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2.22(일) 하나님의 협조와 우리의 책임. 전본부교회.
084-058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협조하에서 이 뜻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성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든지 하나님이 중심돼 가지고 그 뜻에 협조할 수 있는 인간의 무리가 형성되는 데 있어서 뜻의 성사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 하나님의 협조와 우리의 책임. 그러려면 하나님이 우리를 협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협조해서 하나님이 같이하는 자리에서만이 뜻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럼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협조 없이는 책임을 할 수 없다 이거예요. 결국 우리의 책임 완수도 하나님의 협조에 의해서, 우리의 책임을 시작하는 것도 하나님의 협조에 의해서 그 과정으로부터 그 결과까지 하나님의 협조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결론이 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흔히 말하기를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흔히 그런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뭐 재수가 있었다. 운이 좋다"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운이 좋다는 것은 그 운이 좋다는 말이 어디서 나오느냐? 자기가 운이 좋게끔 움직여서 그 좋은 날은 맞이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되었으냐?
이렇게 본다면 자기가 그렇게 노력해 가지고 그러한 결과가 된 것을 "운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라고 했는데, 普通之事로 했는데 結果에서 그 以上 것의 결과가 나왔다" 하게 될 때 "운이 좋다" 하는 말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자기가 타고나 가지고 천성적으로 하나님의 협조 혹은 조상들의 선의 터전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생애는 반드시 좋을 수 있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 과정도 좋을 수 있는 면이 많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운이 좋다 하는 그런 날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개인이 그러하듯이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대한민국이 운이 좋다 혹은 어떤 사람은 박 대통령께서는 아, 운이 좋다고 하는 거예요. 월남 사태의 문제(월남전에 연 30만 명의 군이 참전, 5000여 명 전사)로 말미암아 국가가 상당한 혼란기를 넘어갔다든지 여러 가지 그러한 고비에 부딪칠 적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것을 넘어갔다 이거예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에 그 당사자가 좋은 것보다도 역사적 배후에 그 무엇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 어떠한 무엇이 협조할 수 있는, 한국의 역사 배후에 있어서의 그 무엇이 협조할 수 있는 동기적 내용이 결국은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주권자면 주권자의 생활을 통해서 그 결과가 엮어지기 때문에 그 주권자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는 반드시 좋을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는 거예요.
한 국가도 마찬가지이지만 민주 세계면 민주 세계, 한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민주 세계가 지금 공산 세계에 몰리고 있다 이거예요. 그걸 보면 민주 세계가 운이 나쁘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것이 나쁘다고 해서 그 나쁜 것으로 끝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것으로 끝날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원인은, 동기는 좋은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 여기는 문제가 크다는 거라구요.
원인이 좋으면 그 결과도 좋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나쁘면 반드시 이것은 그 누구의 책임인 거예요. 그건 운 타령을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책임입니다. 사람이 잘못하면 아무리 좋은 운세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쁠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 않느냐.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인간의 타락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하나님 편에서 보게 될 때 지극히 최고의 동기의 주체되시는 그 하나님에 의해 가지고 결과의 과정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어서 인간이 불행하게 됐습니다.
그 불행하게 된 것이 하나님이 협조하지 않아서 불행하게 되었느냐? 그것은 아니다 이거예요. 동기가 나빠서 불행하게 되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이거예요. 즉 인간이 잘못하게 된다면 결과가 나쁘게 될 수 있다 이거예요.
