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 들인다는 것은 뭐냐?
- 나 자체를 무의 경지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 1970.11.22(일) 전진과 후퇴. 전본부교회.
036-101 정성 들인다는 것은 나 자체를 무의 경지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플러스라면 그 존재 앞에 완전한 마이너스의 형태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기압권에 하나의 저기압권이 생겨나게 되면 거기에 있던 고기압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저기압권에 의해 고기압은 다른 어딘가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어딘가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저기압권에 커지면 커질수록 고기압권은 이에 비례하여 다른 곳에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저기압이 진공상태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한편으로는 끌어들이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출 현상이 벌어지는 동시에 흡수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흡수되고 보급 보충되면서 여기에서 전진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 희생 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무한한 인생의 가치를 추구함에 있어서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 입장이지만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것은 기압으로 말하자면 저기압권 형성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희생 봉사하는 데 있어서 나 자체를 완전히 주고 나면 저기압의 경우와 같은 진공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공이 생겨나면 우주는 내가 지녔던 양에 비례한 만큼의 가치를 반드시 보급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자 즉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모습으로서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충 보급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라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말씀은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이냐? 하나님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하는 것이 극에 달하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이냐? 상대 앞에 있어서 사랑의 힘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상대를 자극시킬 수 있는 하나의 작용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작용이 하나님 앞에 미치게 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미쳐 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대로 그 사랑을 다하게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도 영이요 뜻도 영이요, 정성도 영일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자리에서 사랑하라는 말이냐? 아닙니다. 영 되는 입장에까지 나가게 되면 더 큰 사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작용의 요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오늘날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데 자기의 인격관을 중심 삼고 그 관을 채우기 위해서 사모한다면 자기의 영속적인 발전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 한계선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무한히 정성 들이고 무한히 그리워하고 무한히 흠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정이 가중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인연되어 오는 자극적인 열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열의를 가지고 작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미쳐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요, 환경을 타개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전진 발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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