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 감사 불평 시련

시련에 대해서

true2020 2023. 10. 26. 18:50

  試鍊의 사전적 의미-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 의지나 사람됨을 시험하여 봄

 

▣ 1959.8.9(일) 하나님의 경주장에 선 인간들. 전본부교회. 

007-134 연단하려면 편안한 자리에서 안 됩니다. 연단이라는 것은 들이침을 받는 자리에서 되어집니다. 이러한 내적 준비의 수련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들이칠지라도 이것을 쳐부수고 나갈 수 있는 내 몸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적 결심도 변할 수 없거니와 이 몸이 뒤넘이치는 시련이 부딪쳐 온다 할지라도 거기에 져서는 안 됩니다.

 

* 우리들은 이런 경주 마당에서 하나의 종목을 택해 달려야 할 하나의 경주자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변치 않는 신념을 갖고 연단해야 합니다. 

 

* 자나 깨나 그 목표를 정복하기 위한 결의에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일본의 명도를 만드는 데도 두드리는 법이 있다.

 

▣ 1965.1.31(일) 예수의 최후와 우리의 각오. 동경교회. 

015-035 일본의 명도를 만드는 데도 두드리는 법이 있다. 오직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천주 정신을 주입하고 천지의 힘을 합하여 해머로 때린다.  

 

◑ 시련은 사랑의 채찍

 

▣ 1994.5.19(목) 구원 섭리의 완성은 가정에서부터. 중앙수련원. 

280-246 사랑의 채찍은 고마운 것입니다. 도리어 씨가 된다는 거예요, 씨가. 겨울에 추운 것은 전부 다 연륜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강한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열대지방의 나무는 연륜이 없어요. 알겠어요? 사람은 시련이 필요한 거라구요. 알 싸, 모를 싸?   

 

1) 모든 시련은 우리 자체의 가치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 시련 도상에서 부딪쳐 가지고 남아지느냐, 없어지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가치가 결정된다

 

▣ 1969.12.14(일) 작금의 우리의 가치. 전본부교회. 

027-180 우리에게 부딪쳐 오고 가로놓이는 모든 시련은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의 가치를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 우리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느냐? 

 

* 시련 도상에서 부딪쳐 가지고 남아지느냐, 없어지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가치가 결정된다는 곳입니다. 사람이 크게 성공하려면 그 성공에 비례하는 시련이 따르는 것입니다.  

 

2) 주체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 연단시키고 훈련시킨 것이다. 

 

▣ 1971.4.4(일) 환희의 봄. 전본부교회. 

042-313  부딪쳐 오는 사방의 어려운 사회상을 바라보게 될 떼 거기에 부딪쳐 가지고 스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타개하고 전진의 일로를 가해 갈 수 있는 자체를 하나님은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현 사회에 휘말려서 스스로를 수습하지 못하는 자세가 아니라 현 사회 환경을 타개해 버리고, 일소해 버리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걸어온 그 역사적인 수난길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대 사회, 대 국가, 대 세계에 남아진 수난길을 대비해 가지고 그 이상의 수난의 길을 가져다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수난의 구렁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 세계를 타파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 연단시키고 훈련시킨 것입니다. 수난길은 그런 한 기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042-315 우리는 그런 수난 가운데서 좌절될 것이 아니라 내일의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다짐된 그 소망을 가지고, 결의된 그 마음을 가지고 어떤 환경의 침식을 받을 것이 아니라, 침해를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격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난 기간을 새로운 개척의 역량을 키우고 자제력을 키우고 환경을 훕수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련은 우리가 자국민을 넘어서 이국민의 시련 무대에 나서게 될 때 우리에게 가중된 시련이 있을까 염려하셔서 그 시련 무대에서 쓰러지지 않는 무리를 만들기 위해서 치열한 수난의 과정을 통하여 훈련시킨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그 시련은 봄은 맞이하기 위한 시련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일의 소망 앞에 강하고 담대한 자세를 가지고 나가오는 시련을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갈 때 다가오는 시련은 강한 시련, 큰 시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작은 시련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3)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다. 

 

 1987.2.3(화)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다. 미국 세계선교본부. 

- 참부모님 탄신일. 