084-060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 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참고 이 참음으로써 모든 것을 살피고 경거망동하는 일을 삼가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살피고 살펴 가면서 그 동기가 좋았으면 그 동기는 인간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만 경거망동해 가지고 자기 욕심을 중심 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생각에 치중하게 될 때는 엇갈린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 조상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두고 미루어 보더라도 이것을 우리는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084-061 그러면 여기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돼야 되겠고 내 생활이 돼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당면 과제입니다. 중요한 문제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협조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협조하느냐? 하나님의 협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은 原理原則에 立脚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어떠한 구상에 의해 가지고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하는 게 아니라구요. 원리원칙에 입각해야 된다구요. 원리원칙에 입각해 가지고 언제든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원리원칙이 어떤 것이냐?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심정권내에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문의하면서 나갔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어려운 일을 하나님 앞에 묻게 되면 반드시 대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운 길을 무난히 갈 수 있지만 타락한 우리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으로서 이 어려운 일에 부딪히게 될 때 어떻게 이것을 가려 가느냐?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게 될 때에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입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냥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이게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대적으로 소모전을 해서 이걸 거꾸로 올라가야 됩니다.
거꾸로 올라가는 데는 누구의 힘에 의해서 올라가는 것도 좋겠지만 자의에 의해서 올라가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다 이거예요. 협조를 받고 올라가는 것보다도 협조 안 받고 올라가는 것이 그 떨어진 사람의 보람 있는 책임 완수입니다.
* 그럼 하나님의 협조를 받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나님은 협조해 주고 싶지만 협조해 주면 까닭 없이 내용도 몰라 가지고 한마디 협조하면 조건에 걸린다 이거예요.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두 아이가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까닭 없이 내용도 몰라 가지고 한마디 협조하면 조건에 걸린다 이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타락 인간에 있어서 타락한 인간 자신이 책임을 지고 이것을 해소시키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 대해서 바라는 최고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주고 싶어도 무조건 협조할 수 없습니다. 無條件 協助하는 날에는 참소條件이 제시된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084-063 오늘날 기성교회 신자들은 말하기를 "아,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무조건 용서다." 하는데 무조건 용서하면 기도하라는 말이 필요 없고 온유 겸손하라는 말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무조건 나 하고픈 대로 다 하는데 하나님이 협조해 준다면···, 무조건이 아니라 조건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고 또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무조건이 아니라구요. 타락한 인간이 죄를 지었으면 ···,
자식이 죄를 지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그 죄를 책임지겠다고 한다면 그러한 부모는 가당치 않은 부모다 이거예요. 죄를 지은 사람이 책임져야 되는 거라구요.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을 중심 삼고 보더라도 말이에요, 죄 지었으면 죄지은 사람이 형무소 가야지요. 그 부모가 "아, 내 아들딸이 잘못한 것은 내 탓이요.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법보다 더 강하지 않소! 그러니까 우리 아들딸 잘못한 것을 내가 책임지겠소!" 해도 그건 용서할 수 없다 이거예요. 아무리 사랑이라고 해도 ···,
사랑이라는 것은 원리원칙을 통한 사람에 있어서 모든 것이 통할 수 있는 것이지만 비법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랑의 논리를 적용하더라도 통할 수 없다구요.
이러한 결론을 짓는다면 하나님 자신도 인류 시조가 타락한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책임을 전폭적으로 질 수 없다구요. 책임지는 데는 원조하고 상징적으로 암호로써 깨우쳐 가지고 "얘야! 이렇게 해라" 이럴 수는 있지만 "야야! 그거 안 된다.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며 명령적으로 설명조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 그러나 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責任이 무엇인가를 알고 기도를 해야지요. 책임도 몰라 가지고 막연한 기도를 암만 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막연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084-066 그러려면 이제 우리 타락한 인간 자체로서는 갈 수 없다 이거예요. 반드시 하나님의 협조가 있어야 됩니다. 협조 가운데는 하나님이 협조하고 그다음에는 천사들이 협조하고 여러분의 조상들이 협조한다 이거예요. 협조하는 영들이 있다구요.
영계를 바라보면 협조하는 데는 여러분의 선한 祖上들이 여러분들을 協助한다구요. 그다음에는 天使가 協助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協助한다 이거예요.
그러면 언제나 순서가, 하나님이 사랑이 많다면 먼저 나타나 가지고 협조할 것 같은 데,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조상들을 통해서 협조시킨다 이거예요.
