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6.19(일) 제4회 참만물의 날 2차식. 전본부교회.
016-263 선생님은 선생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인간적인 감정으로 대하자면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복수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무골충이 아닙니다. 그러나 허리 부러진 호랑이와 같은 입장에서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복수를 한다고 해서 선생님의 한이 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게 맺힌 한을 해원 성사하여 세계적인 복귀의 한 날을 결정짓기 위한 싸움의 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와 처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부모를 배척했습니다. 처자까지도 배척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친척도 친구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과 충신 열녀들을 모아 타락한 세계를 복귀해야 할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제물로 세우지 아니하시고 하늘 편인 아벨을 제물로 희생시켜 나올 수밖에 없는 원칙을 선생님이 알았기에 뜻을 위해 나설 때 육신의 부모를 배척했고 형제가 찾아와도 만나지 않고 도망 다닌 사람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아벨 편의 사람들을 희생시켜 나오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자기와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이므로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인간들을 살려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손수건 한 장, 신발 한 켤레도 사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일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는 불효자식입니다.그러나 선생님은 부모님 앞에 불효할망정 하나님 앞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불효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고 몸부림치고 나왔습니다.
▣ 1970.2.27(금) 구리 수택 통일산업. 아버지와 아들.
- 제1회 협회 간부 수련회.
029-174 틀림없이 불효할 수밖에 없는 그런 與件을 만들어 놓고 나에게 아무리 "불효하라" 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백 번을 그런 자리에 몰아넣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만 번을 그래도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사랑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전부 갖다 준다고 하더라도 "天倫을 背反할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혹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 간다 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을 믿는 자리입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랑의 보물을 갖다 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천륜 앞에 어긋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타락한 아담을 부정하는 자리요 천사장을 치는 자리인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몽땅 빼앗아 간다 해도 천륜을 배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가 그런 자리입니다. 온 천지를 다 빼앗아 가고 아들딸을 다 빼앗아 가도 아버지만은 거기에 끌려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럴 수 없다." 하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여러분은 이것을 체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사랑하는 부모를 빼앗아 간다 하더라도 내 사랑하는 처자를 다 빼앗아 간다 하더라도 나에게서 그 무엇을 빼앗아 간다 하더라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천지가 무너지고 천지가 바뀐다 하더라도 "나는 오직 하늘을 위해 태어났고 하늘을 위해 죽어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나를 하늘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상관하지 않고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다행히 하늘이 알아주면 영광의 자리에서 죽을는지 모르지만 하늘이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어느 시궁창에서 객사하는 몸이 될지라도 그럴 길을 찾아가겠습니다." 할 수 있는 아들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광의 왕국, 에덴의 왕국 뜰에 그 아들의 무덤을 남기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천륜을 배반할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그럴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나오셨기 때문에 자식 된 우리들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 1972.7.23(일) 전본부교회. 우리의 자세.
059-217 여러분, 신앙생활은 하루아침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생 동안….
신앙생활 가운데 있어서 내가 죽더라도 영원을 중심 삼고 신앙해 나가는 길에 있어서 내가 그 절개를 지켜야 할 것이 문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중심 되는 골자가 있어야 됩니다. 영원히 믿고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영원히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나"라는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부모 앞에 불효는 할 수 없다. 그건 죽더라도 영원히 할 수 없다." 하는 관이 서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는 부모 앞에 언제나 신임받을 수 있는 자식이 될 것이요, "부모를 배반할 수 없지." 그런 결심이 없는 사람은 가다가 언제라도 불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추가 있어야 됩니다. 핵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뭐냐? "내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 자체의 슬픔은 영원하더라도 나 자체의 고통은 영원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고통으로 제시할 수 없다. 나는 하늘 부모를 모시고 나왔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하늘에 대해 부정의 도리를 세울 수 없다." 하는 철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가장 귀한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을 못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내가 있고 하나님이 있지, 효자도 내가 있고 효자지, 충신도 내가 있고 충신이지" 하는 사람은 효자가 아니요 충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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