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이해옥 사모님. - 2014.11.2. 오사카.

true2020 2020. 12. 28. 16:52

언제나 어떤 분들인가 궁금했고 보고 싶었던 분들을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기쁩니다. 섭리를 위해서 큰 공헌을 해 오신 것을 하늘이 기억하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명원회 멤버 여러분들을 이 아침에 만나게 되어서 정말로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제 집회가 끝난 뒤에 지구장 사모하고 오사카 성 안에 있는 성지에 갔습니다. 성지가 정해진 지 49년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내년이면 성지가 책정된 지 반세기가 되는데 성지 중심에 있는 나무는 성지가 정해지기 전에도 있었겠지요.

 

저는 그 나무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이 나무는 나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하며 만물 중에서 가장 우수한 생물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을 보면서 제가 나무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수령이 천 년이 넘는 나무가 많습니다. 은행나무도 그렇지만 다른 나무들도 몇천 년을 사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성지에 있는 그 나무도 분명히 저보다 두 배는 더 살았을 것입니다.

 

그 나무의 입장에서 우리를 본다면 우리들이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우리는 개미를 보면서 "개미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개미가 무슨 걱정이 있겠나? 개미는 단순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천 년을 사는 나무가 우리를 볼 때도 비슷할 것 같잖아요? "백 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내일을 걱정하고 자기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오사카 성의 큰 돌을 보면서 "이것들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하면서 그 돌이 너무 감동스러워서 만져 봤습니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돌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가지고 변형시키거나 서로 조합해서 뭔가를 만들어 낼 수는 있어도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일본 과학자 3명이 올해 LED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대단한 거죠. 그러나 그것도 생명체는 아닙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생명체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 부모님의 영역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사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절에 가는 것도 아주 좋아합니다. 제는 절에 가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봅니다. 공, 비어 있음,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모를 뿐입니다. 모든 것은

비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괴로워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불교의 가르침 아닙니까?

 

그런데 이 돌을 보고 나무를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떻게 이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 놀라운 생명체들이 어떻게 모르는 곳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불교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이 되었고 지금은 통일교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는 반야심경을 꼭 외웠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살면서도 불교의 교리가 제 마음에 옳다고 생각했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반야심경을 외웠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가? 나로서는 결론이 안났습니다. "부처님도 좋고 예수님도 좋은데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고 갈등했습니다.

 

그런 제가 통일교회에 와서 비로소 해방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을 좋아해도 좋고 예수님도 좋아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왜? 그분들의 가르침이 결국은 하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한 중간 단계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일원리를 통해서 종교의 분열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일어나고 있는 분쟁이나 전쟁의 원인의 약 90% 이상이 종교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전쟁의

이유에는 종교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원리 말씀은 모든 종교가 경계선을 넘어서 하늘부모님의 심정으로 하나될 수 있다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위대한 원리 앞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끔 ‘원리는 좋은데 왜 이렇게 힘드나? 왜 이렇게 섭리가 힘드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하기 싫어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부담 갖기가 싫어서입니다.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부담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부담, 자식이 태어나면 자식에 대한 부담, 내 부모를 생각해도 힘든데 배우자의 부모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도 부담입니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결혼까지도 기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는 좋은데 부담이 너무 커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 부담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이 부담을 개인으로 생각하면 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졌던 부담. 그 부담은 외적으로 십자가라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당시의 십자가는 예수님만 진 것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 누구나 다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런데 외적으로는 다 똑같은 십자가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 진 십자가는 의미가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 만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놀라운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가?

 

같은 십자가인데 무엇이 달랐는가? 다른 사람들이 진 십자가는 자기의 죄로 인해 진 십자가였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의 죄와 상관이 없는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도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죄를 탕감하는 십자가나 조상의 죄를 탕감하는 십자가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와 같은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타이틀이 뭡니까? 메시아잖아요. 신종족적 메시아입니다. 평소 여러분들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생각해 왔습니까? 여러분들이 메시아라고 하는 생각을 가끔은 잊어버리지요?

 

아버님께서 마지막 호흡으로 하신 기도가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지상에서 부모가 마지막 호흡으로 자식에게 무엇을 주고 싶겠습니까? ‘너는 열심히 돈 벌어서 부자 되어라"라고 하는 유언을 하겠습니까?

 

인생을 살아 보면 압니다. 돈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나 깨닫습니다. 죽으면 황금으로 된 관에 들어가든 나무 관에 들어가든 다 똑같습니다. 황금 관에서도 시체는 썩습니다. 어떤 관이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것을 인생의 맨 마지막 순간에 깨닫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인류의 메시아로서 또 우리의 참부모로서 마지막으로 주신 축복의 말씀이 신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하라는 것입니다.

 

왜? 통일교회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그것만이 이유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나와 같이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참부모님도 메시아니 너희들도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되려면 거룩한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나를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그 누군가를 위한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사람만이 메시아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똑같이 볼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그 가치에 있습니다. 누구나 다 똑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누가 가치 있는 진정한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진 자녀여야만 진정한 자녀인 것입니다.

 

제가 참아버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참아버님은 외롭게 사신 분입니다. 그 누구하고도 고민을 나누실 수 없이 혼자 고민하시고, 혼자 어려운 결정을 항상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바다 가운데 배를 타고 낚시를 하시면서 80일간을 혼자 계셨습니다. 전화를 받거나 텔레비를 보거나 한 것이 아니라 홀로 낚시를 하시면서 80일간을 홀로 밤낮으로 주무시지도 않고 식사도 컵라면을 잡수시면서 고민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항상 그런 과정을 거쳐서 주신 것입니다. 결코 쉽게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섭리 속에서 가장 많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섭리 앞에 여러분들처럼 많은 공헌을 못했습니다.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하늘 부모님께서,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섰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공헌하신 내용은 하늘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어떠한 돌에다가 기록해 두었다 해도 세월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그런데 하늘 명부에 기록되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갖고 계신 그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님이 지셨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상에서 어머님이 지고 가시는 십자가를 여러분들이 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시는 십자가는 거룩한 십자가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아, 내가 이 부담을 또 가져야 하나’ 할 것이 아니라 "아, 이 거룩한 부담감, 이 거룩한 십자가를 나 같은 사람에게 지라고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너무 몸이 쇠약해서 그 십자가를 지고 걷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에게 예수님 대신 그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의 십자가였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깐이라도 본인이 졌다는 것, 그 귀한 십자가를 나누어 졌다는 것,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고 가신 그 십자가 또 앞으로도 지고 갈 그 십자가가 바로 우리 아버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 또 어머님이 지고 가시는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내가 질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부담스러워요. 여러분들 앞에 서는 것도 부담스럽고 일본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또한 식구님들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잠을 주무시지 못하시는 회장님 때문에 부인으로서 걱정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 거룩한 부담을 거룩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날 때는 다시 한 번 이 나무를 보면서 "아! 바람에도, 지진에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가 있구나. 나무도 쓰러지지 않는데 내가 이 부담감 때문에, 이 십자가 때문에 쓰러지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가겠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열심히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뿌리깊은 나무처럼 쓰러지지 않고 거룩한 십자가를 감사하게 지는 자들이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