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망의 분기점 1971.3.21 전본부교회
* 뜻을 중심 삼고 볼 때는, 뜻과 더불어 가는 사람은 배후에서 절대자가 뒷받침되어 시대적인 중심으로 완연히 서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결코 망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을 것입니다.
* 절대자의 소원은 세계에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반대되는 모든 여건을 제거하여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 뜻과 더불어 가는 사람의 과정이 아무리 험하고 비참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過程的인 現狀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것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인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뜻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자기에게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刺戟이 되고 장차 소원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基盤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슬픔의 고비가 있다 해서 그것이 미래의 뜻을 방지시키고 뜻이 가는 길을 무너뜨리는 동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여기에서 올라가는 그때를 기뻐만 해서도 안 될 것이요, 내려가는 때에는 서러워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려가는 때가 있다면 거기서 내일의 희망을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안식기간으로 이것을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밤이 있으면 낮이 있는 것입니다. 밤은 낮을 빛나게 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이요, 휴식의 기간이요, 재차 연마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 신앙인들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망한다는 관념 혹은 뜻길을 떠난다는 그런 생각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대하게 될 때는 최고의 때가 일을 것입니다.
* 그 뜻을 중심 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생활에 屈曲이 있다고 하여 내려갈 때는 그 뜻을 저버리고 내려가고 올라갈 때는 다시 그 뜻을 품고 나가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올라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 하더라도 내려갈 때에 뜻을 품고 나간 동기가 없으면 그때를 자기의 때로 맞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망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망하느냐? 망하는 사람은 선이면 선, 흥할 수 있는 길이면 그 길을 중심 삼고 가다가 시련과 고통에 부딪치게 될 때 그것을 완전히 抛棄포기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 선한 사람은 언제나 落望하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한 고비를 돌아오면 반드시 재봉춘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맞이하면 하늘이 다시 선을 이끌어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슬프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가 있다 하더라도 하늘이 가늘 길, 뜻이 가는 길, 선이 가는 길은 반드시 재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와서 나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환경으로 내려가더라도 自暴自棄하는 자리에는 서지 말아야 합니다. 자포자기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은 영원한 것입니다. 선은 기필코 발전하는데 일방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한 고개를 넘으면 평지를 만나는 것이고, 평지를 지나면 또 새로운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망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선을 중심 삼고 나가다가 자포자기하는 자리입니다. 선의 길을 완전히 끊고 돌아서는 자리입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가 행해 온 것은 선이요, 지금까지 살아 나온 것도 참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자신하고 가는 자리입니다. 현재 부정하는 환경을 만나더라도 과거의 역사적인 실증을 품고 "내가 한 그것만은 틀림없이 참이다" 하는 信念을 중심 삼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나갈 때는 그 스스로 느끼지 못한 기쁨이라든가 스스로 느끼지 못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우리의 일생 행로가 그런 굴곡을 따라서 발전하고 전진하여 나가는데 그때가 오기 전에 임의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없겠는가 할 때 이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심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 내심의 인연을 중심 삼았던 그것을 버리지 않고 克服하는 因緣을 갖고 나가면 그때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게 될 때에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슨 방법일 것이냐? 동역자나 동지가 있어야 하며 스승으로부터 지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기보다도 신앙면에 있어서 높은 사람, 자기보다도 위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라가는 사람으로 있겠다" 해야 합니다. 그가 우로 가라 하면 우로 가고 좌로 가라 하면 좌로 가는 것입니다. 또 올라가라 하면 올라가고, 내려가라 하면 내려가는 것입니다.
