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선조들이 저지른 5가지 실수
* 아담
- 믿지 못했다.
-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
* 아담
- 보고 연락 상담의 생활을 못했다.
* 노아
- 감사의 생활을 못하고 習慣的인 생활을 했다.
* 아브라함, 세례 요한
- 자기라는 관념과 인간적인 생각을 했다.
* 모세
- 혈기
1.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다.
1) 하나님이 자기를 믿고 맡기고 있다.
▣ 1965.10.3(일) 천주에 선 예수님. 동경교회.
015-105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천주를 내던지더라도 希望을 가지고 자기를 믿고 계시고 자기는 하나님의 目的을 達成하는 使命을 遂行하고 있다고 하는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一擧手一投足 모든 면에 심판의 원칙을 세우고, 원수도 심판할 수 있는 심판의 법칙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행할 하나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을 아브라함 자신이 잘 느끼지 못하였다. 따라서 하나님께 3대 제물을 바칠 때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조건이 역사를 통하여 치러야 할 비참한 탕감의 조건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때가 천적 복귀 노정에 있어서 천적 원칙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최종점이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이삭의 실체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에서 400년 고역의 나그네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2) 인간의 모든 실수는 하나님께는 패자의 서러운 기록.
▣ 1967.1.1(일) 일편단심으로 최후의 고개를 넘어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017-223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실수한다면 그 한은 천추 만대까지 간다. 이것이 지옥이다.
내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공격을 하는데 재치가 있어야 한다.
승리자가 되기 전에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승리를 가져오기까지 일편단심으로 싸우기를 바란다.
* 성경에 나와 있는 인간의 모든 실수는 단지 역사의 기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는 패자의 서러운 기록으로 남아지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모른 노아 8식구.
▣ 1960.12.11(일) 하나님의 일선에 선 우리들. 전본부교회
011-030 함의 실수는 개인적인 실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실수요, 노아의 분함은 개인적인 분함이 아니라 천주적인 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함은 몰랐던 것입니다.
일 개인으로 세운 노아도 자신이 그렇게 크게 쓰이고 그렇게 큰 價値의 存在임을 몰랐습니다. 땅을 다 심판하여 수많은 민족을 고기밥으로 쓸어 넣으시고도 노아 여덟 식구만큼은 살리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사랑의 일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일선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함의 실수가 그토록 큰 한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일선이 침범을 받고 나니 하나님은 침범받은 그곳에 계실 수 없기에 그들을 다 사탄에게 내주고 400년 동안 그 민족을 붙들고 억울함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2. 사탄의 역사
- 習慣的인 생활.
▣ 1957.6.23(일)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전본부교회.
002-283 이제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를 회고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이후 1천6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서 노아 한 분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노아를 세우심으로써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려 하셨으며 나아가서는 노아로 하여금 인류를 대표한 제사장의 입장에 세우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노아가 1600년 동안 자기를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의 수고를 알고 하나님의 서러움을 느꼈던들, 그리고 노아 가정의 여덟 식구가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느꼈던들 그들에게는 함의 실수로 인한 원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 노아 가정은 심판에서 救贖을 받았으므로 감사하는 생활을 했어야 하는데 습관적인 생활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천륜을 대하고 나선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습관적인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구해 주신 하나님을 언제나 새롭게 대하는 노아가 되고 온 인류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한날을 바라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직시하고 나선 노아가 되었던들, 또 하나님 앞에 절대의 믿음을 세우는 노아의 가정이 되었던들 제2의 타락을 성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002-287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는 사람은 먼저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고, 다음에는 보이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물질의 곤궁을 통한 싸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002-291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무리들이 가나안 7족을 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는 사탄을 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용장이 되어야 하고 그런 노정을 걸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저건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002-293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6천 년 동안 세계적인 싸움을 거치며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수고에 의해 찾아진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길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수고를 대신한 제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있기까지에는 여러분을 찾아 세우시기 위해 고난의 길, 험하고 어려운 싸움의 길을 거쳐 나오시며 말씀하시지 못한 하나님의 원한과 탄식이 있었다는 것과 수천수만의 선조들이 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해 주기 위해 수고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한다 할진대 "6천 년 전의 아버지의 마음과 6천 년 후인 오늘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버님의 모습을 대신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죽든 살든 제물이 되겠다는 마음의 다짐이 있어야 되겠고 "이미 제물로 바친 저희들이오니 아버님, 뜻대로 하시옵소ㅗ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역사를 종결짓기 위해 수많은 선조들이 세워 온 전통을 받들어야 되겠으며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조건을 破滅시키려고 하는 원수 사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를 물리치기 위해 티끌 만한 세포의 한 분자까지라도 동원시키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보고 연락 상담.
