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이요한 목사- 용문산 애향숙의 나운몽 장로

true2020 2019. 1. 25. 16:32

▣ 천애로 인도받은 삶 178 / 이요한 

1953년 3월 25일 대구시 대신동 교회에서 강현실 전도사, 김재근 권사, 옥세현 씨, 지승도 씨, 이석비 씨와 함께 김천시 어모면 능치리 용문산으로 향하셨다.


당시 나운몽 장로(가인)는 박태선 장로(아벨)와 함께 신령역사를 주도하는 인물이었다.


참아버님은 광복 이후 기독교가 하나님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자 장로들을 중심으로 영적 쇄신을 위해 역사를 일으킨 것으로 보았다.


참아버님께서는 나운몽 장로와 박태선 장로는 가인 아벨 입장에서 하나가 되어 참아버님을 모셔야 하며 북쪽의 해와형 신령역사와 남쪽의 천사장형 신령역사의 기반을 연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운몽 장로는 1914년 1월 7일 평안북도 박천 맹중리에서 출생한 기독교 지도자다. 2009년 11월 26일 타계한 그는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불교에 귀의해 수도에 몰두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1947년 4월 5일 용문산에서 애향숙을 설립했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수도생활에 들어가 입신, 방언 예언 신유 진동 등의 신비적 체험을 한 후 전국 각지에서 순회 부흥집회를 했다. 

 

▶ 목사 시대(이성봉 목사, 박재봉 목사) -> 장로 시대(박태선 장로, 나운몽 장로) -> 성도 시대  1963.12.26

 

당시 나운몽 장로의 신령역사는 실로 대단했다. 용문산 일대에 수만 명이 모일 정도로 威勢가 엄청났다.


1954년 3월 25일 8명의 식구를 帶同하시고 용문산 나운몽 장로의 기도원으로 가신 것이다.


일단 참아버님께서는 아랫마을에 계시고 나는 집회가 열리는 윗마을로 갔다. 나는 그곳에서 직접 나 장로를 만났다. 


나는 나 장로에게 "메시아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땅에 재림할 것이니 나운몽 장로를 중심으로 영적 쇄신 운동을 일으켜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님이 육신을 쓰고 오실 터이니 신도들을 모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여기에 온 뜻을 전했지만 나 장로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 장로는 집회 첫날부터 "여기 지금 심령 도둑놈이 왔으니 여러분 심령을 잘 간수해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심령을 다 도둑맞고 만다" 하는 식으로 터무니 없는 설교를 했다. 


나는 그곳에 천막을 쳐 놓고 그들과 아침식사를 마친 후 신앙 토론을 했다. 여러 명이 내 말을 듣고 예배에 나가지 않은 채 말씀에 취해 있었다.


그 무렵 청년들이 들이닥쳐 나를 내쫓으려 하였다. 그렇게 쫓겨난 나는 멀리서 나 장로의 집회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모두 참아버님께서는 지켜보고 계셨다.

 

그렇게 내가 다녀간 뒤 나 장로의 사명은 영계에서 거둬 갔다.

 

 

▣ 1987.12.4(금) 국제과학통일회의와 학계의 기반. 한남동.

- 곽정환 세계선교본부장과 이상헌 통일사상연구원장의 보고 말씀 후.


170-307 나운몽이니 박 장로니 전부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새로운 운동이 벌어진 것이 말이에요.


그들 두 사람이 협력해 가지고 선생님을 모셔야 되는 거예요. 원리가 그렇습니다. 가인 아벨, 남쪽 북쪽이 연결돼야 된다구요.


남쪽 북쪽 모두 다 반대예요. 북쪽은 해와형이고 남쪽은 천사장형입니다. 그래서 박동기는 남쪽이고 북쪽은 정수원 할머니와 허호빈씨예요. 


그래서 북쪽이 복받을 걸 김일성, 사탄이 나와서 지배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남쪽도 누가 지배했느냐 하면 기독교 문화권이 지배했습니다. 경상도가 기독교문화권이 아니에요?


전통적 기독교 문화권은 이북에 전부 다 놔 두고 나왔다구요. 대구가 뭐 전통이 아니라구요. 평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