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이대 연대 섭리- 연세대학과 이화여대를 중심한 2세 섭리. 이것이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입니다.

true2020 2019. 4. 11. 16:28

▶ 연세대학과 이화여대를 중심한 2세 섭리.


*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 1954.5.1

* 성화학생회 설립; 1954.12.31

* 성화청년회 설립; 1955.2.22

成和:  화동해서 완성해 간다는 의미다,  성화청년은 무엇보다 화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전후 상하 좌우로 화할 수 있는 인격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축복의 실체가 되는 것이 표준이다.  


1985.12.29(일) 본부교회. 

이화대학에 하늘의 봄바람이 휘몰아쳐 가지고 기숙사의 380명이 완전히 순식간에 녹아날 수 있었어요. 학교도 얼마나 다급했으면, 5대 과장들을 전부 다 추방하고, 통일교의 주모자 학생들을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퇴학처분을 했겠어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 바람이 그냥 그대로 삼천리 반도에 불 붙었으면, 한국은 남북통일이 문제가 아니에요. 종교는 이북이 중심이었어요. 남한이 중심이 아니에요. 이북이 중심이에요. 이박사야 뭘 아나요.


 이것을 박마리아를 통해 가지고 다 반대했습니다. 요사스러운 것들. 반대하고 잘 살 줄 알았더니…, 5대 장관이 날 죽으라고 감옥에 넣어, 형무소에서 별의별 짓 다해 가지고, 때려 잡으려다가 죄 지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無罪라고 놓아주고, 그들은 피 흘리는 비참한 역사의 암을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나를 역사의 암을 만드는 불순한 존재인 줄로 알았지, 역사를 소생시킬수 있는 방법을 알아 가지고, 치료의 기원을 찾을 사람인 것을 누구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하사….


* 보라구요. 이대 사건, 연대 사건이 없었던들…, 기독교가 통일교회 말만 들었다면 돌아가게 돼 있었던 거예요. 7년 이내에 한국이 뜻 가운데 서는 날에는 세계 기독교를 하나의 골수로 몰아붙여 가지고 지상천국 이념세계로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기독교가 문선생을 맞아 들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라구요.


이화대학하고, 연세대학, 이것이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그렇지 않아요? 이건 2세예요. 2세의 핵심을 딱 쥐는 거예요. 기독교의 2세들입니다. 1세는 타락세계에 절반이 물려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귀한 것을 취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사탄이 귀한 걸 취했는데, 지금 복귀시대에서는 2세를 앞세우는 거예요.


* 기독교를 중심삼은 2세 집결지가 이화대, 연세대 아니에요? 남자, 여자. 선생님이 대할 것은 결혼하지 않은 신사숙녀입니다. 동남동녀를 대해야 할 선생님이지, 누더기 판들, 똥개 같은 걸 모아 가지고 세계를 구해야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구요.


▣ 1992.8.(월) 3만쌍 성주식 때, 일본어. 잠실올림픽경기장   

하나님은 이승만 정권을 중심삼고 이화여자대학과 연세대학을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 이것은 한국에 있어서 아담 해와와 같은 상대적인 입장으로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사람들을 불러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어야 했던 거예요. 그것이 한국 정부의 사명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결국, 전 인류의 역사는 문선생을 위해서 흘러 왔고, 하나님의 섭리, 탕감복귀섭리도 문선생의 승리권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된 결과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1945년 한국의 해방과 더불어, 7년간 어떻게 되어야 했느냐? 1952년까지 선생님과 기독교 문화권이 완전히 하나되어서, 전 세계를 통일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1952년까지였어요. 그렇지만 그때 전부 다 문선생을 반대하고, 쫓아냈기 때문에 또다시 4천년의 역사를 탕감하기 위해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해방 후 지금까지 연장되어 온 역사입니다.  


1987.12.4(금) 한남동.  

그래 가지고 한국이 어려운 왜정 40년 수난길을 거쳐 해방이 되면서 미국을 중심삼고, 선교사들과 완전히 하나돼야 되었던 것입니다. 이대 연대 사건이 안 났으면 말이에요…, 그들은 2세라구요. 2세. 복귀역사를 선생님이 잘 아는 사람이라구요. 2세부터 꺼꾸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이화여대 사건이 안 났으면 그때에 전부 다 경무대와 연결이 되고, 기독교 전체가 연결되는 거예요. 이놈의 김활란이…,


그때 김영운이가 종교과장이었어요. 중요한 선생들이 다 돌아갔기 때문에, 거기에서 김활란이 반대하게 안 돼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김영운이가 보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 몇몇 사람들이 반대해 가지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화여자대학교 하고 연세대학교만 그때 돌아갔으면, 반대 안 했으면, 한국 기독교가 다 돌아가게 돼 있었어요. 다 지나간 얘기지만 말이에요.


그래 가지고 그때 다섯 교수하고, 학생 14명이 퇴학을 맞고, 역사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그 전통적인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통일교회에 들어온 임자네들, 소위 간부들이 알아야 된다구요. 습관화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