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유효원 선생. 1953.12.24. 입교.

true2020 2015. 8. 3. 13:33

 유효원 劉孝元 선생 (1914~1970.7.28. * 향년 57세.)

 

원리원본 1952년 5월 10일 참아버님 5권

원리해설 1957년 415페이지 유효원 선생

원리강론 1966년 유효원 선생

 

* 1914년 9월 25일 평안북도 정주군 관주면 관삭동 

기독교 집안

- 유상찬 조부는 장유교회 설립자. 

 

* 1936년 4월 1925년 설립한 경성제국대학 예과(현 의대)  그 당시 예과 입학 조선인은 10여 명.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중 남하 연평도.

* 1952년 26세 때 결핵성 척주염 증상. 

* 1953년 10월 목포에서 통일교회 전도사와 만나다.  

* 1953년 11월 원리원본을 어렵게 손에 넣다. 

"태초는 하나이며 근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다. 무한한 세계의 근본이기도 하다. 이 하나가 전체 중심, 전체 작용의 기본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수학을 떠나서는 진리를 알 수 없듯이 진리는 수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존재 즉 하나님에 대한 규명을 수학적으로 풀어 볼 것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를 통해서 수가 증대하여 전체 존재의 기본을 정립할 수 있다."

 

* 1953.12.10. 문선명 선생에게 서신을 보내다. 

 

▶ 이 한 몸 바칠 영광의 날을 기다리며. 

 

중심을 잃고 몸부림치던 한 달 전의 나,

진리를 찾아 부심하던 저는 이제 제가 누구인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생명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완전한 해방의 길을 찾아 참으로 환희에 차 있습니다.  

나를 가로막은 벽은 무너지고 얼굴에 씌여진 베일도 벗겨졌습니다. 

나를 찾았다는 것은 하늘을 찾았다는 말이며 동시에 만물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설움은 하늘의 설움이요, 동시에 만우주의 설움임도 알았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늘이 슬퍼하시고 땅이 저주받은 이유도 알았습니다. 

상징적인 성경의 말씀들이 모두 다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원리원본을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재림주 예수를 만천하에 선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부둥켜안고 올리던 그 감사와 감격의 찬송 소리가 길이길이 우레 같이 이 강산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님을 빕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버려진 어린양과 같은 저를 거두어 주시면 뜻 성취를 위하여 이 한 몸 바칠 영광의 날을 간절히 바라나이다. 

 

길이길이 영광의 빛 되옵소서. 

 

* 1953.12.24. 입교.

* 1953.12.24 ~ 1954.1.18 부산 영도 부흥회 영도구 남항동 신성묵 씨 댁.

* 1960. 4.16 (3.21음) 사길자와 3가정 축복 (김원필 가정, 유효원 가정, 김영휘 가정)

 

1. 원칙에 어긋난 것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효원.

 

▣ 1961.8.26(토)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받는 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 전국 지역장 총회.

 

011-218 선생님은 군대에서와 같이 원칙에 어긋난 것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효원이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서는 아니 된다. 천운이 바뀔 때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선생님을 보지도 않고 선생님을 따른 첫 사람.

 

1971.12.27(월) 워싱턴, D. C. 

052-156 선생님을 보지도 않고 선생님을 따른 첫 사람이 전 유 협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원리의 원본을 보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선생님을 따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선생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유 협회장은 선생님보다 여섯 살 위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위였습니다. 그래서 유 협회장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원리를 해설해야 했습니다.  유 협회장이 썼던 책은 유 협회장의 책이 아닙니다. 유 협회장이 그 책을 쓸 때 선생님이 그에게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자세하게 그 책을 공부해야 합니다. 유 협회장으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했습니다.  

 

3. "원리원본" 그것은 시적이고 飛躍하고 壓縮해서 쓴 건데 그 책을 보고 痛哭.

 

1998.4.27(월) 이스트 가든. 일심 일신 일체 이상 세계.

- 미국 지도자 회의.

