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7.4(일) 전본부교회. 솔직한 신앙자
▶ 기도 중
045-230 저희들이 아니면 당신이 나라를 찾을 수 없고 저희들이 아니면 당신이 소원하시던 세계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과연 당신은 슬픔의 하나님이 아닐 수 없음을 느낄 때가 많사옵니다.
* 당신을 위하여 맹세하고 나선 사람들을 많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당신을 저버리는 사람도 많았던 것을 저희들이 보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부디 맹세하기 전에 당신을 저버리지 않는 실체가 되어야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맹세하기는 쉽지만 그 맹세한 대로 실천하기는 심히도 어렵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활 환경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몸들이옵니다.
* 악은 악대로 세우고 선은 선대로 분립시켜 세워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 본성의 기준 앞에 반대되는 일체의 모든 요소를 제거시키시어 당신만이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선만을 동기로 삼아 저희를 刺戟시키고 결과의 인연까지 이끌어 가실 수 있는 아버지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부복하였사옵니다.
* 당신이 멀리 계시는 것같은 자리에서 저희들이 몸부림치고, 슬픔의 고통을 느낄 때에 당신은 언제나 저희들과 같이 계신다는 것을 오히려 발견할 때가 많은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리가 오혀려 먼 자리인 줄 아옵니다.
* 아버지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精誠에 精誠을 가할 수 있는 저희들의 생활이 되고 忠誠과 孝誠을 다짐할 수 있는 나날이 되게끔 존귀한 가치로 아버지와 함께 議論하고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릴 수 있는 생활을 하지 않고는 참다운 효성의 도리인 아들의 책임과 딸의 책임을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시어 하루하루의 생활을 성별하여 아버지 앞에 온전히 바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 7월 4일
- 1955.7.4 병역법 위반 등의 이유로 서울 중부경찰서에 구속.
045-233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7월 4일입니다. 또 이 달 들어서 처음으로 맞는 인식일이고 반 년을 중심 삼고 볼 때 첫출발을 하는 안식일도 되는 것입니다.
또 이날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 지금부터 16년 전에 있었던 선생님과 식구들이 잊을 수 없는, 이 민족과 기성교단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원망을 가질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간 우리 교회에 있어서 여러 가지 사정도 있었지만 그 사정들 가운데서 우리 통일교회 식구로서는 그 날이 잊을 수 없는 슬픔의 한 날이 되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 과거의 역사가 참이었다면 현재의 입장도 참이어야 하고 미래도 참이어야 된다.
* 여러분이 과거를 지냈기 때문에 그 과거는 여러분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역사적 사연을 남겼고 지금고 그것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연과 현재의 여러분과는 분립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연결된 현재의 입장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직시하면서 과거의 나는 이렇게 걸어왔으니 오늘의 나는 어떻게 걸어가야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걸어온 과거의 역사가 참다운 역사였다면 내가 걸어가야 할, 역사적 사실을 남겨야 할 현재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참되어야 될 것입니다.
이 참된 것이 현재뿐만이 아니라 10년 20년 30년 생애의 종말까지 참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과거가 참이었으면 현재도 참이어야 되고 미래도 참이어야 됩니다.
▶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때에까지 남겨 놓게 될 그 역사적인 사실.
- "내가 이 땅에 왔다가 남기고 가는 것이 슬픈 것이냐 기쁜 것이냐"
045-234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때에까지 남겨 놓게 될 그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앞에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남겨 놓고 가느냐?
종족이면 종족 앞에 혹은 후손이면 후손 앞에 어떠한 가치의 내용을 남겨 놓고 가느냐? 이것을 타진해 보지 않더라도 역사에 남기고 갈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좋은 역사를 남겼느냐 나쁜 역사를 남겼느냐, 선한 역사를 남기고 갔느냐 악한 역사를 남기고 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날이 없는 최후의 운명의 순간을 앞에 놓고 자기의 과거 역사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미래가 없는 현재 입장에서 자기를 청산지어야 할 절박한 처지에서 과거를 회상하게 될 때 자기가 민족 앞에 부끄러움을 가졌다면 그 입장이 어떠하겠습니까?
