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10.14 흥남 수용소에서 출감.
* 1950.10.24~ 평양에 도착, 40일간 식구를 찾아나섬.
* 1950.12.4- 두 제자와 평양에서 남하.
▣ 1983.4.10(일) 중심가정들의 책임. 본부교회.
126-036 내가 38선을 넘어서면서 하나님한테 기도한 것이 있다구요. "이놈의 공산당 일당을 내 손으로 전부 다 除去하기 전에는 내가 고향에 돌아올 수 없다"고. 그 준비예요.
절대신앙! 내 그때 쇠고랑을 차고 "남아진 식구들은 기다려라. 틀림없이 찾아간다" 이렇게 약속했다구요. 1.4후퇴 때, 전부 후퇴하는 그 난장판에서도 남들은 자기 에미 애비, 자식들 찾아다니고 야단하는데, 나는 약속한 식구들 찾아보기에 급급했다구요.
정의의 길을 가고, 신앙의 길을 가자던 그 약속,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가 찾아갈 테니 기다리라고 한 그 약속대로 하기 위해서.
평양 도성에서 피난을 다 가고 난 후에 내가 출발한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다리 부러져 병신 되어 누워 있는 사람을 내가 자전거에 실어 끌고 왔어요. 인민군, 팔로군 중공군 옆에, 30리 뒤로 떨어져서 맨 나중에 나왔다구요.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있다는 거예요. 나는 약속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아진 식구가 있거든 또 싸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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