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제스.
- 4세가 되던 해였던 1901년, 당시 관행대로 어머니가 정해 준 5년 연상인 인근 처녀 마오푸메이(毛福梅)와 결혼하였다. 이 첫째 부인 모복매가 훗날 장제스의 장남 장징궈와 딸 장젠화의 친어머니이다.
- 1913년 그는 마오푸메이를 버리고 야오예청(姚冶誠) 등 내연녀를 둔다. 1921년에는 마오푸메이(毛福梅)와 법적 이혼하고, 19년 연하의 천제루(陳潔如)와 2번째 결혼한다.
- 2번째 부인 천제루(陳潔如)와도 이혼하고 나서는, 유력하고 부유한 가문인 쑹가문과 유대를 맺고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후 1927년 쑹메이링(宋美齡)과 3번째 결혼하였다.
- 1906년 4월 바오딩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수업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하여 1909년 5월 27일 21기로 졸업하였다. 일본에서 그는 다른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봉건 청조에 반대하고 중국에 새로운 공화국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중국동맹회에 가입했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장은 일본 제국군에서 복무했다.
- 1943년 11월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과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서 '카이로 회담'을 하였다. 이때 한국 독립 문제를 거론하였고 회의에서는 '한국 민중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결의를 얻어냈다
- 1971년에 유엔에서는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가 채택되면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는 물론 회원국의 자격까지 잃는 사건을 겪는다.
- 거기에 1972년 초 닉슨의 중공 방문으로 미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타이완의 중화민국은 고립이 심화되었고, 1955년의 타이완 방위 협정의 효력과 그의 정부의 미래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비주류로 떨어진 설움을 삼키던 와중 1975년 타이베이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89세.
- 1979년 미국은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과 전면적인 국교를 수립하고,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청산하기에 이른다.
1. 만주는 본래 우리 땅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장개석을 끌고 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 1969.6.8(일) 불쌍한 복귀의 역군들. 전본부교회.
023-297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것은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입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을 안 합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지 않고 승리를 결정하고, 화해하여 우리가 만주를 타고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이 앞으로 한 1억쯤 인구가 될 때, 만주땅이 없으면 정착할 수 없습니다.
만주는 본래 우리 땅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장개석을 끌고 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배후조종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모모한 사람을 중심삼고 장개석 아들로부터 부총리, 그런 사람들을 불러 가지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못 하는 일을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습니다.
▣ 1967.2.1(수) 도. 전본부교회. 지역장.
157-038 한국이 지금 70만 내지 70만 대군을 갖고 있는데, 장개석하고 약속하는 거라구요. 만주에 있는 반공, 반모파들을 내가 전부 다 …, 하게 해 가지고. 이북만 통일하면, 내가 한다는 거예요. 내가,자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을 시켜서, 슬쩍 이래 가지고 "밀어라, 밀어라, 우리 70만 동원하마" 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대만까지 전부 다 장개석을 앞장 세워 가지고 합동하자 이거예요. 합동해 가지고 모택동이 몰아내자 이겁니다.
이래 가지고 저 만주 국경 山海關산하이관, 중국 허베이 성(河北省) 동북쪽 끝, 보하이 만(渤海灣) 연안에 있는 친환다오 시(秦皇島市)에 속한 구)에서부터 興安嶺 (싱안링산맥,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 동부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북부 산맥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이르는 벌판에 우리와 장개석 군이 연합해 가지고 진을 치자 이거예요. 이래 놔 가지고 "만주" 하게 되면, 3, 4년만 끌게 되면, 전부 다 우리 사상을 먹여 놓을 수 있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래 가지고 밀어내야 된다 이거예요. 내가 아주 꿈이 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시급한 문제가 뭐냐 하면, 우리가 여기서 남북한 총선거를 기필코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 일본을 보게 되면 일본 공산당의 지식층, 인텔리 계급의 이론적인 공산주의자는 소련 패고, 행동적인 공산주의자는 중공 패입니다.
2. 장개석 총통에게 한 두 가지 충고.
▣ 1979.10.26(금) 본부교회 천운과 운명.
