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고향 정주- 우리 동네가 上思里인데 이 부락은 남한 부락이라고 소문이 났었다구요.

true2020 2019. 3. 7. 09:38

▣ 1989.1.8(일) 종족적 메시아 선포. 본부교회.

185-173 우리 동네가 上思里인데 이 부락은 남한 부락이라고 소문이 났었다구요. 전부가 하라는 건 제일 잘 하지만 똘똘 뭉쳐서 공산당은 제일 싫어하는 거예요. 그건 날 닮아서 그렇지요.

 

上思니까 윗 上 字하고 생각 思, 위를 생각하니까 하나님을 생각해야지요. 地名이 그래요. 上思 부락이니까 남한 부락이 되어야 되는 거지요. 아하, 그거 왜 그러냐 하면 지명이 그러니까, 上思니까···.  

 

우리 같은 사람도 거기서 태어났으니 위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으니 자기고 뭣이고 집을 생각하지 않고 전체를 생각하는구나 그런 말도 통하는 말이라구요.  

 

▣ 1987.11.1(일) 본향 땅. 용인연수원.

- 6000가정 총회.

 

170-014 그래, 선생님이 잘난 사람이에요, 못난 사람이에요? 그래, 잘난 문 선생이 왜 누구한테 쫓겨서 이남으로 내려왔어요? 응? 공산주의 때문에 선생님이 쫓겨 내려왔나요?

 

내가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 하다가 언제 언제 나왔느냐 하면 말이에요, 쫓겨 나온 것이 아닙니다. 1.4 후퇴 때 맨 마지막에 나왔어요.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고향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고향에 갔으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다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왜 이남으로 내려왔을까? 이남으로 왜 내려왔을까? "공산주의가 어떻다"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공산주의를 세계적으로 청산짓기 전에 고향에 갔다가는 모두 면이 불리해요.

 

그렇기 때문인지 선생님이 태어나 살았던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라는 곳은 이남 부락으로 소문이 났었어요. 이남 부락. 그렇게 유명했다구요. 정주 땅에 가서 "이남 부락이 어디요?" 하면 상사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나도 싫어하지만 우리 고향 사람들도 공산주의를 제일 싫어했습니다. 이남 부락으로 소문이 났었다구요. 이남 부락으로. 그러니 그 부락에 가서는 이로운 것이 없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38선을 넘은 거예요. 이남 부락의 대표적인 곳이 남한 땅이기 때문에 여기 남한 땅에 와서 해방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38선을 넘어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