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10.18(토) 체휼적인 신앙인. 대구교회.
026-069 범일동에 있을 때에는 옷도 변변치 못하게 입고 더벅머리를 한 채 총각 둘이서 토굴 같은 집에서 지냈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처량하게 보였겠지요. 원필이가 자신이 돈을 벌어 오겠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원리 원본을 쓰고 있었는데 동지가 얼마나 귀하고 따르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사람에 대한 맛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필이가 회사에 나가게 될 때는 반드시 1킬로미터 이상 따라 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가 되면 반드시 마중을 나갔는데, 그 만나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와 가지고 밤에 잠을 자는데 이불이 없어서 포대기 한 장만 덮고 자곤 했습니다. 그때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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