105-309 구보끼를 보내 가지고, "장개석, 당신은 아시아에 있어서 이 서구사회가 공인하는 영웅의 이름을 얻고 있소. 아시아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금후에 당신이 죽더라도,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고 죽는 거와 마찬가지로 뭘 하나 남기고 죽으시오. 서구사회에 끌려가 가지고 죽어서는 안 되오" 라고 했어요.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장총통이 일생을 바친 일이 무었이냐 하면 말이에요, 대륙 탈환, 본토 탈환이었어요. 그래서 "그거 좋소. 그러나 이제는 환원해 봐야 공산주의를 소유, 소화할 수 없소. 자체방어, 대만에서부터 방어해야 되오. 이제 살 길은 獨立하는 거요. 獨立하소. 빨리. 이것이 일본 통일교회에서 하는 말이라고 해서 싫을지 모르지만, 일본사람이 말하고 있다고 해서 듣지 않아 보소. 두고 보소" 했어요.
그다음에는 뭣이냐? 미국정치가 친공주의로 나가고, 일본도 그렇게 나가기 때문에, 무엇을 지시했느냐? "대만해협에서 구축함을 때려 부수소. 상선을 때려 부수고, 일본, 미국 구축함을 때려 부수소. 이러면 당신이 영웅의 이름을 내고 죽소" 해 보라구. 해 보는 날에는 미국이 날아와서 수습해야 되고, 일본이 날아와 수습해야 되오" 했어요.
자, 이런 말을 종교 지도자가 해야 되겠어요? 일본 사람이 자기 나라의 상선을 때려 부수라는 말을 하니, 저 사람이 일본사람이냐 이거예요. 그런 말을 하다가는 당장에 체포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위기의 말입니다. 그래서 비밀회담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장총통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거든요. 독립하고, 뭐 이러는 것을 말이에요.
▣ 1971.11.7(일) 섭리역사의 중심과 조국. 중앙연수원.
- 제3차 세계순회 떠나시기 전에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식구 집회.
050-222 이제는 유엔을 포기해 버리고 중공과 대결해 가지고, 독립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 독립선언은 무엇을 표준해 가지고 해야 되느냐?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국제승공연합이나 통일교회 사상을 중심삼고, 대만 전체가 사상무장을 해 가지고, 중공과 대결하는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한 길이 있다고 봅니다.
3.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 1971.9.5(일) 제물의 완성. 전본부교회
048-098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이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이냐? 경제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상적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통일사상을 내세워야 합니다. 중국의 장개석도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048-107 요즈음에는 한참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것이 중공 일변도입니다. 경제인, 정치인 전부 다 중공과 손을 잡으려고 야단이라는 거예요. 그런 판국에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가두에서 일주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하면서, 중공과의 친교를 반대하는 대모를 했습니다.
"중국의 장개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런 놀음을 하니까, 일본 매스컴에서는 "저런 미친 놈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저게 무슨 꼴이야.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머리 없는 통일교회, 머리 없는 승공연합"이라고 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그 일을 누가 시키는데. 구보끼가 시킨 건가? 내가 시킨 건데…. 나는 손해나는 일은 안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는 반대를 받았지만, 중국의 장개석을 잡은 것입니다. 장개석은 몽땅 우리에게 업힌 거예요,
▣ 1971.8.28(토) 우리 가정의 갈 길. 청평 수련소.
- 제2차 교회장 수련회.
047-205 대만 정부의 장개석 총통도 선생님 판도권 내에 딱 걸려 들었다구요. 이번에 일본 통일교회에서 "일본이 중공을 반대하고, 중국 장개석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일주일 단식 투쟁을 했기 때문에, 구보끼가 대만에는 일본 정부보다도 더 가까와 졌다고요. 그러니 구보끼가 거기 가면, 국빈입니다. 가게 되면 직통하는 거라구요.
▣ 1971.6.6(일) 내일의 주인. 전본부교회.
