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 순회 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17 원래는 선생님이 먼저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선포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직까지 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족에 대한···.
나에게는 사랑하는 부모와 8명의 형제자매가 있었고 사돈의 팔촌까지 합하면 상당히 큰 문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더더욱이나 우리 형님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계와 통했습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것도 알았고 다년간 고생한 병도 약 한번 안 쓰고 영적으로 치료받은 분입니다.
그 형님은 나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나에 대해서 깊이는 알지 못했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 중에서 우리 동생이 제일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내 말을 듣고 안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그 형님은 선생님의 가슴에 품고 있는 깊은 무엇을 자기에게 얘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셨습니다. 그 형님과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 1999.3.2(화) 제주국제연수원.
- 전국 지도자 특별수련회.
300-134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하라는 것은 다 하게 되어 있고 형님도 내 말에 절대복종했습니다. 그 양반은 영계를 통했어요. 몸에 우환이 있었지만 우환을 고치기 위해 약을 안 먹었어요. 기도로 고치겠다고 열성으로 기도했습니다. 열성 분자예요.
그래, 해방을 다 알았어요. 동생에 대해서도 한 가지 아는 것은 세상의 형제들 가운데 형님이 천하에 꽉 찼고 동생도 많았지만 동생 중에 일등 가는 동생이라는 것, 그것만 알고 있었어요. 영계에서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몰랐어요. 물어봐도 내가 얘기를 안 해 줬습니다.
원리 말씀을 전부 다 그 형님에게 했으면 얼마나 춤을 췄겠어요? 성경에 미지의 사실이 많은, 한 장 한 장 전부 다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돼요. 복을 자기 집에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에. 아시겠어요? 나라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 1972.10.14(토) 통일의 용사.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이북 출감일.
- 흥남 감옥 출옥 야외예배.
063-239 우리 형님만 하더라도 훌륭한 형님입니다. 그는 이미 해방될 날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영계를 통해서···. 형님은 지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하늘을 믿는 사람에게 지병이 찾아올 수 없다" 이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 병을 고친 사람입니다. 영계를 다 통한 그런 형님이에요. 해방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다 알았다는 거예요. 또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았어요.
동생이 무슨 사명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세계에서 제일가는 동생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고 산 형입니다. 그래서 내가 "돈 보내소" 하고 전보만 하게 되면 집을 팔아서라도 보냅니다. 지금으로 말하여 몇 만 원,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보내 달라고 하면 보내게 되어 있었어요. 내가 돈이 쓰고 싶으면 언제나 쓰게 돼 있었어요.
내가 전보 한 장만 하면 형님 어머니 아버지가 내 말 듣게 돼 있었습니다. 벌써 15살 이내에 전부 다 내 손아귀에 집어넣고 어머니 아버지를 다 내가 조종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구요.
▣ 1965.10.3(일)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돼라. 동경교회.
- 주일 밤 화동회.
015-146 또 선생님의 형은 영적으로 통했었다. "장래 우리 집의 남자는 세계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까 선생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한다. 그러므로 가인으로서의 100% 기준이 거였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해도 그 형만은 100% 믿었다.
▣ 1967.5.30 (화) 정성을 들여 진리의 실체를 세우자. 전본부교회.
- 변함옥, 박기옥씩 간증 후 말씀.
018-134 선생님의 형님은 가인 중의 가인이었다. 동생이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선생님이 형님에게 진리의 말씀이나 다른 알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35 선생님의 형님은 병이 있었는데 신앙의 힘으로 고치고 이 나라가 해방될 것까지도 영계를 통해서 미리 알았던 사람입니다. 동생이 가는 길에 있어서 동생에게 무슨 사명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앞으로 동생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져야 될 것을 영계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누구보다도 큰 소망을 품고 나오던 형님이었습니다.
내가 그런 형님에게 동생으로서 많은 수고를 시켰어요. 복귀 역사에서 가인 복귀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의미에서는 그 형님이 대표적인 가인의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가정은 환난 노정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형님은 동생을 위해 수고를 하는 데는 불평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형님을 대해 내가 언제 조용히 만나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정리를 나누던 것과 같은 그런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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