대한민국의 갈 길은 누구를 통해 하나님이 협조시키느냐 하면 대한민국의 충신 열녀들, 대한민국을 위한 애국자들 혹은 충신들 이런 사람들에게 그 나라에 필요했던 역사적인 영들을 통해서 "네가 바라던 대한민국, 네가 원하던 이상의 대한민국을 바라던 것이니 네가 협조해 줘 가지고 그곳으로 인도해라!"
그래 가지고 자기 후손들에게 협조하는 것은 인간들은 모르지만 그렇게 협조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선한 영들이 협조하게끔 나가 가지고 협조하는 데 대한민국이 거기에 하나돼 가지고 그것이 보다 앞날에 발전할 수 있게 될 때는 천사를 투입한다 이거예요. 천사를 투입해 가지고 그 나라가 천사가 협조한 그 목적 이상의 자리에 나가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여기에 협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원리관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 지금 기성교회 교인들이 역사를 하고 무슨 신령 역사가 벌어지고 방언하고 다 이런 것이 전부 다 하나님이 직접 관여해 가지고 하는 줄 안다구요. 거기에는 수많은 영인들이 동원돼 가지고 계율적인 역사를 하기 때문에, 전부 다 받는 것이 같지 않다구요.
박씨 조상이 도와주는 것은 그 박씨가 좋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는 거예요. 박씨의 원수가 김씨라면 김씨 조상이 가르쳐 주는 것은 김씨가 좋을 수 있는 입장으로 가르쳐 주기 때문에 지상에서 반대되느니만큼 영계에도 반대가 벌어진다구요.
* 자, 그러면 이제 우리 통일교회도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슨 협조를 받겠느냐 이거예요. 물론 우리 한국의 선한 영인들, 여러분 조상들의 선한 영들의 협조를 받지만 세계 성인들의 협조를 받자 이거예요. 알겠어요? 범위가 넓다구요.
084-068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뜻을 중심 삼고 볼 때 그 방향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구요. 역사적으로 볼 때도 에덴동산에 아담 해와를 지어 가지고 출발하던 그 방향은 아무리 아담 해와가 타락했을망정 하나님 자신은 그 방향을 바꿀 수 없습니다.
타락해 가지고 인간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 인간은 없을지라도 방향은 뚜렷이 남아졌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인간 대신 찾아진, 복귀된 하나의 완전한 부모가 나타나게 될 때 그 방향에 다시 갖다 접근시켜 가지고 가면 거기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의 완성, 인류의 구원 완성이 가능한 것이지 방향이 일치 안 된 데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거예요. 무엇을 바라느냐? 하나의 방향, 통일된 방향 ···.
기독교가 바라는 방향이나 유교가 바라는 방향이나 수많은 종교가 바라는 방향은 막연하지만 암암리에 "선한 세계를 이루자, 선한 사람이 되자,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의 세계를 이루자" 하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마찬가지라구요. 구체적인 아니지만, 모호할 뿐이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는 틀림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뭐냐? 구체적이어야 돼요. 구체적인 방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편에서 보게 될 때에 구체적인 것하고 구체적이 아닌 것하고 어떤 것을 하나님이 지원하고 어떤 것을 하나님이 원할 것이냐? 구체적인 것을 원한다 이거예요. 이론데 닿는, 사리에 맞는 그러한 길이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진리도 원칙에 이탈될 수 없다 이거예요.
084-069 만약에 그렇게만 되는 날에는 하나님의 협조는, 영계의 협조는 자동적입니다. 왜 그러냐? 타락이라는 것이 뭐냐? 원리원칙에 일치 안 될 자리를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리원칙에 이탈되기 시작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原理原則에 立脚하게 되면 하나님이 협조가 벌어진다구요. 하나님의 주관권 내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리원칙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구원섭리는 뭐냐?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입니다. 복귀섭리는 뭐냐? 재창조섭리입니다.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는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럼 재창조섭리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창조할 때 무엇을 먼저 지었느냐? 천사세계를 먼저 지었습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천사세계를 지었어요. 그다음엔 뭐냐? 만물세계를 지었습니다. 그다음엔 뭐냐? 아담 해와를 지었습니다.
