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因緣 - 18가지.

true2020 2016. 7. 8. 09:27

1.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절대 안 망한다.


1969.12.22(월) 전본부교회. 임지에서 만나자.

- 그때까지 동계전도를 나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식구들을 위한 집회.

027-295 하늘을 위하 정성 들이고 가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동정심이 여러분에게서 떠날까봐 두렵다.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절대 안 망한다.


2. 선생님의 생활철학.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죽자"  


▣ 1972.8.17(목) 뜻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자. 청평.  

- 1회 전국 교역자 수양회.


060-238 임자네들이 배 속에서 나오지 않은 그 시절서부터 고생하고 나온 거라구요. "어느 때에 가서든 이런 때는 틀림없이 올 것이다. 이 뜻이 틀림없는 거룩한 뜻이니 내가 그 과정에 더럽힌 역사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불효와 불충의 역사를 아느니만큼 나는 죽더라도 그런 흠을 남기고 싶지 않다" 하면서 여기에 생명을 걸고 밤낮 없이 투쟁하는 사람이라구요.


나는 죽더라도 나 자신의 더러움을 느끼고 내가 똥 감태기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외적인 문제가 아닌 내정적인 문제에서 하나님의 동정을 어떻게 남기고 가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투쟁 목표라구요. 생활철학이라구요.


내가 죽을 때에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죽자" 하는 것이, "내가 사는 자리에 하나님의 동정을 남기고 살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요? 어떤가?


3.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동정적인 환경을 생각하면서 가려 간다.


▣  1971.11.18(목) 전본부교회. 제12회 자녀의 날.

051-111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제나 동정적 환경을 생각하면서 가려 가는 것입니다.


동정 가운데는 물론 역사적인 선조들의 동정도 동정이지만 하나님의 동정, 사회의 동정 혹은 후손들의 同情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같은 양반은 그렇게 살다 간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일만 하면 죽는 것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 1971.2.6(토) 중앙수련원. 현재와 나.  

- 지역장 후보 수양회.


040-270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바쁘게 되면 형사가 대문 밖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을 노리는 놈을 잡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일만 하면 죽는 것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는 것을 무서워하면 어떻게 큰일을 하겠어요? 이미 死生決斷을 하고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했으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이런 결심을 해야겠어요 안 해야겠어요?  


5, 기도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1971.8.17(화) 청평 수련소. 지도자의 갈 길.

- 제1차 교회장 수련회.


046-297 기도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거예요.


자기에게 슬픔이 오는 것은 자기를 중심 삼고 동정이 오는 배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픈 거라구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절대 외롭지 않아요. 찬 방에 눕더라도, 冬三朔동삼삭에 얼음덩이 같은 방에 눕더라도 자신이 불쌍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도를 모르지요? 기도할 시간이 없으면 걸어 다니면서 하세요. 걸어 다니면서 기도하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대신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6. 극과 극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 1970.6.14(일) 정지와 전진. 전본부 교회

032-030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상태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중간상태는 폭파시켜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자리는 정지상태에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스스로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계시록 3장에 "미지근하지 말고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한 것입니다. 뜨거워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던지 아주 차가와 가지고 말할 수 없이 냉정한 자리에서 自嘆하며 눈물을 흘리고 피를 쏟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極과 極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중간상태는 하늘이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停止圈內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悔改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중심 삼고 출발하였으며 누구를 중심 삼고 결과되어야 하느냐? 인간인 나를 중심 삼고 출발하여 나를 중심 삼고 결과를 맺으면 이것은 지옥입니다. 


왜? 타락이 나를 중심 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를 중심 삼고 타락했고 나를 중심 삼고 죄악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개혁하고 혁명하려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이처럼 나를 중심 삼은 것을 打破해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출발되고 나에게서 終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出發하여 하나님으로 終局되어야 합니다.


7.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까지 이 탕감노정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1967.6.4(일) 전본부교회. 탕감이 가는 길.

018-165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머리를 깍이울 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머리를 깍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손에 끌려와 강제로 머리를 깍이는 것이라고…."  


그때 선생님의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모릅니다.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내가 원하던 행복을 버리면서, 더우기 원수 앞에서 머리를 깍이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복귀의 사연을 엮어가는 노정에서는 그 모든 역경이 한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낼 때는 한스러웠지만 지내고 보니 그것이 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쓰러지는 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매를 맞는 것은 나를 위해 맞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맞는 것이요, 내가 흘리는 눈물은 이 민족의 아픔을 대신한 탕감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잡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까지 이 탕감노정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나 홀로 이 길을 넘어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복귀의 길을 나선 그 발걸음 앞에 떨어지는 눈물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길을 염려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죽음길을 염려한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배반하여 천상에서 받아야 할 최후의 심판을 염려한 눈물이었습니다.


8. 자기의 십자가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1970.4.12(일) 전본부교회. 개척자의 길.

031-050 여러분에게 얘기했는제 모르지만 내가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아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보다 몇백 배의 수난을 당하며 나오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미래의 수난길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현재의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얼굴을 들고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응당 맞아야지요! 응당 몰려야지요! 응당 죽어야지요!"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려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하나님에게 맡기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동정을 안 해 주십니다.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앙자들은 자기의 십자가를 하나님께 맡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남겨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뼈까지 깎아 먹으려고 하는 寄生蟲과 같은 信仰者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집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9. 지극히 어려운 입장에 서더라도 하나님 앞에 동정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동정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 1970.4.19(일) 전본부교회. 아버지와 함께.