045-040 이번에도 일본이 친 중공 정책을 펴는 데 대해 구보끼 협회장을 세워 가지고 단식 투쟁을 하며 적극적인 반대를 하게 했습니다. 수백 명이 단식투쟁을 한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미친 것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뭐 미욱한 녀석들이라는 평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약삭빠르고, 눈치빠른 사람, 여기에 알랑거리고, 저기에 알랑거리는 사람은 충신이 아닙니다. 칼을 뽑았으면 그 칼을 다시 집어 넣지 않고, 죽을 때까지 지니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통일교회가 승공활동을 시작했으면, 중국의 정세를 봐 가지고 싹 작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아직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 승공연합에 명령했습니다. "단실하라, 죽어라"고 말입니다. 이 바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대만 정부가 승공연합에 완전히 목이 매였습니다. 장개석 총동이 구보끼 협회장 앞에 완전히 걸려 든 것입니다.
장개석 총통은 멀지 않아 망명해야 되는 운명에 놓여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당신을 책임지겠다고 하며 제반적인 문제를 제시하니까, 거기에 완전히 걸려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20분만 만나려고 했는데, 아내와 함께 와서 한 시간을 넘게 통사정하는 결과를 가저왔습니다.
* 일본 정부가 친중공 정책을 펴는 데 대해 반대하는 것은 대만 정부가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인데, 일본 내에 그렇게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대만 정부에게는 메시아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 1971.11.7(일) 제3차 순회노정 전 서울,강원 충남 충북 식구들 집회
050-220 장개석 정부를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장개석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한 아들은 일본 여자한테서 낳은 것이요(장위국), 한 아들은 중국 여자에게서 낳았지만(장경국), 그 아들은 소련 여자하고 살고 있습니다. 입장이 전부 다르다구요.
* 그리고 일본을 보게 되면, 지금 기시에 어어 사토 수상이 정권을 잡고 있는데 그들은 형제라구요. 이것을 보게 되면 해와 앞의 가인 아벨과 마찬가지입니다. 두 형제가 주권을 잡고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맞다는 거라구요. 이상하게 됐지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한국은 아담 국가이기 때문에, 거짓 아담과 진짜 아담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김일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가 맞서는 것입니다. 인류의 아버지 입장에서 거짓 아버지가 나오는 동시에, 참아버지가 등장해야 됩니다. 이것이 딱 일직선에 섰습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지금 중국이 유엔에서 축출당했습니다. 이것은 민주세계에 있어서 그들이 사명을 못 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050-222 그러면 일본은 이제 어떻게 되느냐? 일본의 좌우 여하에 따라서 한국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요, 중국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벌써 6년 전부터 일본에 대하여 배후 공작을 해 나왔습니다. 사또 수상에게 국부(국민당 정부)와 더불어 망하더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중국을 지지한다는 성명으로 말미암아 자민당에서 큰 파동이 벌어졌습니다.
외적 세계는 무너지더라도 좋습니다. 외적 세계는 무너지더라도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와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 그리고 중국에 있는 통일교회는 결속되어야 합니다. 이런 때가 와야 되겠기에, 국부가 저렇게 곤궁에 빠지게 될 때에 일본의 식구 120명이 대만 정부 문제를 중심삼고 자유중국을 지지하기 위해 가두에서 일주일 동안 금식 투쟁을 한 것입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중국 문제를 토의할 때에 전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이 4일간 금식 투쟁을 한 것은 역사적으로 유엔사에 남을 수 있는 새로운 일입니다.
▣ 1973.7.23(월) 중앙수련원. 복귀의 목적. 전국교역장 집회.
069-052 장개석이도 내 말을 안 들어서 저렇게 된 것입니다. 작년 1972년 5월에 구보끼를 보내 가지고, "사태가 급하니, 이 두 가지만 단시일 내에, 석 달 이내에 단행하소. 단행하지 않으면 망하오" 했다구요.
그것을 했더라면 절대 안 망해요. 영웅이 됐을 거예요. 영웅. 그렇게 됐더라면 장개석하고 내가 짝자꿍이 될 뻔한 거예요. 그도 내 말을 듣게 되어 있었다구요. 그런데 듣지 않고, 실천 못함으로 말미암아 국제무대에서 채여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5월에 만나기로 약속한 것을 안 만났다구요. 3번씩이나 말을 해줬습니다. 구보끼 시켜서 "중국은 이렇게 해서는 망한다. 두고 봐라" 이렇게 말하게 했어요. 그 일을 해와가 해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천사장을 끌어들이는 데는 아담이 하게 안 됐다구요.