천사세계를 짓고 그다음 만물을 짓고 그다음 아담 해와, 이렇게 3단계를 거쳐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3단계 원칙을 통해 가지고 오늘날 역사도 발전해 나온다구요.
* 그러면 이 전체 再創造觀으로 보게 된다면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영들은 천사 세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관이. 알겠어요?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것이요, 오늘날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뭐냐? 타락한 아담 해와 혹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권 내에서 머문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그러면 천사세계하고 만물세계하고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무얼해야 되느냐? 아담 완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 완성을 해야 된다구요. 지금은 타락한 아담이라구요.
우리 인류의 소원이 뭣이냐? 마음 세계와 몸 세계가 완전히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이 주체라면 그 주체 앞에 대상이 돼 가지고, 대상이 돼 가지고 뭘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자는 것입니다. 그게 창조목적이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
084-079 자, 이제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의 협조를 받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하나님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안 되게 돼 있다구요. 그 협조가 뭐냐? 그 협조가 뭐냐? 하나님이 구름 타고 내려와 가지고 따라다니는 게 아니에요. 협조가 뭐냐? 원리원칙이 협조의 기반이라구요. 원리원칙만 형성되는 날에는 거기에는 반드시 빛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협조는 원리원칙이 형성되는 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無謀한 신앙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이거 보라구요. 여러분, 무슨 이적 기사를 바라 가지고 "절대 믿는 대로 되지." 하던 사람은 ···. 이적 기사를 행한 사람을 보라구요. 그 자신과 일족이 어떻게 됐나요? 결과가 좋더나, 나쁘더냐? 다 보라구요.
여기 한국에서 유명했던 부흥사들, 과거에 이름난 사람들의 그 자신과 그 후손이 좋더냐? 좋지 않다구요. 불량자 가운데는 누가 더 불량자냐? 목사 아들이 더 불량자다 이거예요. 왕초 불량자들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 왜 그러냐 이거예요. 盲目的으로 要求해 가지고 된 후에는 반드시 盲目的으로 要求한 그 대가를 그 자신이 要求받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능력을 행했으면 내 자신이 그런 능력을 움직일 수 있는 자체가 됐느냐 할 때, 못 돼 가지고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 하게 된다면 그 자신이 받은 복으로 말미암아, 받은 일로 말미암아 侵害를 받는 것입니다. 기반이 없으면 왕창 무너지는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천지창조를 하나님이 할 때에 "아, 말씀대로 돼라" 했지만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믿기를 말이에요, 그저 도깨비 허깨비 나타나듯이 전부 다 이렇게···. 그게 아니라구요.
원리원칙에 입각해 가지고 말씀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리원칙에 입각해 가지고 "그렇게 돼라!" 원리가 이렇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원칙과 원인과 결과를 통해 가지고 이 창조가 벌어졌지 뭐 원인도 결과도 없이 이렇게 될 수 있나요?
084-088 미국에서 제시했던 레버런 문의 가르침은 미국이 망하게 되더라도 그 미국과 더불어 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넘어서 차원 높은 새로운 후대의 세계로 옮겨갈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이미 결정적 승리의 자리에서 가는 승자의 권위를 갖고 가야 되겠다고 이미 결정했기 때문에 패자의 길, 그런 졸장부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 거라구요.
"바람아 불어라! 불 때로 불어라! 내가 가는 길에 감옥이 있더라도 감옥 철창을 내 뚫고 나갈 것이다! 간다!"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러한 생애를 바쳐 가지고 그런 길을 걸은 사람이라구요.
