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휼적인 신앙인. 1969.10.18(토) 대구교회. .

true2020 2017. 10. 5. 10:21

▣ 1969.10.18(토) 체휼적인 신앙인. 대구교회. .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먼저 올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으로서 올바른 길을 가려면 그 가정과 사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되고 그 국민 앞에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가야 할 정도입니다.


* 과거 현제 미래에까지 즉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영인들이나 현세에 살고 있는 인류나 그리고 앞으로의 수많은 후손들 앞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 사람이 한번 말했으면 한번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 삼천리 반도가 잠자고 있으니 나를 따라오라고 해야 합니다. 삼천만 민중이 죽든 살든 따라올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이 길을 안 가면 안 되게끔, 판결 날 때까지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다 말고 되돌아가는 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6천년의 열매가 되기를 기도했으면 6천년 열매로서의 공인을 받아야 하고 수세기의 중심이 되기를 기도했다면 그 중심으로서의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후손들 앞에 선의 조상으로 본이 될 수 있습니다.


*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몽둥이를 든 것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때렸다가는 전부 다 깨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사랑하는 자리에서 때리면 괜찮습니다.


즉 사랑을 열만큼 하고 다섯만큼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잘생겼느냐 못생겼느냐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잘생겼든 못생겼든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할 수 없이 무지몽매하고 번번히 일러 주어도 잘하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의 속이 타겠어요 안 타겠어요? 속이 탑니다. 그때는 할 수 없이 채찍으로 칠 것입니다. 망하라고 칩니까? 망하라고 친다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 때리더라도 사랑하는 그 기준 이하에서 때려야 합니다. 때리고 나서도 기분 좋아하는 부모를 봤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보다 더 위대하시고 사랑이 더 많으신 분인데 인류를 때리고 나서 기분 좋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자식이 어려운 자리에서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을 보는 하나님은 그 자식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은 그런 심정을 알고서 맞고 나서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인간 세상을 찾아나오는 정적인 인연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하나님을 숭상하고 좋아하며 모이는 곳이 어디냐? 교회 즉 종교라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 신념은 어떤 신념이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다"는 신념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가 사는 곳에 나도 살고 그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그 아버지가 슬퍼하면 나도 슬퍼해야 하고 그 아버지가 죽을 자리에 있으면 나도 그런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그림자 같이 따라다녀야 합니다.


* 선지선열들이나 효자 효녀들에게 참아버지와 참아들딸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세계 30억 인류 어느 누구를 붙들고 물어보아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육시킨다면 교육 중에서 최고의 교육이 될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와 참자식의 인연을 가르쳐 주는 교육자는 천상천하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스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적인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인류가 가는 길 앞에 반드시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중심존재가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입니다.


* 체휼적인 신앙,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 가지고도 안 되며 노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정성을 들여 기도해야 됩니다.


물 한 컵을 가지고 천년 역사를 엮어 가더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여 불안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 조금도 침범하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만고의 역사가 동원되어 협조한다는 信念을 가져야 합니다. 


* 탕감이라는 말이 복받았다는 말입니까 손해봤다는 말입니까? 손해봤다는 말입니다. 


* 복귀라는 말이 되돌아간다는 말이지요? 나쁘니까 되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 손해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곧 선한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처음에 손해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그 손해보는 것이 일생 동안 끝나지 않게 될 때는 몇대라도 내려가다가 그것이 다 체워지는 날에야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만사는 반드시 끝이 있는 법입니다. 그 量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그 전에 量을 채워 넘어가려고 하면 아무리 채우려 해도 그것은 채워지지 않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륜과 순리의 법도를 따라 量을 채우고 끝까지 남아지기 위해 지성을 들여야 합니다. 


* 호미자루를 쥐고 도라지를 캐어 먹으면서 산골의 火田民으로 일생을 산다 하더라도 그 호미 끝으로 천지를 낚는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옛날에 선생님이 사랑하던 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를 죽여야 할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 개은 나를 보더니 살려 달라는 몸짓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개를 정말 사랑했지만 앞으로 사랑하는 아들딸을 죽음으로 길로 몰아내야 할 시련의 때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 개를 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시련의 때가 우리 통일교회 앞에 닥쳐 올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