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기와 출발점이 어디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 3가지.

true2020 2014. 2. 2. 10:17

1. 보다 귀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출발점입니다.

-  출발점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아 첫발부터 그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합니다. 

 

▣ 1968.7.14(일) 보다 중요한 것. 전본부교회.

020-293 보다 귀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출발점입니다. 출발점. 출발점을 잘 잡지 않으면 아무리 잘하더라도 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출발점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아 첫발부터 그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합니다.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비운의 환경 속에서도 이기고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신념과 하나가 될 때 영원한 세계가 이룩되는 것입니다.

 

* 보다 귀한 것은 動機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동기가 희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든 시련과 고통은 문제가 아닙니다. 나중에 받을 영광에 비교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려분이 고생하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한번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서 충성하던 사람은 역사에 남아질 것입니다.

 

수천수만 세에 길이길이 청사에 생명의 원천으로 빛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사나이로서 이 길을 가는 것을 꿈에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2. 동기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동기를 거치고 과정을 거쳐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 1960.5.29(일) 하나되시려는 아버지. 전본부교회.  

009-226 동기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동기를 거치고 과정을 거쳐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과학의 현상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에요. 천리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돌연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없다는 거예요. 질서적입니다.

 

동기를 중심 삼고 원리 원칙적인 과정을 거쳐 실체적인 목적체가 형성되는 세계가 창조 이념 세계입니다. 여러분, 성공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굳은 각오 없이 성공합디까? 마음의 동기를 중심 삼고 환경을 개척하고 변함없이 그것을 밀고 나가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 개인이 성공하는 데도 그렇거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시는데 그렇지 않겠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 그러면 그 동기와 출발점이 어디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1968. 7.14(일) 보다 중요한 것. 전본부교회.

020-314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일치된 내적인 기준을 철석같이 세워야 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몰아쳐 와서 죽게 된다 할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다 죽었다고 공인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임시방편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소속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십 년 역사를 거쳐 나왔습니다.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누구의 말을 듣고 이 길을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목사한테 감동받아서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전도해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출발점이 어디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 1969.7.20(일) 우리의 책임. 전본부교회.

024-138 동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제시한 동기에 순응해야 할 입장입니다.

 

 

1) 태어나기는 했으되 무슨 동기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나를 낳게 한 동기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 1959.9.6(일) 인생길을 가는 우리. 전본부교회.

007-178 내가 왜 왔으며 내가 왜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느냐? 태어난 것을 여러분 스스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태어나기는 했으되 무슨 동기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나를 낳게 한 동기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나기는 났으되 내가 나고자 해서 난 것이 아니요, 살기는 살되 내가 살고자 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죽기는 죽되 내가 죽고자 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났으니 살아야 할 운명이요 또 그렇게 살다 가야 할 운명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다 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동기가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으니 목적도 나만의 것이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2) 인생에 있어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냐 할 때 먼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1971.1.10(일) 인생의 갈 길. 수원교회.

039-168 그러면 인생에 있어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냐 할 때 먼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 그러므로 있는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것 이상 큰 죄는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이 이상 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발견했다면 그거 잘했어요, 못 했어요? 통일교회 문 선생이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담판 지은 사람입니다. 맨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식의 입장으로 들어가 가지고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것을 담판지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하나님도 감탄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하나님은 확실히 계셨습니다.

 

 3) 나는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분명히 계십니까?" 하고 물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았고,

 

▣ 참아버님 자서전 58

철이 들면서 나는 이 다음 무엇이 될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니 과학자가 되어볼까도 생각했다. 일본의 수탈에 시달리며 끼니조차 잇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사람들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마음에 쌓인 슬픔을 없애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는 맘만은 굳어갔다.

 

내 나이 10살 무렵 목사인 윤국 할아버지 덕분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한번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교회에 다녔다. 예배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너무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그때 이미 하나님의 존재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삶과 죽음, 인생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12살 때 증조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원칙 대로라면 문중의 어른들만 참석하는 자리였지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기를 쓰고 끼어들었다. 묘를 파고 시체를 이장하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부모로부터 들었던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뼛조각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우리 부모도 돌아가시면 증조부처럼 하얀 뼈만 남는 건가? 나도 죽으면 그렇게 되는 건가?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나? 죽은 다음엔 아무 생각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건가? 그럼 생각은 어디로 가는 건가? 

 

16살 무렵 13남매 중, 5명의 동생이 한 해에 세상을 떠나는 비극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동갑이 중학생이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 소년은 왜 죽었을까? 어린 나이에 무엇이 그리 괴로웠을까? 마치 내가 당한 슬픔인 것처럼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신문을 펼쳐 놓은 채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시원히 풀 수 없어 나는 자연히 기도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영혼의 세계는 과연 있는가? 하나님은 확실히 존재하는가? 하나님은 정말 전능한 분인가?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라면 왜 세상의 슬픔을 그대로 보고만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다면 이 세상의 고통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가? 왜 인간은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것인가? 나를 괴롭히는 마음에 문제를 하나님께 털어놓고 기도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안했다.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지다 밤을 새우는 날도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이 내 기도에 화답해 주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내 평생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6살 되던 해, 부활절 전야였다. 

 

그날도 마을 뒤에 있는 묘두산에 올라가 밤새 기도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매달리며 묻고 또 물었다. 부활절 새벽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다.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난 예수님은 "고통받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시니라.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을 받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슬픈 얼굴의 예수님을 확실히 보았다. 그리고 그 음성을 분명히 들었다.

 

 

▣ 자서전 67       

하나님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언제든지 정성과 마음을 다해 그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이 길에는 집념이 필요하다.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단단히 붙잡아 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었다는 엄중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기꺼이 바쳤다.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길이 없었고 내가 갈 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나를 불렀을까?  구십이 다 된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가를 생각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이면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 외모가 잘 나가거나 인격이 훌륭하거나 신념이 강해서가 아니다.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분명히 계십니까?" 하고 물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았고, "하나님도 소원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서 그분께서도 소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 내가 필요합니까?" 하고 여쭤서 내가 쓰일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