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창식 통일교 북미회장- 곁에서 본 문선명 선생.
- 2012.
문선명 총재가 최근 5년간 가장 정성을 들인 섭리 현장은 미국 서부 후버댐과 라스베이거스다. 후버댐 주변의 호수를 ‘레이크 미드’라 하는데 반경이 700여㎞에 달한다. 호수 근원지는 그랜드캐니언 남쪽으로 댐에서 240㎞ 정도 떨어져 있다.
문 총재는 직접 설계해 만든 보트를 몰고 한국과 미국에서 가장 실력 있는 선장을 대동한 채 이곳을 수백 번도 더 답사하셨다. 온갖 물고기 종류를 다 살펴보시며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양식업으로 전환하여 미래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베링해협에서 조업하는 대형 가공시설이 곁들여진 배를 ‘오션 피스(OceanPeace)’라 명명하시고 일본 사람 50명을 뽑아 100달러씩 나눠주며 생선 사업을 시작해 보라고 명하신 일화가 떠오른다. 1970년대 초의 일이다. 이 사업은 지금 연간 7억 달러(약 8000억 원)가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규모 사업으로 커졌다.
라스베이거스는 스스로 ‘죄악의 도시(sin city)’라 부른다. 밤이 더 화려한 이 도시는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이며 환락의 도시다. 인구 200만. 200만 명에 17만 개의 호텔 룸이 있는 이 도시를 찾는 사람은 연간 약 5000만 명에 이른다.
문 총재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 도시를 ‘밝고 빛나는 도시(shining city)’, ‘태양과 같은 밝은 도시(sun city)’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많은 정성을 들이셨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지난 2년여 동안 각종 교육을 위한 대회와 수련회를 25차례나 주도하셨다. 자체 시설의 필요성을 느껴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피스 팰리스(Peace Palace)’를 짓고 있다. 아울러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12만 권을 배부하여 카지노 유흥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보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각성하게 했다.
가정이 깨진 재미동포 젊은이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챙기시며 같은 처지의 일본인 여성을 만나게 하고 직접 주례를 해서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도록 축복하기도 하셨다. 라스베이거스의 환락과 죄악의 어두운 면을 광명한 이상세계로 바꾸시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그가 남긴 유일한 기도문에서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다. 문 총재가 경기도 가평 청평성지 내 천정궁에서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로 떠나시던 8월13일의 일이다. 평소 훈독회를 주관하시던 3층에서 문 총재는 최후의 기도를 하늘 앞에 드렸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오늘 최종적인 섭리의 완성, 완결, 완료를 아버지 앞에 돌려드렸고 지금까지 한평생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 바친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생을 종료하는 시간을 정성 들여 봉헌하옵니다. 국가와 세계를 대표하는 이름을 가지고 섭리적인 사명과 책임을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아주(아멘).”
기도하신 후 평소 제자들을 교육하던 훈독회룸 밖으로 나가셔서 산소통에 의지한 채 승용차에 올라 청평성지 곳곳을 둘러보고 어루만지시며 “잘 있으라”고 축복하셨다. 동행하시는 한학자 총재에게는 “엄마, 고마워요”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성화하시기 전에 모든 자손의 손을 한 사람 한 사람 잡아주시고 자녀들이 평소 아버님께서 애창하시던 성가를 불러드리고 나아가 “사랑해, 아버님”을 불러 드리자 손가락으로 나직이 장단을 맞추시며 화답하셨다. 마지막 순간 막내아들이자 통일교 세계회장인 문형진 목사의 기도로 생애를 마치셨다.
이처럼 아름답고 이처럼 광명한 성화가 어디 있겠는가. 문 총재는 1980년대 중반부터 하늘의 뜻을 위해 공의롭게 살다 가는 사람들의 최후를 더 이상 ‘장례’라 하지 않고 승화(昇華)로 해오다가 2011년에 이르러 ‘성화(聖和)’라 칭하셨다.
하늘나라 가는 길을 후손들은 슬퍼하지 말고 식장도 결혼식장보다 더 화려하게 꾸미며 참석자들의 넥타이도 하얀색으로 통일해 영생의 길을 향해 떠나는 자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 주라고 가르치셨다.
이제 그 위대한 스승이 평소에 가르치시던 그대로 모든 사명을 완성, 완결, 완료하시고 천성길을 향하신다. 마땅히 축제하는 분위기로 어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드려야 할 것인데도 떠나시는 님을 차마 보낼 수 없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국경과 인종을 넘어 도처의 세계인에게 ‘어버이’로 자리매김하셨던 그 자리, 가장 신적이며 가장 인간적이셨기 때문이리라.
