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맥아더 Douglas MacArthur 1880.1.26.~1964.4.5. - 5가지.

true2020 2015. 11. 16. 09:23

◑ 맥아더 Douglas MacArthur 1880.1.26.~1964.4.5.

*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USMA 미국 육군사관학교 수석으로 졸업. 미국 육군참모대학교, 미국육군지휘참모대학교 졸업.

* 1941년 7월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복귀. 필리핀 주재 미국 극동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 1942년 3월 서남 태평양 방면 연합군 최고 사랑관.

* 1944년 유엔 연합군 최고사령관.

* 1945~1951 일본군 점령 사령부 원수. 1945년 8월 30일 최고사령관으로 일본에 첫 발을 디뎠다.

* 1950.9.15. 인천 상륙작전. 성공확률 5천 분의 1.

* 1951년 3월 10일 만주 폭격 주장.

* 1950년 4월 19일 오전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침략자 중공을 응징하자! 피력. 공산주의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Harry S. Truman (1884.5.8.~1972.12.26.) 33번째 미국 대통령 (1945.4.12.~1953.1.20.)은 제한 전쟁을 주장 -> 트르먼과 불화.

*  1951년 4월 맥아더 해임

웨스트포인트 은퇴 연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종교 개신교 장로회.

 

1. 트루만과 맥아더

 

1) 1951년 4월 트루만의 맥아더 해임은 역사적 실패.

- 1950년 9월에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 1960.1.6(수) 재림기에 있어서 세례 요한적 사명의 생활과 우리의 각오. 전본부교회.

008-231 복귀 역사를 중심 삼고 볼 때 기성교회가 해방 직후에 뜻을 받들고 나선 이 젊은이의 뒤를 따랐던들 한국은 이렇게 불쌍하게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38선이 가로막히지 않았을 거예요. 38선이 가로막히지 않았던들 국제정세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련은 벌써 없어졌을 것입니다.  

 

1951년 4월에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해임시키고부터 한국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때 맥아더 장군의 말대로 했더라면 그해 9월에 한국은 소만 국경에 가서 싸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받을 축복을 한국이 전부 받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지금처럼 복잡한 세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세계정세는 우리의 움직임과 대비되어 나갑니다. 세계정세가 아무리 크고 변한다 해도 우리의 움직임과 대비되어 나가요. 여러분은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모를 거예요. 복귀 역사는 그렇게 되어 나갑니다. 

 

014-187 이 민족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두고 보십시오. 38선이 해결 안 되고 있잖아요. 트루만이 북진파의 영웅이라고 하던 맥아더의 말을 들었으면 1950년 9월에 끝났을 것인데 맥아더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1953년 7월에 끝이 났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역사가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것입니다. 이런 한 많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되 아는 사람은 피가 끓는 것입니다.

 

014-189 이제 한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심각하게 기도한 사람이 통일교회 선생님입니다.

 

▣ 1980.11.8(토) 제21회 참자녀의 날과 재생. 본부교회.  

110-049 그때가 1953년이구만. 4월에 문제되었을 때 맥아더가 북진 통일을 주장하던 때에 만일 맥아더의 말대로 했으면 6개월 만인 9월이면 한국 땅은 끝난다고 생각했다고요. 이렇게 안 될 때는 천년사의 한을 남기고 민주 세계가 멸망의 함정 구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구요. 이래 가지고 그런 역사가 남아진 거라구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미국에 건너가게 된 거예요. 미국이 문제다 이거예요.

 

그래서 2차 세계 대전 때에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잡은 모든 세계의 판도를, 권한을 독일이 지배하고 일본이 지배하던 모든 권한을 전부 다, 하나님 앞에 받은 상급을 원수 사탄 앞에 제공했다 이거예요. 소련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고요. 원수 사탄에게 제공을 해 버리고 조공을 해 버리고 말단에 선 민주 세계는 하늘의 철추가 가해진 비운을 맞은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레버런 문이 나와 하나님을 붙들고 "용서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한 겁니다.      

 

2) 맥아더의 만주 폭격을 했어야 했다.

 

▣ 1969.5.17(토) 1968년 이후가 그 전과 다른 점. 전본부교회.

023-105 맥아더는 만주을 폭격해야 했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선생님은 33세에 소원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3) 트루만은 도루망 즉 도로 망했다는 것이다.

