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1.28.~10.10. 제1차 세계 40개국 순회 노정 출발. 120곳 성지 책정.
* 1965.1.28. ~ 2.12. 일본 체류 8곳 성지.
* 1965.9.29.~10.10. 일본 체류 귀국.
* 1965.6.25. 아이젠하워 미국 전 대통령 會見.
▶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1890년 10월 14일 ~ 1969년 3월 28일. 79세
- 1915년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였다. 웨스트포인트 졸업 성적은 평범했다. 졸업생 선배들 중 수석을 차지한 사람이 더글러스 맥아더였다.
- 1928년 육군 대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맥아더 군사 고문의 보좌관으로서 필리핀 방위 강화에 참가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그는 유럽에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일했으며, 1944-1945년에는 서부 전선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지역 공격에 대한 책임을 맡아 공격을 계획하고 감독했다.
- 1951년에 그는 첫 번째 나토 사령관이 되었다. 애칭은 아이크(Ike)다.
- 1953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의 34번째 대통령 (1953.1.20.~1961.1.20.)을 지냈다. 전임인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 당시 발생한 한국 전쟁을 종결시켰다.
- 1948년 퇴역한 후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을 거쳤다.
-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현역으로 소환되어 한국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미국 극동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과 노골적으로 갈등하게 되면서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를 견제할 목적으로 그를 직간접적으로 후원하였다. 그 뒤 맥아더가 만주 폭격을 시도하자 트루먼은 맥아더를 원수직에서 해임하고 아이젠하워에게 한국 주둔 미군을 관리하도록 한다.
- 1952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오랜 민주당 대통령 시대를 20년 만에 마감하였다.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1953년 그는 육군 원수직에서 스스로 사퇴하였다.
- 1953년 그는 한국전쟁 휴전 조약을 이끌어 냈다. 이는 그의 선거 공약으로 선거 운동 당시
한국 전쟁의 장기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제가 대한민국에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실제로 당선 직후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 아이젠하워는 1960년 6월 8일 신임 주미 한국 대사 정일권의 신임장 제정에 즈음하여 4·19 혁명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동 국민은 한국을 계속 지지할 것이며 한국의 독립을 보전하겠다는 엄숙한 언약을 고수할 것이다"라고 확언. 미국은 "모든 국가와 인민들을 위한 자유와 정의에 입각한 영구적인 평화를 수립하고자 공동 노력함에 있어 우의에 찬 협조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부언하였다.
-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기는 "공산군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황폐화된 대한민국이 현저히 부흥되어 가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하여 한국을 앞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1960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였다. 1960년의 방문은 미국의 대통령 신분으로는 최초의 방문이었다.
▣ 1959.12.20(일) 전본부교회. 가야 할 우리들.
008-196 지금 이 세계를 보면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제34대. 재임 1953.1.20-1961.1.20)이나 소련의 흐루시초프(소비에트연방 국가원수 겸 공산당 서기장 1953년 9월 14일 ~ 1964년 10월 14일)에 의해 좌우되고 있습니다.
1. 종교와 정치 일체
▣ 1965.10.3(일) 동경교회.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돼라.
- 주일밤 화동회.
015-139 선생님은 미국에 가서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과 만나 말했다. " 당신은 그 미국의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 회교를 중심으로 통일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그것과 연결하여 아랍 민족을 종교 전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머리가 좋은 소련의 정책가가 생각한 일이다.
2. 세계 종교 협회.
1) 세계 통일을 위해서는 종교를 요리할 실력이 있어야 된다.
▣ 1971.9.12(일) 전본부교회. 통일의 요인과 방안.
048-165 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이 1950년대에 잘못했다고 들이 조였어요. 역사적으로 그것을 쭉 비판해 가지고 "그렇소, 안 그렇소?" 하니 "당신, 그때에 대한민국에 있어서?" 그러더라구요.
닉슨 대통령도 지금 생각해야 할 문제지만 앞으로 세계적인 정치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종교를 요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고는 세계를 통일 못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종교를 요리하겠다고 하는 세계의 대표적인 기수인 이 통일교회 문 선생은 둘째 되라면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계 종교를 한번 통일해 보자. 그러려면 먼저 기독교 통일 작전을 하자, 그러는 거예요.
