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12.1(수)벨베디아. 반성
089-228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때는. 지금부터 10년 20년 전 그때에 있어서 선생님의 머리에 남은 것은 뭐냐 하는 걸 반성해 볼 때 선생님 자신이 걸어오는 과정에 여러 모양의 사람이 와서 접촉되었다가 떨어지고 다시 접촉한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어요.
그 가운데는 하늘의 뜻을 알 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직접적인 인도함을 받아 가지고 이 뜻이 아니면 안 된다고 수많은 맹세를 하고 수다한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거예요. 그렇게 보낸 36년이라는 요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에요.
역사적 노정으로 보면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는데 거기에 잊을 수 없는 사건들,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잊을 수 없는 인간관계가 남아져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회상하게 될 때 뜻의 길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지금 기억되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 나름대로 이 뜻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가게 될 때는 이 뜻 외에 새로운 무엇이 있을까 해 가지고 떨어져 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의 꿈을 외부에서 실현하겠다고 해서 떨어져 갔지만 그러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보면 젊은 청년 남녀들은 理性을 찾아가기 위해서 뜻을 배반한 사람도 있고 또 학교에 가기 위해서 혹은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그런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군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랬던 사람들 가운데는 나이 많은 사람도 있고 혹은 중년도 있고 청년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後悔하고 있는 거예요. 옛날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어 후회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는 거예요.
그 가운데서 더욱 비참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는 것을 여기서 이제 반성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한번 생각해 봐야 되겠다구요.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냐 이거예요. 모든 사람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아져 가지고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칭송을 받았던 사람들, 통일교회에서 일을 많이 한 자리에 섰던 사람들이 비참하더라 이거예요.
그들은 무엇보다도 뜻을 귀하게 여기고 뜻을 최고로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서슴지 않고 희생시켜 버렸다 이거예요.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뜻 하나를 위해 그 전체를 희생시켜서 그것과 바꾸고도 행복함을 느끼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비참하더라 이거예요.
뒤로 돌아서 가지고 세상으로 향했다가 옛날 자기들이 버렸던 그 자체를 다시 대하게 될 때 버리기 전 이상의 자리의 심정을 회복할 수 있느냐 하면 절대 회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뭐냐? 통일교회 밖에 가도 이러한 기쁨이 있고 자기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도리어 절망이더라는 거예요. 자기가 돌아서 나가 가지고 세상의 것을 대할 때 그것이 자기가 뜻을 버리고 나간 이상의 무엇으로 소망이 되고 이상의 무엇으로 자극이 되는 이상의 희망의 기점이 남아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가면 갈수록 "너 때문에 내가 뜻을 버리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더 커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뜻을 자기가 버렸다고 해서 뜻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그들이 直告하는 것이 뭐냐?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오게 될 때는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089-230 그러한 자리에서 볼 때, 옛날에 뜻의 길을 보통시하고 있던 자리가 얼마나 동경되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걸 느끼지 않을 거라구요.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가니가 그래요. 그런 차이가···.
그러한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지금 뭐 이렇게 어렵게 간다고 하지만 아무리 어려움이 있고 아무리 비참한 일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며 그들이 憧憬하는 苦悶에 비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뜻의 길을 따라 나오다가 떨어진 사람끼리 모인다 이거예요. 교회는 문을 열어 놓고 그 사람이 들어오려면 들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들이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해서 "너 이렇게 들어왔구나" 하며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해 준다구요.
그들도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랄까, 그 부끄러운 것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질타하고 후회하는 표정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전체 식구들이 나를 이렇게 보겠지" 하는 스스로의 생각이 전부를 拘束해 버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나를 볼 때, 이렇게 보겠지" 하는 생각이 전부 구속해 버린다 이거예요.
그리고 진심으로 대해줘도 진심으로 대해 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구요. 암만 위로해 주더라도 위로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에요. 자기를 위로하는 데도 "너는 이러한 사람이지" 하는 생각을 갖고 위로해 준다고 본다구요.