 

161-182 밝은 날이, 밝은 태양이 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치 않는 흐린 날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걸어 나온 역사 시대를 두고 보면 태양은 갖고 있었지만 구름 낀 날이 많았다 이겁니다. 구름뿐만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고 태풍이 부는 그런 날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의 일생에 있어서 태풍이 부는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마 세상의 역사 시대의 기후 가운데 나타난 이상현상, 이상기후현상 이상의 태풍이라 할까, 모진 바람이 불어 쳤다고 보는 거예요. 

 

*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 시대를 보면 이 구름이 있었다 이거예요. 이 악마의 구름, 검은 구름이 끼어 가지고 전부 다 방해해서 태양빛을 못 내게 하고 그 빛을 따라 사는 모든 통일교회의 무리를 전부 다 수렁에 박아 넣기 위한 역사를 거쳐왔다는 거예요.

 

*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에게 과거의 핍박과 시련을 어떻게 참아냈느냐고 물어보면 신앙의 빛을 가진 사람, 신앙의 힘을 가진 사람만이 극복할 수 있었다는 대답이 나옵니다. 아무리 태풍이 몰아쳐도 아무리 태풍이 불어오고 어려운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거쳐갈 뿐이지 끝에는 반드시 광명한 태양빛을 맞을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오는 것이다! 그런 실력을 가진 자만이 남아졌다 이겁니다.   

 

161-187 그렇지만 우리는 말예요, 핍박이 올 줄 알고 사는 사람이니까 핍박해라 이겁니다. 핍박해라 이거예요. 핍박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핍박 오기를 바라고 그걸 맞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너희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지만 앞으로 전부 다 굴복할 것이 뻔해! 너희들의 때는 끝이 보여." 이러면서 그것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들이라구요. 얼마나 자신만만한 표정이에요. 

 

161-198 그래서 오늘 68세를 맞으면서 이제는 모든 고개를 다 넘고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이것이 전부 다 하늘이 보다 더 귀한 것을 갖다 주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거예요. 보다 더 큰 것, 보다 더 귀중한 것, 보다 무한한 것을 갖다 주기 위한, 축복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길이었더라 이겁니다. 

 

* 내가 자리잡은 것은 그야말로 이와 같은 수난길을 통해서 다져진, 사탄이 점령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아다가 우리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하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아무 뜻 없는 시련은 없습니다. 참아버님 자서전 107 

104  1946년 8월 11일 나는 남한에서 올라온 스파이라는 죄명을 쓰고 평양 대동 보안서로 끌려갔습니다. 이승만이 이북 정권에 욕심을 내고 북한에 밀파한 첩자라고 옭아맸습니다. 소련 조사관까지 나서서 나를 심판했지만 죄가 없는 걸 어쩌겠습니까. 결국 석 달 만에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문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러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지만 교회 식구들이 거둬주었습니다..

 

* 기성교회 목사 80명이 경찰서에 투서.

* 1948년 2월 22일 나는 이승만의 스파이자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협의로 또다시 공산당에게 잡혀갔습니다. 쇠고랑을 차고 끌려간 지 사흘 만에 머리를 깎이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 1948년 4월 7일 공판(구금 40일만) 5년 형

* 1948년 5월 20일 함경남도 흥남 본궁 특별노무자 수용소에 이송

* 1948년 6월 21일 함경남도 흥남 덕리 특별 노무자 수용소에 이감 ~ 1950.10.14 UN

 

106 나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구와도 마음을 터 놓게 됩니다. 

 

107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아, 당신은 이렇게 생겼으니 이럴 것이고 저렇게 생겼으니 저럴 것이오"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 이 세상에 아무 뜻 없는 시련은 없습니다. 

 

* 감옥에서는 이虱シラミ나 벼룩蚤のみ도 다 친구입니다. 감옥 안의 추위가 얼마나 혹독한지 죄수복의 시침질한 곳으로 줄을 지어 기어다니는 이를 잡아 한 곳에 늘어놓으면 이들끼리 서로 달라붙어 동그랗게 됩니다.