▣ 1957.11.1(금) 참된 길을 알고, 곁길을 분별하자. 전본부교회.
003-208 옛날 에덴동산에서 해와가 천사장으로부터 유혹의 말을 듣고 아 담에게 가서 "천사장이 이러이러한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며 의논했던들 해와는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해와가 하나님과 의논했던들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는 그 유혹의 말을 듣고 아담과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만 타락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천륜의 법도를 세워 놓았는데 이것을 부정하는 천사장이 해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고 유혹했던 것과 같이 이러한 사탄의 간교한 움직임이 오늘날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은 여러분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실을 감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농부가 수확기를 맞이하여 곡식과 가라지畑()に生えたエノコログサ(ネコジャラシ), 피 ヒエグサ(稗草)와 곡식을 分別할 줄 알아야 되듯이, 여러분도 하나님과 사탄의 행위를 分別하고 그 결과를 鑑別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4. 墮落性
1) 혈기
ㄱ. 아브라함
- 소와 양은 쪼겠으나 비둘기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ㄴ. 모세
- 혈기로 반석 2타.
▣ 1960.2.21(일) 나의 이름이 무엇이냐. 전본부교회
008-318 노아 이후 400년이 지나 아브라함 시대에 와 가지고 3대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 소와 양은 쪼겠으나 비둘기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쪼개는 것은 聖別하는 것입니다. 성별해야 할, 갈라야 할 비둘기인데도 불구하고 가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제물은 실수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지 못하고 성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불결不潔이란 명사가 여러분에게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모세를 중심 삼고 보더라도 모세는 혈기로써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론 민족이 잘못해서 쳤다고 하지만 그는 여러분의 선조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혈기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사탄의 뜻을 이루어 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세가 혈기로써 반석을 두 번 쳐서 생긴 이 죄악도 여러분 자신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 1972.9.17(일) 주목의 주인공. 전본부교회.
062-094 여러분이 알다시피 모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받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40일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의 원성이 높아졌고 또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내려와 혈기를 부려 가지고 하늘로부터 받아 쥔 반석을 깨 버렸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고 극복해야 할 그 순간을 잘 넘었더라면 역사적인 원한의 구덩이를 파지 않았을 텐데 책임자로서 혈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환경을 자 넘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오점이 심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 1994.12.18(일) 건국사상 건국이념. 브라질.
266-092 모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전부 다 입성 못한 것은 뭐냐 하면 반석을 두 번 쳤다는 거예요. 거기에 인간적 용강, 인간적인 모세의 혈기가 들어가 가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갈 수 있는 기원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가나안 건국사상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는 거지요.
2) 自己라는 觀念을 중심 삼고 생각하는 버릇.
▣ 1972.10.24(화) 하늘의 사람들. 전본부교회.
- 제17회 전국성화학생 총회.
064-045 아브라함을 두고 봐도 제물을 드린다든가, 어떤 때든가 중요한 때마다 번번이 우리 조상들이 실수한 것은 왜 그랬느냐? 그것은 언제나 自己라는 觀念을 중심 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 그 버릇으로 말미암아, 그 전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완수시키지 못한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3) 순간에 결정된다.
- 한순간으로 말미암아 전 생애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 1967.12.10(일) 전본부교회. 승패는 순간에 결정된다.
019-025 아무리 큰 나라도 망하는 것은 순간에 결정된다. 오랜 역사를 지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자고 먹는 생활의 한순간에 역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날 한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일생 동안 쌓은 실적을 모두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한순간으로 말미암아 전 생애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지만 내쉬었던 숨을 들이쉬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마지막 한순간의 숨이 생애를 결정한다.
* 과정은 길지만 완성의 시간은 순간이다.