2) 각 나라의 종교 지도자를 모아 종교 협회를 만들자.
▣ 1965.10.3(일) 동경교회. 하나님의 참된 아들딸이 돼라.
015-140 제2차 대전 후에 선생님은 "공산주의는 종교의 적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빨리 세계를 원조하는 돈을 갖고 각 나라의 종교 지도자들을 모아 종교협회를 만들자"고 제일 강하게 주창했다.
3) 종교 단체를 중심한 세계 복지화 운동.
▣ 1970.7.28(화) 고생과 실적. 전본부교회.
-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식 후 "생사의 한계"란 제목으로 말씀하신 후 말씀.
033-012 뜻적으로 보면 현재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는 천군 천사 철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무엇으로 우리를 구해 줍니까? 그들이 무엇을 믿고 우리를 구해 줍니까? 미국을 좋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휴전을 반대했었습니다. 내가 이 박사 입장이라면 절대 휴전을 안 했을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휴전은 안 합니다. 설령 휴전을 하더라도 또 북벌하자는 주의입니다. 이 박사가 크게 나가다가 왜 양보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서 후퇴하게 안 되어 있었거든요. 후퇴를 하더라도 남한 각지의 파괴된 것을 복구해 달라고라도 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미국의 전 대통령 아이젠하워를 직접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세계 문제에 대해서 실패한 것이 있소."라고. 그 첫째가 무엇이냐 하면 2차 대전 직후에 미국이 펴야 할 정책은 종교 단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세계 복지화 운동을 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한 10억 불 정도 투입해서 세계 복지화 기금을 만들었다면 아랍권에 공산화될 수 없었고 선생님 말대로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안 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문제입니다.
▣ 1972.3.10(금) 버클리 클래어몬트 호텔.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 세계.
- 미국 7대 도시 순회 공개 강연.
054-050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에게 "종교의 원수는 공산당이니 세계 4대 종교권 내에 수십억의 자원을 투자해 가지고 세계 종교권을 만들어 여기에 경제력을 투자해 복지건설을 하는 입장에서 세계의 종교, 종교 국가를 규합하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인이 합하지 않으면 공산당한테 전부 다 깨져 나갈 때가 목전에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라든가 모든 종교를 합해 가지고 공산세계의 이론을 능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서 이론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종교가 머리를 짜내야 되고 힘을 합해야 되고 모든 것을 동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4) 1959년 3월 달라이 라마 사건이 기회였다.
▣ 1977.3.31(목) 벨베디아. 단체 생활과 우리.
092-133 내가 1965년도에 아이젠하워를 만나 가지고 한 말이 "당신이 집권 당시에 수십억 달러의 돈을 투입해 모슬렘, 회회교하고 천주교하고 기독교 불교 유교하고 규합시키는 운동을 했으면 세계 공산당은 멋지게 막아 낼 수 있었을 텐데 왜 못 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얘기한 게 그거라구요.
그때 달라이 라마 사건이 종교를 탄압한다고 할 수 있는 좋은 찬스였어요. 몇 십억 불만 투입했으면 완전히 복지화 운동을 했으면 완전히 공산주의를 종교의 원수라고 하고 공산주의의 세계적인 대세를 완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종교인들이 민주세계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기준만 만들었으면 오늘날 이 기독교도 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 1971.11.7(일) 중앙 수련원. 섭리 역사의 중심과 조국.
- 제3차 세계 순회 떠나시기 전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식구 특별집회.
050-224 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을 때 달라이 라마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1959년도에 티베트에서 중공의 침공으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 국경을 넘었던 세계적인 사건(1959년 3월)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하늘이 민주 세계에 있어서 이 땅을 중심 삼고 종교를 규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때에 10억, 수십억 달러 같으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푼돈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중심 삼고 종교의 원수는 공산당이라는 테마를 내걸어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를 묶었더라면 오늘날 민주 세계가 이렇게 파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겁니다.