 

그걸 말똥구리처럼 데굴데굴 굴리면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는 본래 파고드는 성질이 있어서 서로서로 머리를 들이대고 뭉쳐서는 궁둥이만 내밀고 있는데 이 광경을 보는 것도 그렇게 재미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이나 벼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옥에 있다 보면 이나 벼룩도 소중한 이야기 상대가 됩니다. 빈대南京虫なんきんむし나 벼룩을 보는 순간 문득 깨닫게 되는 默示가 있는데 그걸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언제 무엇을 통해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 목적관이 투철해야 된다. 

 

▣ 1971.4.18(일) 시련과 성장.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부활절 기념 서울 지구 합동 야외예배.

- 예배 후 식목 행사.

 

043-045 예를 들어 하나님의  뜻이 경부고속도로를 닦는 일과 같다면 우리는 이제 착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많은 수난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 그렇지만 동원된 사람은 목표를 위하여 가는 형편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더라도 그 목표인 부산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여 부산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의 이념에 일치될 수 있는 목적관이 투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관과 자기 현재의 환경이 부딪치게 될 때 목적관이 깨져 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신의 생활 무대가 깨지면 깨졌지 부딪쳐 오는 시련이 깨지면 깨졌지 목적관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시작하지 않았던 것보다 못한 일이 되고 맙니다. 

 

* 시련 노정을 거쳐 가야 할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비례하는 수난의 환경이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사방에서 몰아칠 것입니다. 부딪쳐서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운명길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죽도라도 이 뜻만은 남기고 가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유언이라도 하고 가야 하는 고빗길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 광야에서 시련받던 이상의 시련이 있다는 각오와 그 이상의 희생을 하겠다는 결의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 1965.10.30(토) 조국. 대구교회. 

- 제1차 세계 순회 후 전국 지구 본부 순회. 

 

155-223 우리가 살 수 있는 조국은 아직까지 영원한 곳에 있고 우리가 가야 할 목적 기준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어떻게 가야 되느냐? 탕감이라는 희생의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가나안 복지 창국을 위해서는 광야에서 시련받던 이상의 시련이 있다는 각오와 그 이상의 희생을 하겠다는 결의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를 보았습니다. 뒤를 보다가는 다 망해요. 뒤를 보다가 망하게 되면 그 땅을 하나님이 다시 간섭할 수 없다는 거예요.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장 믿음과 지혜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7 8 If you are that kind of person, you can't make up your mind, and you surely can't be trusted. So don't expect the Lord to give you anything at all.

 

시험에 견디어 낸 자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Our desires make us sin, and when sin is finished with us, it leaves us dead.

 

◑ 사명과 시련 

-  나무는 가지가 많을수록 그만큼  시련을 겪는다.

-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그 시련의 무대도 커지는 것이다.

- 시련은 탄식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운을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복된 조건

 

 1969.10.12(일) 복귀의 전선. 전본부교회.

025-315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떠한 한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겪어야 됩니다. 나 자신을 그렇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그 시련의 무대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 시련을 이겨내게 하기 위해 십 만한 크기의 사람에게 백 만한 기준의 시련을 퍼부을 것입니다. 십 만한 자리에 백 만한 시련을 퍼붓는 것은 그것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백 만한 시련을 가해서 구십구 만한 실력을 갖게 하기 위한 작전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여기에 퍼부어 주는 시련은 탄식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운을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복된 조건인 것입니다. 지내 놓고 보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며 자기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최후의 결정을 지어 뜻하신 대로 가겠다고 결정할 때까지는 막강한 시련의 무대가 우리의 뒤를 포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땅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하늘로 올라가느냐 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땅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땅에 들어가지 않고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 그 길보다는 하늘을 향하여 생명을 내놓고 죽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큰일을 하고 싶습니까? 하나의 위대한 조상이 되고 싶습니까? 생과 사의 갈림길을 왕래하는 경지를 거쳐가지 않으면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시련의 의미

 

1. 진통 후에 옥동자

 

▣ 1975.6.7(토) 세계 속의 한국. 여의도 광장.

- 구국세계대회. 

 

078-254 위대한 옥동자를 낳으려면 진통부터 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한국은 지금 그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저력과 투지와 자격을 테스트하여 진통을 극복한 후에 영광스러운 옥동자의 분만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1)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2) 낙심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위해 참고 나가면 그 시련을 준 사람은 반드시 꺾이게 된다.