 

292-318 유효원에게 원리의 전폭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게끔 가르쳐 준 것도 그렇습니다. "원리원본"이 있는데, 그것은 전부 다 詩的으로 쓴 거예요. 상당히 飛躍하고 壓縮해서 쓴 건데 그 책을 보고 痛哭을 한 거예요. 그런 내용의 사실에 감동받은, 아마 역사적으로도 통일교회의 원리를 접한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 사람의 형님이 공산주의자였습니다. 열렬한 공산주의자, 이론적 공산주의자였다구요. 동경 유학도 한 사람이에요. 효원 씨는 서울대학 (경성제국대학)의 의과대학에 들어가 가지고 학생 시절에 "천재적인 재질을 가졌다고 소문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효원 씨는 형님으로부터 공산주의 사상의 지도를 받고 해서 거기에 대해서도 상당히 숙달하고 그랬습니다.

 

자기들 형제가 그 지방의 유지고 기독교의 ···. 거기는 기독교가 유명합니다. 거기서 자기들이 움직이면 기독교 전체가 무너지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의논한 거예요. 그래서 그 형님이 기독교인인데도 제발 이 길을 가라고 해 가지고 해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만나지도 않고 자기가 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어요. 글을 써 가지고 "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영원히 선생님을 侍奉하는 弟子가 되겠습니다" 하고 盟誓맹세한 사람입니다. 만나 보지도 않은 거예요.

 

그런 가운데 내가 서울에서 부산 影島로 내려가 가지고 21일 수련회를 한 거예요. 수련회를 할 때 자기가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나는데 어떻게 만나겠느냐 해서 자기의 모든 과거를 생각해 가지고 심각했던 그 사연을 얘기했는데 내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그런 내용이 많다구요.

 

그때 영도의 수련회는 영적이었습니다. 앉은 사람이 다 통하고 전부 다 영적 체험을 했어요. 그 수련회가 끝나 가지고는 세상에 나오면 "이런 세상이었던가?" 할 정도의 변화를 느꼈던 거예요,

 

그래서 유효원 협회장을 시켜 가지고 3년 8개월을 매일같이 원리 강의를 시킨 것입니다. 16시간, 18시간을 강의하게 한 거예요. 그때는 핍박이 심할 때였는데 왜 그랬느냐? 내가 세상에 없어도 그 말씀가 더불어 신앙길에 전통을 남겨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다리가 불편해서 몸이 건강하지 않았지만 그런 몸을 가지고 매일같이 18시간을 원리 강의를 하게 한 거예요.

 

그때는 참 어려울 때라구요. 그래서 원리강론 전 후편을 사흘이면 완전히 끝내는 거예요. 만약 강의를 안 하게 되면 내가 들어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평을 해 주고 그런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원리에 대해서는 깊은 사연이라든가, 모든 면에서 누구도 듣지 못한 내용을 알았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앉으면 원리 말씀을 한다는 거예요. 모든 세계의 지도자들은 그런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원리 말씀을 강의하는 데는 여기 사람을 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과 지상세계, 두 세계의 사람들을 놓고 강의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된다구요. 한 마음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하나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혼자 얘기해도 땀을 흘리면서 하는 거예요. 땀을 흘리면서.

 

그러면서 여러분의 말이, 여러분의 하는 그 말이 반응되어 가지고 들어오는 그 말이 자기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눈물을 흘리고 감동할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지는 거예요.

 

 

4. 원리를 전부 다 노트하면서 한 책자마다 눈물을 수백 번 흘렸다.

 

1986.2.16(일) 본부교회. 어제와 오늘.

141-070 선생님이 죽은 후에 통일교회는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심정권은 남자나 여자나 늘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혹은 소년 소녀들이 지금 자라고 있지마는 철이 들면 그 심정권이라는 것은 동일한 거예요.

 

통일교회가 이제 영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게 뭐냐? 통일교회의 진리를 듣고 그 말씀을 듣게 될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심정이 폭발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 말씀을 읽게 될 때 밤에 잠을 못 자고 눈물을 흘려 봤어요?