자기가 일생을 마치는 마당에서 자기의 부모면 부모 친척이면 친척 처자면 처자 후손이면 후손들 앞에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면 그 입장이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어느 순간에 끝나게 될 때에 "내가 이 땅에 왔다가 남기고 가는 것이 슬픈 것이냐 기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반드시 귀결짓고 가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늙어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젊어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길고 짧은 역사를 중심 삼고 "슬픈 생애를 남기고 가느냐 기쁜 생애를 남기고 가느냐"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와 더불어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저울질해 나가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가려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려내는 순간이 언제냐 하면 현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가려내는 순간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닌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현실, 오늘 하루가 선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한 시간이 과거의 역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가 슬픈 역사로 남아지게 되면 현재의 입장도 슬픔에 휩싸일 것입니다.
또 현재의 입장이 슬픔의 침범을 당하게 돨 때는 미래도 슬픔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슬픈 역사냐 기쁜 역사냐 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결정되어져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심각한 문제인데 그것을 결정짓는 내용은 오늘이라는 현실, 이 찰나의 순간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면 우주 역사면 역사에는 어떠한 운명길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을 향해 나가는 방향이 있을 것입니다. 또 그 방향에 수평선과 같은 하나의 선이 있을 것입니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지금 갈고 있는 생활이 하나님의 창조이상, 하나님의 창조원칙에 일치될 수 있느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어떠한 선이 있다면 그 선의 방향을 중심 삼고 몇 도의 자리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046-236 그러면 가만히 있는데 선악이 결정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선한 일이 결정되고 악한 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움직이는 가운데 선한 일과 악한 일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틑림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밥만 먹고 살고, 자신과 관계없는 자리에서 그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밥을 먹고 살고 있는 생활무대를 중심 삼고 자신과 관계된 인연권내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 마음 씀씀이에 따라서 선과 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 선과 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은 우리의 말과 행동과 느낌이다.
그러면 선과 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이 무었이냐?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과 느낌입니다.
마음을 중심 삼고 감정 문제에 들어가 내가 기분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혹은 과거에 기분에 좋았다든가 나빴다든가 하는 것을 가려보게 되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言行心事라는 要件(필요한 조건.)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말을 해 놓고 행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선이라 할 수 있느냐 할 때 행하지 않은 만큼 악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해 놓고 행하게 되면 반드시 행한 만큼 선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 따라서 선한 역사를 남겨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을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이라 할 때 그 필연적인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요인은 몇 가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과 행동과 마음쓰는 것과 느낌입니다.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045-238 이러한 것을 결정지을 수 있고 이러한 생활의 전모를 좌우시킬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때가 어느 때냐 하면 바로 오늘이요 현실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현실은 여러분을 사방에다 줄로 걸어 놓고 잡아당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 사방의 줄을 똑같이 잡아당기면 언제든지 중앙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커지면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기울어졌을 때 자기 혼자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자기 혼자 바로잡기는 힘든 것입니다. 중심이 기울어 졌을 때, 중심을 자기 혼자 바로잡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길이 있든가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 자기를 부축해 주는 입장에 서게 되면 바로잡을 수 있으되 그렇지 않고 기울어진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 바로잡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잘 느껴야 됩니다.
더우기 우리는 아무 목적 없이 사는 것이 아니고 큰 목적을 중심 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더 많이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까딱 잘못했다가 中心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아무리 자기가 노력을 해도 바로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해서 중심이 기울어지면 잘못한 것의 몇십 배 몇백 배 몇천 배로 노력을 해도 바로잡기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심각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언제나 수직이면 수직에 딱 서서 중심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현재의 입장에서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
*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중심적 기준을 상실하지 않고 언제나 수직이면 수직에 딱 서서 중심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현재의 입장에서 어떻게 유지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중심이 기울어지는 것은 내가 대판 싸움을 하여 상대방에게 망신당했다고 해서 기울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한 가지 기분 나쁜 일로 인한 감정에서부터 중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중심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기분 나쁜 일로 인한 감정에서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상대를 보게 되면 자기를 좋은 면에서 자극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적인 면에서 자기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보게 될 때는 그 느낌 하나하나가 좋지 않게 느껴지고 자기의 기준이 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 느끼는 데 있어서 기준이 틀려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상대에 대해서 잘못 느끼고 말을 잘못했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에 꺾여 나가는 때가 많습니다.