3) 나무는 가지가 많을수록 그만큼  시련을 겪는다.  

 

▣ 1965.1.27(수) 민족적인 시련을 넘어가자. 전본부교회.

014-327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런고로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설움과 고통이 따른다.  

 

* 누구로부터 시련을 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위해 참고 나가면 그 시련을 준 사람은 반드시 꺾이게 된다.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면 그를 반대한 자가 꺾이게 된다.

 

* 책임진 입장에서는 기쁨과 설움과 화를 마음대로 나타낼 수 없다. 시시한 것은 잘라 버리고 보다 큰 것을 중심하여 관계 맺어야 한다.

 

* 나무는 가지가 많을수록 그만큼  시련을 겪는다.

 

* 생명이 있는 곳에는 투쟁이 있다.

 

자기 마음에 먼저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4.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이다.

-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 아버지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이다.

-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다.

- 사탄이 천지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5. 시련을 주는 것은 악을 심판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 "죽이든 살리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1963.3.16(토)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 제15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

 

012-165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입니다. 공적인 시련과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면 그 선이 사정상 일시적으로 침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선의 기대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 간직해 온 것은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은 그러한 기반을 중심 삼고 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첫째 조건은 신념입니다.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세운 3년이 중요한 시련 조건이라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시련이 세계적인 것이라면 세계를 판단할 수 있고 그 시련이 하늘땅을 대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선지 선열을 대신한 것이라면 세계의 복을 다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입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시련 도상에 놓고 이끌어 온 것과 그들을 이끌어 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애급 고역 4백 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한때 그런 고생이 있을 것을 알고 삼천만을 대신하여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고 분한 마음을 하늘 앞에 호소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만을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는 가운데 그 생활환경이 쪼들리고 급박해진다 할지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그러한 때를 갖지 못했기에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도 아버지의 길에 함께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편안한 자리는 피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울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통스러운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내 40여 평생의 울분심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버지의 6천 년간 쌓인 울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이 어려움이 한때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재료로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 하나님은 처참한 것 같지만 결국은 완전 정복하십니다. 시련을 주시는 것도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부모도 그러한 부모가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  사탄이 천지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012-167 시련을 주는 것은 악을 심판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지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알진대 통곡하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식대로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을 쳐도 할 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 1965.1.27(수) 천주 복귀의 용사. 전본부교회.

- 제1차 세계 순회 떠나기 전일. 

 

155-119  그렇지만 해가 지나고 그 줄기가 커서 그것이 점점점 여러 인간들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과목이 되기 위해서는 가지가 많아야 돼요. 뿌리가 깊어야 돼요. 그러니 그것은 복잡한 것이요, 거기에는 시련이 많은 거예요. 백 개의 가지를 갖고 있으면 열 개의 가지를 갖고 있는 것보다 열 배의 시련이 있는 거예요.  

 

◑ 시련의 3종류.

 

1) 환경적인 시련

2) 인간적인 시련

3) 영적인 시련.

 

  시련을 이기려면.

 

1) 그 시련의 기준보다 한 단계 앞서야 된다.

- 항상 한 단계를 더 위하면 한 번 실수해도 남아질 수 있다.

 

▣ 1962.12.17(월) 전본부교회. 전체를 대신한 개인이 돼라.

- 각 지구본부 순회 도중 서울본부.

 

012-108 이제 오시는 주님을 중심 삼고 국가적인 기준을 발판으로 하여 세계적인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2이스라엘 즉 오늘날 세계에 있는 기독교인의 사명입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의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 기준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시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환경적인 시련이요 둘째는 인간적인 시련이요 셋째는 영적인 시련입니다. 시련을 이기려면 그 시련의 기준보다 한 단계 앞서야 됩니다. 즉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면 세계를 걸고 이겨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의 수가 차고 기독교의 고난의 수가 차고 하나님의 고난의 수가 차면 됩니다.

 

오시는 주님을 중심 삼고 모이는 곳이 성경에 있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때에 복 받는 사람은 고생을 겪은 사람입니다. 산에서 도를 닦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민족을 위할진대 가정을 버리고서라도 나와야 그 가정이 망하더라도 민족적인 애국자의 계열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복 받을 사람입니다. 가정 종족 민족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항상 한 단계를 더 위하면 한 번 실수해도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번 기도하고 천년을 기다릴 수 있는 그렇게 정성 들인 민족이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좋아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하면 안 됩니다.

