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10.13(화)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 중앙수련원.
- 참아버님의 간증.
035-186 하루에 1300가마니 이상 넣고 운반하는 것이니까 이미 쉴 틈이 없다. 1300가마니라고 하면 기 강당보다도 더 큰 산이 된다. 생각해 봐라. 1300가마니다. 이것을 8시간에 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비료를 자루에 넣고 달아 가지고 가마니를 옮기는 데 5분에서 10분 걸린다. 평균적으로 5분간에 해치운다. 다른 사람은 15분 걸린다.
이렇게 시간이 걸려 가지고는 책임분담을 다할 수 없다. 산을 헐어 가는 것이니까 저울을 이동해 가는데 4,5미터 이상 저울을 움직였다가는 늦어진다. 그래서 괴히 움직이지 않고 넣는 방법을 연구했다.
모두들 이 방법에 따르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혼자서 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모두 역시 양심이 있으니까 선생님은 1300자루 가운데 반 이상을 혼자서 하니까 따라오게 된다. 선생님은 모범 노동자였다. 공산당으로부터 매년 모범 노동상을 받았다.
그때의 체중은 19관 300이었다. 지금은 21관 가깝게 나간다. 선생님은 겉으로 보기는 얼마 아니 될 것 같지만 뼈 무게가 있다. 다른 수인들은 모두 여위어 가는데 선생님은 야위질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의 연구 대상이었다.
1. 훗날 선생님의 후손들과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영화에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선생님은 휴식시간이라는 벨이 울려도 못 들었습니다.
3. 조가 바뀔 때 모든 죄수들은 그 최고의 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오기를 바랐습니다.
▣ 1971.12.27(월) 워싱턴, D.C. 통일교회사2
052-168 선생님은 작업하는 동안에 항상 선생님이 영계에서 경험했던 것을 생각했고 훗날 선생님의 후손들과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영화에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후손들은 선생님의 일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8시부터 일을 시작했으며 10시 10분 휴식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들은 변소에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휴식시간이라는 벨이 울려도 못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그때에야 비로소 휴식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몸은 일하고 있었으나 선생님의 영은 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와 같은 정신으로 일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체중은 거의 유지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거의 체중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수들이 매우 놀랬습니다.
선생님이 일하러 갈 때마다 선생님은 항상 가장 어려운 일을 찾았습니다. 몇 개월 후 선생님은 최고의 노동자로 불리웠습니다.
매일 조원들은 탈출 음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조가 바뀔 때 모든 죄수들은 그 최고의 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오기를 바랐습니다. 선생님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 수용소 소장까지 내 앞에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게 만들어 놓았다.
▣ 1971.1.10(일) 인생의 갈 길. 수원교회.
039-201 공산당의 나라에서 포로 생활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북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에도 선생님은 그 수용소 소장까지 내 앞에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선생님은 매사에 뛰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나에게 모범 노동자 표창을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시시하게 그들 앞에 머리를 숙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그렇다는 겁니다. 내가 무슨 일에 손을 대는 날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5. 몸으로 하는 일 가운데 최고의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한 거라구요.
▣ 1971.8.28(토) 우리 가정의 갈 길. 청평.
- 제2차 교회장 수련회.
047-190 옥살이를 하고 옥에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에 들어가서도 제일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했던 것입니다. 몸으로 하는 일 가운데 최고의 어려운 일을 내가 도맡아 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제일 어려운 일을 일보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빨강이들한테 매년 모범 노동자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자기들이 주었지.
공산세계의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모범 노동자로서 일등이 됐으니 세계 어디에 가도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되는 거라구요.
감옥에서 내가 학질에 걸려 몇 달을 앓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핑계 대 가지고 쉬지 못해 야단이었지만 내 책임량은 죽을 때까지···. 내가 책임량을 못 해 본 적이 없다구요.
그리하여 감옥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소장에게까지 특별대접도 받아 보았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부 다 나를 우러러 보았다구요. 말하지 않고 별다른 나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 거기서는 매일 아침 조편성을 다시 했습니다.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있는 조를 거쳐갔어요. 내가 있는 조를 거쳐간 사람들은 전부 나를 좋아했다구요. 감옥살이 중의 감옥살이를 했어요.
6. 어디 가든지 사탄들한테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 1971.9.5(일) 제물의 완성. 전본부교회.
048-114 나는 이북에 들어갔을 때 공산당 감옥을 찾아 들어간 사람이에요. 이북에 전도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이북의 감옥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왜? 이남 땅에서 왜 거기를 찾아 들어갔느냐? 복귀의 길을 가려면 그 길을 갔다 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옥살이 중에서도 최고의 옥살이를 해야 되겠기 때문에 그래서 공산당한테 갖은 수욕을 다 당하면서도 그런 일을 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데 있어서도 모범 노동자였습니다. 나를 빼놓고는 모범 노동자 표창을 못 했습니다. 어디 가든지 사탄들한테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 영신靈神(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정신.)들, 통일교회 패들은 언제든지 사탄들한테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안 질 자신 있어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남들보다 하나 더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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