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서대문 형무소- 아침 8시 면회. 새벽 1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서대문 형무소의 기록이다.

true2020 2016. 8. 10. 09:31

▣ 1971.6.20(일) 전본부교회. 상봉의 기회.

045-125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을 때에 고맙게 생각했던 것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전부 선생님을 면회하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망할 패예요, 흥할 패예요?

 

남편이 그렇게 됐으면 형무소 앞에 가게 될 때에는 누가 알까 봐 얼굴을 쓱 가리고 갈 판인데 내가 어디에 끌려가더라도 찾아와서 면회하려고 하는 거예요. 누가 "여기에 왜 왔어?" 하면 "아, 통일교회 문 선생님 면회하러 왔지요." 한다는 거예요. 서로가 먼저 면회하려고 싸움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싸움을 했다는 이 패들이 대한민국에서 망해 죽을 패들입니까 남아질 패들입니까?

 

* 또 무슨 간수장이니 서장이니 하는 사람이 와 가지고 하는 말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몹쓸 사람이라고 소문났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한 달쯤 지난 다음에 와서는 "선생님" 하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배우는 것이 많거든요. 선생님 때문에 야단하고 있는데 그렇게 야단하는 패가 흥할 패들입니까?

 

▣ 1975.10.4(토) 벨베디아.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이 가야 할 길.

- 이남 출감 20주년.  

 

080-032 내가 맨 처음 형무소에 들어갈 때 형무소 소장으로부터 그 간부들이 전부 다 나를 둘러 가지고 얼마나 농당을 했다구요. "네가 문 아무개고 사회문제를 일으켜 가지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별의별 소리를 했지만 내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구요.

 

감옥에 가서도 슬퍼하지 않고 태연하다 이거예요. 그리고 그 감옥에서 내가 들어 있는 방은 유명한 방이 되었습니다. 그 감방의 사람들도 전부 다 이런 사람이 들어왔는데 어떤가 하고 보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 달 이내에 형무소 소장이 찾아와서 나에게 잘못했다고 인사하고 거기에 간부들이 나를 초대하여 점심 대접까지 하는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구요.

 

감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침이면 반드시 인사할 수밖에 없는 단게에 들어갔어요. 그래 가지고 소문이 나 가지고 감방 안에서 "저렇게 선하고 좋은 사람을 가두어 버린 대한민국이 나쁘고 이 감옥이 나쁘고 너희들이 나쁘다" 하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었다구요.

 

물론 감방 안에서도 그랬지만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을 보고 전부 다 탄복했어요. 하루에 한 사람씩 면회가 허락되었는데 선생님을 면회하겠다고 모여 드는 사람들이 24시간 줄을 지어 있다 이거예요.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역사상에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흘씩이나 거기서 기다려야만 면회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결과가 되니 "형무소에 자기 아들이 들어왔고 자기 여편네가 들어왔고 자기 남편이 들어왔다면 모르지만 알지도 못하고 관계도 없는 사람인데 저렇게 지성일 수 있느냐' 하고···.  이게 문제가 안 될 수 없었습니다.

 

▣ 1987.9.27(일) 본부교회.  우리는 통일주의자다.

168-263 내가 형무소에 들어가는데 형무소에 서로 가겠다고,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아침 8시 이후에 만나는데 새벽 한 시부터 줄을 서고 기다리고 앉아 있더라구요. 그것이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기록이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미치게 해도 저렇게 새빨갛게 미치게 해 놓았노?" 이러더라구요.

 

아니, 아침 8시가 넘어야 면회를 할 수 있는데 새벽 1시부터 줄 서고 있어요? 그건 고사하고 저녁때에 와서 떡 지키고 있는 거예요. 거 별스럽지요? 그거 그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