 

유 협회장이 훌륭한 것은 원리를 전부 다 노트하면서 한 책자마다 눈물을 수백 번 흘렸다는 거예요. 자기는 지식인으로서. 대학을 다닌 똑똑한 사람으로서 진리를 탐구하다가 지쳐서 떨어졌는데 이러한 깊은 세계를 어쩌다 알게 되니 눈물이 한두 방울이 아니고 폭포수 같이 퍼부어지는 거예요.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는 말을 내가 들었다구요. 그러니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릅니다. 본연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은 사람을 폭발시키고도 재폭발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 작용은 역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5. "자기의 몸이 영원히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더라도 감사하겠다"

 

1971.6.24(목) 전본부교회. 그리운 고향.

045-137 통일교회 개척 당시 影島面 影島에서 유 협회장을 중심 삼고 ···. 유 협회장의 훌륭한 점이 이겁니다. 그는 내 말씀을 듣지 않고도 원리원본을 읽고 자기 스스로 書面으로 "자기의 몸이 영원히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더라도 감사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내가 고독한 때에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 거예요. 이런 것이 하나님의 役事지요. 그때의 선생님의 심정은 심각했어요. 심각하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했던 거라구요. 하나님이 몽땅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6. 미욱한 사람, 무사도와 같은 정신이 강하고 한 곬밖에 모르는 사람.

 

1971.8.30(월) 청평. 승리적 제물.

- 제2회 교회장 수련회.  

 

047-315 유효원 협회장을 처음 만날 때에 심각했습니다. 몰리고 쫓기면서 부산에서 대구로, 3단계로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아 가지고 만날 때는 복귀라구요.

 

부산 맨 끄트머리에 가서. 영도에 가서···. 영도가 맨 끄트머리가 아니에요? 싸 놓은 똥과 같은 것이 영도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거기에서 제일 심각한 사람은 천하에 나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유효원 협회장도 미욱한 사람입니다. 간 사람이지만 ···. 무사도와 같은 정신이 강하고 한 곬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거기에 앉아서 녹아 난 거라구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하늘나라 구경 다 했지요. 효민이 같은 사람도 영계를 통해 가지고 다 그렇게 된 것이지요.

 

7. 내가 영도에서 원리 강의를 할 때.

 

1972.5.10(수) 중앙수련원. 개척자의 길.

- 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056-051 교회에서 식구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밤을 새워 가면서 얘기를 하면 식구들이 가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내가 영도에서 원리 강의를 할 때 협회장이 변소에 갔다 오는 데 5분도 안 걸립니다. "5분만 기다려 달라"라고 얘기를 해 놓고는 뛰어갔다가 뛰어 오는 거예요. 다 끝도 안 내고 훔쳐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구요.

 

내가 심각하게 되면 상대도 심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치가 그렇습니다. 완전한 주체가 있으면 완전한 상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못 떠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앉아서 다 통하는 거라구요. 그런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해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해야 됩니다. 밤 12시가 넘어 새벽 2시 3시가 되었는데 "가면 좋겠다. 좀 자야 할 텐데···. " 이런 마음이 있으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새벽 3시 4시가 되더라도, "안 갔으면 좋겠다. 시계가 멎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연 되었다가 가면 영은 안 다구요. 영은 미안해서 밥을 먹자마자 궁둥이가 돌아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8. 3가정 유효원 사길자 축복.

 

1) 성혼문답

 

1960.4.16 (토) 3자녀 성혼식. 유효원 사길자,

- 1960.4.16,(천력 3.21.)

 

150-091 유효원 사길자, 그대들은 영원한 신랑 신부로서 천주와 함께 즐기며 침된 배필이 될 것을 삼위신과 참부모 앞에 맹세하는가?

 

그대들은 창조 이상으로 바라시던 선한 신랑과 신부로서 신랑은 뼈를 대신하고 신부는 살을 대신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을 맹세하는가?

 

그대들은 천지창조를 하실 때 바라시던 참다운 만물의 주인공으로서 생육하고 번식하여 선한 세계의 참된 조상이 될 것을 맹세하는가?

 

2) 유효원이 길자만 원했다.

 

1992.11.4(수) 한남동. 뜻이 가는 길.

