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흥남 감옥 - 1948.5.20. 흥남감옥으로 이송.

true2020 2016. 8. 8. 16:19

* 1948.2.22 기성교단의 嫉視와 공산당의 종교말살 정책으로 내무서에 구속.

* 1948.4.7  5년 형 선고받고 평양 형무소 收監.

* 1948.5.20 함경남도 흥남 본궁 특별 노무자 수용소 이송.

* 1948.6.21 흥남 덕리특별노무소 수용소 수감.  

 

1. 1948.5.20  15시경 흥남 본궁 특별 노무자 수용소 이송

 

▣ 1970.2.15(일) 전본부교회. 추억의 날.

029-022 오늘 이 추억의 날이라는 제목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지금부터 만 21년 전 5월 20일이 생각납니다. 이날은 어떤 날이냐 하면 평양 내무서에 잡혀가서 재판을 받고 흥남감옥으로 이송되어 간 날입니다.

 

2. 감옥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어렵지만 나는 간다."는 것입니다. 

 

▣ 1970.3.21(토) 구리시 통일산업. 새로 출발하자.

- 제2회 협회 간부 수련회. 

 

030-151 선생님도 지금까지 인상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강도와 함께 쇠고랑을 차고 흥남감옥으로 이송되어 갈 때 산골짜기에 접어들어 개울길을 따라 걷던 그때가 참으로 새롭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굽이굽이 산골짜기의 길을 걸어가던 그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상적입니다.

 

그 걸음은 새로운 세계를 함께 출발하던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날마다 가야 할 나의 길은 어디일 것이냐? 형을 마치고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주 궁금하다는 거예요. 감옥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어렵지만 나는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새로운 자아를 각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남아진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한때는 함흥에서 굴을 뚫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가운데 일을 하니 곡괭이를 움켜쥔 손이 올라가지 않고 정신마저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정심시간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그때의 밥! 그 밥을 먹기 위해 곡괭이를 땅에 박고 돌아서는 그 순간의 기분, 선생님에게 그와 같은 산 역사의 재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도 그러한 것에 비길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비참했던 사연들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에 길이 빛낼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직한 보화를 끌어모을 수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3. 흥남으로 쇠고랑을 차고 가는데 17시간이 걸렸다. 

4. 그 찻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1) 내가 기가 차면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2) 어떻게 이 환경에서 살아남느냐? 

- 전부가 모이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한다 이거예요.

 

▣ 1991.10.23(수) 지도자의 기준을 갖춰라. 한남동. 

221-068 선생님이 평양에 있다가 흥남으로 쇠고랑을 차고 가는데 17시간이 걸렸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 찻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기가 찬 것입니다. 내가 기가 차면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냐 이거예요. 이것을 다시 복귀섭리, 탕감복귀해야 하는데 누가 할 사람이 없습니다. 나밖에 없습니다. 다시 이거 탕감복귀하려면 수천 년이 걸려야 돼요.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심하고 창가를 보며, 모든 산야의 외경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심각했겠어요? 나 혼자밖에 없다 이거예요. 

 

혼자 가면 도망가기 쉬운데 그때 제일 나쁜 강도하고 둘이 조를 짜 가지고 쇠고랑을 차고 가면서 생각하던 것이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이거예요.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떻게 이 환경에서 살아남느냐? 얼마나 심각했겠나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있어서 어느 누구든지 전부가 모이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 세계에서 1위입니다. 

 

5. 신부가 배신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 광야로 쫓겨난 거예요. 

 

1991.10.19(토) 환고향하여 성전을 개축하라. 국제연수원. 

- 대학순전단 수료자 총회. 

 

220-205 기독교가 받들었으면 40대에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는 이 몸이 신부가 배신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 광야로 쫓겨난 거예요. 4300년 역사를 43년에 재탕감해야 하는 이 고달프고 얼울한 사실···. 

 

나라와 세계의 판도를, 하나님이 6천 년 간 수고해서 남긴 공적을 다 잃고 흥남수용소를 찾아간 선생님의 비통한 사연을 여러분은 몰라요. 고향을 떠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처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하늘땅의 미래의 소망으로서 해방의 민족이 나를 환영하려 했던 그 무리가 구름 속 지옥으로 껴져 가서 암흑세계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통곡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너희들은 꺼져 갔지만 나는 다시 내 갈 길을 가서 광명한 아침해를 안고 너희들을 찾아가서 다시 해방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 엊그제 같아요. 쇠고랑을 차고 소리를 지르던 그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알겠어요. 어려울 적마다 기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