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잊을 수 없는 사연.- 1951.1.18. 경북 영천 다리 밑에서.

true2020 2018. 8. 23. 13:56

▣ 1987.11.1(일) 6000가정 총회. 용인.

170-016 밤이나 낮이나 선생님이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따라다니며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패들이 나와 보니까 없어졌더라! 다 없어졌어요. 선생님이 잊을 수 없는 식구들까지도 전부 다···. 

 

내가 간곡한 편지를 써 가지고 사람을 통해 전달했었는데, 그 사람한테 가 보니, 그 사람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의 아들 같으면 왜 감옥에 갔겠는가. 선생님의 가르침은 전부 다 사된 것이다" 그래 가지고 편지고 뭣이고 받아 보지도 않고 "이단 사람 나왔구만. 또 이단 일을 하려고 찾아왔느냐"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편지를 가지고 나오다가 …. 영천. 영천이 어디예요? 경상도 영천이지요? 

 

* 영천 가게 되면 철다리가 있습니다. 도로가 굴다리로 연결되어 지나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 곳이 있나요? 난 그렇게 생각이 나는데, 그때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기념이 되겠기에 그 편지를 가지고 내려가다가 다시 한번 읽어 보고는 그 편지를 찢어서 날려 버렸습니다. 그때가 1월 18일이었습니다. 

    

그런 잊을 수 없는 사연들···. 그렇게 열성분자였던 사람도 믿을 수 없는 배신자로 떠나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그 사람의 영이 와서 인사를 하더니 울면서 "나는 떠나가게 되었다"고 그저 사연을 말해도 "그럴 수 있나?"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때 떠났더라구요. 그러한 사연들이 많아요. 맨 나중의 한 사람까지도 다 찾아가 만나 봤습니다. 

 

▣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42 내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도 어머니를 못 만나 봤습니다. 부모를 못 만나 봤어요. 평양에서 고향까지는 280리예요.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 왜 못 갔느냐? 선생님과 신앙으로 인연 되었던 사람들을 다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다 찾아보지 않으면 안 돼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무덤까지 찾아가서 "너희들은 배반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나는 배반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헤어질 때 약속을 했으면, 나는 끝까지 그 약속을 세워 놓고 지키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정성껏 따르던 그런 사람들을 중심 삼고···.

 

여러분!, 내가 미국에 가면서 여러분에게 1월 18일이 무슨 날인가를 기도해서 알아 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그거 생각나요?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이거예요. 그날이 선생님에게는 가장 슬펐던 날입니다. 돈이 없어 슬펐던 날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 슬펐던 날도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축복의 기도를 해 주고, 그들과 약속을 한 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저버렸을지라도,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다는 사실을 중심 삼고, 만장의 편지를 써서 세 번씩이나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편지를 갖다 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되돌려 보낸 것입니다. 선생님은 되돌려 받은 그 편지를 가지고 이북에서 나왔습니다. 경북 영천에 들어가 보면,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에서 1월 18일에 그 편지를 읽으면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남한 땅에 내려와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길을 다시 가야 되었습니다. 그 영천이라는 말이 아주 재미있는 말이에요. 그런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