236-159 선생님의 눈이 이상한 눈입니다. 쓱 보게 되면 어떤 사람은 머리가 뒤로 해서 올라가 있다구요. 그러면 "저놈의 자식, 잘못하고 왔구나!" 하고 대번에 알아요. 알지만 내가 이야기를 안 하지요. 그런 뭐가 있기 때문에 결혼상대를 벼락같이 맺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아무리 해도 못하는 것입니다.

 

길자도 일생 동안 혼자 살았지? (예.)  유효원이 길자만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구. 무슨 일이 있어도 사길자하고만 살겠다고 하더라구요. 

 

"내 눈으로 보면 좋지 않아. 그래서 너 중도에 가다가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나한테 불평 안 하지?" 하니 "다 괜찮습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맺어지게 된 것입니다. 내가 좋지 않다고 하면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랬나, 안 그랬나를 유 협회장한테 물어보라구요.  

 

3) 장남 유진승

 

1978.10.9(월) 청평. 공부하며 기도하라.

- 축복가정 자녀들에게 말씀.

 

100-120 너 진승(장남)이로 말하면 어머니 아버지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야. 어머니 아버지가 시간을 투입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게 되면 그것을 전부 다 비판해야 되고 정성을 안 들이면 비판해야 되는 거야. 그러니 나아야지.

 

9. 유 협회장이 좋아하던 곤쟁이 젓.

 

1990.11.13(화) 한남동. 책임자의 자질.

- 신 구 교구장 회의 때.

 

208-029 지금까지 여러분들 매일 평균 몇 시간 강의했어요? 문평래? 내가 뉴욕에서 하루에 6번 강의했어요. 미국에 가 가지고 그렇게 했다구. 그때 전부 전도했어요. 강의해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3시간 가지고 뭘 해?

 

옛날 통일교회 시작할 때 유 협회장은 16시간 했어요. 전편 후편을 사흘이면 끝냈어요. 48시간 걸려서 원리 강의 전편 후편을 다 한 거예요. 약식이 아닙니다. 그것을 3년 8개월 동안 계속했습니다.

 

내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  그렇게 강의하려니 고달프지요. 힘드니까 강의 안 하고 누워 있을 때면 기합을 주던 것이 지금도 생각나요. 먹기나 잘해요? 보리밥 두 끼 먹으면서 했어요. 그렇다고 반찬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날김치를 하룻밤 재워서 먹는 것입니다. 김치가 언제나 있어요? 소금 찍어 먹고 그랬지요.

 

유 협회장이 잘 먹던 것이 있는데 그걸 곤장이라고 그래요, 곤쟁이라고 그래요?  곤쟁이 젓(アミエビ새우의 한 가지. 보리새우와 비슷하나 더 작고, 몸이 부드러움) 담근 것을 좋아했어요.

 

나는 그것 뚜껑을 열지도 않고 구석에 놓아둔 것을 보고도 저게 뭐냐고 야단했는데 그 냄새가 똥내보다 더 지독한데 그것을 찍어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던 게 눈에 선해요. 그 사람이 있었으면 요즘 같은 때에 불고기 해서 실컷 먹으면 좋아했을 텐데 먼저 가 버렸어요. 그렇게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그때 하던 놀음을 선생님이 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밤이나 낮이나 투입하는 거예요. 한 생명을 위해서는 잘 시간이 됐어도 가라고 하지 않아요. 그 사람의 고개를 넘겨주어야 됩니다.

 

언제나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한 시 두 시 세 시 밤을 밝히면서 그 놀음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됐다고 할 때 보내고 다음은 하늘 앞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구요. 통일교회에 나왔다가 자기를 만나 가지고 떨어지게 되면 그 책임을 자기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달라요. 공법은 그렇잖아요?

 

10. 혁명가 집안.

 

▣ 1999.8.17(화) 여호와의 전반 전능의 날 선포의 날. 코디악

- 오전 7시, 제3회 7.8절 경배식.

 

303-176 劉 씨가 혁명가 기질이 많아요. 유상열이라고 유효원의 삼촌이 있어요. 만세 사건으로 신의주 형무소에 들어간 사람인데, 이 사람도 골수분자예요.