하나의 작은 감정 문제가, 하나의 느낌이 여러분의 신앙노정이라든가 여러분의 정상적인 인격생활에 있어서 선악의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 "느낌을 바로잡아라. 느낌을 다스려라. 느낌을 잘 보호해라"
- "이 이상의 限界線을 넘으면 안 된다" 는 기준을 완전히 決定지어야 된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언제나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느낌을 바로잡아라. 느낌을 다스려라. 느낌을 잘 보호해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感情的으로 느끼는 모든 느낌에 대해서 各別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고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데 있어서 올바르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플러스요 저렇게 저렇게 하면 마이너스라는 확실한 境界線을 가려 가지고 "이 이상의 限界線을 넘으면 안 된다" 는 기준을 완전히 決定지어야 될 것입니다.
만일 그 경계선을 넘는 날에는 지금까지 닦았던 公的인 터전이 일시에 破綻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많이 느꼈으리라 봅니다.
여러분은 저울추와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많으면 올라가고 조금만 적으면 내려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울추가 어느 때 정지하느냐, 저울추를 어떻게 완전히 정지시키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045-241 그러나 여러분의 그러한 기준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것은 천성이 각자 다르니만큼 여러분이 느끼는 기준도 각자가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은 이래야 좋더라. 이럴 때는 기분이 나쁘더라" 하는 것을 느껴 가지고, 될 수 있으면 "마음이 좋더라" 하는 그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 그러니 정도를 가기 위해서는 이런 길을 가서는 안 된다 하는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남자면 남자로서 여자면 여자로서 가정에 있어서 남편이면 남편으로서 아내면 아내로서 아버지면 아버지로서 어머니면 어머니로서 아들이면 아들로서 딸이면 딸로서 혹은 친구면 친구로서의 한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성격이 다르니만큼 "아버지면 아버지, 어머니면 어미니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 하는 한계선 이상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 한계선을 넘게 될 때는 반드시 악의 뿌리를 박게 되는 것입니다.
악이 한번 뿌리를 박게 되면 혼자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걸고서 둘이 같이 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를 물고 늘어져 둘이 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면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악은 혼자 망하겠다는 법이 없고 반드시 물고 넘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은 혼자 망하려고 합니다. 사랑을 중심 삼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죽더라도 너는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 삼고 "나는 더 이상 다른 길은 안 간다. 이 한계선을 안 넘겠다" 하는 기준을 세워 놓아야 됩니다. 그것은 절대적입니다.
하늘편인 오른쪽으로는 내가 마음놓고 가지만 다른 쪽을 갈 때는 어떤 때보다 심각한 자리에서 사력을 다해 분석 비판하여 이것을 타진해 가지고 악은 악대로 처단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한계선까지 나가야 하는 어떤 어려운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악 앞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확고한 생애의 터전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신의 일생은 선한 생애로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은 아버지의 입장에 계시고 우리는 아들딸의 입장에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이상의 길만은 가지 그 이하의 길은 안 간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왼쪽으로는 절대 안 간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線이 있어야 되고 角度가 있어야 됩니다.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는 만큼 그 방향과 어떻게 일치되게 하고 그 각도와 차이를 어떻게 작게 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어제냐 하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현실입니다.
▶ 여기서 필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그러면 그 기준 앞에 어떠한 태도가 필요하겠느냐? 여기서 필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솔직한 신앙자.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마음은 이렇습니다. 아버지, 나도 솔직하겠사오니 당신도 내게 솔직하게 대해 주십시오.
당신은 정의에 입각한 자리에서 얼마나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해 주셨습니까? 내가 부정하는 마음을 가진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신도 부정의 마음을 가지고 나를 대하시겠지만 이제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대하려 하니 정의의 판단을 내려 나를 가려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 니다.
