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뜻을 알고서 생사를 걸어 놓고 맹세하고 따르다가 배반한 사람 이상의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 1970.8.29(토) 전본부교회. 부인 전도대원의 책임.
- 1970.7.20~8,29 하계 전도 40일 마치고 돌아온 부인 전도대원들에게.
034-101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고생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에 있어서 원수 중의 원수가 누구냐? 나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아니요, 나를 반대하던 기성교회 사람들도 아닙니다. 뜻을 알고서 생사를 걸어 놓고 맹세하고 따르다가 배반한 사람 이상의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제일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 같은 핏줄을 가지고 태어난 형제지연을 가진 그들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버려야 할 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기 위해 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 1977.5.1(일) 벨베디아. 협회 창립 24주년.
093-064 내가 한 가지 얘기하지요. 세상의 다른 사람이 침을 뱉고 욕을 하고 모진 매를 쳐도 다 괜찮다구요. 다 용서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통일교회를 믿다가 나가 가지고 침을 뱉고 차고 이러면 참 기가 막힌다구요. 하지만 그걸 넘어가야 된다구요.
이런 것을 볼 때 원수들 가롯 유다까지도 전부 다 용서하고 배반한 그 제자들을 전부 다 용서하고 다시 한번 수습해 가지고 나가던 예수님의 심정을 그때사 알게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 길을 나오면서 옛날에 따르던 사람 가운데···, 내가 서대문 감옥에 들어갔을 때 자기는 미리 그만두어서 지금은 안 하지만 아직까지 그 놀음하다가 형무소에 왔느냐? 지금도 그 놀음하는구만' 하던 일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잠을 안 자고 먹지 않고 이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참 많다구요.
내가 기도를 하게 되면 눈물이 한없이 나와요. 왜? 내가 당한 것처럼 당한 하나님을 잘 알아요. 그런데 이런 길을 부모가 몰라 보고 형제도 몰라 보고 처자도 몰라 보고···. 그러한 나를, 약하다면 지극히 약하고 못났다면 지극히 못난 나를 그렇게 믿으려고 하는, 세상보다도 우주보다도 더 믿으려고 하는 하나님을 볼 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2. "뜻의 길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 1976.12.1(수) 벨베디아. 반성.
089-228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때는, 지금부터 10년 전 20년 전 그때에 있어서 선생님의 머리에 남은 것이 뭐냐 하는 걸 반성해 볼 때 선생님 자신이 걸어오는 과정에 여러 모양의 사람이 와서 접촉되었다가 떨어지고 다시 접촉한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어요.
그 가운데는 하늘의 뜻을 알 뿐만 아니라 하늘의 직접적인 인도함을 받아 가지고 이 뜻이 아니면 안 된다고 수많은 맹세를 하고 수다한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거예요.
그렇게 보낸 36년이라는 요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에요. 역사적 노정으로 보면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는데 거기에 잊을 수 없는 사건들,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잊을 수 없는 인간관계가 남아져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회상하게 될 때 "뜻의 길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지금 기억되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 나름대로 이 뜻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가게 될 때는 이 뜻 외에 새로운 무엇이 있을까 해 가지고 떨어져 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대개 자기들의 꿈을 외부에서 실현하겠다고 해서 떨어져 갔지만 그러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보면 젊은 청춘 남녀들은 이성을 찾아가기 위해서 뜻을 배반한 사람도 있고 또 학교에 가기 위해서 혹은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그런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군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랬던 사람들 가운데는 나이 많은 사람도 있고 혹은 중년도 있고 청년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후회하고 있는 거예요. 옛날을 잊으래야 잊을 수 없어 후회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는 거예요.
* 뒤로 돌아서 가지고 세상으로 향했다가 옛날 자기들이 버렸던 그 자체를 다시 대하게 될 때 버리기 전 이상의 자리의 심정을 회복할 수 있느냐 하면 절대 회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뭐냐? 통일교회 밖에 가도 이러한 기쁨이 있고 자기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 줄 알았었는데 가면 갈수록 도리어 절망이더라는 거예요.
자기가 돌아서 나가 가지고 세상의 것을 대할 때 그것이 자기가 뜻을 버리고 나간 이상의 무엇으로 소망이 되고 이상의 무엇으로 자극이 되는 이상의 희망의 기점이 남아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가면 갈수록 "너 때문에 내가 뜻을 버리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더 커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뜻을 자기가 버렸다고 해서 뜻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직고하는 것이 뭐냐?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오게 될 때는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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