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제2차 세계순회 떠나시기 전에.
022-120 여러분들 중에 교회에 나올 때, 어떤 사람은 중앙청 쪽에서부터 혹은 종로나 동대문 쪽에서부터 남대문을 거쳐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선생님이 소년 시절에 오뉴월, 삼복지경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다녔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전차나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편히 오더라도 지난날 선생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께 안길 수 있는 그날을 애타게 기다린 것과 같은 마음을 품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누구한테도 얘기 안 했습니다. 말을 안 해도 아는 사람을 잘 알겠지만, 선생님이 학생 시절에 기도를 할 때는 목이 메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왜 그렇게 기도를 하는지, 그 이유는 몰랐습니다.
20세를 전후한 청년이 목이 메어서 기도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저 청년은 왜 저렇게 기도할까?" 하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거기에서 남 모르는 내적 심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022-122 선생님이 어느 곳에 가든지 눈물흘리며 기도하는 그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하듯이 가는 곳곳마다 그렇게 대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명절날 같은 때에 밤을 새워 가면서 준비한 그 상을, 혹은 남편을 위해서 준비한 그 상을 선생님 방에 갖다 주지 않고서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냥 안방에 들어가게 되면 갑자기 눈앞에 캄캄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왜 그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낙네들의 정성들인 그 음식까지도 선생님을 먹이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꿈에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천 번 만 번 이 몸이 으스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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