 

복은 어떤 것이냐?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잘못 받으면 망합니다. "원통해라. 내가 이렇게 일을 했는데!" 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복의 세계에 있어서 파탄꾼입니다.

 

원수를 갚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원수를 갚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다.

 

2) 댄버리 감옥에서 나와서 그다음에 새로운 세상을 대해 나갈 때 어디로 갈 것이냐? 

- "더 고생을 해야겠다. 더 뜻을 위해서 일해야겠다" 

 

▣ 1986.4.27(일) 새로운 우리들. 본부교회. 

144-318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 자신도 댄버리에서 나오면서- , 거 감옥생활과 세상은 달라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감옥에서 나와서 그다음에 새로운 세상을 대해 나갈 때 어디로 갈 것이냐 이거예요. "아, 이거 이제 고생은 이만큼 했으니 ···.  아무리 고생을 해도 그저 죽을 때까지 고생길이 훤하구만. 아이고 자기 아들딸이 제일이야. 자기 여편네가 제일이구만" 해서는 안 돼요. 

 

그 핍박이란 것은 제2의 출전을 위한 하나의 방어요 시련이요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영광의 출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수난을 받은 자로서 수난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더 어려운 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는 그 자리는 고착된 자리가 아니요, 화석이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습관화된 자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더 고생을 해야겠다. 더 뜻을 위해서 일해야겠다" 하게 될 때 감옥을 통해서도 은사의 자리에서 발전할 수 있고 그 은사의 터전에서 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거예요. 

 

3) 시련에 부딪히더라도 나 혼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부딪힌다는 것을 알아야만 될 것입니다.

 

▣ 1973.7.22(일) 만일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중앙수련원. 

- 제4차 세계 순회 귀국 환영회. 

 

067-276 하나님을 위하여 가는 길이기 때문에, 출발을 하나님과 더불어 했기 때문에 과정에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가야 됩니다. 그 종착점도 하나님과 더불어 맞이해야 된다는 것이 필연적 운명인 것입니다. 

 

* 시련에 부딪히더라도 나 혼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부딪힌다는 것을 알아야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노정을 알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싸워 온 것입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몰리고 가정적으로 몰리고 사회적으로 몰리고 종족적으로 몰리고 종파적으로 몰리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때마다 문이라는 사람 혼자서 몰린다고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남아져 싸워 온 것은 하늘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필연적인 하늘의 운명길을 따라나선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저버리기 전에 내가 하나님을 저버릴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067-317 여가서 여러분은 떨어지더라도 선생님은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뒤에서 불평을 하고 불만을 품더라도 선생님은 불평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구요. 여러분과 선생님을 비교하면 불평을 해도 내가 더 많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을 배반해도 내가 더 많이 배반할 수 있는 길을 거쳐 왔지 따라오는 여러분이 더 하겠느냐 이거예요.

 

아직까지 선생님이 가는 갈 앞에는 시련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길을 자처하여 가면서 시련을 만나면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개척자의 사명을 하겠다고 다시 다짐하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는 여러분이 현재의 입장에서 주저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 삼고 신음해서 되겠어요? 그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대한 자로서 처하여야 할 태도이겠느냐 이거예요. 죽어도 죽어도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어요. 

 

쓰러지더라도 배밀이를 하면서 전진해야 되겠고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더라도 코를 세우고 눈은 저 세계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면서 죽어야 할 운명길을 다짐했던 무리가 아니었더냐. 

 

* 누구 때문에? 선생님 때문이에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 억울한 것을 잘 아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그분과 더불어 억울함을 당하고 그분과 더불어 고통을 당하고 그분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그분과 더불어 참고 그분과 더불어 싸워 나가고 있어요. 그러니 그분이 해방을 받아 기쁨을 느끼는 날에는 만국의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그분을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느냐. 