생사가 교차되는 그런 자리에서 내가 지녀야 할 종자가 있다면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죽고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산다!" 이 철칙만이 생활철학이에요. 생애의 철학으로 남기고 가자, 이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 아무개의 사상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084-090 내가 이렇게 살아서 하나님이 협조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협조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지 않으면 인류의 소망이니 희망이니 하는 게 없다 이거예요. 전부 다 망상이요 한낱 궤변이요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이러한 도리의 원칙을 따라 가지고 승리의 개인을 찾을 것이고 승리의 가정을 찾을 것이고 승리의 민족과 승리의 국가와 승리의 세계를 찾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그 신도 허황된 신이요 인간 앞에 믿을 수 없는 신으로 결정하고 있는 거라구요. 신이 있다면 내가 신을 신봉하지 않더라도 이런 길을 찾아 세워 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거라구요.
*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옥에서 영어의 몸이 되었어도 나는 졸장부가 아니었습니다. 치열한 고문의 자리에서 피를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피는 옛날 예수의 피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죽을 때의 형장의 피와 다릅니다. 내 하나님 앞에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나이로서 당당한 내 의무와 책임을 이 자리에서 완수하기 위한 당당한 사나이로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위해서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아직까지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협조 없이도 나는 이 땅 위에서 천리를 세우고 갈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 했지 "하나님, 날 도와주소." 그런 시시한 기도를 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찾을 것이 틀림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죽을 사지에 가더라도 그런 절개를 갖고 가는 날에는 죽을 줄 알았던 길에 자기도 모르게 살 수 있는 길이 개문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계셔서 협조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와 같은 전통적 역사의 역사를 업고 이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통일교회는 누가 와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라구요. 이건 문 아무개가 아니고는 지도할 수 없는 단체라구요. 세계의 그 어떠한 정치의 위력 가지고도 이것을 해소시킬 수 없는 것이요 소화시킬 수 없다고 본다구요.
*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사정에 따라서 우왕좌왕하는 그런 무리는 통일교회 교인이 될 수 없어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나는 부모 앞에서 부모를 배반한 사람이라구요. 나는 처자를 배반했던 사람이에요. 왜? 그건 나라를 찾기 위해서. 지금에 와 가지고는 내가 대한민국을 떠나서 미국에 가 가지고는 ···. 어느 무엇보다 그 미국을 위해서 대한민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을 알지만 이걸 버리고 이 세계를 지도하는 민주 세계의 대표적인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이상 사랑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거라구요.
왜? 판도 넓은 그 체계, 수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는 거기에, 주체사상이 없는 이 세계에 내가 비록 소구의 몸이요 아시아의 인인이지만 서구 문명이 아시아를 압제하고 무시할지라도 그것을 뚫고 올라가 가지고 이러한 전통과 사상을 세워야 되겠다는 책임을 중심 삼아 가지고 미주 한복판에 큰 싸움을 벌이는 거라구요.
이 싸움이 금후에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이냐? 혹자는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요. 대다수가 문 아무개가 비운을, 백발백중의 패자의 잔을 마시기를 고대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패자의 잔을 마실 수 있나요? 패자의 잔을 마실 수 있어요? 없다 이거예요.
내가 만약 그런 자리에 서더라도 내가 쓰러지면 그 기수가 돼 가지고 제2 제3 제4의 후계자가 태어날 것입니다. 지남석을 깨뜨려 버리면 사방으로 퍼져 가지고 지남석의 일을 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싸움은 잘 붙었고 잘 시작됐으니 이 싸움은 어차피 귀결이 될 것입니다. 귀결되는 데는 내 일보 일보를 인류 앞에, 하나님 앞에 전통적 승리의 기반으로 남기는 그런 표제를 걸고 승리적 결정을 내릴 것이거늘 그건 불가피한 것입니다. 내가 죽는 날에는 이 싸움은 억만년 계속될 것이다 이거예요. 쓰러지는 날에는 이 싸움을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 어때요? 한국의 임자네들, 선생님이 쓰러지면 대신 이 싸움을 할 자신이 있어요? 나 한번 해 보겠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리라구요. 손들어 주니 고맙소. 사실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사실이 그럴 수 있느냐?
