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일본 유학 - 귀국. 1943.10. 중순

true2020 2016. 9. 14. 11:38

▶ 1943.10.  중순 귀국

- 졸업할 당시 태평양 전쟁 중이었는데 병역 문제도 있고 해서 6개월 단축해 9월에 졸업하게 되었다.

: 우리가 졸업할 때는 공학 계통의 학생들은 6개월 먼저 졸업했다.

: 관부연락선 關釜連絡船으로 돌아가게 되어 몇 시에 도착한다고 전보를 쳐 두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서 표를 무르고 가지 못하게 되었다.

: 1943년 10월 4일 기차를 타려고 도쿄역에 척 들어섰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 가치를 안 탔다. 전송 나온 친구들과 富士山 熱海에 놀러 갔다. 

: 내가 등산 가는 바람에 1주일 있다가 돌아왔다. 그러니 고향에서는 난리가 났다.  

: 시모노세키下関롤 거쳐 서울에까지 오는 표를 끊었다. 그때 타야 할 배가 10월 4일發 곤린마루崑崙丸다.

: 1943년 10월 5일 오전 1시 15분께 오키노시마 沖ノ島 동북쪽 약 10리 해상에서 관부연락선 곤린마루崑崙丸가 沈沒하였다.

 

1. 어떠한 명령을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떠났습니다.

 

▣ 1969.5.2(금) 전 세계는 뜻을 시급히 요구한다.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 순회 귀국 환영식.

 

022-224 선생님이 유학을 마치고 일본을 떠날 때 앞으로 21년 후에는 일본에 다시 와서 어떠한 명령을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떠났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20년 만에 일본에 가서 명령을 하게 도ㅒㅆ으니 무슨 일이든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2.  곤린마루의 파손과 김경계 어머니의 사랑.

 

▣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35 더욱이 어머니께 미안한 것은···. 여러분 중에도 아는 사람은 알 거예요. 왜정 때 관부 연락선 곤린마루가 깨져서 침몰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그 배를 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배를 타고 고향에 간다고 전보를 쳐 놓고 막상 떠나려고 동경역에 나가니까 하늘이 가는 길을 막더라구요. 그때 친구 세 사람이 전송을 해 주려고 나왔었는데 그 길로 돌아서 가지고···. 그 시간에 차를 타고 배를 탔으면 배하고 같이 깨졌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 가지고 친구네 집에 가게 됐던 것입니다. 고향에 간다고 전보했는데 어떻게 돼서 못 간다고 전보를 해야 할 텐데···. "자, 이렇게 되었으니 며칠 동안 우리와 같이 놀자"고 하는 친구들에게 끌려가서 3일 동안 지내고 보니 전보를 못 쳤습니다.

 

그때까지도 배가 깨졌다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사흘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된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집에 전보를 하긴 했는데 그 과정에 고향에선 큰 난리가 벌어진 거예요. 들리는 소식엔 배가 깨졌지 고향에 온다는 전보는 왔으니 틀림없이 죽었다 이거예요.

 

여자가 치마를 안 입고 속바지 차림으로 다닌다면 그건 자기 정신이 아니지요. 어머니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9월이니까 춥지도 않은데 신발이니 뭣이니 생각할 여지가 있었겠어요? 그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 부모의 사랑이 그렇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고향 마음에서 정주읍까지는 20리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20리 길을 왕발로 뛰고 부산까지 갔다 왔는데 신이고 옷이고 무엇이고 생각할 정신이 있었겠어요? 우리 아들 죽었다고 맨발로 뛰어나와 가지고 부산 수산 경찰서까지 가서 조사를 하니 명단에는 없고 알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틀림없이 아들이 죽었다고 이래 가지고 그렇게 골똘한 마음을 가지다 보니 왕발로 뛸 때 그 발바닥에 아카시아 가시가 박혔다는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것이 박혀 가지고 곪아 터질 때까지도 몰랐다는 거예요.

 

그때 내가 보름 후인가 하여튼 열흘이 지난 후에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아, 내가 너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선생님에 대하여 문중에서는 기대가 컸습니다. 저 사나이가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그래도 무엇인가 될 것이라고 말이에요. 또 내가 그 면 일대에서는 문제의 사나이였습니다. 잘되면 충신이 되고 못되면 역적이 된다고···. 

 

성격이 대단했고 그런 소문을 낳고 있던 사나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생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어머니 앞에 효도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전혀 해 보지 못했습니다.

 

045-137 아들이 학교를 졸업해 가지고 그렇게 집에 왔는데 또 가는 곳은 감옥이라는 거예요. 그저 끌려갔다 하면 감옥으로 끌려가니 어머니가 감옥으로 찾아와 가지고 눈물을 죽죽 흘리면서 뭐 용이 될 줄 알았는데 번데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별의별 소문을 다 듣게 되었어요.

 

내가 억울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대해서 기분 나빠했다는 거라구요. 자식을 대해서 눈물 흘리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사연이 많겠지만 나는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 1983.3.29(화) 김경계 여사 추념 예배. 본부교회.