 

067-319 멀지 않은 앞날을 놓고 주저하는 여러분이 있거들랑 다시 각성해야 되겠어요. 비판하고 싶은 입이 있거든 입을 다물고 자기 자식을 바라보아야 되겠어요. 처자를 바라보아야 되겠어요. 자기 친척을 바라보아야 되겠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수많은 치욕과 수많은 말을 남기고 수많은 비참한 길을 걸어왔던 그것이 원통하지도 않으냐 이거예요. 그렇게 철부지하고 그렇게 무골충의 사나이로 쓰러지는 여러분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구요.  

 

4) 강하고 담대하지 못해서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거기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참 이상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을 갖고 비로소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 앞에 아무리 시련이 있더라도 시련을 중심 삼고 격파하고 나가는 날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 골리앗과 싸운 다윗과 같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적으로 치는 것입니다. 

 

 1978.10.22(일) 가정교회 활동에 대하여. 중앙수련원. 

- 777가정 축복 8주년 총회. 

 

100-284 그러나 통일교회 시대에 와 가지고 세계를 넘고 공산권을 넘을 수 있는 하나님의 참 이상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을 갖고 비로소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 앞에 아무리 시련이 있더라도 시련을 중심 삼고 격파하고 나가는 날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만일에 강하고 담대하지 못해서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거기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같은 데서 프레이저 의원과 싸우게 될 때 선생님이 우물쭈물해 가지고 "후퇴다. 아이고, 세계를 지배하는 그 나라하고 어떻게 부딪치느냐" 이렇게 졸장부같이 했다간 전부 다 하나님의 뜻을 못 이루고 완전히 쓸려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골리앗과 싸운 다윗과 같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적으로 치는 것입니다. 날아가는 포탄과 같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가서 심장부를 뚫고 나간다는 그런 결의에서 "네가 뚫리지 내가 뚫리지 않는다" 이겁니다. 이러한 싸움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뚤어졌다구요. 알겠어요?   

 

5)  "환경을 이겨 가자"

- 시련이 있으면 반드시 시련에 대비되는 복이 찾아오는 거라구요. 

 

▣ 1973.5.25(금) 환경을 살펴 가자. 벨베디아. 

067-100 아까 말한 "환경을 이겨 가자"라는 이런 제목을 두고 볼 때에 우리는 언제나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언제나 위험에 처해 있는 거라구요. 

 

* 그러니까 모든 문제를 의심하지 말라는 거예요. 파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정면으로 도전해라 이거예요. 높은 산이 있으면 반드시 골짜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련이 있으면 반드시 시련에 대비되는 복이 찾아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선이 찾아오는 거예요. 겨울이 지나가면, 겨울의 고개를 넘으면 봄은 찾아온다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라구요.  

 

6)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있게 보강하기 위한 하늘의 자극이다. 하늘의 시련이다" 

 

▣ 1973.5.16(수) 생활규범과 지도자의 책임. 벨베디아. 

066-303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분 나쁜 날,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있게 보강하기 위한 하늘의 자극이다. 하늘의 시련이다" 이렇게 생각하라구요.   

 

◑ 참아버님의 시련

 

1) 댄버리 고난 

 

* 1971.12.5.~ 제3차 세계 순회 노정.  15개국.

* 1971.12.18. 워싱턴 도착.

* 1972.1.8. 뉴욕 도착.

* 1972.2.3.~3.11. 미국 7개 도시 강연.

* 1972.3.20. 영국 런던 강연.

* 1972.3.28. 서독 엣센 강연.  

* 1973.10.1. ~ 1974.1.29 미국 21개 도시 강연.

* 1973.11.30. 워터 게이트 선언문 발표.

* 1974.2.1. 닉슨 대통령 회담.

* 1974.2.15.~4.21. 미국 32개 도시 강연.

* 1974.9.18. 매디슨 스퀘어 가든 대회.

* 1974.9.18. 미국 8개 도시 강연 출발.

* 1974.10.8. 미국 국회의사당 초청 강연.

* 1975.12.18. 미국 상하의원 합동 초대 기념강연.

* 1976.6.1. 양키 스타디움 대회.

* 1976.9.18. 워싱턴 대회.

* 1981.10 탈세 협의로 뉴욕 연방 지방법원.

* 1982.5.18. 유죄 판결.