 

죽을 것이 뻔하니까 쇠고랑 채운 것을 손으로 잡아 빼는 것입니다. 그래, 껍데기가 다 벗겨져 가지고 뼈만 빼 가지고 나갔어요. 그렇게 탈옥해 가지고 러시아로 갔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말이에요,

 

유 씨가 그런 革命家 氣質이 있어요. 유효원이도 그래요.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것입니다. 문교부 장관하고 싸우라고 하면 싸우는 거예요. "내무부 장관하고 싸워!" 하면 가서 싸우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문교부하고 내무부를 싸움 붙여 가지고 통일교회 해체 명령을 1주일 만에 철수시킨 것입니다.   

 

11. 그가 하루라도 건전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하루만이라도 기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면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1970.7.28(화) 생사의 한계.  전본부교회.

-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식 후.

 

032-332 협회장이 갈 곳을 놓고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 앞에 내가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죽기를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의 뜻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요, 아버지의 사명이 죽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살아야 되겠고 우리가 희생되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에 아들이 천만 번 죽더라도 뜻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죽음길을 기쁨으로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겠다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스스로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올 때가 왔구나!" 하며 하나님은 정말 슬픈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들이 60년대에 불구의 몸으로도 뜻을 중심 삼고 정성을 다 들이겠다고 몸부림친 내적 고충, 외적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내가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인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생에 내가 저 아들을 대신하여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不具의 그 신세는 면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하루라도 건전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으로써 하나님을 모시고 하루만이라도 기쁜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면 한이 없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수술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또 뜻이 찾아 나온 모든 역로를 헤아려 볼 때 그가 피를 흘려야 할 때인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수난의 행로를 책임지고 선생님의 命令에 의하여 入院하였다가 선생님의 뜻을 중심 삼고 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 협회가 가야 할 수난의 노정에 있어서 전체는 안 되더라도 한 부분의 슬픔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가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그가 낫기를 기도할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맡기고 나온 것입니다.

 

12. 희진이를 책임졌던 사람.

 

▣ 1970.7.26(일) 뜻과 우리. 전본부교회.

- 7월 24일 타계한 유효원 전 협회장 장례 기간 중 하신 말씀.

 

032-297 지금은 요동하는 때입니다. 어느 해든지 4월부터 10월까지는 우리 협회에 있어서 문제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유 협회장을 두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는 희진(18955.8.30~천력 1969.8.1. 성화) 이를 책임졌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책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 협회장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는 그 기준에서 희진이를 중심 삼고 모심의 생활의 전통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희진이가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통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염려한 것이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도 있고 또 그의 몸이 불구하는 것이 그의 생애에 뼈저린 한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안팎의 문제가 염려되어 선생님이 그를 입원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수술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가외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어서 죽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암이라는 병은 1년 반 내지 2년 이상의 잠재 기간이 있습니다. 그 암이 그도 모르는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가 수술 기간에 드러나서 이런 결과를 맞게 된 것입니다. 또 그뿐만이 아니라 폐도 상당히 나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유 협회장이 육체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무리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 나왔다는 것을 느끼는 바입니다.

 

이제 우리가 가신 분 앞에 해야 할 일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뜻의 길을 중심 삼고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이 걸어 나온 길에는 이러한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그 사람이 젊어서 죽었느냐 늙어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영계는 상당히 바쁜 때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때에 땅 위에서 우리 인간을 필요로 하는 여건보다 영계에서 필요로 하는 여건이 더 크게 되면 그가 가는 길은 오히려 영광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비록 여러분의 마음이 슬프더라도 하나님께서 뜻을 중심 삼고 이러한 탕감의 노정을 걸어오신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적 슬픔을 지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마음으로 가는 아들을 하나님 앞에 부탁드리는 기도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울고불고하지만 우리는 그런 때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곳으로 갈 것인가를 알고 있고 그 역시 자기의 갈 곳을 알고 갔습니다.

 

본인에게는 그런 증상이 있다는 것을 3일 전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가게 될 것이 틀림없겠기에 모든 사실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도 뜻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갈 길을 2, 3일 전부터 준비하고 간 것입니다.