 

▣ 1971.1.10(일) 근본 복귀. 강릉교회.

039-131 트루만 대통령이 맥아더를 해고했지요? 그래서 투루만은 도루 망 즉 도로 망했다는 것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 왜 이젠 하지 않느냐" 해서 아이젠하워인 것입니다.

 

* 한국말은 전부 다 계시적이에요. 웃지 말아요. 이것도 다 내용이 통하기 때문에 얘기하는 겁니다.

 

4) 1945년 + 7년 = 1952년에 전쟁은 끝난다.

 

 

▣ 1974.11.14(목) 제15회 참자녀의 날. 벨베디아.

074-092 그때는 원자탄이고 뭐고 없는 거예요. 그때 맥아더 장군 말대로 했다면 1952년 6월까지 끝난다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7년 만에 끝난다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1945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을 위해서 세계적인 공을 세웠을 텐데도 불구하고···. 한국동란에 트루만 대통령이 유엔군을 투입한 것은 잘했지만 트루만이 역사적인 실패를 했다는 것입니다.

 

5) 공산당을 전부 제압헤야 되었다.

 

▣ 1975.10.24(금) 탕감 법. 시카고. 

080-250 그때 트루만이 한국에 파병했을 때 맥아도 장군을 해임하는 것이 아니라 맥아더의 말대로 했으면 중국을 전부 다 점령하고 소련을 제거할 수 있는 한 역사적인 좋은 찬스를 맞이했을 것인데 이걸 잃어버렸다고요.

 

자, 그때가 영국이 지배하고 불란서가 지배하던 영토를 전부 다 중국과 인도를 위시한 동남아시아와 전 세계를 관리하게 될 수 있는 좋은 찬스였다 그 말이라고요. 그야말로 세계의 절반 이상을, 3분의 2 지역을 미국이···. 그랬겠어요, 못 그랬겠어요?

 

2차 대전 직후에 미국은 세계 발전의 기수가 돼 가지고 세계 어느 곳에나 주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러한 좋은 하늘의 축복 기반을 가졌었는데 미국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 1975.11.2(일) 뜻 성사의 곳과 뜻 성사의 무리. 벨베디아.

080-316 미국이 책임을 했으면 공산당은 벌써 없어지는 거라고요. 책임 못 했기 때문에 이 놀음하는 거라구요. 1951년도에 맥아더의 말을 들었으면 4월에 맥아더가 해임되었지만 그해 9월까지는 공산세계는 완전히 없어지는 거라구요.

 

▣ 1980.11.18(화) 하나님의 뜻으로 본 예수님과 기독교. 서울 롯데호텔.

- 초교파 기독교협의회 주최 문선명 선생 초청 만찬회.

 

110-232 원래는 맥아더 장군의 말대로 해야 되는 거예요. 공산당을 전부 제압해야 된다고요. 2차 대전 이후에 일본과 독일 이태리를 중심 삼은 추축국의 모든 영토를 하늘이 가져다주었으면 그것을 사수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오늘날 이 한반도가 갈라진 것은 누구 잘못이냐? 그것은 미국이 잘못한 거예요. 미국이 잘못하는 날에는 사탄이 물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2. 맥아더는 한국과 일본의 구세주이고 영웅이다.

-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

- 인류를 사랑한 사람

- 반공주의

 

1) 서구 문명을 한국과 일본에 접속시켰다.

 

▣ 1978.2.13(월) 미국을 살리는 주역. 미국.

- 주 책임자 회의.

 

096-301 서구 문명은 말이에요 서구 문명은 어차피 아시아 문명과 쌍둥이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시아 문명과 손을 안 잡으면 서구 문명은 망한다 이거예요. 제아무리 서구 사람들이 아시아를 싫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이것을 연결시키려고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구요.

 

* 자, 그러면 서구 문명에 접속시키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냐? 일본과 한국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일본에 있어서 구세주 놀음을 한 사람이 누구냐, 한국에 있어서의 구세주 놀음을 한 사람이 누구냐,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책임을 한 사람이 맥아더예요. 맥아더.

 

일본이 패전한 후에 일본이 축복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이 거 맥아더라구요. 그거 맥아더가 한 거라구요. 패전국을 채찍으로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사랑으로 우대하는 놀음을 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장군 사상에 없는 놀음, 역사 상에 없는 일이다 이거예요.