산을 볼 때에는 그 산의 분수령을 생각하게 된다. 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 하나가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똑같이 떨어진 물방울도 그 떨어지는 방향에 따라서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 통일교인은 산상의 분수령에 올라앉아 있는 입장이다. 여기서 한순간 잘못하면 천추만대의 후손들까지 다 잘못된다.
*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밧줄을 끌어올리신다. 그러나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가! 하나님께서 밧줄을 끌어올리시는 힘보다도 내가 밧줄을 붙잡는 힘이 더 세야 한다. 우리가 틀림없을 정도로 꽉 잡으면 하나님은 일시에 끌어올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수없이 많은 밧줄을 내리시는가? 역사 이래 그 줄을 꽉 잡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그 일을 뒤풀이하시는 것이다.
사탄이 내린 썩은 밧줄도 있다.
* 하나님께서 "바로 너로구나!" 하실 수 있는 심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아담 해와 - 절대신앙을 못했다.
▣ 1972.6.6(화) 근본복귀. 중앙수련원.
-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식구 합동 집회.
058-009 복귀 노정을 두고 보면 우리 인류 시조는 실수를 했습니다. 첫째 실수한 것이 무엇이냐? 믿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5. 인간적인 생각.
▶ 하늘의 뜻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행동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1958.3.23(일) 모든 일을 복귀하여야 할 예수의 심정. 전본부교회.
- 기도 가운데.
004-114 아버님, 하늘의 뜻을 기필코 성취시켜야 할 역사적인 운명의 노정이 저희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알았사오니 저희에게 능력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몸 마음에 오직 아버지의 뜻만이 가득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서 하늘의 어떠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하늘의 뜻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행동하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들딸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 1971.4.18(일) 최고의 정상. 전본부교회.
043-027 여러분들이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 습관적인 생활권내. 환경의 인연.
▣ 1970.7.26(일) 뜻과 우리. 전본부교회.
- 7월 24일 유효원 전협회장 장례 기간.
032-295 땅 위에서는 습관적인 생활권내를 벗어나기 어렵고 환경의 인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폐단입니다.
▶ 한계선
▣ 1968.1.7(일) 복귀의 한계점. 전본부교회.
019-202 여러분은 성신을 중심 삼고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한계선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와 성신의 사랑의 힘인 부활의 능력, 부활된 생명의 힘을 받아 가지고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생 살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1969.10.12(일) 복귀의 전선. 전본부교회.
025-315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떠한 한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겪어야 됩니다. 나 자신을 그렇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그 시련의 무대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 시련을 이겨내게 하기 위해 십 만한 크기의 사람에게 백 만한 기준의 시련을 퍼부을 것입니다. 십 만한 자리에 백 만한 시련을 퍼붓는 것은 그것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백 만한 시련을 가해서 구십구 만한 실력을 갖게 하기 위한 작전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여기에 퍼부어 주는 시련은 탄식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운을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복된 조건인 것입니다. 지내 놓고 보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 "강하고 담대하라"
▣ 1957.6.23(일)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전본부교회.
002-291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대 시험을 통해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데 승리하셨습니다. 따라서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여러분도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넘어서는 길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겠습니다.
* 오늘날 여호수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우리라 한다면 우리에게도 가는 곳곳마다 개인적인 원수가 있을 것입니다. 환경도 우리를 때릴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도 우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우리들이 단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는 제2의 요호수아들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전개되는 어떠한 싸움의 길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들이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1) 노아
- 술을 마시고 취해 가지고 벌거벗고 드러누워서 함의 실수의 역사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승리하고 난 후에 주의해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
- 제물을 쪼개라는데 왜 안 쪼갰어요?
3) 모세
- 모세는 반석을 왜 두 번 쳤어요?
4) 세례 요한
-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고 왜 안 따라갔어요?
- 친척의 동생 뻘 되는 그 예수를 메시아로 모신다는 것은 힘든 것이 아닙니까?
▣ 1972.9.17(일) 전본부교회. 주목의 주인공.
