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자서전

고통받는 인류를 구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라.

true2020 2022. 10. 21. 10:07

◑ 두려움과 감격의 교차 속에서    자서전 58

 

62 "고통받는 인류를 구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라"

 

58 철이 들면서 "나는 이다음에 무엇이 될까?" 하는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니 과학자가 되어 볼까도 했지만 일본의 수탈에 시달리며 끼니조차 잇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과학자가 되어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 줄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마음에 쌓인 슬픔을 없애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숲 속에 누워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이 세상을 저 소리처럼 정답게 만들어야지. 사람들의 얼굴을 꽃처럼 향기롭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사람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만은 굳어져 갔습니다. 

 

59 내 나이 10살 무렵 목사인 윤국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안은 모두 기독교로 改宗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교회를 다녔습니다. 예배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너무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얼 알아 그리했을까마는 내 마음속에는 그때 이미 하나님의 존재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 인생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深刻하게 苦悶하는 시간이 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12살 때 증조할아버지 묘를 移葬(改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문중 어른들만 참석하는 자리였지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기를 쓰고 끼어들었습니다.

 

묘를 파고 시체를 이장하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순간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예를 갖춘 어른들이 분묘를 열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앙상한(寒々としている。やつれている。みすぼらしい)뼛조각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얀 뼈만 흉측한(ぞっつぃているほど醜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증조할아버지의 뼈를 본 후 나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도 살아 계실 적에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계셨을 텐데 ···.

 

"그럼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시면 증조할아버지처럼 하얀 뼈만 남는 건가? 나도 죽으면 그렇게 되는 건가?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나? 죽은 다음엔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저 누워만 있는 건가?  그럼 생각은 어디로 가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60 열여섯 살 무렵, 열세 남매 중 다섯 명의 동생이 한 해에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한꺼번에 다섯 아이를 잃은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집안의 고난은 민족의 고통, 세계의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점점 악랄해지는 일본의 압정과 우리 민족의 비참한 처지를 지켜보며 나의 고민도 커져만 갔습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풀이며 나무껍질을 있는 대로 뜯어다가 끊여 먹어야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동감인 중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왜 죽었을까? 어린 나이에 무엇이 그리도 괴로웠을까?

 

61 마치 내가 당한 슬픔인 것처럼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신문을 펼쳐 놓은 채 사흘 밤낮을 통곡했습니다.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착한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생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마음이 답답해진 나는 자연히 기도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영혼의 세계는 과연 있는가? 하나님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정말 전능한 분인가?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라면 왜 세상의 슬픔을 그대로 보고만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다면 이 세상의 고통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의 비극은 언제 끝날 것인가?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인간은 서로를 미워하며 싸우며 전쟁을 일으키는가? 등 참으로 심각하고 본질적인 질문들이 가슴속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라 기도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62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문제를 하나님께 털어놓고 기도하는 동안에는 고통도 슬픔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급기야 밤을 새우는 날도 하루하루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내 기도에 和答해 주는 珍貴한 經驗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내 평생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16살 되던 해, 부활절 전야였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마을 뒤에 있는 묘두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매달렸습니다.

 

왜 이토록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셨는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아픔 속에 내버려 두시는 건지, 비참한 조국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묻고 또 물었습니다.

 

기도로 꼬박 밤을 새우고 난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난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시니라.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을 맡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나는 슬픈 얼굴의 예수님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현현한 내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심하게 떨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터질 듯한 감격이 한꺼번에 掩襲엄습했습니다.

 

수님은 또렷하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통받는 인류를 구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라."는 엄청난 말씀이었습니다.

 

63 "저는 못합니다.  제가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게 그렇게 막중한 임무를 내리시다니요?" 정말 두려웠습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1.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소명을 받는다는 사실도 어려운 것이다. 

2.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 언제든지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 

3.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명을 받은 것이다. 

 

▣ 1971.1.24(일) 전본부교회. 소명을 따라서. 

040-066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소명을 받는다는 사실도 어려운 것이지만 소명을 받아 가지고 감당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040-076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소명을 받아 가지고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생각해야 될 것은 언제든지 정성을 들이면서 뜻의 목적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찾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복귀 섭리의 전체적인 문제를 중심 삼아 가지고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 스스로도 생각할 수 없는 초조한 자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감지해 나가느냐? 자기 마음에 있어서나 심정에 있어서 욕심을 가지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040-101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을 받고 따라가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4. 주의점

 

1) 뜻이 부른 소명된 자에게는 전진만이 있을 뿐이지 정지가 있을 수 없다.

 

▣ 1988.1.23(토) 전본부교회. 고향 복귀와 일족 해방.

- 원리 승공 강사 21일 수련 수료식.

 

172-228 뜻이 부른 소명된 자에게는 전진만이 있을 뿐이지 정지가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에요? 왜? 복귀 노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복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 복귀 노정에 있는 거예요. 아직까지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거예요.

 

2) 오늘 우리의 인연은 스스로 원해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 1967.4.10(월) 복귀 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 전본부교회.

- 제8회 참부모의 날 기념예배.

 

017-307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고 하늘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의 인연은 스스로 원해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뜻, 이 교회와 관계를 맺고 이런 자리에까지 나온 데에는 물론 여러분 자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의 공적과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해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탕감을 치르는 엄숙한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귀 섭리를 위해 세계적인 탕감을 이루어 놓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3) 이 책임을 다 하지 못하면 그 소명의 기준이 여러분들을 심판한다.

 

▣ 1991.7.28(일) 미국. 사랑의 황족

- 영어 말씀 번역.

 

218-162 아무런 욕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위해서, 자유세계와 민주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 간단하다구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218-173 지금까지 46년 동안 전부 다 기성교회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브레이크 걸린 것입니다. 50억 인류를 중심 삼고 볼 때 시간을 감안하여 40억 30억으로 잡는다고 하더라도 그때에 있어서 1년에 죽는 사람이 3천만 명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5천만 명이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46년 동안에 4천만 명이면, 4*4는 16이니까 거의 20억에 가까운 사람이 전부다 지옥에 갔다는 거지요.

 

20억이 지옥으로 갔다! 앞으로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가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둬 둘 것 같아요? "이 쌍것들아!" 하면서 가만히 둘 것 같아요, 어떨 것 같아요? "너희들이 없었더라면 참부모를 모셔서 하늘나라로 갈 것이었는데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하면서 가만히 있겠어요?

 

또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1년에 5천만 명이 죽어 간다는 것을 알고도 전도를 하지 못해서 자기의 일족들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세계의 인류가 통일교회의 이념을 알지 못하고 참부모의 이름을 모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거예요?

 

선조들이 "이놈의 자식들! 우리의 갈 길을 막고 우리 후손들의 갈 길을 막은 너 통일교회···, 너와 같은 못된 녀석들이 들어와서 막은 죄 때문이다!"라고 할 때 어떻게 할 터예요?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면 네 조상들이 환영할 것 같아요, 저주할 것 같아요?

 

통일교회 들어와 있는 개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세계사적인 책임, 섭리사적인 책임 때문에 소명을 받아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이 책임을 다 하지 못하면 그 소명의 기준이 여러분들을 심판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소명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소명입니다. 그 공적인 소명에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그리고 하나님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