이 골통으로 총알이 뚫고 나가도 "아이쿠, 나 죽는다"가 아니라 "하나님! 이 뜻을 어떻게 합니까?" 이러고 죽어야 된다구요. 나는 뜻을 위해서 났고 뜻을 위해 죽는다는, 내 생명이 죽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뜻에 지장을 가져오는 것을 서러움으로 품고 죽어야 된다는 결론이에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심각한 길이라구요. 놀음 놀이하는 길이 아니에요.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한 여인에게 팔려 다니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한 가정에 팔려갈 수 없는 사나이라구요. 한 민족 앞에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팔려갈 수 없는 사나이라구요.
084-094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보라구요. 그러면 이제 원리원칙인 입장에 서게 될 때는 하나님이 협조한다고 했다구요. 알겠어요? 원리원칙에 서는 것만이 아니에요. 원리원칙에 서 가지고 끝까지 가야 돼요. 원리원칙에 선다고 해서 여기에서 출발해서 가게 될 때는 그것을 중심 삼고 끝까지 가야 돼요. 끝까지 가야 돼. 끝까지 가 가지고 ···.
그건 뭐냐 하면 타락권을 넘어설 단계에 가 가지고 협력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소생권 장성권 완성권이 있는데 장성급을 넘어서 가지고 완성권 내에서 협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성급까지는 우리가 가야 돼요. 천신만고 가야 돼요. 그걸 넘어서게 될 때에 하나님이 협조하는 거예요. 끝에 가서 협조한다구요. 하나님은 할 수 없이 끝에 가서 협조하는 거라구요.
이거 왜 이렇게 됐느냐? 원리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만 하는 사람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기도 한 번 헀으면 두 번 나가서 실천해라 이거에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084-097 마태복음 16장 19절을 보면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지요?
어디가 주체예요? 땅이에요. 온 만유가 생겨나게 된 기원의 중심이 누구예요? 사람이에요. 물론 하나님이 중심이 돼야지요. 지은 것은 하나님이요 지음 받은 것은 사람인데 지음 받은 가운데 중심은 사람이에요.
그래 하나님의 완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완성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 완성을 필요로 해 가지고 사람이 완성돼야만 비로소 하나님에게도 완성이 나오니 거기서 사랑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084-100 하나님은 딴 완성은 필요 없다구요. 딴 완성은. 무슨 별다른 완성이 없다는 거예요. 절대 능력, 절대 전능, 무소부재한 하나님으로서 다 갖추었지만 하나만 못 갖추었어요. 사랑만은 못 갖췄다는 거예요. "아, 그런 말이 어디 있나?" 하겠지만 그런 말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통일교회 문 선생으로 말미암아 밝혀졌다는 거예요. 왜 사랑만 이루지 못했느냐? 하나님 혼자 사랑할 수 있어요?
* 하나님도 사랑의 상대가 필요하겠나요, 안 하겠나요? 그리고 선생님은? (필요합니다.) 뭘 필요해? 상대를 못 가진 사람은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으래야 받을 수 없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상대를 못 가진 사람은 잘 줄래야 잘 줄 수 없고 잘 받으래야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잘 주려면 잘 생긴 상대를, 잘 생긴 얼굴이 아니고 잘난 상대를 가지고, 잘난 상대를 통해서 잘 주고 잘 받게 될 때 그게 최고의 행복이에요. 최고의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겠어요? 참된 주체와 참된 대상이 참되게 주고 깊을 때 주고받고 싶을 때 받고 영원히 주고 싶으면 영원히 줄 수 있고 영원히 받고 싶으면 영원히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자리가 행복의 정의가 내려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실감이 난다구요.
행복이 뭐냐 할 때 "행복이 행복이지 뭐." 그거 안 된다구요. 참이 뭐냐? 참이란 것은 혼자 있어 가지고 참이 잇을 수 없다구요. 참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돼야 되고 그 주체가 멋지게 입체적 관계에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게 될 때 참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거 다 이론적으로 정리해 놔야 된다구요.