헌금 160만 달러의 이자 11만 2천 달러에 대한 소득세와 5만 달러에 상당하는 주식 배당금 세금으로 1973년부터 3년간 7300달러를 내지 않았다는 죄목.

"징역 18개월과 벌금 25000달러를 선고한다. "

* 1982.6.14.(천 윤달 4.23.) 文情進 님 탄생

* 1984.5.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

* 1984.7.20. 미국 코네티컷 주 댄버리 연방교도소에 입감.

* 1985.8.13. 제네바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공산주의 몰락 선포.

* 1985.8.20. 출감

 

▣ 참어머님  자서전

170 1983년 7월 20일은 나의 역사 가운데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하루였습니다. 문 총재가 집을 떠나 댄버리 교도소에 수감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순간에도 식구들을 격려하며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밤 열 시에 이스트 가든을 출발해 댄버리 교도소까지 여러 식구가 함께 갔습니다. 나는 이미 강하게 마음을 먹었기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71 분노와 슬픔을 쏟아 내는 식구들에게 문 총재는 당부했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미국을 위해 기도하세요."

 

* 남편이 이국땅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건만 나는 저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 그리고 위하여 살라." 우리 통일운동의 가장 근본은 위하는 삶입니다. 사지의 경지에서 자신을 희생함은 물론 한 발 더 나아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댄버리 정신입니다.

 

댄버리 정신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잃어버린 처지에서도 하늘의 뜻에 따라 희생하고 용서하며 더 큰 가치를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때 남편은 이미 예순을 넘긴 나이였고 미국이란 나라에서 혼자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유색인종에다가 소수 종교의 지도자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였기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나는 막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몸과 마음이 몹시 힘드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 없는 공백 또한 내가 메워야 했습니다.

 

172 문 총재는 다음날 새벽 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기독교에 봉홧불을 붙여라. 이 말을 식구들에게 전해 주어요."

 

174 마찬가지로 남편의 댄버리 옥고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그 일을 승리로 바꿨습니다.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가장 설레고 사랑과 연민의 정이 깊어지는 나날이었습니다.

 

남편 역시 애틋한 마음을 나누는 다정다감한 하루하루였습니다. 남편은 새벽 5시 기도를 마치면 교도소 공중전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하고 부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습니다.

 

면회 시간이 다가오면 남편은 언덕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 교도소 안에서 바닥 청소나 식당 설거지를 하다가 초췌한 모습으로 면회실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느 아내가 마음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서러움을 억누르고 항상 환한 미소로 맞이했습니다.

 

나는 면회를 갈 때 막내 정진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막 두 살 난 아기를 받아 안으며 남편은 즐거워했습니다.

 

잠시의 면회가 끝나면 남편은 밖으로 나와 우리가 탄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전송해 주었습니다.

 

나는 오픈카를 타고 다녔는데 면회를 가서 언덕길을 오를 때면 남편은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보일 만한 장소에 미리 마중 나와 있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리운 마음에 환한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지만 언덕길을 내려올 때는 눈물이 쏟아질까 봐 바라보지 못하고 손만 흔들어 보이곤 했습니다. 남편도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었습니다. 

 

▣ 1981.11.1(일) 한국인의 영애를 걸고 투쟁할 터. 김포공항 귀빈 대합실. 

- 국제과학통일회의 주재

- 미국 정부가 기소한 탈세사건에 대한 성명서. 

 

115-061 본인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를 주재하기 위하여 미국정부의 따뜻한 양해 이래 다시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11월 9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과학자들의 모임을 성황리에 이끌고 또 모처럼 한국에 찾아온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한국민이 문화민족임과 남북이 날라져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한국민의 결의를 잘 소개하고 12월 20일경 다시 뉴욕을 향해 출발할 것입니다. 

 

본인이 미국에서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는 이미 보도를 통하여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은 반드시 험한 가시밭길을 가야만 했고 당대에 큰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 외에도 세계 역사 시대에 그 실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이 한 생명과 일생을 바쳐서 하나님과 세계 앞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이래 60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고난을 겪어 왔습니다. 