* 어려운 길을 피해 가기 위해서 이처럼 지도자를 앞세우고 길을 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다음으로 망하지 않고 피해 갈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열 만한 어려움에 부딪치게 될 때에 그 열 만한 어려움을 중심 삼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만큼의 어려움을 걱정하지 말고 1백만큼의 어려움을 찾아서 돌진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10만큼의 시련을 감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 100만큼의 시련도 받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문제를 점핑해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이 심령 생활에 있어서 고갈을 느끼게 될 때 이를 수습하는 방법은 지도자를 찾아가서 허심탄회하게 자기 자신의 모든 문제를 제시하고 그의 대신자로 따라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다음의 한 방법은 자기가 가고 있는 자리 이상의 비참한 자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 그러면 자기가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준이 어떠한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여기에서 뜻이 가는 길이 이런지저런지 희미해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緩衝地帶와 같은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 그 자체, 그 모양, 그 꼴 가지고는 그곳을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는 헤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헤어나기 위해서는 첫째로 뜻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옛날에 뜻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졌으면 그 마음을 다시 연장해 가지고 시련이 아무리 극하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마음을 절대 주기 말고 누룩이 될 수 있는 씨를 남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자기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 혹은 스승을 찾아가서 直告하라는 것입니다. 가리지 말고 솔직이 얘기하라는 것입니다.
의논하는 데 있어서 내게 유리한 것은 말하고 내게 유리하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털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 대신이 되어 주소. 내 것을 맡아 이끌어 주시오" 이렇게 솔직이 직고하고 그가 지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대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래도 안 되면 단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현재 있는 十字架 以上의 길을 自進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 타격 받은 심정을 후방에 돌아와서 수습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수습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뜻을 위하여 일선에 나갔다가 하늘의 허락 없이 후퇴했다는 마음은 언제나 자기의 환경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나갔다가 자기가 심정에 타격을 받고 돌아왔다면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다시 "전도 나가야 되겠다" 하는 그 마음을 유지해서 다시 ㄱ야 합니다.
*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두움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두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벽기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새벽기도를 못 나와도 좋으니 "기도하는 그 시간에 신앙의 동지를 위하여 3家庭의 門前에서 기도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1분이라도 좋습니다. 이것이 새벽기도를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것이 복 받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없으면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흑암이 오는데 희생봉사는 그 흑암을 방비하기 위한 자연적인 橋頭堡요, 하나의 要塞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도리를 가르쳐 준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왜 흑암을 막는 길이 되느냐? 사탄의 본질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악의 본질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악의 본질은 어떤 것이냐? 자기를 위하라는 것입니다. 10 사람이 있다면 10사람 전부를 자기의 발아래 몰아넣고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심령이 어두울 때가 있더라도 자기를 중심 삼고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내 어둠을 제거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남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 결국 남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 통일교회 문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식구들이 없어 쓸쓸할 때는 산에도 간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이 컬컬하면 옛날에 뜻을 위하여 걸어 나오던 때에 받았던 핍박과 오늘의 핍박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옛날의 고충과 오늘의 고충을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오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내가 기력이 뼈져 있나? 그것은 자기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때문에 기력이 빠져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자기를 수정해야 됩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맞이해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에서 가려갈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黑巖이 오게 될 때는 반드시 뜻에 대한 마음의 씨 즉 누룩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뜻을 위해 정성 들였던 그 마음을 가지고 한번 때가 되면 틀림없이 뿌려서 멋지게 거두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는 마음, 그것을 위해서 흑암을 뚫고 나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뜻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흑암이 오게 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 혼자는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찾아 의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동반자나 스승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자녀들에게 교훈을 하라는 것입니다.
* 그다음에는 내가 열만큼의 핍박을 받아 흑암이 왔으면 백만큼의 핍박이 있는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모험을 단행하라는 것입니다. 열 만한 수난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서 떠났다면 백 만한 수난의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나를 다시 붙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 그다음에 여러분에게 흑암이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간단합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10 사람을 위하고 100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 축복을 받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갔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가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마음을 중심 삼고 꾸준히 정성 들이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생을 살다 맨손으로 영계에 간다 하더라도 그에게 도움받은 10 사람이 천국에 갔을 때는 그를 지옥 밑창에 있게 놔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10사람이 합동하여 하나님 앞에 "그는 우리의 생명의 중심이요, 생명의 은인이요, 부모와 같은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보다 더 영광된 자리에 모셔야 되겠습니다" 하고, 축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중간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알아 주지 않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은 복 받는 것입니다. 망하는 자리에서도 복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자기만을 중심 삼고 나가게 될 때는 고독이 찾아올 것이요, 멸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싸우더라도 남을 위해서 희생 봉사하면 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생봉사하면 반드시 흥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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