이런 심정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다년간 거쳐 오면서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046-243 여러분은 자기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자기가 열만큼 잘못했는데도 "아버지, 저는 여덟만큼 잘못했습니다"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0만큼 잘못한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率直해야 됩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이 잘못한 것을 열만큼으로 바라보고 있어도 자신은 백만큼 죄를 범한 것같이 고통을 느끼면서 "저는 당신 앞에 용납을 받지 못할 사람이니 나를 멀리 하시옵소서" 라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얼마든지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열만큼 잘못했는데도 자신이 너무 솔직해서 백만큼의 고통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라고 하며 도망가려고 한다면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긍휼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직히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나는 이렇습니다"라고 솔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이러고저러고 변명이 많아요. 그건 솔직하지 않은 거예요.
솔직하다는 기준이 자기가 정한 기준이냐 공적으로 정해져 있는 기준이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이러고 저러고 변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중심 삼고 그 기준을 정해 가지고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이지 공적 기준을 중심 삼고 이러고저러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공적 기준을 중심 삼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 더구나 심각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말 한 마디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일주일 이상 회개해야 탕감이 되는 경우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일 년 이상 회개해야 탕감이 가능한 것4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간에 있어서나 부자관계에 있어서나 혹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하는 사람 전부가 자기 본성적 기준에 의해서 각각 방향을 달리하고 있으면 그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 이상의 기준을 넘지 읺는다는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엄벙덤벙 휩쓸려 가게 되면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라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지, 미지근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악한 것을 행하고 그것을 알고 뉘우치는 사람은 선한 길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고 나쁜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생활이 필요합니다. 솔직해야 됩니다. 솔직한 신앙생활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전체가 움직이는 활동을 중심 삼고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은 개인 혼자 못가는 것입니다. 개인은 반드시 가정과 합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 들어가는 길입니다.
가정도 가정 자체로써는 못 갑니다. 가정은 반드시 교회와 합하여 가지고 가야 합니다. 또 교회는 나라와 더불어 가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045-246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압니다.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良心이 이미 공판을 해 가지고 결정지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잘 안다는 거예요.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거예요. 萎縮感위축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누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잘못한 것을 다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또 잘못하게 되면 날벼락을 맞는다는 거예요. 잘못한 것을 알면 謙遜해야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알고, "당연합니다"라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돼 가지고 이렇다고 辨明하려고 하고 鐵面皮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며칠 못 가는 거예요.
가다 보면 자신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종착점에 이르게 되어 이별하지 말라고 해도 이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별하고 난 후에는 만날래야 만날 수 없다는 거예요.
자신의 잘못을 변명함으로 말미암아 갈라졌던 사람은 그 변명 조건의 몇백 배를 努力해도 변명하기 이전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 선과 악은 등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등위가 다른 것입니다. 선한 자리와 악한 자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되면 선한 사람 앞에서 자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내가 너와 같지."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자연히 머리를 숙인다는 겁니다.
그건 왜 그러냐? 악의 보응을 받아야 할 사람의 등위는 다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즉 악의 침입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하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철면피한 사람도 양심으로 그런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 느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 신앙자들은, 진실한 사람들은, 참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 잘못하게 되면 안다는 거예요. 벌써 얼굴빛이 달라집니다. 눈동자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 그런 거북한 자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히 直告해야 됩니다. "나는 본래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솔직히 통고해 가지고 "나는 이와 같이 못된 사람이지만 당신은 선한 사람이니 나같은 사람을 동정하여 갈 길을 摸索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자유스러운 환경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대로 버티고 서 있게 되면 아무리 자기가 한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수습되지 않습니다. 환경을 수습하지 못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으로서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러니 동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려면 솔직히 直告해야 됩니다. 그것이 祈禱입니다. 기도.
기도는 무엇이냐? 내가 가는 방향이 틀렸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 개인보다도 가정에 솔직해야 됩니다. 가정보다도 교회에 솔직해야 되고 교회보다도 국가에 대해서 솔직해야 되고 국가보다도 세계에 대해서 솔직해야 되고 세계보다도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최후에는 하나님 앞에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가는 데 있어서 개인만 솔직하면 된다는 사람은 안 됩니다.
"나는 양심적인 생활을 했으니 어디 가든지 당당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양심적으로 생활했다는 것은 自己 周邊을 중심 삼은 양심적인 생활이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와 세계 앞에 플러스를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라와 세계 앞에 빚을 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045-248 그러면 성인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의 법도, 하나의 천륜이 있으면 그 천륜의 방향과 한계선을 중심 삼고 언제나 자기의 마음을 저울질하면서 산 사람입니다.
