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Francisco Xavier

true2020 2011. 1. 22. 16:06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506 4 7 ~ 1552 11 2일)

- 스페인어: Francisco Xavier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 바스크어: Frantzisko Xabier 프란치스코 샤비에르

- 일본어 ザビエル

 

* 인도 일본에서 전도한 예수회 선교사이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인이다. 축일 12 3이다.

 

▶ 신학 수업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 나바라 왕국(현재 에스파냐 바스크)에서 고위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바라 왕국을 지배하려는 프랑스 에스파냐 간의 전쟁 (1512년 ~ 1524)에서 에스파냐 승리하면서 그의 집안은 몰락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하급 귀족이 되었고 형들도 몰락한 왕국의 군인 출신이 되어 어려운 생활을 했다.

 

하비에르는9세 때 로마 가톨릭 교회 사제인 미켈 신부로부터 세례 받았으며 프란체스코라는 세례명 받았다.

 

미켈 신부로부터 신학 수업에 필요한 헬라어 라틴어 문학과 문법 배운 하비에르 소년은 이들 언어로 가톨릭 문헌을 읽을 있었고 덕분에 신학 깊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파리대학교 바르브 학교(1530 입학) 학생 시절 이냐시오 로욜라 알게 그는 예수회 창립 일원이 되었다.

 

성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하비에르는 사제서품 받아 "하느님의" 하게 되었다.

 

인도에서의 선교활동.

 

하비에르 신부는 1542 5 6 인도 고아 도착하여 가톨릭 교리 해설서와 성가를 현지 말로 번역하는 활발한 전교 활동을 했으며 교회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고아 대학교 설립하였다.

 

일본에서의 선교활동

 

포르투갈 사람인 알파로스 선장을 통해 사쓰마 태생의 일본인 武士 야지로를 알게 하비에르는 야지로(바오로 산타후에), 야지로의 동생 (요한네스), 야지로의 부하 (안토니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 1548 3 성령 강림 주일에 세례 받게 하였다.

 

야지로가 포르투칼 말을 잘하게 되자 하비에르는 1549 8 15 야지로를 포함한 7명의 일행 (로마 가톨릭 사제, 수도사, 중국인 봉사자 )들과 일본 최남단 鹿児島県에서 전도하기 시작했다.

 

1549 9 29 하비에르 일행은 大名 島津 초대로 그의 성에 갔는데 大名는 전도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 종교의 자유 인정하였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하비에르 신부는예수의 이라는 기독교 책을 일본어 발간했다.

 

당시 하비에르의 기록을 보면 그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당시 일본 문화가 어떠했는지 있다.

 

"일본 사람들은 대단히 예의가 바른 사람들인데 사는 것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기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서 남자는 14세가 되면 항상 옆에 차고 다닙니다. 侍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무기를 항상 갖고 다니며 大名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비에르 신부는《공교 요리》(公敎要理)라는 기독교 교리 해설서를 쓰기도 했는데 이를 읽고 감명받은 베르나르도라는 무사가 하비에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하비에르 신부는 베르나르도를 일본 교회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예수회 가입시켰으며 로마 보내 신학 공부도 하게 했다. 얼마 후에는 미켈이라는 농부를 포함한 15명이 신자가 되었으며 1년간의 전도로1백 명에서 신자가 되었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의 반발로 島津 大名 기독교 대해 차가운 모습을 보이자 야지로에게 교인들을 맡기고 京都 가기로 했다.

 

1551 하비에르 신부는 히라도 山口県 거쳐 京都 갔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 하고 다시 山口 되돌아갔다. 오우치 大名 기독교가 서양 새로운 문화 받아들일 있는 통로가 것으로 판단, 대도사라는 교회 내줄 정도로 하비에르의 전도 활동을 도와주었다.

 

山口에서 5개월간 전도한 하비에르는 중국에서의 전도를 위해 1551 중국에 갔지만 입국하지 못하고 이듬해 11 27 광둥 앞의 上川島에서 열병으로 별세하였다.

 

하비에르가 전도 활동을 鹿児島 山口에는 하비에르 기념 교회가 있다. 山口 하비에르 기념 교회는 1952 세계 로마 가톨릭교도들의 건축헌금으로 세워진 교회로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鹿児島 하비에르 상륙 기념 교회는 1908 세워졌으나 2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어 1949 당시 교황 비오 12 기부금으로 재건되었다. 건축양식은 고딕 양식이다. 1622년 3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모든 선교사 수호 성인이다.

 

바오로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을 기독교 입교시켰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