 

032-298 어떤 영통인들은 협회장님은 갈 곳이 이미 영계에 기록되어 있는데 사자가 오지를 못해서 떠나지 못한다는 말도 했어요. 여러분이 잘 알지 못하겠지만 선생님은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식구 외의 사람들도 많이 염려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듣고자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전화나 여러 가지 연락을 통해서 선생님이 섭섭할까 봐 보고를 하며 위로하는 것을 볼 때에 선생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 삼고 볼 때에 공적인 일로서나 뜻적인 일로서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이 가는 길은 개인의 바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한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이 바라는 기준에 보조를 맞춰 갈 수 있는 그런 때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의 앞길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골짜기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 것이냐? 죽음의 때가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그 골짜기를 악한 것으로 메우기보다는 선한 것으로 메우고자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골짜기와 정상은 반드시 선한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는 선하게 생각하여 하늘 것으로 여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골짜기도 선한 것으로 채워 하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작년과 금년에 벌어진 일들은 안팎으로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선생님이 벌써부터 염려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유 협회장이 1차 2차 3차까지 수술을 받게 될 때에 영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은 했지만 선생님은 이미 최후의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를 위해 정성 들이는 기간에 선생님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며칠 후에 그가 가게 된 거예요.

 

유 협회장은 음력으로 따져서 희진 애기가 간 날짜보다 3일 뒤에(음력. 1970.6.21.)에 갔습니다. 이렇게 볼 때 둘째가 언제나 문제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선생님 가정의 둘째인 희진이도 갔습니다. (1969.6.19. 음력.)

 

이처럼 탕감 역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통일교회의 원리는 막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감의 역사 노정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유 협회장 가정도 뜻적으로 보면 둘째 가정입니다. 그러한 입장이기에 선생님이 그에게 전체의 책임을 지워 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불구의 몸이었기에 지금까지 지탱해 나왔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이런 때일수록 사적인 문제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슴에 맺히는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그 아픔을 초월해야지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오직 뜻을 중심 삼고 흘리고 섭섭하게 생각되더라도 뜻을 중심 삼고 섭섭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032-300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는 데에는 여러분이 상상도 못 할 어려운 고빗길이 많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는 그 순간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탕감의 때이니만큼 아주 심각한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 삼고 심각해야지 자기를 중심 삼고 심각해지면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플러스와 플러스가 부딪히면 반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에는 沈默과 靜肅정숙이 필요합니다. 자정을 넘어서부터 고요한 시간, 3시면 3시까지의 기간을 넘어가는 기간에 자기를 중심 삼고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동적인 입장에 서지 말고 화동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정숙한 마음으로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무의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뜻에 보조를 맞춤으로 흡수될 수 있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후에라야 은사의 때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은사의 때라고 해서 함부로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이런 것을 잘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은사의 때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그 은사가 오히려 치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넘어야 될 탕감의 노정에서 그러한 일로 동요될 때가 많은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을 공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작년에 희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선생님이 섭섭함을 금치 못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선생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뜻을 중심 삼고 지금까지 엮어 온 역사 노정에 어린 슬픔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던 것입니다.

 

요셉 가정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정은 요셉 가정보다는 복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희진이가 간 것도 예수보다 복된 자리에서 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고방식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동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든지 자기를 중심 삼고 연결시키지 말고 공적인 기준을 중심 삼고 연결시키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위해서 나가는 종교단체면 종교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해요. 그 나라를 위해서 정성 들인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위해서 정성 들이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반드시 그 개인이나 단체가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반드시 귀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이번 일이 인정적으로 보면 슬픈 일인지 모르지만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커다란 봉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는 것은 유 협회장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잘못한 것, 내가 알기에도 몇 가지 잘못한 것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내가 어떻게 청산 지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동정하기보다는 어떻게 그의 잘못을 청산 지어 주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땅에서 맺혀진 모든 원한을 죽기 전에 풀지 않으면 저나라에서 그 원한이 영원히 맺혀 있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그가 뜻길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서 그것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 협회의 책임인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무슨 일을 중심 삼고 유효원 협회장과 맺혀 있는 것이 있으면 이번 기간 내에 모두 풀어야 합니다. 공직에서 책임을 진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정책적인 내용에 있어서든 대외 활동에 있어서든 그와 다른 입장에서 섭섭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 그런 것을 다 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정성 들인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과거지사를 청산 지어야 하는 것이 우리 협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보는 입장과 뜻이 보는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입장과 뜻이 보는 입장을 반드시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엇갈려 벌어지는 탕감 노정을 거쳐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당할 적마다 침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숙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망하지 않는 거예요.

