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계 충모님
- 음력 1888.10.15. ~1968.1.7.
1. 일을 많이 했습니다. 후다닥 해 버린다.
2. 힘이 셉니다.
▣ 1986.2.16(일) 어제와 오늘. 본부교회.
141-032 우리 어머님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자식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을 시집 장가보내기 위해서는 무명, 무명 알아요?, 을 짜야 된다구요. 무명을 짜기 위해서는 木花를 따 가지고 거기에서 털을 빼 가지고 물레에 넣어 실을 뽑아야 됩니다. 그것을 평안도 말로는 토깽이라고 그래요. 토깽이. 이런 것을 열 새 무명사, 열한 새 무명사, 열두 새 무명사···. 여기 부인들도 그걸 모를 거라. 한 새가 몇 가닥인지. 스무 올을 한 새로 잡는 거예요. 열두 새라고 하면 한 새가 스무 올이니까, 240올이지요? 그게 참 광목 같이 이쁜 거예요.
혼례, 결혼을 하게 될 때 그 집안을 평가하는 데는···. 여기서는 모르지만 평안도에서는 예단이라고 그래요. 그 혼수를 보낼 때 여러 가지 뭐 옷도 보내고, 뭐 전부 보냅니다.
옛날 평안도에서는 무명, 최고의 고급 무명을 누가 몇 필이나 가져가느냐, 그걸 자랑합니다. 거기에 따라 그 집 가문이 어느만큼 자립 자족을 할 수 있는지를 평가했습니다.
먹고 사는 데는 입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러니 층층시하層層侍下(부모, 조부모 등의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처지.) 사대부 집 같은 데 가려면 ···. 그때 무슨 나이론 옷이 있었어요? 옷이라는 것은 전부 다 아낙네들이 목화를 따다가 실을 만들어 가지고 베틀로 짜야 된다구요.
그런 것에 우리 어머니가 챔피언이에요. 어머니가 힘이 세다구요. 내가 어머니를 닮았다구요. 그러니 이렇게 힘이 세요. 하루에 열 새 같으면 이틀이면 스무 장을 짜 버리는 거예요. 보통 여자가 세 장, 네 장 짜는데 스무 장을 짜는 것입니다.
우리 누나가 시집갈 때 정 바쁠 때는 하루에 한 필疋(일정한 길이로 말아 놓은 피륙 (아직 끊지 아니한 베, 무명, 비단 따위의 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끊었어요. 바쁘니까 언제 기다릴 새 있어요? 후다닥 해 버리는 거예요. 내가 그런 성격을 타고나서 후다닥 잘합니다. 그렇게 무명을 토깽이 한 것을 모아 몇 필씩 준비해 가지고···. 이 일이 참 신기한 거예요.
3. 성격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회초리로 쳐서 항복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치는 성격입니다.
▣ 1972.10.14(토) 통일의 용사.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이북 출감일.
- 흥남감옥 출옥 야외예배.
063-239 어머니 성격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회초리로 쳐서 항복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치는 성격입니다. 나도 그 어머니를 닮아서 고집이 대단하다구요. 한번 시작하면 항복하기 전에는 후퇴를 할 줄 모르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 나는 욕먹고 못 있는 사람입니다. 동네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억울하게 매맞으면 그 어머니 아버지까지 항복시키지 않고는 밤잠을 못 잔 사나이라구요. 알겠어요?
063-241 그렇게 지독한 사람인데 기성교회한테 수십 년 동안 반대를 받아 화가 꿀덕꿀덕 치밀어 올라···. 武士가 됐으면 한 칼에 전부 다 창자를 잘라 독수리 밥을 만들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원수들인데도 불구하고, 참고 있는 거예요. 그 분함을 하늘은 압니다.
4.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17 그 형님과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문중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장래에 면이면 면에서, 도면 도에서 "잘 되면 무엇이 되고 못 되면 무엇이 된다."는 등 하여튼 말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은 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님은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이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어머니께 손수건 한 장도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지금도 농촌에 가게 되면 베 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여러분 베 짜는 것 알지요? 우리 8남매 중에는 누이가 여섯입니다. 어머니는 여섯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하셨습니다. 내가 어디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베를 짜고 계실 때가 많았는데 그때 어머니와 함께 얘기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보통 마흔 자, 한 필을 짜는데 5일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여덟 자 내지 아홉 자 정도를 짰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 베의 표면은 참 고왔습니다. 하루 종일 베를 짜고 나면 얼마나 눈이 시리고 힘이 드는지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그런 일을 우리 어머니는 수십 년씩이나 하셨습니다.
옛날 농촌에서는 아들딸을 전부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려면 입고 갈 옷은 직접 목화를 재배하여 옷감을 만들어 지어 입고 가야 했기 때문에 손이 너무 많이 갑니다.
022-119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에 대해서 내가 자식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는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어느 땐가 내가 이북에 가게 될 때에는 이미 만나 뵙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기도 한번 안 해 봤습니다.
022-119 내가 요구하면 집이라도 팔아서 돈을 보내 줄 수 있는 그러한 형님인데도 불구하고 그 형님에 대해서 내가 통일교회 누구라는 이야기나 무슨 사상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에게도 얘기 못 했습니다.
단 한 가지 그분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그것은 알았습니다. 너무도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과 불의에 대해서는 참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자라면서 동네에서 누군가가 자기가 잘 산다고 해서 못 사는 사람들을 천대하는 것을 보면 그가 누구이든 간에 못 참았습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도 나를 무서워했습니다.
5.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19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엿을 사다 놓든지 떡을 하시든지 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내가 이것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갖다 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신 부모님께도, 형에게도 선생님은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6.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는 말을 못 했습니다.
▣ 1987.5.1 (금). 본부교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 협회 창립 33주년.
163-157 나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는 내가 감옥에 들어가니까 "제발 내 말 들으면 네가 잘살고 잘 먹고 그럴 텐데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잘못 낳아 준 것도 아니다 이거예요. "머리가 나쁘니, 뭐 건강이 부족하니, 얼굴이 못생겼니? 남자로서 그만하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텐데, 이거 잘났는데 잘난 녀석이 왜 이 놀음을 해? 내 말만 들으면 더 잘날 수 있는데"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그 어머니 말씀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응? 어머니 말씀 들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구요. 효자 된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말입니다. 어머니가 책망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어머니 이름이 김경계예요. "김경계라는 여인의 아들이 여기 있지만 당신의 아들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피와 살과 내 세포는 미래의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를 찬양할 수 있는 세포로 등장할 것이고 또 하나님이 나를 품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왕자의 권한을 차지하게 될 것인데 왜 요사스럽게 그러느냐 이겁니다. 들이 까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영감도 아니고 자기 시아버지도 아니고 나예요. 나.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는 말을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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