062-094 또 세례 요한을 두고 보면 세례 요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했으면 증거한 대로 행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말했으면 말한 대로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인간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예수를 두고 보면 예수는 자기의 동생 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자란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세례 요한으로서는 도저히 믿으래야 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였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만일에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내세운 그 입장이라는 것은 내가 비판할 수 있는 입장보다도 더 엄숙하고 더 기막힌 입장이라는 것을 그런 입장에서 내세웠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예수를 배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062-144 노아 할아버지를 교육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잖아요? 술을 마시고 취해 가지고 벌거벗고 드러누워서 함의 실수의 역사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승리하고 난 후에 주의해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물을 쪼개라는데 왜 안 쪼갰어요? 모세는 반석을 왜 두 번 쳤어요?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고 왜 안 따라갔어요?
▣ 1972.11.19(일) 중요한 사랑. 전본부교회.
065-171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것도 자기 자신보다도 환경적 사항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친척의 동생 뻘 되는 그 예수를 메시아로 모신다는 것은 힘든 것이 아닙니까?
5) 마리아와 요셉. 제사장 사가랴.
▣ 1966.12.25(일) 성탄일을 맞이할 사명. 전본부교회.
156-296 요셉은 꿈에 마리아가 잉태했으나 그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듣고 얼결에 데려왔지만 시일이 가면 갈수록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하늘의 약속과 더불어 보내신 아버지의 입장에서 예수를 대해 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보기에 염려하는 입장에서 예수를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1965.1.3(일) 구세주는 오셨다. 전본부교회.
014-272 요셉은 예수가 자신의 아들의 입장에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평면적인 세상적 기준에서 볼 때 예수와 요셉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였지만 뜻적인 입장에서는 상하관계였던 것입니다. 벌써 출발부터 다르고 내용이 달랐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안 그 시간부터 누구보다 충성되게 예수를 모시는 제사장의 사명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아들딸 즉 예수의 동생들은 아버지인 그 요셉을 따라 형님이고 오빠인 예수의 말에 누구보다 절대 순종해야 했습니다.
* 만일 요셉이 그런 생활을 했더라면 베드로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요셉이 가정적인 환경에서 안식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던들 예수가 외부로 나갈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식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하는 동생들이 예수의 제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1997.11.26(수) 인류를 구할 참가정 운동. 워싱턴, D.C. 힐튼호텔.
- 제4차 세계평화종교회의 창시자 기조연설.
288-132 하나님의 아들은 비록 착지는 했다 하더라도 사탄 세계 안에서 무사히 자라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호받을 울타라기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가랴 가정의 세 사람에게 그 기반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은 사생아의 입장에서 사가랴 가정의 보호도 못 받고 또 요셉과의 어려운 조건에서 심정적으로 말할 수 없이 외로운 처지에서 자랐습니다. 메시아의 길을 자각하게 된 에수님은 외로운 사정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심각한 장애 요인임을 홀로 안타까워했습니다.
메시아는 제2의 아담, 참아버지이며 그 사명을 위해서는 실체 신부, 참어머니를 맞아하셔야 합니다. 만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계시와 영적인 은혜 아래 처음 가졌던 절대적인 믿음을 계속 가졌더라면 에수님을 하나님의 아드님으로 메시아로 지극 정성으로 모실 뿐 아니라 또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고 절대적으로 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태어난 세계 요한이었으니 그가 회개시킨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인도하는 책임을 다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가랴도 엘리사벳도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만 했지 모신 실적은 없었습니다.
존경받는 제상장인 사가랴가 방관하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무관한 자리에 서게 됨으로 오히려 예수님의 가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백성들이 따르지 못하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믿음을 잃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흐를 때 예수님이 바라신 신부를 맞는 일을 도왔을 리가 만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로부터도 사가랴 엘리사벳으로부터도 반대를 받고 최후에 세례 요한으로부터도 반대를 받아 육친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명을 완수할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이 영적 기반을 찾아서 다시 복귀섭리를 하시고자 출발한 것이 예수님의 출가였습니다. 출가한 예수님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탄식하였습니다.
◑ 기도
▣ 1960.12.3(토) 나는 어느 편에 서느냐. 전본부교회.
- 제4회 협회 40일 전도사 수련회.
011-009 기도해서 해결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문제를 앞에 가로놓고는 인간의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 1972.5.10(수) 개척자의 길. 중앙수련원.