 

13. "영원히 변치 않겠다"

 

1970.8.29(토) 2차 성심회 총회 때. 중앙수련원.

034-047 이번에 유효원 협회장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선생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는데 끝을 어떻게 맺을 것이냐?" 하고 내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 협회장은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 세계에서는 어차피 죽어야 됩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지내지 않고는 다른 시대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4.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해 봤느냐?

 

1971.2.28(일) 전본부교회. 내일을 맞자.

042-115 정석온 할머니가 보고하는 걸 들어보니 유 협회장이 영적으로 나타나서 세상이 있을 때는 이런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자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더라도 보고하고 자고 먹더라도 보고하고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생활 전체를 하늘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 협회장이 생전에 교회가 쓸쓸한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정성을 모아서 식구들을 거느리고 예배 한번 못 봤다는 것입니다. 한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를 중심 삼고 식구들의 애절한 생명을 책임져야 할 협회장의 입장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기도해 봤느냐 이겁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식구를 대해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방을 해 보았고 교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는 것입니다.

 

042-118 그런 모든 원칙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기 본부에 있는 자리가 쉬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가까에서 모시는 사람이 제일 어려운 거예요. 밥도 마음대로 못 먹는 겁니다. 선생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왔다 갔다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15. "영계에 와 보니까 잘못한 것이 참 많더구만요" 

 

▣ 1970.8.16(일) 해방과 우리의 책임. 전본부교회.

33-237 정석 온씨가 정성껏 기도를 하는데 오늘 아침이라고 했나, 어제 아침이라고 했나? (어제 아침입니다.) 파주에 간 날이군. 그런데 유 협회장이 턱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랬다고 그랬지요?(예) 석온씨가 예배를 드리는데, 참 좋아하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유! 내가 세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살 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영계에 와 보니까 잘못한 것이 참 많더구만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지상에 있을 때에는 몰랐지만 영계에 가 보니 조건에 걸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해 주지 않았으면 그는 갈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 협회장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일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풀어줄 수 있느냐? 전에도 얘기했지만, 풀어주려면 두 가지의 내용을 갖추어야 됩니다. 첫째는 그가 하나님 앞에 容恕받을 수 있는 功績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그를 용서함은 물론이고, 민족이 잘못한 것까지 용서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습관적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교회나 들락날락하면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33-249 유 협회장도 영계에 가 보니까 그것이 실감 나던 모양이지요? 지상에서 같이 살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친구 같았겠지요. 말로는 선생님 같이, 부모 같이 대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처음 만난 그때보다 더한 마음을 가지고 모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어 가지고 전통을 세우기를 바란다면 군말이 없다는 거예요.

 

16. 유 협회장의 공을 잘 기억해야 된다.

 

▣ 1984.2.13(월) 섭리 역사의 전통을 전중하라. 미국.

- 인진 흥진님 약혼식.

 

130-323 우리 종교재단에 있어서의 유 협회장의 공을 잘 기억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시일이 가면 갈수록 희박해지는 것보다 그날을 기억해 가지고 ···. 선생님이 그를 추도하는 날을 그만둬라 하기 전까지는 전국적인 기념 날로서 추도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된다구요.

 

그는 국가적 시대의 활동은 못 했다구요. 세계 무대의 시대까지는 못 했지만 교회를 창건한 시대로부터 국가와 연락할 수 있는 그 기간, 13년 전이구만, 에 있어서 교회를 개문하는 데 있어서는 제일 공로자임에 틀림이 없어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그 전통적 중심 사상을 남긴 그 공로를 내가 알아주는 거예요.