084-109 자, 이제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 책임을 완수해야 되겠습니다. 책임을 완수하지 않는 데는 하나님의 협조가 있을 수 없다구요. 책임은 어떠한 책임이냐? 원리원칙에 입각한 책임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그렇고 가정이 그렇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온 천주까지 그러한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데는 반드시 동기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운의 본체예요. 과정도 그 원리를 따라가면 운의 실적으로 생활권 내에 나타날 것이고 반드시 결과는 세계 전부가 그 결과의 세계에 지배받을 수 있는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084-118 자, 이제 하나님이 협조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재창조의 원칙에 의해 가지고 ···. 천사보다 나아야 된다, 이걸 알아야 돼요. 천사를 지배해야 할 주인이 누구라구요? 아담이요, 또 만물을 지배해야 할 주인이 누구라구요? (아담.) 내 몸뚱이를 지배해야 할 주인이 누구라구요. 마음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 몸뚱이를 지배해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몸뚱이를 지배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만물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 완성한 아담 앞에는 만물이 지배받아야 할 것이 천리 원칙이기 때문에 타락한 아담이 됨으로 말미암아 만물과 이탈됐다구요. 갈라졌지요?
사람과 만물, 야임과 몸, 모든 것이 갈라졌기 때문에 완성한 아담이 되는 날에는 만물은, 돈은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협조를 받으려면 원리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만물을 주관하고 천사를 주관해야 합니다. 그런 자격자가 없으면 하나님이 협조할 수 없다구요. 그게 원리라구요. 알겠어요?
084-120 원리가 그렇지요? 누굴 주관 못하면 하나님의 협조를 받을 수 없어요? (만물.) 만물을 주관하고 만물이 다 좋아해야 돼요. 통일교회 문 선생이라면 "아이구! 통일교회? 세상 모든 물질이, 금은보화가 전부 다 통일교회 찾아가고 싶다" 이런다는 거예요.
* 영안을 열어 보라구요. 내가 청평 가게 되면 청평의 산에 나무도 좋아하고 말이에요, 거기에 있는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는 나무들은 다 죽는다구요. 나는 지금까지 소나무를 제일 안 좋아했다구요. 왜? 가시가 돋아서 쿡쿡 찌르기 때문에. 그 소나무가 다 죽는 놀음이 벌어질 거라구요.
084-123 하나님의 독생자와 같은 특권적인 자녀의 명분을 당당코 주장하고 나선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자리를 갖추어 가지고 과거의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더냐. 그 심정을 그릇되게 알고 있으면 그 심정을 중심 삼고 한이 맺힌 것을 풀어 줘야 되겠고 오늘날 이 세계에 하나님의 심정적인 한이 있으면 그걸 풀어 줘야 되겠다구요.
"내가 풀어 줄 것이다. 앞으로 미래의 한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내 손으로 할 것이다. 내 일대를 통해서 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나는 피를 흘릴 걸 각오했고 생명을 각오하고 걸어 나왔다 이거예요.
그러한 표준을 두고 볼 때에 문 아무개 가는 길은 세계 역사시대에 어떠한 충신 열녀 성현 열사들이 가던 이상의 자리에서 나가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말뿐이 아니라구요. 이 책임을 개인적 시대에 있어서 내 힘을 다하고 내 정성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同情할 수 있는 자리에서 쓰러지자 이거예요.
"내가 조금 더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됐을 터인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그런 자리 말고 쓰러지더라도 최고 자리에서 ···. 하나님이 보게 될 때 "너 아무개는 그 以上 할 수 없다! 그 以上 더 할 수 없다." 하는 공증된 자리에서 쓰러지는 날에는 하나님은 여기에서 반드시 協助해 주더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하나님이 협조해 줘 가지고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나는 거라구요. 안될 것 같은데 되는 거라구요. 망할 것 같은데 흥하는 것이에요. 없어질 것 같은데 기적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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