-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056-056 어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기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선생님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여기 최 선생이나 어머니가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는데 어머니가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청평이나 팔당댐에 낚시질을 하러 다닐 때입니다. 그때 알았어요.
선생님을 보면 기도를 안 하는 사람 같거든요. 낮에는 발견 못 했는데 밤에는 일어나면 기도를 하고, 어떤 때는 기도를 하다가 엎드려서 자는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앞에 놓고는 그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문제를 앞에 가로놓고는 인간의 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2. 기도를 통해 보이는 적, 보이지 않는 적을 가려내야 한다.
▣ 1968.1.1(월)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 전본부교회.
- 참하나님의 날.
019-146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활동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반대하는 무리가 생겨나는데 그 반대하는 무리의 실체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활동하는 데는 두 종류의 적이 있습니다.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이 있습니다. 이 두 적은 항상 우리를 향하여 공동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루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을 알고 보이는 적을 가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면적인 진격을 한다고 해도 적을 알지 못하면 습격당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날뛰다가는 들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 섭리사적 생각.
-"참"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 참부모 참자녀 참만물 참하나님
1.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
▣ 1993.3.23(화) 참부모님과 축복가정. 세계선교본부.
246-011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역설적인 논리는 뭐냐? 생명을 던지지 않는 사람은 나를 희생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언제나 붙들고 "네 생명은 나에게 달렸으니 네 생명을 부정하고 끊지 않고는 하늘의 생명을 이어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사탄이 언제나 생명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부 다 역설적인 논리예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그런 것입니다. 또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처음 된 자는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형님입니다"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전부 꺾여 버린다 이거예요. 탕감법에 걸린다 이거예요. 그건 가인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2. 역로의 노정 = 탕감 복귀 = 타락과 반대의 경로.
▣ 1992.7.20(월) 뜻으로 본 역사적 역로와 순로. 본부교회.
233-025 타락이 뭐냐? 여자가 심판을 잘못한 것입니다. 아담을 영점으로 타락시켜 버렸습니다.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무가치한 기준으로 타락시켜 버렸습니다. 이것은 환원시켜야 되는데 그 길이 역로입니다.
우리 인간은 섭리사적인 뜻으로 봤을 때 출발부터 역로의 노정을 간 것입니다. 역설적인 논리의 길을 간 우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죽는 것만이 사는 길
▣ 1985.4.7(일) 벨베디아.
- 4월 20일이 참부모의 날이지만 부활절 휴가차 나오셔서 앞당겨 행사 거행.
134-188 죽어야 산다, 죽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 창세기 2장
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
4. 위해서 살라는 것이다. 먼저 손해 보며 살라는 것이다.
▣ 1998.8.16(일) 참부모와 참된 성. 코디악.
- 주일 경배식 후 말씀.
295-032 자기를 위해서 살면 망하는 거예요.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도 혼자는 못 느끼니까 위해서 창조한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간단한 것 같지만 우주의 근본 이치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1969.10.18(토) 체휼적인 신앙인. 대구교회.
026-045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믿는데 통일교회를 믿어 가지고 쌀밥을 먹고 쇠고기 장조림을 먹고 있습니까? 쌀밥을 먹던 사람이 도리어 조밥이나 보리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된 것입니까, 못된 것입니다.
* 통일교회는 처음부터 이익을 보지 않습니다. 먼저 손해 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사법은 좀 다릅니다. 이익만 보려다가 타락했기 때문에 먼저 손해 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자는 것입니다. 손해 본 맛을 모르는 사람이 이익의 맛을 알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은 처음에 손해 봐야 됩니다. 탕감이라는 말이 복받았다는 말입니까, 손해 봤다는 말입니다. 손해 봤다는 말입니다.
026-046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곧 선한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처음에 손해 봤다가 나중에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그 손해 보는 것이 일생 동안 끝나지 않게 될 때는 몇 대라도 내려가다가 그것이 다 채워지는 날에야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신앙강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재산 6가지. (0) | 2018.06.28 |
---|---|
참부모님과의 만남 - 11가지. (0) | 2018.05.25 |
신앙생활의 주의점 - 9가지. (0) | 2017.07.11 |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 5가지. (0) | 2016.11.06 |
참부모의 최고의 선물 4가지. (0) | 2016.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