 

또 그가 불구의 몸인데도 내가 3년 8개월 동안을 하루에 16시간 이상 매일 강의하라고 족쳐 댄 거예요. 왜? 그로 말미암아 원리를 교육시키는 하나의 전통을 하늘땅 앞에 남겨 놓기 위해서예요. 전 세계의 모든 강사들이 매일같이 3년 이상 이 일을 계속하더라도, 열 몇 시간 이상의 강의를 하더라도 피로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예요. 하늘땅 앞에 그런 전통을 남기게 하기 위해서 불구의 몸인데도 그렇게 하게 했다는 거예요.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 ···., 그때는 우리가 보리밥을 먹을 때라구요. 그 양반은 참 고기를 좋아했어요. 생선을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참 어려운 때였다구요.

 

수련회를 해도 밥도 못 먹고서 사는데. 거지가 들어와서 밥을 좀 달라고 하면 보리밥을 주니 그 거지는 그 밥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고 가는 그런 시대를 지냈다구요.

 

그렇게 먹지도 못하고 영양도 잘 충당하지 못한 가운데 강의하다 피곤해서 누우면 ···. 어떤 때는 아파 가지고 오후애는 강의 못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를 닦아세우던(꼼짝 못 하게 휘몰아 나무라다.) 것이 생각난다구요

 

"네가 그럴 수 있느냐? 원리를 생명을 걸고 전해야 된다. 네가 생명이 붙어 있는 한, 한 사람도 없거들랑 공중을 보고라도 얘기해야 된다." 하면서 기합을 줄 때 누워 가지고 눈을 둥글둥글하면서도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거 일어설 때 다리 고관절이 붙었으니 손으로 짚고, 힘들게 일어서던 것이 눈에 훤하다구요. 그걸 내가 아는 거예요.

 

17. 옛날에 선생님과 밤을 새워 가면서 눈물바다를 이루도록 울면서 기도하고 선생님이 변소에 가면 변소에까지 따라와서 기다리던 그 자세는 어디로 갔느냐.

 

▣ 1970.8.9(일) 부산 동명장 여관. 심정과 절대적 신앙.

- 전국 지구장 수양회.

 

033-101 여러분, 원리 책은 무서운 책입니다. 원리 책을 협회장이 썼다고 해서 경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일 이 책을 내가 썼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걸려드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번에 걸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라는 거예요. 만일 잘 못 써 놨더라도 輕視하면 걸리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經書는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뻔히 틀린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썼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체를 두고 볼 때 그렇게 쓰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써야 할 다른 사정이 있었고 飛躍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모르는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원리는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요즈음 얘기하지만 앞으로 선생님이 원리를 쓰게 되면 인간들이 몇 천년이 가도 알지 못할, 나만이 알고 있는 내용을 중심 삼고 몇 권 더 남겨놓고 싶습니다. 기도하면서 뼛골이 우러나도록 정성을 들여 써 가지고 남기고 싶습니다.

 

왜냐? 역사에 거룩한 후대를 남기고 정성 들이는 후대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러한 見地에서 선생님이 앞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원리 책을 쓰려고 합니다. 협회장이 쓴 원리 책에 대해서 是正할 곳이 없잖아 있는 것을 내가 알지만 그가 精誠 들여 썼기 때문에 아무런 얘기를 안 했습니다.

 

선생님이 지시한 대로 하지 않으면 그것이 영계에 가서는 참소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영계에 가기 전에 내가 어머니와 최 선생하고 함께 하나하나 꼽아 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협회장에 대해서 3년 전부터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는 인사이동을 하기 위해 내심으로 두 사람을 결정해 놓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선생님이 몇 번씩 진지한 입장에서 교회 치리 방법에 대해서 지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그냥 다 흘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지만 어떤 때는 협회장(유효원)이 앞으로 지나가는 것까지도 싫었습니다. 걸어가는 것까지 싫었거든요. 그것을 여러분이 잘 모를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에 선생님과 밤을 새워 가면서 눈물바다를 이루도록 울면서 기도하고 선생님이 변소에 가면 변소에까지 따라와서 기다리던 그 자세는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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