031-076 그리고 "아버지, 내게 어떠한 슬픔이 있더라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걱정 마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 慰勞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한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고는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어려운 입장에 서더라도 하나님 앞에 동정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동정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인연을 따라 역사시대를 거쳐서 쌓고 쌓아 나온 결정체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는 주님이 가야 할 길도 그 길입니다. 즉 참부모의 길입니다.



10.  제일 동정받을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이냐 ?

- 하나님이 수욕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욕을 당하는 길입니다.  


▣ 1969.12.7(일) 전본부교회. 수욕의 상처.

027-154 여러분, 이런 자리를 넘어섭시다. 어떠한 담도 헤치고 갑시다. 그 무엇에 부딪쳐도 깨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내 몸은 깨어질망정 내 마음은 깨어질 수 없다고, 내 몸은 상처를 입더라도 내가 갖추어야 할 자세와 예법을 갖추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입장에서 참고 나오신 하나님이 동정하실 수 있는 길을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제일 동정받을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이냐 ? 하나님이 수욕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욕을 당하는 길입니다.  



11. 나는 죽고자 했어요.


▣ 1997.1.2(목) 상파울루 교회. 애승일.   

그래,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거예요. 이 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때.


나는 죽고자 했어요. 나라를 잃어버리고 나라에서 쫓겨난 사람이 땅 끝에 와서 죽더라도 "하늘의 동정을 받는 무덤을 남기게 되면 소생의 날이 온다."고 생각한 거예요. 생명을 내놓고 이 놀음을 한 거예요.


하늘의 왕자가 발가벗고 벌판에 누워 있는 것 같은, 하늘의 왕자가 원수에 싸여 가지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밤이든 낮이든 防禦 없이 누구라도 공략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 왔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일신을 염려하는 사람 어디 있어요?


12. 동정을 받고 가다가 죽으면 재림부활해서 이 땅에서 탕감할 수 있다.


▣ 1976.1.25(일) 미국.

동정을 받고 가다가 죽으면 재림부활해서 이 땅에서 탕감할 수 있지만 동정을 못 받으면 탕감할 길이 없습니다.


13. 제일 싫은 길을 가라.


▣ 1980.10.16(목) 본부교회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거라구요. 반대라구요.


통일교인이 됐으면 통일교회에서 제일 싫은 길을 가라구요. 그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답은 간단해요.


*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하나님같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간단하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 주류의 길을 가려면 제일 싫은 길을 가야 돼요.



▣ 1981.5.10(일) 중앙수련원.

- 6000가정 축복 성주식 전에 말씀.


지혜로운 레버런 문도 이 탕감 보따리를 깨뜨리기 위해서 그저 그 길을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쁜 길을 자처해서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14. 이 불행의 요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불행한 자리로 가겠다고 해야만 하늘이 동정하게 된다.


▣ 1969.11.30 신앙자의 각오.    

통일교회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요, 아무나 믿을 수 있는 교회가 아니다. 특정한 사람, 즉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이나, 그 나라의 충신 열녀의 혈족으로 태어난 후손만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부심을 가지세요. 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 신념을 중심 삼고 생사를 걸어 놓고 행 불행을 걸어 놓고 주체와 나와의 문제를 해결짓고 나서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 자신 가운데는 불행의 요건이 감돌고 있다. 사망의 물결, 사망의 파도, 사망의 성벽이 가로놓여 있다. 이것을 어떻게 타개하느냐가 문제이다.


이 불행의 요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불행한 자리로 가겠다고 해야만 하늘이 동정하게 된다.


죽음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백 번을 죽겠다고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한번 동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으로터 동정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지 못하면 이 길을 못 가는 것이다. 남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15.  패자에게는 동정해 주지 않습니다.


▣1972.9.17(일) 대구교회 

패자에게는 동정해 주지 않습니다.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잠을 자고 있지 싸움이 끝났다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끝나는 날에는 백기를 들든가 죽든가 해야 합니다.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당당히 이길 수 있는 여유가 만만하기 때문에 잠을 자지 싸움이 끝나 가지고 금이 그어졌다면 노는 게 다 뭐예요?  




17. 하나님을 동원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라.


▣ 1990.11.1(목) 벨베디아

선생님이 댄버리에 갔지만 그곳에 천운이 함께해서 미국 전역을 소화시키는 놀음을 했습니다.


* 그래, 댄버리에 갔다 온 뒤부터 미국도 휙- 뒤집어 졌지요? 그것이 1985년인가? 1985년. 여기에 7년이면 얼마예요? 1992년이 되면 미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 이후에 레버런 문을 반대하는 것은 그때서야 레버런 문을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加外의 사람들은 전부 다 반대하려고 하면 무서워져요.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구요. 반대하다가는 입이 찌그러지고 말이에요, 당장에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그럴 때가 옵니다. 


*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고단해 가지고 세상 모르고 앉아 졸게 되면 하나님이 와서 지켜 줄 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동원시킬 수 있는 생활, 하나님을 동원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18. 언제든지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1993.3.23(화) 세계선교본부. 회개와 전진.

- 재미축복가정 일본여성. 일본어.


246-117 인간 본심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 영계입니다. 영계가 어떤 곳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돼요. 자신의 옆에 있는 남편도 배후에 있는 하늘적인 인연을 무시하면 당하는 거예요.


전쟁도 그래요. 이무리 백전백승의 장군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돌아서면 어쩔 수 없는 거라구요.


언제든지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967.5.30 (화) 정성을 들여 진리의 실체를 세우자. 전본부교회.

- 변함옥, 박기옥씩 간증 후 말씀.


018-134 선생님은 밤에 자다 일어나면 다시 그냥 자지 않고 반드시 기도를 하고 잔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동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