즉 세계를 걸어 놓고 혹은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자기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가운데 가책받는 모든 일체를 제거시키고 오히려 남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느끼고 가책을 받으면서 산 사람들이 성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자기 나라나 자기 민족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아닙니다.
* 솔직하지 못한 두 사람이 있으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싸움이 안 벌어질래야 안 벌어질 수 없습니다. 솔직해야 될 텐데 솔직하지 못하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솔직하다는 것은 참과 통하는 거라구요. 솔직하다는 말은 똑바로 인도해 간다는 말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곧게 거느려 간다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곧게 거느려 간다는 거라구요.
045-250 어떤 때는 말 한마디 잘못한 것 때문에 일주일뿐만 아니라 몇개 월 동안 가려서 넘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 자기가 잘못했으면 솔직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물고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중심 삼고 전체를 움직여 나오는 데도 솔직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도 최고로 솔직한 자리에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을 이용하기 위해서 가르친다면 선생님 양심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045-252 만일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쳐 줬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행동을 못하게 될 때는 그 책임은 선생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윗사람이 어떠한 것을 주면 아랫사람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일 경우에는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것을 줄 경우에는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 또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사람받을 수 있는 길을 가라고 가르쳐 줄 때는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계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충성과 책임을 다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나라 앞에 떳떳한 것이요 그 민족 앞에 떳떳한 것이요 그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 앞에, 그 누구에게든지 떳떳한 것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도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한 양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찬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만했으면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기까지 했습니다. 이 땅에 와서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내 있는 기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단 한 가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미족과 국가와 세계를 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못 나가게 한 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역사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는 환경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서 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계가 그 사람의 사상을 이어받게 한다든가 그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사람의 가치를 열매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열매가 안 되면, 열매가 못 되면 종자라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는 되는 것입니다.
045-255 어떤 우리 식구에게 돈을 주어 가지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불하는 돈은 무서운 돈입니다. 공금 중에서도 공금입니다.
그 공금을 가지고 여러분이 책임수행을 하다가 그것이 안 되게 될 때는 선생님에게 보고한 다음에 제2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게 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도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영계에서 그 사람은 안 되겠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기억 안 하고 준다고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용당하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이용하겠다고 하더라도 이용 안 당하는 거라구요. 해 보라는 거예요. 누가 망하나.
그냥 그대로 하다가는 전부 다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솔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045-264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특히 주의할 것은 현실적 문제를 중심 삼고 선악의 척도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아침에 쓱 나서게 될 때는 말이에요, 기도할 때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였으니 어제보다도 오늘이 더 善할 수 있는 길을 내가 가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거기에 반대가 있거든 그것을 克服할 수 있는 忍耐力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거기에서 꺽이는 卒者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威信과 權威를 세울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길을 오늘 가겠습니다. 나는 부끄럽지 않게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청산유수로 몇 시간씩 아무리 하면 뭘해요. 행하지 않고 실적 없는 그런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현재의 입장을 중심 삼고 잘 가려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죽습니다.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틀림없이 늙어서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 언제 죽을지 알아요? 밥을 먹다가 숟가락도 놓기 전에 그 숟가락을 입에 물고 죽을지 누가 압니까? "난 그렇게 안 죽지. 그렇게 안 죽지." 하다가 그렇게 죽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생을 두고 볼 때, 무엇을 남길 것이냐, 무엇을 남기느냐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 터전을 밟고 섰을 때 당당할 수 있느냐?
여러분이 한 가지 행동이라도 잘 했으면 당당할 수 있지요? 一生을 살고 마지막 瞬間에 善이냐 惡이냐 할 때 "아버지, 나는 아버지 앞에 善한 아들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資格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우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 젊은 가슴에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밟고 넘어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라고 한 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정성과 노력을 다 했고 투쟁과 인내와 극복의 최고의 한계선을 세우는 데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만한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훌륭하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045-266 내가 여러분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지만 원리원칙에 벗어나게 되면 용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용서가 없다는 거예요.