 

* 본인은 이번에 미국정부가 본인을 고소한 데 대하여 억울하다거나 노엽다거나 섭섭하다고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 기회가 누구보다도 억울하다면 억울함을 당했고 누구보다도 섭섭하다면 섭섭함을 당했고 누구보다도 외롭다면 외로움을 당하신 하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오히려 이것이 영광의 시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인은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본인이 걸어온 일생을 돌이켜볼 때 진실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온 일생이었으며 인류와 세계 앞에 희생 봉사하는 생활을 했다는 확신이 있을진대 본인은 세계 어느 법정도 그 이상의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본인은 지금까지 10년 동안 미국에서 온갖 심혈을 다하여 미국을 사랑했고 미국의 정신과 도덕의 부흥을 위하여 피땀을 쏟아 온 사람입니다. 역사기 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미국이 정신을 차리고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지 않고는 세계를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구할 길이 없습니다. 본인은 미국에서 아무것도 얻어 온 것이 없습니다. 본인은 세계 통일교 운동의 총력을 미국에 경주하여 왔습니다. 

 

* 만일 본인이 미국을 사랑하고 이렇게 해 온 것이 죄라면 본인은 주저 없이 정죄함을 받을 것이며 십자가의 고난도 사양치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아름다운 미국, 위대한 미국에 두 가지 허점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편견이요 인종차별입니다. 

 

* 본인은 정말 미국이 나를 고소한 것을 세계적 무대 위에서 불의와 싸워 용감하고 담대하게 전진하는 전통을 본인 스스로가 세울 수 있는 기회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본인은 이 기회를 통하여 세계 앞에 한국인의 기개와 긍지를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을 또한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나깨나 한국인의 영예를 걸고 투쟁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세계 앞에 영광된 나라로 축복해 주실 것을 믿으며 이상으로 간단하게 귀국 인사애 대신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 반대의 양이 다 차게 되면 시련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 1992.8.2(일) 새나라 창건. 본부교회.   

233-335 반대의 양이 다 차게 되면 시련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 이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이 빼앗아 가지 못해요.

 

▣ 1978.2.12(일) 뜻과 감사. 맨해튼 센터.

- 참부모님 탄신일. 

 

096-268 오색인종의 여러분이 레버런 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였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누가 만들었어요?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 레버런 문이 한 게 아니라고요. 하나님의 뜻이 이렇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만들었어요. 

 

* 세계가 반대하고 이 나라가 반대하더라도 이것을 아는 우리들은 이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감사하면서 끝까지 가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이 빼앗아 가지 못해요. 내 앞에 다가오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이 시련을 극복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에 이 이상 가치 없는 것으로부터 일시에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 생명을 투입해서라고 방어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투이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을 자랑해야 되겠습니다. 

 

▣ 1972.10.1(일) 우리의 목적. 전본부교회. 

063-021 단지 통일교회를 하나 믿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개인이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가정이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교회 전체가 시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때문에 시련을 받았음과 동시에 시련을 당하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통일교회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기성교회에 문제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거예요. 좋든 싫든 간에 앞으로는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로 들어온다 이거예요. 

 

* 그러면 반대하는 사람하고 반대받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가치 있는 자리에 섰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반대가 극하면 극할수록 그 반대를 물리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참된 길이라면 반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의 가치가 작아지느냐? 반대인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반대받는 사람이 도리어 나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받는 그 자리가 참이면 참일수록 반대하는 환경이 모질면 모질수록 그 길을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가치가 진해지는 것입니다. 

 

▣ 1969.12.14(일) 작금의 우리의 가치. 전본부교회. 

027-180 사람이 크게 성공하려면 그 성공에 비례하는 시련이 따르는 것입니다. 

 

▣ 1970.2.8(일)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전본부교회. 

028-269 그러니 여러분은 미래에 다가오는 시련을 앞에 놓고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비례해서 큰 시련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피해서 가게 되면 결과만 나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공 없이는 선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공과 비례되는 가치로서의 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수고는 안 하고 좋은 결과만 바라서는 안 됩니다. 

 

▣ 1970.3.29(일) 하늘 편의 내적 슬픔. 구리시 수택리 통일산업. 

- 제3회 협회 간부 수련회. 

 

030-261 시련이 닥치고 가중된 십자가의 죽음길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낙망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뜻을 중심 삼고 소화시킬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귀결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