수천억 인류가 왔다가 갔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24시간 365일을 날이면 날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다가 홀연히 떠나신 문선명 총재 같은 분은 다시 없을 것이다. 인류의 큰 스승이시다. 참으로 큰 분이 가셨다. 나에게는 스승이요, 영원한 멘토이며 아버지셨다.
40여년 전 고등학생 때 조국통일의 큰 비전을 가진 스승이 서울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뵙기 위한 정성으로 전남 함평에서 지금 누워 계시는 경기도 가평 청평 성지까지 1000리 길을 걸어 찾아 뵈었다.
당시 만 50세의 연세로 반소매만 입고 평상에 앉아 계시던 기골이 장대한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보고를 듣고 우리를 호쾌하게 맞아 주시며 “젊어서 고생해야 한다. 인생과 우주를 공부해야 한다”고 격려하셨다.
이후 “나는 이제 세계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테니 이 조국은 너희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주저없이 이 길을 출발했다. 한국에서 20여 년 일하고 도미해 미국과 세계를 주도하는 섭리 현장에서 지난 20년 동안 그분을 돕는 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문 총재가 중환자실로 떠나시던 8월13일 아침에도 청평에서 뵙고 몇 가지 사안을 보고드린 뒤 미국으로 떠났다. 다소 힘든 모습이었지만 조용히 좌정하신 채 “미국이 세계를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병원에 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나중에 듣고 ‘2∼3일이면 회복하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마지막 뵌 날이 되고 말았다.
문 총재는 하루를 1000년처럼, 1000년을 하루처럼 사시는 분이었다. 일과는 새벽 5시 시작하지만 끝나는 시간은 없다. 정해진 식사 시간도, 취침 시간도 없이 생애를 살아오셨다. 문 총재가 가장 즐기신 음식은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와 햄버거다. 오니기리 두어 개를 5분도 안 돼 다 드시고 아침을 때우신다. 급하면 찾으시는 것이 맥도널드 햄버거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회장에게서 매년 감사 편지가 왔을 정도다.
아무리 피곤하셔도 자정 이전에 잠자리에 드신 적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 오는 보고를 받으시고 때로는 결재하시면서 이미 자정을 넘기신다. 다음날인데도 당일 날짜로 사인하시면서 “오늘 하루 벌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최근에는 “내가 누우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의자에 앉아 밤을 새우신 적이 많았다.
그러니 모시는 주변 제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수면 부족과 때때로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졸다 못해 옆으로 쓰러져 버린 적도 많았다. 그래도 꾸짖기보다는 갑자기 책상을 치며 큰 소리로 말씀을 하시면서 잠을 쫓아 주시곤 했다. 그렇게도 자상한 어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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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가 최근 5년간 가장 정성을 들인 섭리의 현장인 미국 서부 후버댐에서 지난 7월 초 대형 잉어를 낚자 양창식 회장이 이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
문 총재는 말씀에 미치신 분, 말씀대로 사신 분이었다. 권당 500쪽이 넘는 말씀집 620권이 이미 출간되었으며 지금도 매월 다섯 권씩 신규로 출판되고 있다. 아직도 수백 권 분량의 말씀을 정리하는 중이다. 직원 40여 명이 하루종일 말씀집 간행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발행된 주요 말씀은 곧 40개의 외국어로 번역된다.
새벽 5시 훈독회는 문 총재께서 가장 기다리시는 시간이다. 말씀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3시간에서 10시간은 다반사다. 가장 길게는 23시간35분을 쉬지 않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예전에 어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상에서도 훈독회를 계속하시자 의사가 “선생님은 지금 환자이고, 여기는 교회가 아니라 병원”이라며 걱정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 총재는 중동평화를 위한 결단력과 추진력이 남달랐다. 2003년 미국·이라크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기독교문화와 이슬람문화의 근본인 예루살렘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주요 중동국가에서 이슬람 지도자를, 미국에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각 종단 지도자를 각각 예루살렘으로 부르셨다. 자칫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전쟁, 나아가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상황을 예견하시고 ‘소방수’를 자처하신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2003년 12월 22일 예루살렘 독립공원에서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평화행사였다. 전·현직 국가수반 60여 명을 포함해 2만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 문 총재는 미국 뉴욕에 계시면서 프로그램 진행을 일일이 전화로 주관하셨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분쟁 중심지로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곳이다.
우리가 그런 가자에 갈 때마다 문 총재는 뉴욕 앞바다에 나가서 험한 파도와 싸우시며 우리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뉴욕항에서 대서양 더 깊은 곳으로 배를 몰아 파도와 싸우시며 우리가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 기도해 주셨던 위대한 스승이요, 만인의 아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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