼저 인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감옥에서는 미숫가루 한 숟가락이 이 사회에서 소 한 마리보다도 더 값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식구들이 미숫가루를 가져다주면 그것을 감방에 있는 동료들에게 한 숟가락씩 맛보라고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미숫가루를 그냥 먹지 못하고 물에 개어서 일하러 갈 때 가지고 나가는 겁니다.

 

아침은 전부 다 금식이거든. 아침에 나올 때 검사하기 때문에 잘못 걸렸다가는 큰 야단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에 차고 자기 공장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공장이 크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만날 수 있습니다. 점 때 종이 울리면 모두 만나서 미숫가루 떡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그 맛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선생님은 거기서 탕감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북에서 사위기대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기 기준을 세워 가지고 다시 남한에 와서 복귀 역사를 하면서 기성교회의 반대와 정권의 반대를 받으며 지금 이만큼 올라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 1971.12.27(월) 통일교회사 1. 워싱턴, D.. C.

052-155 그러나 그 당시에 북한 정부의 정책은 모든 종교를 말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목사들은 그들 교회의 많은 신도들이 선생님에게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세 번째로 투옥되었습니다. 그날이 1948년 2월 22일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선생님은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따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교회를 따랐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고 물으면서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12제자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그들 12제자를 복귀해야 했습니다. 감옥에도 죄수로 변장한 많은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감옥에서 한마디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계가 사람들에게 증거하였고 그래서 그들이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선생님이 배고플 때, 선생님이 알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주먹밥을 가지고 왔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이 꿈에 나타나 주먹밥을 선생님에게 갖다 주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1950년 유엔군이 북한을 공격했고 맨 먼저 북한 흥남 부두에 상륙했습니다. 선생님의 감옥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유엔군에 의해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은 동해안에 있는 흥남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서해안 지방의 평양까지 걸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이전 추종자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사람들을 보냈으나 대부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 1987.5.19 국제승공연합. 북한 해방과 남북통일.

165-022 옥중에서는 영계에서 자기 조상들이 전도한 거예요. 박정화니 그 외에 여러 사람, 많지요? 12사람 이상이 옥중에서 하나된 거예요. 그렇게 감시가 심하고 치열한데 배우에서 조직활동을 할 수 없고 무슨 공작도 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 

 

아침이 되면 트럭이 공장에 나가기 전에 난간에서 점호를 해 가지고 인원수를 파악하기 때문에 나가야 된다구요. 막사들이 1사 2사 3사 해 가지고 전부 따로 있는데 점호를 받기 위해서는 1사 2사 3사에 널려 있는 사람들이 10분 이내에 전부 모여야 되거든요. 그 기간에 모두 선생님을 찾아와 가지고 인사하고 가야 된다구요. 영계에서 그런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 사이에 비밀이 있어도 하루이틀이지 그거 소문이 안 나겠어요? 거 어디를 다니길래 저 녀석들이 바삐 저러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몇 개월 하니까 또 펑크 난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보고하고 그러니까 말이에요.

 

공산당 그놈들이 감옥까지 요원들을 투입해 가지고 말이에요, 정보요원들을 출입시켜서 조사를 하고 자기들의 세포조직을 전부 만들어 놓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누구누구가 요시찰 인물 같으면 누구를 대하는가 전부 보고하는 조직을 딱 만든다는 거예요. 이 공산당 조직 중에서 감옥 조직 이상 철저하게 된 데가 없다구요. 그런 사회에서 전부 말없이 ···. 

 

좋은 것이 비료공장, 암모니아 비료공장에 큰 광장이 있는데 하얀 암모니아가 생산돼 나오면 컨베이어를 통해서 큰 광장 복판에 쌓이는데 그 모습이 딱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처럼 하얀 게 쭉 떨어지는 겁니다. 이게 높이가 한 20미터 돼요.

 

왜 그렇게 높으냐 하면 말예요, 뜨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떨어지면서 식어야 돼요. 그렇게 높은 데서 넓은 컨베이어를 통해 떨어지면 그거 장관이라구요. 폭포수 같아요.

 

그게 땅에 떨어지게 되면 식어야 된다구요. 더우면 엉긴다구요. 그러니까 엉기지 않을 만큼 식혀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높아야 돼요. 그러니 그 큰 산이 피라미드 같아요. 그런 비료 산이 있는데 그걸 퍼담는 겁니다.

 

그런데 오래된 것은 전부 열에 녹아 돌산 같이 돼 버려요. 딱 빙산 같이 돼요. 시퍼렇게. 그런 산을 중심 삼고 작업을 할 때 큰 광장에 800명이 나가고 800명이 나가서 하는데 대개 큰 산을 둘로 갈라놓은 것과 같아요.

 

이래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에 변소는 어떻냐 하면 그런 큰 공장에서는 구덩이에 시멘트를 쭉 해 놓고 흠을 파 가지고 바닥에 폐수가 나가는 구멍을 뚫어 놓은 거예요. 그래 가지고 변소로 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나간다면 말이에요, 작업이 끝날 때까지 변소에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연락하는 거지요.

 

165-024 신령한 집단들이 전부 다 하나되지 못함으로 그런 역사가 벌어지는 거예요. 거기서 그런 역사를 해서 탕감해 가지고 잃어버린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수를 전도한 거예요. 12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12제자가 전부 배반했거든요. 감옥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전부 다 배반한 입장에 떨어졌다 이거예요. 내가 그것을 탕감 복귀하기 위해서 옥중에서 전부 다 전도를 한 겁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 원필이, 지승도 노친네, 옥세현 노친네예요. 이기완씨 같은 이는 이남에 있을 때 옛날부터 아는 시람이고 그 사람을 중심 삼고 이남에 나와 가지고 범일동에서부터 교회 출발한 거 아녜요? 

 

그때 출발할 때는 전부가 반대지요. 전부가 반대한 것을 이북에서부터 남한까지 탕감 조건을 세우면서 세계적 기준까지 탕감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온 거예요.    

 

 1969.2.2(일) 복귀와 축복. 동경교회.

022-195 옥중생활에 있어서 예수님이 좇기고 제자들이 반대했던 입장을 탕감복귀해야 했다. 선생님은 그 감옥생활 중에서도 영계가 협조하여 12명의 제자를 전도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가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