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10.3(일)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돼라. 동경교회.
- 주일밤 화동회 때.
015-131 선생님이 일본에 왔을 때는 여러분의 나이와 같이 젊은 때였지만 그런 곳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공장에 가서 노동생활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가와사키의 조선소에 가서 석탄 운반 등의 일을 자주 했다. "하자" 해 가지고 친구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다. 신바람이 나 가지고 그것을 하루에 얼마로 도급을 맡는 것이다.
일할 때는 회사의 노동자들과 대결했다. "당신들은 이것을 몇 시간에 하겠는가?, 우리들은 6시간 안에 이것을 끝내겠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젊은 사람들을 모아 "4시간 만에 하자"고 하여 필사적으로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하고 죽어도 좋다. "저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 하며 심하게 독려하며 시작한다. 4시간에 한다고 했으면 3시간에 전부 해치운다. 그리고 돌아와서 3일 정도는 잠만 잔다. 젊은 때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 1965.10.8(금) 와세다 대학 원리연구회. ノカタ학사.
- 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015-180 休日 같은 때에는 가와사키에 있는 회사 등에 자주 갔어요. 거기에는 硫酸 탱크가 있는데 노동자가 그 유산 탱크 속에 들어가 정화하기 위해 원료를 쭉 내려보낸다. 그리하여 그 장치는 몇 년간 쓰게 되면 못 쓰게 되어 버린다. 硫酸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을 교환하기 위하여 그 탱크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는 15분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싸우면서 일했다.
돈이 없어서 그런 일을 했던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형님께 "전 재산을 팔아서 돈을 부치라"고 전보를 치면 형님은 세계 대표적인 가인이어서 곧 보내 주신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없다.
선생님의 형님은 선생님이 어떤 남자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사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세계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열렬한 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여 전보를 치면 곧 보내 준다.
선생님은 돈이 있으면 전부 친구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일본을 사랑하는 조건을 세우자, 그런 것을 생각했다. 여러 곳을 돌아 다녔다. 커다란 삼목杉木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운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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