▣ 1972.2.13(일) 볼티모어 가우쳐 대학 강당.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 세계.
- 미국 7대 도시 순회강연.
053-132 1965년도에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앞으로 민주세계가 공산세계를 이기더라도 공산세계가 모슬렘과 손을 잡고 나올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소련이 인도를 중심 삼고 이집트라든가 회회교권과 손잡고 남방 작전을 해 나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미국이 후퇴하는 자리를 차지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탄 편, 악한 편은 그렇게 하나되어 가지고 민주 세계를 삼키려고 하고 있는데 민주 세계는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고 있다는 거예요.
▣ 1966.6.19(일) 전 본부교회. 제4회 참만물의 날.
016-241 지난번에 미국에 갔을 때 선생님은 아이젠 하워 전 대통령에게 3대 조건을 실천하라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 그리고 사상적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5분간의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분이 더 지났습니다. 가겠다고 하니까 그는 아쉬워하면서 2층으로 다시 데리고 가 자기의 생활관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일생일대에 잊지 못할 기념품을 주었습니다. 또한 처칠, 스탈린과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했다는 것 등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게 되면서 중국은 티베트와 타이완을 포함한 중국의 옛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발표한다.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 1951년 5월 23일 티베트와 십칠조 협의를 체결하여 강제 합병하였다. 이로써 티베트는 최초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많은 티베트인들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인에 대한 고문과 학살로써 티베트를 지배하였고 1960년대에는 중국 전역을 강타한 문화 대혁명의 여파로 3,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 1959년 3월 티베트에서 반(反) 중국 반란이 일어나 총 12만여 명에 달하는 티베트인들이 학살되고 중국군에 의해 6,000여 개의 불교사원이 파괴되자 국제적 지원과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인도로 망명하였다.
3. 맥아더 원수를 해임.
▣ 1970.7.28(화) 고생과 실적. 전본부교회.
-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식 후 "생사의 한계"란 제목으로 말씀하신 후 말씀.
033-012 그다음에 맥아더 원수를 해임했던 일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4. 대한민국 지원
▣ 1969.1.26(일) 전본부교회. 하늘을 사랑하자.
022-100 선생님이 1965년도에 미국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단독적으로 만났을 때도 "대한민국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미국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놓고 경제적 정치적 국가적인 측면에서 선생님의 견해를 말해 주었습니다. 또 월남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여러 의견도 교환했습니다.
▣ 1969.11.10(월) 자녀가 가야 할 길. 전본부교회.
- 제10회 참자녀의 날.
026-293 민주주의의 세계를 지도하는 미국은 자국 국비의 3분의 2를 다른 나라를 위해서 써야 됩니다. 국비의 3분의 2를 외국을 위하여 쓸 때 미국은 역사에 남아지게 됩니다.
* 자기 나라만을 위하여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나기 나라의 경제 부흥만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착취해 가는 나라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고 거기에 덧붙여서 장사를 해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 원조를 해 주고도 욕먹는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이 원조를 해 준 것이 언제부터냐?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시작해서 트루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까지 해 나왔습니다. 이것을 계대로 보면 4대입니다. 여기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일 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이 닉슨 시대에는 세계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되는 날에는 얻어맞습니다. 역사적인 오점을 남기는 거예요.
5. 휴전협정을 맺은 것은 역사적 오류다.
▣ 1968.3.31(일) 형제의 애. 전본부교회.
- 구 단위 10개 교회 분할. 책임자와 활동 요원 선정 후 파송 전날 환송예배.
020-027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1953년에 한국 휴전시킨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한 시간 이상의 토의를 했습니다.
▣ 1971.11.7(일) 중앙 수련원. 섭리 역사의 중심과 조국.
- 제3차 세계 순회 떠나시기 전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식구 특별집회.
050-224 "본래는 한국이 휴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봐라. 지금 남침을 기도할 수 있는 제2의 공포 분위기를 다시 맞게 되지 않았느냐? 그때 끝까지 밀어내야 될 것이었다. 휴전협정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했더니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다신 그때 한국에 있었소?" 그래요. 그래서 "있었다"고 했어요.
