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4.18(일)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부활절 기념 서울지구 합동 야외 예배. 시련과 성장. 예배 후 식목행사.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데에 있어서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면서 50평생 이렇게 고생만 시키느냐"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동정해야 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가는 마당에서도 영어의 신세, 철창에 갇히는 신세의 자리에서도 그랬습니다. 뜻길을 가기 위한 그 첫걸음에서부터 "이렇게 생명이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 오늘날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을 지녀 온 역사적 탕감기준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가 침범하려고 해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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