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흰머리와 염색

true2020 2014. 5. 3. 12:02

흰머리와 염색

 

40을 넘어 이제 나이를 쪼끔 먹으니 넘으면서 흰머리가 갑자기 늘었다.

빠지는 것보다는 낫으려니 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염색을 하라고 여간 극성이 아니다.

 

아직 취위가 가시지 않은 늦겨울 따스한 어느날  애기를 데리고 공원에 나갔다가 나이 지긋한,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손주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느냐고 묻길래, 순간적인 충격 가운데 금방 뭐라 말이 안 나왔다.

딸이라고 답을 했지만, 기분은 엉망이었다.

머리 속에서는 한동안 그 할아버지의 얼굴과 내 얼굴이 겹친다.

인사차 서로 한 말이라고 하지만, 설마 당신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하는 맘이었다.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던 날들이 갑자기 바뀌었다.

매일 거울을 보고 늘어나는 흰머리에 근심도 같이 늘어난다. 

언젠가 딸 친구들이 네 할아버지가 왔다라며 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염색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염색약에서 나오는 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고약스럽기도 하다. 

놋그릇에 담긴 까만 염색약은 두피까지도 상하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염색약을 생각하면 그때의 그 역한 냄새가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또 흰머리가 인생의 관록을 상징하는 것이고, 어리게 보이는 童顔인 탓에 나이들게 보이고 싶은 때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염색은 죽을 때까지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고집을 부리고, 애썼는데,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나 보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2014년 4월 30일 올해들어 처음으로 집 앞 논에서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던 날이다. 개굴개굴. 오케스트라의 하모니 그 자체다. 사랑을 찾는 울부짖음인가!

그날도 난 염색은 하지 않으니 염색약은 사지 말라고 했건만, 본래 얼마인데 오늘만 얼마 싸게 판다고 하며 결국 사 왔다.

냄새도 없고, 간단히 빗질만 하면 된단다.  

처음으로 아내가 사온 염색약을 목욕탕에 앉아 귀 옆에 드물게 난 흰머리에 발랐다. 

죽을 때까지 염색만은 하지 않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결심이 깨지는 날이기도 하다.

 

듬성등성이지만 막상 센머리에 염색을 하고 보니 그동안 센머리 때문에 밖에서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근심걱정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웠나 할 정도로 머리 색깔이 변했다. 거울을 보고 신기하다.

옛날 느꼈던 메스꺼운 냄새도 없다. 머리결도 뻣뻣해지지도 않는다.

딸아이 한테도 조금은 젊은 아빠가 되는 성싶다, 

아내에게도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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