▣ 1972.2.4(금) 링컨센터.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이상 세계.
- 미국 7대 도시 순회강연.
053-019 나는 1965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때 내가 "당신이 한국동란에서 휴전한 것은 잘한 것 같이 생각하겠지만 "역사적인 오류誤謬요" 하고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공산당을 믿느냐? 공산당은 말과 행동이 다른 무리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동과 말이 다르다구요.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 1979.10.14(일) 벨베디아. 선의 판도.
105-162 선생님의 해방과 더불어 김일성이는 망하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연장시킨 것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한 휴전협정입니다. 휴전협정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대신 민주 세계가 모가지 끌려간다구요.
* 다음 선거에 카터가 당선되어 연장되는 날에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케네디하고 싸우고 있지만 케네디도 리버럴(자유주의) 파입니다. 하버드 대학을 중심 삼은 배경이 전부 다 케네디가의 배경 아니에요? 그래서 이 기독교인들이 단결해야 됩니다.
▣ 1989.10.30(월) 본부교회. 제30회 참자녀의 날.
194-338 남북이 갈라져 싸우는 한국동란은 조국광복을 위한, 하늘나라의 왕권을 세우기 위한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젠 하워, "아, 이젠 하시옵소서"인데 아이젠하워, 이 사람이 잘못했어요.
"이놈의 자식, 휴전이 뭐야! 휴전은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3년만 기다렸다가 미국 젊은이한테 통일교회 교리를 가르치는 일만 하면 틀림없이 남북을 통일해 버리겠다. 3년만 나에게 맡겨라. 미국을 해방시켜 주마" 했는데 ···.
6. 아이젠 하워 대통령 축복.
▣ 1998.8.17(월) 코디악. 순결 강사 특별연수.
295-064 그런 세계사적인 판도가 벌어지는 그 순간이 6월 13일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까지 해서 34명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거기에 하나 빠진 것이 아이젠 하워 대통령입니다. 그도 축복해 주었습니다. 김일성도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런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천만년 한의 고개에서 원한의 원흉이 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을 해방해 준 부모님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것이냐? 성인들의 몇십 배를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 1999.4.25(일) 본부교회. 하늘을 위로하자.
301-156 선생님이 축복해 준 34인 가운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김일성까지 들어갑니다. 훌륭한 양반인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들어갑니다.
그 양반이 나를 만나고 난 다음에 훈시를 했어요. 그 재단의 학교에 훈시가 있어요. "미국은 문 총재를 연구해야 된다"는 그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닉슨이니 일본의 수상들, 후쿠다 수상이니 기시니 다나카가 들어갑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니 이 대통령이니 선생님 시대에 모든 관계됐던 사람들이 다 들어갑니다. 원수들이에요. 원수. 박마리아 가정. 지옥 밑창에 가서 입이 붙어서 말 못 하는 것을 해방해 주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사건이 안 났으면 문 총재가 고생을 안 해요.
▣ 1999.7.2(금) 이스트 가든. 정신없이 발로 뛰어라.
- 지도자 회의.
302-308 원래 마르크스나 스탈린이니 2차 대전의 괴수들은 제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사 시대에 그 미친 영향이 크고 종교권과 반대되는 관계, 그렇게 된 결과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 종교를 넘어서 지옥까지도 관계를 연결하여 모든 전부를 해결해야 할 것이 선생님의 책임이기 때문에 이 전체의 전모를 드러내지 않고는 그걸 용서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로부터 박 마리아, 김활란까지 통일교회 반대하던 사람들, 지금까지 세계 핍박 시대에 처해 있는 모든 나라들, 선생님과 관계된 일본과 미국, 아이젠하워와 닉슨. 모세가 빠졌다구요. 섭리사의 중요한 인물이니 다 집어넣은 것입니다.
* 그래서 성인과 살인마들을 같이 축복하는 것은 하늘땅에 맺힌 모든 구덩이를 메우고 높았던 산을 헐어 혜택을 줘서 평준화시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