▣ 1970.8.29(토) 부인 전대대원의 책임. 전본부교회.
- 1970.7.20~8.29 하계전도를 마치고 돌아온 부인대원들에게 말씀.
034-110 중국을 보게 되면, 중국을 지배하는 이들은 장개석의 아들들입니다. 장경국이는 정치 분야를, 정위국이는 군사 분야를 책임졌습니다. 이렇게 형제가 중국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두 형제가 문제입니다.
일본도 佐藤 首相과 岸 首相이 兄弟間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왜 그러냐?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한국도 가인 아벨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 중심과 외적 중심이 하나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 정부와 통일교회가 하나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 1973.7.1(일) 벨베디아. 미국에 있어서의 3년과 오늘.
067-254 자유중국이 선생님의 말을 들었으면 유엔에서 절대 축출 안 당하는 거라구요. 안 당하게 돼 있다구요. 내가 위험을 각오하고, 장개석 총통에게 그런 일까지 충고했던 거예요. 장개석 총통한테 직접…. 누구를 통해서? 구보끼를 통해서 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선생님이 직접 할 수는 없었어요. 아담의 입장에 있는 선생님이 아시아적 천사장 국가인 중국을 직접 대할 수는 없는 거예요. 해와를 통해야 된다구요.
4. 5억 달러 이상의 배상금 면제를 장개석이 추진한 것입니다. 일본이 장개석의 협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 1970.3.23(월) 전본부교회. 777가정 축복대상자 1차수련
030-216 일본은 사탄세계의 공격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지만, 협조를 받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은 망하고 난 후에 누구의 협조를 받았느냐 하면, 장개석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5억 달러 이상의 배상금 면제를 장개석이 추진한 것입니다. 일본이 장개석의 협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중국이 천사장적 사명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망하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일본은 그 은덕을 갚아야 됩니다.
※ WACL세계반공대회
▣ 1993.10.8(금) 종족적 메시아는 예수님의 대신자. 제주국제연수원.
- 일본여성 수련.
249-087 일본도 그렇습니다.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구요. 러일전쟁을 어느 쪽이 일으켰어요? 청일전쟁은? 대동안전쟁은? 악마의 입장입니다. 치고 결국 최후에는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써 변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4대 국가가 회의해서 일본열도를 분할하자는 말을 했는데, 그것을 누가 방비해 주었느냐? 장개석입니다. 장개석은 일본을 구해 주는 하늘편의 천사장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방비해 주지 않았으면 일본은 어떻게 돼요? 4대국의 분할 관리 하에 들어간다구요.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도 어느 나라의 포로로서 전부 고용되어 지금 무엇을 하느지 모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5. 중공을 유엔에 가입시키자고 한 것이 닉슨 案입니다. 그리하여 유엔의 토양에 공산권이 침투하는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일본의 다나카 수상은 恩人 장개석을 쳐 버렸다구요.
▣ 1994.3.15(화) 중앙수련원. 일본어 번역.
- 일본여성수련.
257-177 장개석은 아시아의 천사장이라구요. 에덴동산에서는 천사장이 해와를 죽였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구했다구요. 알았어요? 손해 변제를 지불하지 않도록 만든 사람이 장개석입니다.
* 그 사람이 일본을 구했다구요. 그럼에도 중공과 대만이 싸울 때 이것이 가인 아벨로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 일본은 장개석을 도와야 하는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지하는 데에 미국과 발을 맞추었습니다. 田中 수상 말입니다. 닉슨이 중공과 친해지자고 그랬습니다. 중공을 유엔에 가입시키자고 한 것이 닉슨 안입니다. 그리하여 유엔의 토양에 공산권이 침투하는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그 닉슨이 중국에 갈 때, 질 수 없다 해 가지고, 거기에 보조를 맞춰서 뛰어든 사람이 田中였습니다. 그리하여 恩人 장개석을 쳐 버렸다구요. 그때문에 田中는 비참한 운명이 되어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병들었지요? 죽었나요? 아, 그래, 언제? (최근, 작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