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보희씨, 여기가 어디라고 잠을 자고 있어요?

true2020 2012. 9. 22. 12:15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내가 워싱턴타임스 사장을 하고 있을 때 뉴욕에 갔다가 납치된 적이 있다. 워싱턴타임스가 공산주의의 허점을 찔러 강력히 비판하자 공산주의자들은 통일교와 워싱턴타임스를 증오했다.

 

그들은 문선명 총재와 나를 살해하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한번은 뉴저지주 고속도로에서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다가 차량 안에 많은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이 실려 있었다.

 

데려가 엄중히 신문하니 “문 총재가 보스턴에서 낚시를 할 때마다 묵는 집에 지금 투숙 중인 것을 알고 있다. 다이너마이트로 그 집을 폭파해 문 총재를 제거하려 했다”고 실토했다.

1984년 11월27일 뉴욕에 갔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국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왔는데 호텔에서 잠깐 만나자고 했다. 나는 결례를 범하는 것을 원치 않아 즉시 보좌관과 함께 나갔다. 그런데 전씨는 로비에 나와 있지 않았다. 이윽고 청년 몇 사람이 나타나더니 “(전씨가) 좋은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할 테니 그쪽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내가 “그렇습니까? 제 차로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저희가 고급 승용차를 준비했습니다”라며 내 차를 돌려보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가 1971년 12월 3차 세계순회에 나서자 박보희 보좌관은 그림자 수행을 하며 통역을 전담했다. 당시 소련 등 공산국가에선 문 총재와 박 보좌관을 제거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링컨타운카에 나를 태우고 가던 두 청년이 갑자기 나를 뒷자리 가운데로 밀어붙이며 꼼짝 못하게 가뒀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 이놈들이 딴생각이 있구나. 내가 납치당하고 있는 게 분명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뉴욕 교외로 빠져나갔다. 밝은 시내에서 벗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에게 “약을 하나 사야 한다”고 부탁하자 다짜고짜 말이 거칠어졌다. “이 자식! 곧 죽을 놈이 무슨 약이 필요해?”

 

그들은 곧장 내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워 차 바닥에 처박은 뒤 마구 밟았다. “너희가 공산주의를 이긴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야” “너도, 문선명도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그런 상태로 아마 두 시간쯤 달린 것 같다.

어느 한적한 시골의 민가에 차를 세운 그들은 나를 2층으로 끌고 올라갔다. 거기서 큰 의자에 묶인 채로 지독한 고문을 당했다. 주먹질과 발길질은 문제도 아니고 전기 고문까지 받았다.

 

얼마 뒤 두목처럼 보이는 자가 나오더니 “너를 죽인 다음 건물 밑에 있는 드럼통에 자갈과 시체를 함께 넣어 호수에 버리겠다. 그러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아니라 FBI 할아버지도 네 시체를 찾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진맥진한 나는 쓰러졌다. 그런데 꿈속에서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분은 한학자 총재였다. “보희씨, 여기가 어디라고 잠을 자고 있어요? 잘 들어요. 이들이 요구하는 바가 있을 거예요. 무조건 다 해 준다고 하세요. 그리고 12시간 안에 이곳을 나가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내일 새벽 FBI와 총격전이 벌어질 텐데 악당들은 보희 씨를 먼저 죽이고 도망갈 것이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총재는 사라지셨다. 분명히 꿈이었다. 그런데 또 분명한 사실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른 악당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렇게 고생을 하게 해 죄송하다”면서 “당신네 회사에 전화해 몸값으로 미화 100만달러를 스위스은행에 송금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한 총재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송금은 할 수 있소. 하지만 전화로는 안 되고 내가 직접 은행에 가 서명해야 하오. 100만 달러는 어렵고 50만 달러는 꼭 보내 주겠소.” 그들은 돈이 급했는지 나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워싱턴에 돌아와 그들이 알려 준 계좌로 50만 달러를 송금했다. 내가 송금한 50만 달러는 FBI가 즉시 수해 다시 워싱턴타임스 계좌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를 납치했던 납치범은 일본에서 잡혀 재판을 받고 15년형을 살았다.

그 뒤 곧바로 뉴욕에 계신 한 총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총재 옆에 있던 아내에 따르면 한 총재는 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철퍽 주저앉으셨다고 한다. 한 총재는 댄버리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문 총재에게도 “보희씨가 살아왔다”고 알리셨다.

문 총재는 전날 밤 내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비좁은 교도소 침대 위에서 새우등을 하신 채 밤새 기도하셨다. 내가 살아 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뒤 문 총재는 “그래, 잘됐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다”라고 하시고는 곧장 깊은 잠에 빠지셨다. 가미야마의 얘기에 따르면 문 총재님이 그렇게 코를 크게 골고 주무시는 것을 처음 봤다고 했다.

내가 지금 누구의 은덕으로 살고 있는가. 내가 납치되었을 때 한 총재는 나를 위해 영적으로 나타나셔서 경고하시고 문 총재는 철야기도를 하셨다. 문 총재를 모신 54년 동안 별의별 일이 많았지만 납치사건이야말로 내가 문 총재 내외분 은덕으로 살고 있음을 세계 앞에 가장 잘 증거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