 

그때에 맥아더가 막대한 손해배상을 일본에 청구했더라면 오늘날 일본은 이 세계에 있어서 아직까지 3국이 뭐예요. 5국 6국 자리에도 못 올라왔을 것입니다. 반대로 맥아더는 사랑을 가지고 일본을 부흥시키는 데에 길을 닦아 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오늘날 경제 문화국으로 성장하는 데에 맥아더의 숨은 공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 국민도 모르고 일본 국민도 모른다 이거예요. 선생님 말 들으니 지금 여러분들도 그런가 생각하지요?

 

또 그다음에는 공산권을 중심 삼아 가지고 남북이 결렬된 이때에 있어서의 맥아더 장군이 결국은 반공하는 데 있어서 한국을 방어하는 데 있어서 한국을 구해 준 구세주다 이거예요.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서 전부 다 서울을 탈환해 가지고 맥아더 장군이 이 박사, 이 대통령한테 정권을 이양했다구요. "이 나라를 당신한테 돌려 드린다"는 그러한 사실은 나라를 구해 주는 책임을 한 거라구요.

 

* 그렇기 때문에 맥아더를 한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일본의 영웅으로 만들고 아시아의 영웅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에요. 그거 가능해요, 안 해요? 그건 가능해요. 그리고 미국의 영웅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096-303 그러면 맥아더가 왜 영웅이냐? 맥아더는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다 이거예요. 어려울 때에는 기도한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다음에 그는 뭘 했느냐 하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한 사람이다 이거예요. 일본을 그렇게 대한 것은 지극히 거룩한 장군으로서 위대한 일을 한 것이었다 이거예요. 그다음에는 또 뭘 했느냐? 그는 철두철미한 반공주의 사상, 세계의 반공주의의 선두에 선 사람이다 이겁니다. 희생자다 이거예요. 맥아더를 추대하고 영웅시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 트루만이 맥아더를 현직에서 제거한 것은 잘못했다 이거예요. 정세를 보지 못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민주세계가 수십 년 동안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구라파가 다 공산주의의 영향권 내에 들어가고 남미가 전부 다 공산주의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부 다 트루만 대통령의 결정적 실책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선포해야 되겠다구요.

 

맥아더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때에는 소련에 원자탄도 없을 때라구요. 쉽사리 공산권을 제압해 버려 가지고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세계를 지상천국으로 만들 수 있고 자유 환경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렸다 이거예요.

 

오늘날 중공 같은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중공을 중심 삼고 소비에트의 저 하바롭스크라든가 이 시베리아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러한 미국의 판도가 되었을 것이 아니냐.

 

이 맥아더를 자른 것은 트루만이었어요. 트르만, 트루만의 실책이었어요.  우리 미국 청년들이 올바로 알고 이 맥아더를 영웅시해 가지고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낳은 영웅으로 추대해야 되겠다고 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되겠다구요.  

 

096-305 그래서 이 한국에 있어서 현재 국군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문공부로부터 문교부로부터 그다음에는 국방부까지 전부 다 결재받아야 되는데 이미 다 결재를 받았습니다. 한 10만 명이 동원되도로 한국 군에 결재를 받았다구요. 그래서 이번에도 이 미국 국무성에서 결재 나고···, 감독도 결정되었고 시나리오도 이미 다 되었다구요. 이미 교정도 4차까지 다 되었다구요. 이런 걸 알아야 된다구요. 감독과 시나이로 작가, 그네들 쓸 거 번부 다 이미 계약이 끝나고 지불 다 했다구요. 3월 말까지 500만 불을 현찰로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명년에는 영화가 되어 나와야 된다구요.

 

결국은 말이에요, 이시이가 영웅이 되었어요. 뭐 영화도 모르는 녀석이 할리우드에 와 가지고 말이에요, 큰 폭탄을 던지고 있다구요. 돈도 하나도 없는 저런 녀석이 큰소리만 한다고 손가락질당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믿게 되어 있다구요. 그 배후에는 내가 있을 것을 알고는 말이에요.

 

* 우리 영화를 한국동란 때 참전한 16개 국에서 방영해 가지고 이익 나는 것 절반은 그 나라 傷痍軍人 협회에 전부 기부하는 거예요. 그렇게 조치한다구요. 그건 왜? 상이군인傷痍軍人은 어떻게 하든지···.