만일 어떤 문제로 원리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때는 사정 모르는 사람이에요. 무자비한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어머니 아버지 처자를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개인 사정에 끌려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계선까지 나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언제 알았더냐 이거예요. 그게 필요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대해서도 그렇고 자식이면 자식에 대해서도 그렇고 여러분이면 여러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뜻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솔직하고 단순한 내용을 가지고 가듯이 여러분도 그럴 수 있는 면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고이 데려가고자 하는 것이 통일교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솔직한 것을 좋아합니다. 엊그제 유종영 순회사가 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 녀석도 승공연합에 있으면서 그저 바람을 피우고 다녔습니다.
뭐 나쁜 바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났다 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겨루며 매일 저녁 파티에 참가해 가지고 거드럭거리며 살았었거든요.
가만뒀다가는 사람 버리겠기에 내가 순회사로 내보냈습니다. 순회사는 밤잠도 제대로 못자는 거예요. 그러니 고생길로 들어선 거예요. 여러분도 순회사들을 동정 좀 해 줘야 돼요.
* 순회사가 되면 잠 못 자거든요. 피곤하다고 해서 어디 가 가지고 "나 피곤하니 방을 좀 내주소." 할 수 있어요? 가자마자…. 지방을 순회하게 되면 물 마실 시간도 없는 거예요. 내가 순회를 다녀 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 또 식구들이 철야기도한다고 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지요. 고생길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녀석들 밥 먹는 것보다 잠이 간절할 것이다, 잠 잘 자던 녀석들 어디 한번…,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물어 보니까 "잠 못 자는 것입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맛을 잘 알아요. 내가 유종영,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말이에요, 사람이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045-269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대체로 사람이 선악의 길을 가려 가는 데 있어서 德望之友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길 혹은 윗사람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길 혹은 손 아랫사람 앞에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은 변명이 아니더라 그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전부 다 타진해 보고 비교해 보라는 거예요. 대체로 辨明하는 사람들은 損害를 봅니다. 그러니 사건이 생겼으면 변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어도 변명은 못 하는 사람입니다. 들이대 가지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게 되면 만약 방법상 달리 대답해야 할 때도 눈이라도 찡그리며 대답하지 변명은 안 합니다. 선생님의 생활습관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볼 때 대체로 率直한 사람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環境을 계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솔직한 신앙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러면 솔직한 신앙자는 어디에서 가려지느냐? 현재의 입장에서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과 일치되지 못하고 악의 침범을 받았을 때는 즉각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무슨 일이 생기면 3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습니다. 절대 넘기지 않습니다. 넘기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벌써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그냥 흘려 버리는 것입니다. 기분 나쁜 마음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가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 인생을 보게 되면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지만 대체로 일상생활에서도 솔직한 생활철학을 지켜 나가는 사람은 남아집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적인 면에 있어서 공헌을 남기고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모든 면에서 첨단에 서 있습니다. 첨단에 서 있어요. 선생님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선생님은 상당히 예민한 사람입니다. 참 예민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예민합니다. 너무 예민하다는 거예요. 벌써 한마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동기부터 파악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본래 내가 세밀한 사람입니다. 방에 척 들어가서 몇 개월 동안 사용했던 물건이 그 자리에 없으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입니다.
책상 서랍 하나 열어 보더라도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나를 세밀하게 다 봅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무심코 보지 않습니다. 상하를 전부 가려 가지고 저기서는 무엇이 중심이냐 어떤 것이 上이냐를 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너무 보려고 하다 보니 사람이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털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하고 일부러 무관심하려고 합니다. 그런 면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욱 그렇지만 원리 중심삼은 생활에 있어서도 언제나 솔직해야 합니다.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3시대가 보고 있습니다. 과거의 선조가 보고 있고 옆에 있는 현재의 사람이 보고 있고 미래의 후손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계가 보고 있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변명이 필요없습니다. 언제나 솔직해야 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생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선생님이 느꼈기 때문에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현실을 중심 삼고 솔직한 생활을 습관화하여 선악을 가려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정받을 수 있는 생애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역사적인 과거를 남기게 될 때 최후의 운명에 처하더라도 선한 것을 남기는 보람 있는 생애를 마치고 가게 될 것입니다.
눈을 감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서 솔직한 신앙생활이 여러분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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