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동 교수
▣ 1969.10.18(토) 대구교회. 체휼적인 신앙인.
026-069 이번에 서남동 교수가 원리를 이렇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초교파 운동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이 초교파 운동에 많은 돈을 썼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 운동을 지금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 1969.12.3(수) 구리시 통일산업. 새 출발을 위한 요건.
- 지구장 회의.
027-134 서남동 교수가 새문안 교회에서 강연한 이후 통일교회는 도저히 없앨 수 없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어졌고 공포를 느끼는 무리들까지 생겼다.
우리 초교파 운동에 기성교회 지도자들도 관심도가 높아졌다. 이에 대 기성교회 활동과 대학생 운동을 활발히 전개해야겠다.
▣ 1970.8.12(수) 부산 동명장 여관. 하늘의 작전.
- 전국 지구장 수양회 폐회식.
033-199 일전에 서남동 교수가 우리 통일교회에 대해 말한 내용 즉 부활의 문제라든가 영적인 세계의 문제 등을 묶어 책을 만들어 전국의 교계에 전부 나누어 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우리를 반대하는 기성교인이 반대할 기력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033-203 우리가 연세대학을 요리하기 위해서 서남동 교수를 요리해야 하고 다음에는 박대선 총장을 요리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1970.11.8(일) 전본부교회. 우리의 때.
036-028 요전에 서남동 교수가 통일교회는 혁명적인 내용이 없고 정치적인 내용이 없다고 하는 평을 했습니다. 이걸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주먹을 가지고 싸우는 것보다는 새 것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던 것이 아니라 새 것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 1970.12.6(일) 전본부교회. 시기와 사명.
036-266 서남동 교수는 통일교회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앙단체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우리는 하늘땅이 낳은 세계적인 교회입니다. 또 선생님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인물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이면 지금까지 한국에서 욕을 먹었을까요? 한국말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지금도 한ㄱ구의 교회가 선생님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나라가 있어요, 친척이 있어요? 전부 다 선생님을 원수시했고 쫓아버리려고 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안 도와주면 자기들이 망하겠으니까 할 수 없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 1970.12.27(일) 전본부교회. 뜻과 나.
037-233 봄철이 되면 개구리가 울기 마련입니다. 이때 울지 말라고 아무리 제사를 올려 봐요. 울지 않나.
* 개구리에게 아무리 울지 말라고 아무리 협박을 하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끊임없이 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울 때가 되었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때가 되었으니까 서남동 씨가 연결이 된 것입니다. 서남동 씨가 왔으니까 이제 서북동 씨만 나오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서쪽 남쪽 동쪽이 우리 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 이름도 계시적인 이름을 가졌으니까 그런 사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 1971.1.1(금) 통일기반 확보. 전본부교회.
- 참하나님의 날.
038-031 우리가 1960년대에 대학가를 복귀하기 위해서 주력했을 때 건국대학과 연세대학이 극성맞게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재미있는 것은 연세대학교 서남동 학장을 중심 삼은 사건이라든가 건국대학교의 동태를 보면 재봉춘 시대가 온 것이 여실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은 가인 교단과 아벨 교단이 안팎으로 하나된 기준을 형성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 1971.1.3(일) 예수님 탄신일 특별식. 예수를 중심한 섭리와 우리의 사명.
- 마 2:1~21
- 서울시내 중심 식구 연합예수님 탄신 경축 예배.
038-114 1970년대 종교계에서 최고의 뉴스가 뭐였느냐? 종교협의회를 중심 삼고 이재석 목사와 박양운 신부가 손을 잡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대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
* 그렇게 반대하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인 서남동 교수가 어떻게 걸려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늘의 역사라구요. 건국대학교도 그렇게 악착같이 반대하여 제일 염려했는데 이젠 제일 희망적인 대학이 되었다 이겁니다. 1970년도에 연세대학교 서남동 교수가 이런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통일교회에 협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 지금 때가 묘한 때가 아니냐 이겁니다.
▶ 죽재 서남동(徐南同, 1918년 7월 5일 ~ 1984년 7월 19일)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자 민중신학 선구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의 개신교 집안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계열 학교인 목포 영흥학교와 전주 신흥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36년 일본 도시샤 대학교 신학부에 진학했다.
1953년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의 초빙으로 신학 교수가 되었으며 캐나다의 진보적 개신교 교회인 캐나다 연합교회의 지원을 받아 토론토 대학교의 엠마누엘 칼리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귀국 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세계 신학을 한국교회에 알리는 세계 신학의 안테나 역할을 했으며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편에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유신독재에 저항했다. 그래서 박정희 군부정권의 탄압으로 해직당하기도 했다.
▶ 기독교와 통일교에 대해서. 출처 - 젊은 종교학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본 통일교 논문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장이자 연합신학대학원장이던 서남동 교수는 1969년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한국 기독교의 소종파 운동이라는 주제의 신학 강연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원리강론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신학서라는 내용이다.
또 기독교와 통일교 간의 대화를 추진한 바 있는 고 강원룡 목사는 통일교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일교와 개신교는 성경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하던 기존 교단과는 다른 견해였다."라고 말하였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통일교에 대해 본격적인 신학적 연구를 시작하였다.
1969년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 주최의 신학 공개강좌(주제 : "한국 기독교의 소종파 연구")
1970년 서울대 문리대 학림제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개토론회(주제 : "현대 신학과 신흥종교")는 통일교에 대한 신학자들의 입장을 드러내는 좋은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 공개강좌에서 서남동 교수는 통일교의《원리강론》에 대해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반면 한철하 교수를 비롯한 상당수의 신학자들은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였다. 특히 서남동 교수와 한철하 교수의 통일교에 대한 견해 차이는〈조선일보〉와〈월간중앙〉을 통해 지상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 1968.9.9.-10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리강론은 현세의 모든 지성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위대한 환상과 지혜를 제공하는 훌륭한 신학서적이다. 통일교회 원리는 종교적 상상력과 독창성에 있어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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