 

그래 가지고 한국동란 때 와서 죽은 용사들의 위령제를 지내게 하면서 해마다 16개국의 그 장성들을, 현직 장성들과 현직의 모든 관료들을 전부 다 묶는 데 있어서 보화의 재료로 만든다 이거예요.

 

▣ 1979.10.28(일) 천운과 운명. 본부교회.

105-306 미국을 각성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 보니 맥아더밖에 없다는 걸 내가 알았다구요. 어떻게 각성시키느냐? 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 앞에 하나의 말뚝을 박아서 닻줄을 맬 수 있는 그런 인물이 현재 누구냐? 이런 사람이 역사에 없다구요. 워싱턴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현세에 실감이 나고 거국적인 감정이 맥박을 통해서 흐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누구냐? 맥아더라구요.

 

또 미국 국민이 근세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보다도 존경할 수 있는, 제2차 대전 이후에 공산권과 대결하는 데 있어서 선발대로서 칼을 꽂고 호령하며 나서 가지고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 단 하나의 사람이 누구냐? 맥아더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 맥아더를 영웅으로 만들고 일본에서 맥아더를 영웅으로 만들 수 있는 흐름을 위해서 일본의 고위층에 대한 프로그램까지 전부 다 내가 지시한 거예요. 이러이러하라고 구보키한테 지시한 것입니다.

 

* 맥아더가 태평양 사령관 시대에 일본 廣島에 원자탄을 떨어뜨린 것은 총사령관인 맥아더의 명령하에서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민족은 원자탄 하게 되면 "맥아더 장군" 하는 것입니다. 트루만이 배후에서 결정은 했지만 트루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맥아더 한다구요. 자, 이러니 맥아더를 영웅 만들자고 하게 되면 큰일이라 이거지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서 "맥아더가 어떤 사람이냐? 하늘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인류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다음 공산당을 미워한 사람이다" 하는 그런 과제를 걸었더니 "뭐 하늘을 사랑하고 공산당을 미워했는지 모르지만 인류를 생각한 게 뭐냐? 원자폭탄 떨어뜨리는 것을 물론 트루만이 지시를 했지마는 행동은 맥아더가 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이러니 납득시킬 길이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런 설명을 했어요. "야, 이 녀석아,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또 열강이 2차 대전 이후에 승리를 가져왔지마는 인도주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큰 범죄를 저질렀다. 25만이나 되는 廣島를 일시에, 순식간에 살해한 이런 역사가 없었다. 그런 살해를 한 전범자다. 그건 틀림없다. 그런데 무엇이 인도주의냐? 들어봐라. 만약에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일본 국민은 학살됐을 것이다. 또 그 일이 없었더라면 미국이 아시아에 대해 가지고 전후에 정치하는 데 있어서 일본을 대해 가지고 부흥시키는 데 있어서 미국이 선두에 섰겠느냐. 거기에 맥아더가 주역을 한 것이 아니냐. 왜 그런 놀음을 했느냐? 심적인 면에서 일본 국민 앞에 회개하는 의미에서 그런 놀음을 헀다."고 했어요. 사실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봐야 된다 이거예요.

 

* 보라구요. 장개석 총통이 그 일본 국민을 위해서 후원했고 열강이 모두 후원했던 것이 그것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해 봤느냐 이거예요. 물론 일본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천운이 가는 길 위에 일본 민족이 예속되지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망한다 이겁니다.     

 

3.  영화 "오 인천"

- 1982.9.17. 시상회.

 

▣ 1980.11.1(토) 금후에 한국이 나아갈 길. 이천 승공연수원.

109-248 "오, 인천" 영화를 왜 만들었느냐? 16개 참전국을 다시 살리고 맥아더 장군을 영웅 만들고 맥아더 사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만들었어요.

 

그러므로 한국의 영웅은 맥아더입니다. 그렇지요? 한국을 구해 준 구세주라구요. 전후에 있어서 일본 민족이 경제 부흥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닦아 준 사람이 맥아더입니다.

 

1982.10.5(화) 제5차 세계 언론인 대회. 서울 롯데 호텔.

- "오, 인천" 영화 제작. 6000만 불.