자기가 이제 들어와 가지고 뜻을 위해 뭘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또 가다가 떨어질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는 거예요. 그리고 때가 지나감에 따라서 36가정이라든지 이렇게 축복가정의 계열이 쭉 생겨나고 또 나이가 20, 30이 지나감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발전해 가지고 기반 닦아 나오는 그 모든 것을 볼 때에 자기가 상상하던 이상으로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 그러한 환경에 부딪히기 때문에 "한국이면 한국, 일본이면 일본에 살지 않고 외국에 나가 가지고 거기에 통일교회가 있으면 거기서 믿어야 되겠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미국이 다르고 구라파가 다른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는 다 선생님의 휘하에 있기 때문에···
* 이러한 것을 볼 때에 통일교회를 믿던 사람들이 앞으로 지구성 어디에 가서라도 스스로 마음의 慰勞를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또 영계에 가서도 그럴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여러분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우리 일생 가운데 한번 잘못한 것이 얼마만큼 치명적인 影響을 준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 환경을 벗어나기란 지극히 어렵다 이거예요.
여러분, 감옥 같은 데 가면 이와 같은 일들이 실감난다는 거예요. 자기는 올바로 살겠다고 하던 사람인데 어떤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잘못 만나 가지고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감옥살이를 하는 거예요.
일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놀음이 벌어지면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느냐? 시간만 있으면 "아이구! 그때 요런 일을 안 했으면 요렇게 되었을 것인데, 내 꿈이 실현되었을 것인데 요렇게 함으로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경지에서 벗어나기란 참 힘들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안 했으면 틀림없이 요렇게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이럼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됐구나···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런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라구요.
▣ 1967.10.16(월) 이상 상대. 전본부교회. 축복 대상자 예비 집회.
157-333 요즈음에는 선생님이 강가에 쭉 가 있었지만 "선생님이 일생을, 21년 노정을 청산 짓는 기간에 제일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가 지금 선생님을 반대하고 뜻 앞에 떨어져 있다 이거예요.
어떤 사람이냐? 감옥에 들어갈 때, 참 자기의 생명 재산을 다 던지고 떠나던 그 순결한 사실, 그 사실만은 그 사람은 없어졌지만 그때 그 사실만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의 뇌수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 풍조에 부대끼면서 거기서 그걸 극복 못 해 가지고 환경에 몰려 가지고 뜻에 배치되고 선생님의 뜻을 배반하고 나섰지만서도 그 사실만은 어떻게 땔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붙들려 갈 때 애절하던 그때의 음성, 몸부림치던 그 情景을 암만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이게 고통이에요. 생각하자면 일면에서는 고통이에요. 고통.
그런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었으면 얼마나 역사에 빛날 것이냐 이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를 생각해 볼 때 걱정이라구요.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이냐. 그러한 사람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잘못한 사람들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가 선생님이 지금 하늘 앞에 해결 지어야 할 중대한 문제예요.
내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뭇사람의 생명을 구해 주기 위한 것이지 "나"라는 사람이 이 땅을 거쳐가게 될 때 나로 말미암아 피해받는 哀魂이 있어 가지고 슬픔의 한을 천상세계에 지니고 간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복귀 섭리를 중심 삼고 볼 때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참 복잡하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 정성 들였던 그 모든 기준이라는 것은 그 사람 것으로 남아지더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그때에 정성 들인 비중과 오늘에 있어서 반대한 그 피해의 비중을 비교해 볼 때 물론 인간적인 면에서 몇몇 식구들을 가로막았을는지 모르지만 그때 내가 식구를 하나도 거느리지 않았던 외로운 때에 있어서 심정적인 기준 앞에 그들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동정의 인연이 거기서 깃들었고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과 전체적인 사연이 거기서 움직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배후에 활동한 그 기준이 너무나 큰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을 무시하면 하나님 앞에 미안한 생각을 안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아, 인간은 참을 위해서 고생하고 참을 위해서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참을 위하는 남 모르는 눈물과 남 모르는 희생은 영원한 보화를 지닌 것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167-336 내가 시간이 있으면 그들을 다시 한번···. 내가 평양에 나와서 그 사람에게 3번씩이나 사람을 보내 방문시킨 거라구요. "나"라는 사람이 흘러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 나를 안다 했지만 일방적인 면밖에 몰랐어요.