- 김경계 여사 탄신 92주년 기념예배.

 

125-310 일본에 가 있다가 왔는데 그때가 1943년이 되겠구만. 그때 곤린마루가 파손되었지요? 그때가 바로 내가 졸업하는 때였는데 6개월 단축시켰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하관을 거쳐 가지고 한국까지 서울까지 오는 티켓을 끊었는데 그때 타야 할 것이 곤린마루예요. 곤린마루. 그 배를 타기 위해서 기차를 타려고 동경역에 척 나섰는데 아 이거 안 되겠거든요. 기분이 참 이상하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 기차를 안 탔던 거예요.

 

그러니까 집에서는 틀림없이 며칠에 온다고 딱 보고받았다 이거예요. 딱 티켓을 끊고 벌써 몇 시에 간다고 연락을 했기 때문에 고향에서는 그날 그 시간에 딱 올 줄 알았던 거에요.

 

그런데 동경역에서 내가 뒤로 돌아섰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 배를 안 탔거든요. 그런데 그 배가 파선이 됐다 이거에요. 이렇게 되니 집에서는 뭐 명단을 찾아보고 아무리 해야 할 수가 있나요? 이건 뭐 온다는 사람이 안 왔으니까요. 동경에 알아봐도 주소에 없다 이거예요. 어디론지 길을 떠났다 이거예요.

 

내가 어떻게 했느냐 하면 동경역에 친구들이 전송 나왔었는데···. 그때 방학을 맞아 친구들이 "야야야, 자 어디에 놀러 가자" 했는데 나는 가고 싶지 않으니까 너희들끼리 가라고 그랬었다구요. 그랬었는데 동경역에서 그 친구들하고 아다미인가 어디에 놀러 갔었어요.

 

그러니까 사실 얘기를 하면 그건 없게 돼 있다구요. 연락을 해도 없고 온다는 사람이 없으니 이거 죽었지. 그러니 어머니가 미친 거예요. 그래 정주에서 서울이 얼마나 멀어요. 58리 길이니까 기차로는 10시간 걸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 부산까지 오려니 얼마나 정신이 돌았어요?

 

그래 가지고 집에서 출발할 때 부인이 치마를 안 입고 홑바지 걸음으로 나섰다 이거예요. 그걸 몰랐다구요. 이래 가지고 부산까지 갔다는 거예요. 부산까지 갔는데 신발이 언제 벗겨졌는지 알게 뭐예요. 뛰어다니다 보니 아카시아 가시가 발바닥에 박혀 가지고 그것이 굳었는데 그렇게 굳어진 걸 몰랐다 이거예요. 그걸 내가 돌아온 차후에 뽑았다는 말을 듣고 내가 "아, 그렇구나! 부모의 사랑이 그렇게 위대하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 1989.1.3(화) 한남동.  참사랑을 중심한 인류의 조국.

185-108 내가 일본에 가 있을 때, 그때가 왜정 때라구요. 그때 곤린마루라고, 곤륜환이라고 하는 배가 침몰이 되었어요. 바로 그 배를 내가 타게 되어 있었어요. 그때가 10월 4일인가 되는데 그 배를 딱 타게 된 거예요.

 

동경에 척 나가 배를 타러 가는데 하, 이거 기분이 좋질 않아요. 그런데 한 친구가 따라 나와 가지고 자기가 후지산을 가는데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자꾸 같이 가지고 그래요. 거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래, 집에 간다고 전보를 쳐 놓고 그리 갔다구요. 그러니 전보는 왔는데 난 안 왔으니 틀림없이 죽었지 뭐. 그럴 것 아니에요? 그 배를 타게 돼 있고 몇 시에 도착하게 돼 있는데 딱 그 배가···. 

 

그러니까 어머니가 부산 수상경찰서까지 찾아오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세상에···. 그 어머니는 정신이 반 나갔지요. 치마도 안 입고 거기까지 갔어요. 치마도 안 입고 홑바지만 입고 여자가 홑바지만 입고 갔으니 그거 미친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때가 가을 아니에요? 가을인데 신발도 신었는지도 모르고 뛰다 보니 아카시아 가시가 이렇게 박히게 됐어요. 그것이 박혀 있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거기까지 갔다 와서 그저 몇 주일 지나다 보니 발바닥이···. 

 

내가 돌아오고 나서 보니 발바닥에 티눈이 박혀 가지고 걸을 때마다 자꾸 마친다 (1. 어떤 일이나 과정, 절차 따위가 끝나다. 2. 말뚝이나 못 따위를 박을 때 속에 무엇이 받지다. 몸의 어느 부분에 무엇이 부딪는 것처럼 결리다.) 이거예요. 그래서 보니 아카시아 가시가 들어 가지고 티눈 둥지가 되어 아팠다 이거예요.

 

내가 그걸 보고 아 이 세상에 용서 못 받을 죄인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어머니에게 내가 손수건 하나 안 사 줬어요. 선물 하나 안 사다 줬어요. 그런 모든 심정을 인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