 

제작 이유 3가지

1) "한국전쟁의 침략자가 누구냐?"

2) 맥아더 원수의 공적에 대하여 尊敬과 讚辭를 보내자는 데 목적이 있다.

3) 흥남 형무소에서 해방, 맥아더 원수께 대한 감사의 표시.

 

120-102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두 가지의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한국전쟁의 침략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역사에 바로잡아 놓으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공산주의자들은 역사의 사실을 왜곡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들의 선전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던지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북쪽을 침략한 침략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인즉 북한 공산당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고 남한을 침략해 온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그들의 침략 앞에 犧牲의 祭物이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명백히 묘사되어야 하며 공산 침략자들의 정체가 정확하게 기록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이 "오, 인천"이라는 영화는 바로 이 목적을 이루고 있습니다.

 

둘째는 본인은 맥아더 원수의 공적에 대하여 尊敬과 讚辭를 보내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맥아더 원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또한 인류와 하나님의 으뜸 가는 敵인 공산주의를 정확히 알고 혐오하고 있었던 위대한 장군입니다.

 

1950년 북한이 남침해 온 그 위급한 지경에서 한국과 한국사람들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맥아더 원수는 공산 침략을 막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속에서 그는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실천하였으며 이는 군사 전략의 걸작이요, 불가능한 여건을 위대한 승리로 이끈 역사적 공적이 되었습니다.

 

맥아더 원수는 또한 전략의 천재일 뿐만 아니라 극진한 인류 애호주의자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에 이어서 맥아더 원수는 정복된 일본 제국 위에 최고사령관으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권좌에서 폭군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패전국 일본을 통치하는 데 아버지와 같은 사랑과 자비로써 하였습니다.

 

맥아더 원수는 한국 전쟁을 어떻게 궁극의 승리로 이끌며,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자유세계가 그의 충고에 따르고, 맥아더 원수의 뜻을 실천하였더라면 오늘날 양단된 한국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요, 아시아 전역에서 공산주의의 팽창膨脹과 무한한 희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유세계에 수치와 오점을 남긴 월남전의 패전도 없었을 것입니다.

 

본인은 오늘날의 세계 젊은이들이 맥아더 원수의 위대함을 이해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그들이 맥아더 원수를 영웅으로 추대하며, 맥아더 원수께서 가신 길을 본받아서 하나님과 인류 앞에 봉사하는 역군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만드는 데 본인으로서는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인연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본인은 북한의 공산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본인은 그 형무소의 비참한 상태를 차마 입에 담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거기에 수감된 정치 사상범들은 거의 6개월 이내에 죽어 나갔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가호 아래, 근 3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그 형무소에서 이겨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에 이어서 유엔군이 북으로 북으로 밀고 올라올 때에, 급해진 공산주의자들은 수감된 정치 사상범들을 처형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끌려나가 처형되기 바로 몇 시간 전에, 본인은 극적으로 유엔군의 도움으로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 인천"이라는 이 영화는 본인이 맥아더 원수께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맥아더 원수를 생전에 뵙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침 행복하게도 우리들은 맥아더 원수의 친조카 되는 더글라스 맥아더 2세 대사님을 기조 연설자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이 순간 맥아더 대사로부터 맥아더 원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바이며, 오늘 맥아더 대사를 모시게 된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1951년 4월 맥아더 해임. 웨스트포인트 은퇴 연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 1981.3.8(일) 나는 전체의 중심. 벨베디아.

111-283 저 맥아더 같은 사람이 말이에요, 일흔한 살엔가 그때 제거를 당해 가지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랬다구요. 그 기백을 나는 존경한다구요.

 

5. 맥아더와 참아버님.

 

▣ 1987.9.21(월) 분단된 세계에서의 언론의 책임. 서울롯데호텔.

- 19차 세계언론인회의.

 

168-236 본인은 한국동란 전 북한에서 투옥되었을 적에 공산체제의 잔학성을 몸소 체험한 바 있습니다. 그곳은 감옥이라기보다는 수감자들이 평균 불과 6개월을 생존하기 어려운 진실로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1950년 10월 14일 그러니까 본인의 사형집행 예정일 하루 전날 맥아더 원수의 연합군이 본인을 그곳으로부터 구출해 주었으니 그것은 전척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