* 그래서 찾아가 가지고 한 번 가니 문전에서 배반하고 두 번 가니 문전에서 배반하고 세 번까지···. 말하자면 전부 후퇴할 12월이구만. 12월 1일까지, 12월 2일 해질녘까지 사람을 보내 가지고 나로서는 하나님이 "돌아서라" 하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최고의 정성을 들어야 되는 거라구요. 버릴 수 없는 거예요. 남들은 전부 다 후퇴하는데, 12월 2일 후퇴하는데 저녁까지 사람을 시켜 가지고 연락한 거예요.
거기서 내가 할 책임을 다 했다 이거예요. 천하의 어디 가도 부끄럽지 않다 이거예요. 심정의 이념을 들고 나와 가지고 심정의 상처를 받은 내 가슴속에 심어졌던 모든 상처를 전부 다 뽑아서 놓고 새로운 심정을 하나님 앞에 연결시킬 수 있다는 자신을 찾아 가지고 비로소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에 평양을 떠난 거예요. 지도자는 이렇게 신중하게 책임을 지는 거예요. 노라리 가락이 아닙니다. 사지사판에서도 하나님이 맡겨 준 바의 책임 분야를 끝맺고 거기서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놓고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이 가는 길이 막혀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인연 되었던 사람을 전부 다 해결 지어 놓고 내가 하늘땅 앞에, 그들의 선조나 후손이나 금세에나 내세에 있어서 그들의 조상도 동정하고 그들의 후손도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거예요. 그걸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닦아 놓고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뒤돌아 봐도 조금도 양심에 걸리지 않아요.
지금도 그래요. 이남에 내려와 가지고 지금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들에게 "고생하라"고 명령했다 이거예요. 뜻을 위해서 가자 이거예요. 같은 운명길에서 가자 이거예요. 고생길을 가자 이거예요. "눈물과 피땀을 다 바쳐 가자, 이 민족을 위해서 가자" 그랬으면 가는 사람들을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내가 모른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두고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눈물로써 한 거예요. "아버지, 이들에게 빚을 지지 말게 하소서. 내가 빚질 때는 한국에 빚이 될 것이고 내가 빚질 때는 세계에 빚이 될 것입니다. 이들의 정성과 이들의 심정의 인연을 유린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 거예요. 이게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같은 길에서 수고한 사람들을 거느려 가지고 기쁨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그날에 환희의 무리로서 아버지 앞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 그런 것을 전부 다 선생님이 예상했기 때문에 "고생하라" 했는데 그렇게 간곡히 진심으로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외치고 호소하고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지나가는 동네 사람, 동네 어른의 말만큼 생각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기 멋대로 움직이던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부끄러운 구원 중에 그런 부끄러운 구원이 없다는 거예요.
내가 남루한 옷을 입고 일생을 지내고 내가 행려의 신세로 객사하는 몸이 됐다 할지라도 그런 역사를 남기고 갈 때는 그 무덤에 꽃이 핀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래요.
* 슬픈 일이 있으면 선생님과 같이 눈물을 흘리기를 바라고, 외로운 일이 있으면 선생님을 부르며 외로운 인연을 맺으려고 하고 모둠매(뭇매)를 맞고 쫓기는 자리에 있어서도 선생님과 같은 사정에 처하는 마음을 서로서로 다짐하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생활과 그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무심치 않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무슨 신세 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요, 무슨 制裁(불이익이나 벌을 줌)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단 한 가지 무서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 있어서 내가 반역자가 될까 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어요. 그 자리에서 정성을 갖고 나가게 될 때는 천하에 앞으로 될 모든 사연도 다 풀려 나가는 거예요.
▣ 1988.1.1(금) 제21회 하나님의 날 말씀. 본부교회.
171-243 내가 평양에 있을 때,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식구들이 한 100명가량 됐었습니다. 순박하고 정성을 들이는 식구들이 있었어요.
그 양반들이 내가 감옥에 있는데 영으로 와 가지고는 경배를 하면서, "선생님 나는 이러이러한 사정 때문에 떠나가게 됐습니다" 하는 거예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흰 옷을 입고 와 가지고···.
* 저고리 소매 섶으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처량하게 돌아서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감옥에 나와서도, 남들 피난 간다고 야단인데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 보았습니다. 가니까 문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감옥살이를 하다니 그런 사람은 우리 집에 들일 수 없소"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별의별 사연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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